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사태, 무엇이 문제인가.
국어사전에서 ‘사태(事態)’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상태나 위급한 상황이라 기록되어 있다. 즉 긴급한 상태인 비상사태, 12.12사태, 10.26사태, 광주사태, 부마사태, 제주 4.3사태 등 처참하고 위급한 상태를 예로 들 수 있다.
며칠 전 개혁실천연대로부터 연락을 받고 개혁의 소리를 들어보고자 청어람을 향해 갔다. 오늘의 기자회견주제는 ‘국민일보사태, 무엇이 문제인가?’였다. 아마도 ‘사태’가 들어가는 것을 보니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언론과 온라인을 통해서 뜨겁게 달구었던 가족 간의 재산권 문제인지라 개혁적인 시각도 알고 싶었다.
진행자인 남오성목사가 국민일보 사태일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마치 어느 대기업 재산목록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사위, 아버지동생 등 일가친인척의 사유재산목록 변천사로 가족이 총 동원되었다. 참으로 화기애애( 和氣靄靄)한 가족적인 분위기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곳은 어느 한 가족의 사유재산이 되어서는 안 될 곳 아닌가. 종교와 언론과 학교가 결속된 공정성과 정직성이 생명인 교회의 헌금인데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일보사태’는 로열패밀리 간의 충돌이 끝이 없나보다. 재산이 하늘만큼 많다보니 챙겨야 할 것도 당연히 많아졌다. 그리고 그 모든 재산의 주인을 명실상부 하나님의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사유화 했기에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서 가장 먼저 교회적인 측면에서 구교형목사(성서한국 사무총장)가 발제 자료를 제시했다. “한국교회는 교파, 교단, 역사, 지역, 규모 등을 초월해 하나의 성격으로 통일되어 있다. 신학은 미국 근본주의이며, 정서는 유교권위주의, 천국관은 샤머니즘적 천당, 목회철학은 조용기 목사의 3박자 축복이다”라 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목사숭배’가 유별나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대부분 이름만 주인이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금송아지 만들어 북 치고 장구 치고 춤추며 황금 빛나는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다.
이처럼 교회가 대형화 조직화된 곳에서는 목사를 섬기는 것을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치우쳐간다. 가장먼저 영권을 내세워 무지한 일방도로를 만들어 그들만의 천국, 그들만의 교회를 만들어 간다. 감히 어느 누구도 불법과 탐욕을 언급할 수도 없다. 목사의 말이 법이고 심판인 무법천지가 바로 대형교회에서 자행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래서 목회자 가족은 모든 특혜를 누리며 자신들만의 아성 안에서 힘센 자(교회 창립자나 공로자)가 주인이 되어 결국 ‘목사숭배’를 낳았다 했다. 구교형 목사는 결론적으로 조용기 목사는 가장 나쁜 목사가 아니라, 한국교회 목회자 모습을 대표하는 모델링으로 칭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그를 닮아가려 하기에 말이다. 잠시 자신에게 되물었다.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따라가라 했지 배부른 사람의 모습을 닮으라 했느냐.’
두 번 째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교수가 이 사태를 언론적인 측면에서 발제를 논했다. 오늘날 모든 언론은 사주에 의해 조장되는 사례와 대기업에 매수 된 언론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국민일보 사유화의 징표들을 논하며 몇 가지 해결방향도 내놓았다. “국민문화재단의 설립 취지에 맞는 체제 변경과 교계 일반의 목소리와 언론 일반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신문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소유주 문제를 좀 더 사회화해 경영진 구성원이 패밀리 중심이 아닌 교회 민주화 차원에서 다양한 소리를 담아라.”했다.
참으로 성서 적이고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성서를 보고 느끼는 감동들이 제 각기 다르다. 아마도 순복음신학과 기하성(기독교하나님의 성회)성서는 어느 별에서 왔는지 묻고 싶다. 언론이 눈을 감는 날 세상은 어둠으로 뒤덮일 것이다. 빛도 거대자본에 눌려있는 것일까?
세 번 째 발제자로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 본 국민일보 사태를 재치 있는 화두로 시작 했다. 그가 마이크를 잡자 갑자기 마이크가 잡음을 내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을 어느 교단에서 보면 사탄마귀가 방해한다 하겠죠, 그냥 마이크 고장일 뿐인데......,저는 10년 전 어느 방송사를 다니다가 게시판에 비판의 댓글을 올린 건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사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날자가 바로 루터가 종교개혁 한 날, 10월 31일 이었습니다. 김00목사께서 루터처럼 종교개혁을 하고 싶으면 나가서 하라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저는 지금 루터대학 강사로 있습니다.”간단 명료하게 좌중을 한바탕 호탕하게 웃게 했다.
‘국민일보사태’와 ‘공정사회’를 놓고 몇 가지 문제를 제시 했다. 공정사회 안에서 고위공직자 자녀들의 취업 특혜의혹과 병역기피를 비판했다. 특히 조목사와 세 아들의 병역의무는 세 부자가 합쳐서 7개월이다. 역시 신의 아들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미국시민권을 취득하고 언론사 사장이 되기 위해 다시 변신하는 그들은 과연 어느 별에서 왔을까. 수시로 반공과 국가안보를 외치는 자로서 참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리고 광우병 촛불 집회를 북한의 음모로 몰아세운 것도 우매한 자로 보였다. 진정한 외침은 저주와 모함이 아닌, 화합과 용서 아닌가.
