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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서 찾아본 성경(聖經) 속에 나타난 리브가의 사명(使命)과
예수님의 혈통복귀(血統復歸)<1>
<평화경p956,> 성경(聖經)을 보면 해와가 먼저 하나님의 명(命)을 어기고 사탄과 관계(關係)를 맺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타락(墮落)으로 인(因)하여 해와는 물론(勿論) 아담과 그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까지도 이기심(利己心)과 거짓 사랑을 중심(中心)삼은 사탄의 혈통(血統)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탄에 의(依)해 본궤도(本軌度)를 이탈(離脫)한 아담 해와의 후예(後裔)된 우리 인류(人類)는 누구를 막론(莫論)하고 사탄의 혈통(血統)을 받고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 이유(理由) 때문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44절에서 ‘너희는 너희아비 마귀(魔鬼)에서 났으니’라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타락(墮落)한 해와가 자기실수(自己失守)를 복귀(復歸)하기 위해서는 모든 책임(責任)을 홀로 졌어야 했습니다. 해와는 자신(自身)의 타락행위(墮落行爲)와 반대경로(反對經路)를 거쳐 다시 바로잡고 타락(墮落)의 모든 단계(段階) 단계(段階)를 영적(靈的)·육적(肉的) 양면(兩面)으로 복귀(復歸)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해와가 차자(次子)인 아벨을 도와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협조(協助)해야 하는 것이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우리가 창세기(創世記)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은 아벨이 드린 헌제(獻帝)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벨에게 기대(企待)한 모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벨의 사랑을 통(通)해서 가인이 아벨을 하나님이 선택(選擇)한 자(者)로 인정(認定)하고 그와 하나 되기를 기대(企待))했고, 해와가 그들을 도와 두 형제(兄弟)가 하나 되도록 만들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해와를 중심(中心)하고 가인과 아벨이 하나 되었더라면 아담가정(家庭) 전체(全體)를 복귀(復歸)할 수 있는 기대(基臺)를 조성(造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섭리역사(攝理歷史)를 통(通)하여 타락(墮落)한 해와의 역할(役割)을 대신(代身)하여 가인과 아벨적 인물(人物)을 하나 되게 하고자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특별(特別)한 여인(女人)들이 해와와 동일(同一)한 사명(使命)을 수행(隨行)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선212-65> 아담해와가 타락(墮落)하여 원리원칙적(原理原則的) 기반(基盤)에 서지 못하고 탈원리(脫原理) 권내(圈內)에 섬으로 말미암아 아담해와는 반드시 다시 시정(是正)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 원리원칙(原理原則)에서 이탈(離脫)되든가 하는 입장(立場)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墮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의 사랑의 원리원칙적(原理原則的) 세계(世界)에 있지 못하고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인간자체(人間自體)로서는 분리(分離)됐지만 하나님의 본연(本然)의 창조이상(創造理想)으로 보게 될 때는 그 분리(分離)된 아담해와가 본래(本來) 하나님의 직계자녀(直系子女)가 되어야 된다는 그 원칙(原則)만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할 수 없이 이것은 구원복귀(救援復歸), 재창조(再創造)라는 뜻 가운데에서 다시 수습(收拾)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길이 구원섭리역사(救援攝理歷史)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말선212-66> 이렇게 구원섭리(救援攝理)를 하는 데는 원칙(原則)을 따라야 하는데 아담해와가 그 원칙(原則)의 노정(路程)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아는 입장(立場)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모르는 입장(立場)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모르는 그 입장(立場)에서 인류(人類)가 번식(繁殖)되어 세계적(世界的)인 발전(發展)을 해 나오는 가운데 그 배후(背後)에 종교권(宗敎權)을 세워가지고 아담해와 이상(以上)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서 본연(本然)의 부모(父母)와 본연(本然)의 세계(世界)로 돌아가기 위해 정성(精誠)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종교권(宗敎權)에 한(限)해서는 타락(墮落)했던 이상(以上)의 심정권(心情權)이 연결(連結)될 적마다 하늘이 영계(靈界)에서 가르쳐 줌으로써 종교권(宗敎權) 배후(背後)와 하나님의 섭리(攝理)는 발전적(發展的) 인연(因緣)을 묶어 나왔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종교(宗敎)들을 중심(中心)삼고 종(從)의 종(從) 시대(時代)로부터, 종(從)의 시대(時代), 양자(養子)의 시대(時代)로 탕감(蕩減)의 길을 걸어 나오면서 이스라엘이라는 선민(選民)을 하나님이 택(擇)해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 선민(選民)이라는 것은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선민(選民)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역사적(歷史的)으로 실수(失手)한 모든 것을 탕감(蕩減)하여 어디로 찾아 들어가야 되느냐? 