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던 여섯 살 소년은 하루아침에 눈을 잃
었다. 가난으로 홍역 치료시기를 놓친 탓이었다.
비록 완전히 시력을 상실했지만 손끝으로 문자를
읽고 세상과 소통해 나갔다. 학업에 열중하는 그에
게 주위에선 ‘안마나 배우라’며 핀잔을 줬지만 아랑
곳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그는 도서관장이 됐다.
도내 유일 시각장애인도서관인 경남점자정보도서
관을 설립한 장상호(59) 관장 얘기다.
2017.07
경남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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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관장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국제시장에서 쌀
도매상을 해 어릴 적엔 제법 부유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모
두 돌아가시면서 고아원에 맡겨진 후 홍역 후유증으로 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됐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시각장애인’이 됐다. 시각장애인보호시설로 옮겨진 뒤 방
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앞을 볼 수 없다는 것,
6살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고통이었다. 무엇보다
자재와 녹음 부스까지 갖췄다. 그렇게 점자도서관장의 꿈을
이룬 것이다.
경남점자정보도서관은 도서 대출·열람은 물론 도서 제작
까지 맡는다. 일반 도서를 점자로 번역하거나 음성 콘텐츠
로 생산한다. 점자프린터로 출력한 점자책의 오탈자를 잡
아내는 일은 장 관장의 몫이다. 점자·음성책의 출납은 주로
우편이나 택배로 이뤄진다. 분기별로 800부씩 발행되는 점
그토록 좋아하던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좌절케 했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일렀다. 여섯 개의 점으
로 자음과 모음, 숫자는 물론 알파벳까지 표
현해내는 점자. 맹학교에서 접한 점자책은 그
가 세상과 만나는 유일한 통로였다. 책 읽는
재미는 손가락 끝의 껍질이 벗겨지는 고통까
지 잊게 했다.
“당시 지방에선 점자책을 구할 수 없어 서
울 점자도서관에서 우편으로 빌려보곤 했죠.
아! 그런데 책이 도착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걸
리지 뭡니까? 어찌나 감질나던지! 언젠가는
시각장애인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고 세상과 소통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점자도서관의
역할
자판 ‘경남공감’ 역시 도내 시각장애인지회를
통해 배부되고 있다.
장 관장은 2년 전 사비를 들여 의창구 북면
에 점자도서관 분관을 지었다. 이곳에서 점자
는 물론 컴퓨터, 정보통신보조기기 교육 등
시각장애인 자립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여
명의 시각장애인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
하고, 악기를 배워 지역 요양원을 찾아 재능
기부도 펼친다. 활동보조인과 여행도 가는 등
시각장애인의 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경남의 시각장애인은 2만여명에 이른다. 장
관장은 이들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고 세상
꼭 우리 지역에 점자도서관 하나 짓겠다, 그렇게 생각했죠.”
도서관장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그때부터였다. 맹학교 친
구들이 안마사로 취업할 때, 그는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학
원 강사의 설명을 녹음기에 담아 통째로 외워서 공부했다.
29살에 부산 경성대 국민윤리교육과를 나와 부산의 시각
장애인협회에서 일하면서 사무실 한 켠에 작은 점자도서관
을 열었다. 점자프린터도 없어 일일이 손으로 점자를 찍어
내야 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1991년부터는 부산시각장애
인복지관 관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자립을 도왔다.
그때 경남에 사는 시각장애인들이 부산까지 오는 것을 보
고 의아했다. 경기도 다음으로 시각장애인이 많은 경남에
복지관조차 없는 실정이었다.
복지관 관장 임기를 마친 2003년, 경남도청을 찾아 점자
도서관을 열자고 제안했다. 마침 그해 마산장애인복지관 2
층에 점자정보도서관이 개원했다. 부산에서 모은 돈에 도
비와 시비를 보탰다. 비록 넓지 않았지만 점자책 제작용 기
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점자정보도서관의 역할이라
고 말한다. 아울러 “시각장애인에게 ‘눈’이나 마찬가지인 점
자가 공공부문에서도 홀대받고 있다”며 “점자나 음성변환
코드의 중요성이 사회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인식 개선
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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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점자정보도서관에서
음성도서를 녹음하고 있는
자원봉사자와 장상호 관장
경남&경남人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