한 때, 광우병 촛불집회를 남산에서 취재하던 극 보수인 세 방송사가(극동방송, 기독교방송, 평화방송)벼락을 맞은 적이 있다 한다. 이때 만약에 개혁 편에 서있는 방송사가 벼락을 맞았다면 하나님의 심판, 사탄마귀들의 징계 등 온갖 저주를 했을 것이라며 여담을 나누었다. 기독교의 샤머니즘화를 듣는 것 같았다. 실제 삶에서 개신교가 얼마나 뿌리 깊게 샤머니즘화 되었는지는 심각할 정도다. 신비주의나 영지주의에 치우친 신령한자를 찾아 이산 저산 헤매는 맹신 맹목 자들을 오늘날 누가 양성했는가.
김용민 시사평론가는 국민일보신문의 언론의 공정성과 사실성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종교불화 조장으로 최근에 일어난 봉은사 땅 밟기를 공조한 사례와, 대구 동화사 땅 밟기에 대한 보도를 비판하며 기독교 신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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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 째 발제자로 손봉호교수(서울대 명예교수)의 윤리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국민일보 사태를 진단했다. “언론의 자유를 방해하는 요소가 반드시 정치적인 세력만은 아니다. 그 방해 요소에는 돈과 종교의 힘이 결부되었다. 그래서 생존을 위해서 언론은 광고주의 시녀노릇을 하고 있다. 언론이 광고주로부터 해방 될 때 언론의 사명을 다 할 것이다. 권력과 돈, 종교를 떠난 독립적이고 사실적인 신문이 필요한 시대다.”라 했다. 종교 또한 하나님에 대한 예배, 찬양, 기도, 선교, 헌금은 강요된 반면에 윤리적인 면이 약하다 지적했다.
종교는 오직 섬기기 위한 사명인데 다스리기 위한 지배적으로 변질되었다 했다. 입술로는 하나님의 교회라 칭하지만 대부분 목사의 교회처럼 사유화되었음을 지적 했다. 끝으로 손봉호 교수는 의미심장한 명언을 남겨주었다. “조용기 목사는 영원히 살려면 지금 죽어야 한다. 지금 살아있을 때 죽어야 영원히 산다.” 이런 때는 아멘을 해도 될 것같아서 아멘이라 화답했다. 그리고 그분을 위해 축복했다. ‘당신이 성자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잠시 후 질의 응답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약된 질문자가 나왔다. 기하성 교단에서도 이 사태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나보다. 자신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자신은 국민일보와 조목사에 대해서 그동안 많은 비판을 해왔던 사람이라 소개했다. 아마도 이곳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먼저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나보다. 비판은 반드시 개인의 사욕이나 탐욕이 숨어있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상술이다. 비판은 반드시 공정성과 정직함이 원칙이며 그 문제에 대한 대안과 개혁정신이 따라야 한다. 비판이라는 단어를 남용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그는 시종일관 조목사를 찬양하며 변명과 해명을 거듭했다. 또한 세 아들에 대한 변론까지 준비해 왔다. 참으로 일등공신이 따로 없다. 필자는 더 이상 듣기가 거북해서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나가서 마음을 다스렸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생각과 삶이 다름을 인정하라, 저가 오죽하면 여기까지 와서 충성스런 시녀노릇을 하겠느냐. 그를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보아라.’내 안에서 분노하고 있는 마음을 스스로 달랬다.
잠시 후 구교형 목사와 김용민씨를 향해 가슴에 배지를 단 남자가 일어나 질문을 던졌다. 듣고 보니 그 또한 순복음교회 관련된 사람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여기저기 앉아서 개혁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들이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이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이들도 이러한 또 다른 생각과 개혁의 소리들을 들어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모아져 비판과 갈등을 겪다보면 좀 더 함께 가는 길은 좁은 길이 되지 않겠는가.
개혁 편에 서 있는 사람들도 이들과 잠시 이해 할 수 없는 막힌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래도 높은 담을 쳐다만 보고 있는 것 보다 서로가 넘어보려는 행함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끝으로 방인성목사의 맺은 말이 가슴을 저미었다. “가슴이 찢어진다. 성도들은 분명히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는 심정으로 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헌금을 가족끼리 사유화하며 재산싸움까지 일어났다. 왜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전을 부셔버리라 하셨는가. 맘몬이 자리 잡고 지배했기에 진노하셨다. 조목사는 하나님과 성도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을 섬기는 것 보다 세상을 무시하는 교만으로 차있다.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국민일보는 언론을 망치고 있는 주범이다. 돈의 힘에 가려지는 언로가 안타깝기만 하다.그리고 성도들이 불쌍하고 가엾다.”라 말했다. 필자의 생각은 헌금을 사유화하고 있는 저들의 영혼이 더 가엾게만 보인다.
필자역시 깊은 공감대를 보낸다. 한국교회 수많은 성도들은 착하다. 그리고 반면에 맹신 맹목적이다. 조금 앞선 개혁적인 성도는 교회 안에서 이들과 함께 신앙생활하기 힘들다. 교회나 담임목사에 대해서 어떠한 대안을 건의하는 사람은 마녀사냥감이다. 그리고 조금 더 소리를 내면 그 사람은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아야 한다. ‘부정적인 비판자’ ‘사탄마귀’라는 명칭이 붙어 다닌다.
이 모든 사건들을 돌이켜 볼 때 제2의 루터 종교개혁이 시급한 시기다. 필자가 지금시점에서 추구하고 있는 대안은, 하루속히 한국교회 성도들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것은 사람을 미워하고 쫓아내는 비판이 아닌,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다. 그 사랑은 많은 것, 높은 곳, 웅장한 곳이 아니다. 개교회주의, 대형교회, 우리들만의 리그를 벗어나 흩어져야 한다. 가정으로, 이웃으로, 세상을 향해 어둡고 가난한 곳으로. 그래서 필자는 오늘도 열심히 취재를 하고 글을 쓰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깨우기 위해서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별명을 지어주었다. ‘루터 국’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