본연적(本然的) 혈통(血統)을 맑게 해야할 입장(立場)에 서 있기 때문에 가인 아벨 시대(時代)에서부터 그 이후(以後)의 에서와 야곱을 중심(中心)삼고 전부(全部)다 피(血)를 맑게 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피(血)를 교체(交替)해야 된다는 거예요 씨(氏)를 변경(變更)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立場)에서 에서와 야곱 대(代)에 있어서 야곱이 어머니와 합(合)해 가지고 에서의 장자권(長子權)을 전부(全部)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이때의 리브가의 입장(立場)은 하나님을 속이고, 남편(男便)을 속이고, 아들을 속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님(兄任)을 속이는 입장(立場)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륜도덕적(人倫道德的)으로 볼 때에는 성경(聖經)을 이해(理解)할 수 없는 비법적(非法的)인 기사(奇事)로 남아 있었던 것이지만, 이 비법적(非法的)인 기사(奇事)가 사탄세계(世界)로 향(向)해 가던 인류역사(人類歷史)의 방향(方向)을 180도(度) 돌이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動機)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선212-67> 그러나 에서와 야곱때에 있어서 야곱이 에서를 돌이킨 것은 40대(四十代)에 가서야 돌이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중(腹中)에서부터 40대(四十代)까지는 돌이키지 못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역사시대(歷史時代)를 거쳐 야곱과 야곱의 아들인 유다, 유다 아들, 이렇게 3대(三代)만에 다말을 중심(中心)삼고 다시 돌이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다말이 잉태(孕胎)한 것도 비법적(非法的)입니다. 시아버지하고 하나 되어 가지고 잉태(孕胎)했다구요. 이것은 뭐냐? 하나님을 상징(象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징(象徵)하는 입장(立場)에서 잉태(孕胎)한 것입니다.
다말이라는 여성(女性)은 축복(祝福)받은 혈족(血族)을 무엇보다도 사랑한 것입니다. 자기생명(自己生命)보다도, 자기일신(自己)一身)이 희생(犧牲)되는 한이 있더라도 축복(祝福)받은 혈대(血代)를 남겨야 된다는 입장(立場)에서 이러한 행동(行動)을 해가지고 애기를 잉태(孕胎)해서 낳은 것이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보게 되면 리브가의 복중(腹中)에서 잉태(孕胎)한 야곱과 에서, 또 다말의 복중(腹中)에 잉태(孕胎)한 베레스와 세라는 똑같이 복중(腹中)에서 둘이 싸웠다는 것입니다. 복중(腹中)에서 싸우는 것을 보고 다말이나 리브가가 기도(祈禱)하는 내용(內容)도 똑 같았습니다. 하늘 앞에 ‘이 복중(腹中)의 두 애가 왜 싸웁니까?’ 할 때 ‘네 복중(腹中)에는 두 나라가 있으며 큰 자(者)가 작은 자(者)를 섬기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 또한 같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냐? 섭리적(攝理的) 입장(立場)에서 외적(外的)으로 점점(漸漸) 축소(縮小)시켜 가지고 쌍태(雙胎)로부터 복중(腹中)까지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먼저 나온 형님(兄任)인 베레스의 팔에 산모(産母)가 빨간 실로 표시(標示)하고 난 후(後)에 먼저 나오려고 하는 형(兄)을 밀치고 동생(同生)되는 세라를 먼저 나오게 함으로 말미암아 복중(腹中)에서 장자(長子)를 복귀(復歸)하여 나온 것입니다. 복중(腹中)을 청소(淸掃)해 가지고 비로소 하늘편 사람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말선95-163> 아담가정(家庭)에서 실패(失敗)한 것을 가인 아벨을 중심삼고 하나 만들려고 했는데, 아벨이 죽었기 때문에····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야곱시대(時代)에 와가지고 하나 만들려고 했다구요. 자녀시대(子女時代)에 와가지고 형님(兄任)이 사탄세계(世界)에서 먼저 났으니 형님(兄任)이 동생(同生)을 주관(主管)할 수 있는데, 형님(兄任)을 동생(同生)의 자리에 보내고 동생(同生)이 형님(兄任)의 권한(權限)을 세워야 하늘 권한(權限)이 복귀(復歸)된다 이거예요. 이삭은 하나님 대신(代身)입니다. 이삭과 리브가를 아담 해와의 입장(立場)에 세웠으니,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은 가인 아벨과 딱 마찬가지이다 이거예요. 해와가 실수(失守)해서 타락(墮落)한 장본인(張本人)이 되었기 때문에 해와된 입장(立場)에서 리브가가 모든 일을 처리(處理)한 거예요.
