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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겡키데스카? 와타시와 겡키데스!(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있어요!)"
청순한 여주인공이 요절한 연인을 그리워하며 연인이 사고로 숨진 눈 덮인 산을 향해 목메어 외쳤다.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유명한 마지막 장면이 스크린을 덮자, 컴컴한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는 이도 있었고, 로맨틱한 장면이 영 어색한지 헛기침을 하는 이도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우르르 몰려나오는 관객들 중 50대 중반 이하의 '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4층 허리우드극장에 있는 '실버영화관'(300석)은 어르신 관객들로 만원을 이뤘다.
이 극장에서 매주 월요일 2시 30분 시작하는 영화는 '무료'다.
찐빵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 부대', 스카프를 목에 두른 '할머니 부대', 데이트를 나온 초로(初老)의 커플들….
더러는 좀 초라한 행색의 '솔로'들도 있었다.
극장 관계자는 "선착순으로 좋은 자리를 드리기 때문에 월요일이면 영화 상영 한 시간 전부터 관객이 북적인다"고 했다.
실버영화관은 지난 1월 21일 문을 열었다.
한때 서울 시내 주요 개봉관 중 한 곳으로 꼽히던 허리우드극장 3개관 중 한 곳을 임차해, 어르신 전용 극장으로 꾸몄다.
관람료는 일반 영화관(65세 이상 4000~5000원)보다 훨씬 싼 '57세 이상 2000원'이다.
57세 이하는 8000원이다.
허리우드극장과 서울시가 함께 꾸리는 공간이다.
신면호 서울시 복지국장은 "고령화 시대를 맞아 노인들을 위한 문화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 시에서 홍보를 맡았다"고 했다.
김은주(35) 허리우드극장 대표가 공간을 제공했다.
김 대표는 부친과 함께 서대문구에서 옛 화양극장을 운영하다가, 작년 4월부터 허리우드극장을 임차해 운영 중이다.
그는 "허리우드극장은 탑골공원·종묘와 가까워 '어르신 전용관'이 들어서기에 최적지"라고 했다.
연간 운영비 3억원 중 1억2000만원은 SK케미칼이 후원하고, 나머지는 영화표 판 돈 등으로 충당한다.
'자유부인' '고교얄개' '엄마 없는 하늘 아래' 같은 흘러간 한국 명작영화를 주로 틀지만,
'영웅본색' '더티댄싱' 같은 추억의 외화와 '해운대' '국가대표' 같은 최신 우리 영화도 간간이 튼다.
이날 상영된 '러브레터'는 개관 후 처음 상영한 일본 영화였다.
실버영화관은 한 달 관객수 4000~6000명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관객수도 최근 5만명을 넘어섰다. 대부분 입소문을 듣고 수도권 곳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는 노인들이다.
사당동 이웃사촌인 문정순(67)·이호영(68)·유정기(67)씨는 "지하철 4호선 경로석에 나란히 앉아 남편·자식·손자들 얘기를 하면서 온다"며 "영화도 보고, 오며 가며 영감들과 못하는 여자들 얘기도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허리우드극장은 지난 11일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았다.
노인들이 부담없이 갈 수 있는 문화공간을 운영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회적 기업에 극장이 선정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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