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부르는 삶
요6:5-13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기적이란 무엇입니까? 기적이란 자연의 이치를 깨고, 이성의 범주를 뛰어넘는 현상을 말합니다.
본문에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먹고도 남았다고 합니다. 마8장에는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기적의 의미를 좀더 확대시켜 본다면 “기적이란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연의 이치가 깨는 것만큼 놀랍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도 목사 이전에 믿음의 사람으로 기도하고 소망하는 가운데, 저의 생각을 뛰어넘는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을 정말 많이 경험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만든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여기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이 시간 “기적을 부르는 삶”이란 제목의 말씀을 나누면서, 저와 여러분, 벤츄라교회 위에 하나님의 기적으로 체험하는 역사를 있기를 원합니다.
첫째, 지금 이 순간도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요셉의 젊은 시절을 영화로 만들어 제목을 붙인다면 “불행의 연속”, “끝없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은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습니다. 형제들이 그를 미워하여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형제에게 당한 배신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통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 비록 노예였지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에 그가 하는 일이라면 잘되었고 주인인 보디발도 그를 신뢰했고, 그의 위치에서 정착했던 순간, 보디발의 부인이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남의 나라에서 노예였던 그에게 법적인 문제까지 벌어지니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이 정도면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도 불평불만이 터져나왔을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에도 요셉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요셉은 요즘으로 말하면 잡범입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가 갇힌 감옥은 잡범이 갇히는 감옥이 아니라,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창39:20)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가 곁에는 왕궁에서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함께 갇혀 지내게 됩니다. 또한 시위대장이 명령하여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을 섬기게 함으로 그들은 좋은 관계 속에서 지내게 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민자의 삶에 일차 장애요소는 언어입니다. 늘 언어의 부족함을 느끼며 삽니다. 요셉도 그랬을 것인데, 기가막힌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개인 교사를 둘이나 두는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왕궁에서 일했던 사람들인지라 언어 중에서도 궁중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언어는 집단마다의 특수성이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처음하시는 분들이 겪는 가장 일차적인 문제가 바로 언어의 문제입니다. 교회에 처음오시는 분이, 교회에 와서는 “언니, 언니”라고 해서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셉에게는 감옥이 바로 그러한 언어를 익히고 연습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마친 요셉은 후에 꿈을 해몽함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민 생활 13년만에 노예 신분에서 한 나라의 총리가 되는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최악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했던 인생이 체험하는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요셉처럼, 최악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들이 이루어져가는 것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기적을 부르는 삶이란 “뭐라도 하는 삶”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인생을 철학적으로 말하면 어렵겠지만, 쉽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의미로 채우는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한 것 투성이지만, 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일년은 365일입니다.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떤 의미로 채우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달라집니다.
여러분의 어제는 어떠하셨는지요? 어떤 의미로 채워져 있으셨나요? 무의미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아니면 나름 의미가 있으셨습니까? 어제가 어떤 의미를 지녔던지, 오늘은 의미있는 시간이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의미란 것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궁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만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요셉이 애굽의 언어와 궁정의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요셉이 연속된 불행에 지치고 낙망하여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셉의 게으름과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획은 지체되었을 것입니다. 당장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요셉은 그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기적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본문에도 이와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실 때에 먹거리에 대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녁이 되니 인간의 배꼽시계는 얼마나 정확한지 저녁이 되니 여기저기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장정만 오천 명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요?
이번에 다녀가신 큰형님이 문무대라는 부대에서 군수담당을 하셨습니다. 학사장교와 헌병대교육을 담당하는 부대라, 한번 교육이 시작되면 보통 5,000명의 군수를 보급하시는데, 특히 먹는 일에 대단했다고 합니다. 매일 소 한마리가 들어가고, 하루에 쌀이 몇 가마, 간식으로 빵 한 개씩만 준비해도 몇백만원이 들어갔다고 하시더군요.
들판에서 5,000명을 먹는 일은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생각을 궁금해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답한 것이 7절 이하에 나옵니다.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빌립은 정확하게 계산하여 200 데나리온 어치의 음식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데나리온은 하루 일당에 해단하니, 미국식으로 하루 일당을 200불만 잡아도 4,0000불입니다. 빌립은 정확한 금액을 말했을 뿐이지만, 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입니다. 그렇게 포기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의 이야기를 보니, 가데사 바네아에서 보고했던 10명의 정탐꾼들 보고와 똑같습니다. 민수기 13장에 나온 그들의 보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길게 떠든 것입니다.
그에 반하여 안드레는 어디에선가 작은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가 들고 있던 음식은 아이를 위한 음식이라, 예수님께도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의 모습 속에 우리는 기적을 부르는 삶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안드레의 모습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안드레의 순종에 예수님의 능력이 더해지니 기적이 일어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의 음식이 남았다고 합니다.
작아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안드레의 순종과 행동,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멘
우리 말에 “뭐라도 해야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뭐라도.... 그것이 의미가 없을지라도, 그것이 어떤 영향이나 변화를 일으킬지 몰라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에는 혈루증 여인이 고침받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질병 속에 살다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으로, 오랫 세월의 질병으로 몸은 약한데, 예수님 주변은 12제자가 둘러싸고 있었고, 그녀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상태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눅8장)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는 것이었습니다.
병으로 약해진 그녀에게 그것 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손을 대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몇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1) 불을 피운다는 의미가 있다.
믿음은 자기 자신의 마음에 믿음의 불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성령의 불, 말씀의 불, 기도의 불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2-4)
500백명의 제자들 중에 다 떠나고 120문도만이 남아 더운 다락방에서 매달렸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을 부어주셨습니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의 불길이 임하길 원합니다.
그냥 찬양하지 마세요. 혈류증 여인의 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입시다. 그냥 기도하지 마세요. 체면 차리거나, 주변 신경쓰지 마시고, 기도합시다. 여러분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2) 붙잡는다는 뜻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3) ‘교제하다’의 의미가 있다.
신앙에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 주님과 밀접한 교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게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시 73:28)
저는 이 여인의 몸짓은 작았지만, 그것이 최고의 믿음이었고, 기적의 출발이었습니다. 주님은 작든 크든, 크기의 문제가 아닌, 바로 중심의 문제, 최선의 문제를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주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삶에 성경에 기록된 기적이 나타나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기적을 부르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여러분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앞에 뭐라도 하셔야지요. 하루를 시작하는 짧은 기도가 의미없어 보이시나요. 불과 몇 분의 시간을 내어 읽는 성경말씀이 의미없어 보시나요. 매주일 성가대로, 그밖의 다양한 모습으로 헌신하는 일이 어떻게 생각되시나요? 주님은 오늘도 당신의 뜻앞에 순종하고 뭐라도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위에 기적을 베푸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