여러분, 성경(聖經)을 읽어보면, 리브가는 에서가 장자(長子)의 기업축복(基業祝福)을 받을 줄 알고, 남편(男便)을 속이고 아들을 속여 가지고 거짓말을 해서 야곱에게 양(羊)털을 쓰게 해서 축복(祝福)받게 했는데, 하나님이 멍텅구리 하나님이에요? 왜 그 축복(祝福)을 야곱에게 내렸느냐 이거예요. 신학자(神學者)가 그걸 알아요? 오늘날 역사적(歷史的)인 모든 기독교인(基督敎人)들이 그걸 알아요? 그게 무슨 성경(聖經)이야?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렇게 하지 않고는 복귀(復歸)의 원칙(原則), 돌아 갈 수 있는 길이 풀리지 않아요. 거꾸로 매였기 때문에 그걸 풀려면 반대(反對)로 해야 된다구요.
해와가 타락(墮落)할 때, 하나님은 아버지이고 아담은 아들인데 그걸 전부(全部)다 부정(不定)하여 타락(墮落)해 가지고 전부(全部)다 망(亡)쳐버린 거라구요. 그래서 사탄하고 하나 되어 가지고 떨어진 거예요. 그것을 복귀(復歸)하려니 반대(反對)로 해야 돼요. 역사시대(歷史時代)에 반대(反對)로 하는 놀음이 벌어져야 된다 이거예요.
자, 리브가는 어떤 입장에 섰느냐 하면, 해와의 자리에 선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男便)을 하나님 자리에 세우고, 아들을 아담자리에 세워가지고 타락할 때 부정(否定)했던 것을 다시 부정(否定)해 가지고 둘째 아들의 입장(立場)에서 야곱을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편의 복귀(復歸)된 자리, 탕감(蕩減)해 가지고 복귀(復歸)된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아들을 축복(祝福)받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長子)의 입장(立場)을 복귀(復歸)해 가지고 거기에 에서가 굴복(屈伏)하고 그 다음엔 어머니 아버지가 굴복(屈伏)하면 탕감복귀(蕩減復歸)되는 거라구요. 그래서 타락(墮落)으로 뒤집어진 것을 뒤집어 놓은 거예요. 이렇게 된 것을 뒤집어 박는 거예요.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야 올라가는 거라구요. 그래서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준 것입니다. 승리(勝利)했다는 이름인데 무엇에 승리(勝利)했느냐? 타락권(墮落權)에서 승리(勝利)하고, 아담해와 타락(墮落)의 실수(失守), 가인이 아벨을 죽였던 그 실수(失守)를 탕감복귀(蕩減復歸)할 수 있는 기준(基準)을 비로소 세워 놨다는 거예요.
무엇에서 이겼느냐? 가인 아벨의 자리와 아담 해와의 자리와 사탄의 세계(世界)에서 승리(勝利)했다구요. 이래서 어디에서 이루었느냐? 장자복귀(長子復歸)를 한 거예요. 그전(前)까지는 사탄편 장자(長子)였던 것인데, 비로소 야곱시대(時代)에 와서 하늘편 장자권(長子權)이 생긴거라구요. 이 인류(人類)가운데 비로소 아벨권 장자기준(長子基準)이 생겼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류(人類)는 이스라엘을 따라가라! 그러면 에서와 야곱은 쌍(雙)둥이인데, 왜 쌍(雙)둥이를 갖고 복귀섭리(復歸攝理)를 했느냐? 쌍(雙)둥이는 서로 잘 통(通)한다구요, 두 아들에서 분리(分離)되어 실패(失敗)했기 때문에 결국(結局)은 쌍(雙)둥이를 찾아 갔다구요. 그렇지만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 커가지고 그 놀음을 했기 때문에 복중(腹中)에는 근본(根本)이 그대로 있었다구요. 타락(墮落)한 기준(基準)은 아직까지 사탄이 마음대로 하고 있었다구요. 여자(女子)의 배에서 태어난 것은 아직까지 사탄권내(權內)에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다시 한 번····그것이 뭐냐 하면 다말이라는 여자(女子)를 중심(中心)삼고 한 거예요. 그걸 보면 딱 마찬가지라구요. 다말은 리브가와 해와와 마찬가지라구요. 다말이라는 여자(女子)를 중심삼아 가지고 아버지와 아들을 속이는 것이 리브가와 와 딱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입장(立場)에서 다말이라는 여인(女人)이 그런 공작(工作)을 한 거예요.
