#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빵빵한 인생
요즘 독일식(式) ‘브레첸’으로 아침을 먹는 즐거움이 있다. 말 그대로 독일 스타일의 빵으로, 빵(Brot)에 축소형 어미를 붙여 브레첸(Bröchen) 곧 작은 빵이 되었다. 마침 비닐 포장에 3개씩 들어있는 얼린 식품을 발견했다. 주문과 배달이 최적화된 나라이니, 원산지보다 더 수월하게 받아먹을 수 있다. 겉은 딱딱하고, 속이 부드러워 빵에 익숙하지 않아 불편해하는 한국 사람에게도 적격이다. 독일에서는 온 국민이 먹는 아침 빵이다.
브레첸은 동네 빵집마다 맛과 크기가 조금씩 달라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같은 빵을 젬멜이라고도 부른다. 내게 ‘브레첸 제대로 먹기’를 가르쳐 주신 분은 이영빈 목사님이다. 목사님은 커피 향이 가득한 아침 식탁을 아주 즐겨하셨다. 브레첸 반쪽 위에 버터를 바른 후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말린 쉰켄을 올렸다. 혹은 다진 쇠고기에 양파채를 올리거나, 제 각각 맛의 별별 치즈를 올려 먹는다. 토마토나 양상추는 그때마다 형편 껏이다. 맨 마지막 빵은 달콤한 과일잼으로 끝내는 것이 정석이다. 입가심인 셈이다.
브레첸은 구운 빵의 특성상 잘 부스러진다. 빵 하나를 쪼개 먹으면 금새 상 위로 빵 부스러기가 사방에 흩어진다. 그만큼 빵이 바삭하다는 이야기다. 목사님은 브레첸을 드실 때마다 반복하여 상 위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쓸어내셨다. 빗자루 역할을 하던 넓적한 손이 눈에 선하다. 독일에서 60년을 넘게 사시다 보니 아마 빵이 고향 음식처럼 되었을 것이다. 천국에서도 아침마다 브레첸을 드실까?
우리가 부르는 빵이란 이름은 1540년대 포르투갈과 무역하던 왜인들이 ‘팡드로’(pao de lo)를 축약해 만든 단어이다. 나라마다 고유한 빵이 있다. ‘피타’는 지중해 인근과 중동 지역에서 먹는 둥글고 납작한 빵이다. 바자르마다 화덕에서 갓 구워낸 피타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판다. 빵의 세계에서 치아바타(Ciabatta), 포카치아(Focaccia), 바게트(Baguette), 크루아상(croissant)은 고급스럽다. 무엇을 끼워 먹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신하기 때문이다.
빵을 먹는 일은 경건 행위다. 주기도문의 7가지 간구 중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은 한 가운데 위치한다. 정교회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하신 누룩이 든 빵을 ‘아르토스’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브레쩰(Brezel)은 양팔을 안으로 구부려 기도하는 모습이다. 세자르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파니스 안젤리쿠스)은 ‘천사의 빵’이란 뜻이다.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이나, 지금 배부른 사람이나 마음이 가난하다면 천사의 음식은 얼마나 소중한가? 레오나르도 보프는 <성사란 무엇인가>에서 어머니가 구우시던 빵에서도 성사를 찾았다.
빵은 일용할 양식이고, 또 일상의 이야기다. 쿠바에서는 잘생긴 사람을 ‘망고’, 좋은 사람을 ‘빵’으로 부른다. 가장 좋은 친구는 빵과 같은 친구이다. 그는 항상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먼 길 떠나는 사람에게 작은 빵을 한입 물게 한 후 보관한다. 돌아와서 나머지를 먹으라는 것이다. 독일에서 새 이웃에게 소금과 검은 빵을 선물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을 자신의 소확행(小確幸)이라고 하였다.
속설에 평소 빵을 뒤집어 보관해서는 안 된다. 칼로 썰지 않고 손으로 찢어야 한다는 경구도 있다. 저녁기도에서 “나를 돌처럼 눕게 하시고, 빵처럼 일어나게 하소서”라고 간구한다면, 죽음을 가리켜 “나는 내 몫의 빵을 다 먹었으니 이제는 가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독일 로텐부르크 범죄박물관에 따르면 평소 빵을 작게 만들어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한 빵집 주인은 올가미에 갇혀 시궁창에 강제로 빠뜨리는 벌을 받았다.
사실 이 목사님 가정에서 브레첸보다 더 좋아하는 음식은 국수였다. 특히 평양이 고향인 아내 김순환 선생님은 늘 비장의 카드로 냉면 재료를 준비해 두셨다. 국수가 귀한 독일에서 냉면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한번은 미국 방문 중에 맛있는 국수를 잡숫고 오셨다면서, 그 이름을 궁금해하셨다. 두 분이 드신 국수 요리에 대해 들었다. “매운 국물인데, 그 속에 잡채 같은 것이 들어 있고, 해물도 들어있더군. 얼큰하고 빨간... 송 목사, 그 이름이 뭘까?”
1955년에 한국을 떠나셨으니, 그 이후로 나온 음식을 알지 못하셨다. 하긴 일제강점기와 전쟁통을 겪으면서 변변한 음식을 즐길 여유가 없었으니, 그 맛난 국수 요리를 아실 리가 없다. 궁금증 끝에 내린 결론은 ‘짬뽕’이었다. 누구에게나 가장 좋아하는 맛은 가장 익숙한 음식 때문일 것이다. 추억의 음식은 대체로 어머니 손맛이나 고향 음식이 대부분이다. 다시 내외분을 만난다면 브레첸보다 훨씬 구수한 콩국수를 대접하고 싶다. 평양냉면만큼 추억이 담겨 있고, 짬뽕보다 영양가가 듬뿍 담긴 바로 우리 어머니 음식이다.
첫댓글 나루할머니
독일에 새 유학생이 오면 누구도 예외없이 방을 구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곤 했어요 그들의 아침 식사는 늘 누룽지였는데 나중에 독일 빵의 참 맛을 보고서는 다 제게 속았다고 하더라고요 그시절에는 한국이 그리워 제가 아침도 누룽지를 끓여 먹었을만큼 밥순이였거든요 지금은 독일하면 빵이 제일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