다말이 누구의 며느리인가? 야곱의 넷째아들 유다의 며느리에요. 유다의 며느리, 그리고 다말이라는 여자(女子)는 자기남편(自己男便)이 죽었고, 그다음엔 남편대신(男便代身) 동생(同生)을 남편(男便)으로 삼았는데 또 죽었다 이거예요. 그런데 셋째아들은 나이가 어려서 남편(男便)이 될 수 없으니, 그 아들이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자기가 여자(女子)로서 기능(機能)을 발휘(發揮)하지 못하겠으니·····자기(自己) 생명(生命)을 희생(犧牲)시키더라도 이스라엘 축복(祝福)을 이어 받는다는 것, 유다의 혈통(血統)을 이어 받는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重要)한 일이었다 이거예요.
그래서 창녀(娼女)로 가장(假將)해 가지고 자기(自己) 시아버지를 중심(中心)삼아서 반드시 대(代)를 이어 놓으리라고 생각(生角)했다구요. 리브가는 해와가 하던 것처럼 하나님을 속이고 신랑(新郞)과 아버지를 거부(拒否)하고 자기목적(自己目的)을 이룬 것이 아니라 반대(反對)로 하나님의 목적(目的)을 위해서 생명(生命)을 걸고 나온 여성(女性)이라구요. 이래 가지고 시아버지와 관계(關係)해서 거기에서 베레스와 세라 쌍(雙)둥이를 낳게 된 거예요. 그래 야곱과 에서가 복중(腹中)에서 싸우던 것과 딱 마찬가지로 싸운 거예요. 리브가가 하나님께 복중(腹中)에서 둘이 싸운다고 기도(祈禱)할 때 하나님이 ‘네 복중(腹中)에는 두 나라가 있음이요, 큰 자(者)가 작은 자(者)를 섬기리라’ 고 한 똑같은 대답(對答)을 했다구요. 그래 가지고 형(兄) 세라가 손을 내밀고 먼저 나오려고 할 때 산파(産婆)가 빨간 실로 손목에 표시(標示)를 했다구요.
그것은 앞으로 주님(主任)이 오기 전(前)에 공산당(共産黨)이 먼저 나온다는 것을 예고(豫告)한 거라구요. 그래서 장자권(長子權)을 가질 수 있는, 세계(世界)를 움직일 수 있는 극 같은 찰나에 동생(同生)이 밀치고 나온 거라구요. 이래서 혈통적(血統的)으로 더럽혀진 것을 사탄편의 장자(長子)로 낳던 것을 비로소 복중(腹中)에 있어서 혈통적(血統的)으로 뒤집어 가지고 역사적(歷史的)인 새로운 출발(出發)이 벌어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유다지파(支派)를 중심삼고 복중(腹中)에서 승리(勝利)한 전통(傳統)을 이어 받아 가지고 언제나 ····,
여러분, 애급에서 나올 때 유다 족속(族屬)이 전부(全部)다 법궤(法櫃)를 메고 나왔다구요.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예수는, 메시아는 유다지파(支派)를 통(通)해서 와야 된다는 원칙(原則)이 여기서 결정(決定)된 거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예」 이래 가지고 어떻게 됐느냐 하면 복중(腹中)에서 뒤집어졌었다구요. 아담해와의 아들 두 형제(兄弟)로서 이것을 복귀(復歸)해야 하는 것을 전부(全部)다 어머니 복중(腹中)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中心)삼고 복귀(復歸)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사상(思想)을 가진, 다말과 같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자기(自己) 생명(生命)까지 다 바치는 여인(女人)이 나와 가지고 대(代)를 이으면 그 후손(後孫)에 대(對)해서는 사탄이 그 복중(腹中)에 들어가 가지고 참소(讒疏)할 수 없는 기반(基盤)이 닦아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찌하여 그 때에 메시아가 오지 못했느냐? 역사시대(歷史時代)에 사탄편이 나라와 세계적(世界的)인 기반(基盤)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국가적(國家的) 기반(基盤)을 이룰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적(世界的)인 중심국가(中心國家)로 나타날 수 있는 그 때, 역사적인 전통(傳統)을 이어받은 기준(基準)을 통(通)해서 메시아를 보내게 된 것이 이스라엘나라의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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