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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景福高 34回 同窓會 원문보기 글쓴이: 孤 山
景福34 제70차 文化遺産踏査; 國立民俗博物館-宗親府
國立民俗博物館
景福宮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은 우리 민족의 전통생활을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문화와
교육의 터전으로 우리의 생활문화를 조사∙연구∙전시∙교육∙보존하는 문화공간이다.
박물관 건물은 연건평 3781.8㎡이며, 정면 계단은 慶州 佛國寺의 靑雲橋∙白雲橋를,
건물 중앙은 報恩 俗離山 法住寺의 捌相殿을, 오른쪽은 金堤 母岳山 金山寺의 彌勒殿을,
왼쪽은 求禮 智異山 華嚴寺의 覺皇殿 모양을 각각 본떠 설계하여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양식을
재현하였다.
*연혁
-1946 國立民族博物館 개관(南山 始政記念館)
-1966 韓國民俗館 개관(景福宮 內 修政殿)
-1975 韓國民俗博物館으로 명칭 변경 및 移轉(경복궁 내 국립현대미술관)
-1979 國立中央博物館 소속 國立民俗博物館으로 職制 개정.
-1992 文化部 소속 國立民俗博物館으로 독립
-1993 현 건물로 移轉 開館
*전시
韓民族 생활문화의 역사적 基盤이 되는 韓民族生活史館을 비롯하여, 한국인의 日常,
한국인의 一生 등 3개의 常設展示室과 野外展示場을 운영하고 있다.
=제1전시관: 韓民族生活史
先史時代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生活史를 전시하고 있다.
1. 자연 속에서 인간 속으로: 구석기시대~청동기시대에 자연 순응에서 자연 이용 모습과
생산력 발전으로 계급 발생과 국가 등장하는 과정.
2. 영역의 확장: 원삼국시대~남북국시대 민족의 활동 영역이 확대∙통합되는 과정에서 대륙과
바다를 무대로 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
3. 문화의 享有: 고려∙조선의 유교적 지배체제를 바탕으로 인쇄문화, 한글 創製로 지식의 확산,
民들의 생활용품에 담긴 멋과 여유 등.
4. 대중의 등장과 성장: 開港~근∙현대 대중의 생활 모습과 생활양식의 변화.
=제2전시관: 韓國人의 日常
1년을 週期로 반복되는 農耕生活과 4계절변화에 맞춰 삶을 살아온 일상이 四季節의 순환에
맞춰 전시하고 있다.
=제3전시관: 韓國人의 一生
朝鮮時代(1392~1910)에 儒敎理念을 중시한 兩班 士大夫집안 출신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요한 과정이 一生 儀禮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野外展示場: 共同體 信仰物, 각종 穀食의 加工器具, 石物 등을 전시한다.
-열두 띠 동상, 水標, 장승동산, 石床, 文∙武人石, 孝子閣
-연자방아, 우물, 돌하르방, 정주목과 정낭(제주도 전통 가옥에서 대문 역할)
-추억의 거리, 開港期 商店
국립민속박물관은 야외전시장 일부-민속박물관 상설전시장-야외전시장 일부 순서로
답사하였으나 사진은 상설전시장-야외전시장 순서로 4회로 나누어 올린다.
2018.03.16 孤 山 朴 春 慶
景福34 제70차 文化遺産踏査; 國立民俗博物館-宗親府(4-1)
國立民俗博物館(3-1)
(01) 國立民俗博物館 全景, ‘北岳을 등지고 솟아난 이 집…’
(02) 國立民俗博物館 前景
慶州 佛國寺의 靑雲橋와 白雲橋, 報恩 俗離山 法住寺의 捌相殿의 건축양식을 재현하였다.
(03) 상설전시실 입구의 수호랑-반다비
=수호랑; 2018 평창 올림픽 마스코트
=반다비; 2018 평창 패럴림픽 마스코트
(04) 제1전시관 한민족생활사
(05) 韓民族生活史
1. 자연 속에서 인간 속으로
(06) 三國遺事-요녕식동검(遼寧式銅劍)-한국식동검(韓國式銅劍)
=三國遺事 -국보 306-2호(사본)
고려 말의 승려 一然이 고려 忠烈王 7년(1281)에 지은 삼국시대의 역사서.
=요녕식 동검(遼寧式 銅劍) -靑銅器時代 -복제품
칼날 모양이 악기 琵琶를 닮아 비파형 동검이라고도 하며, 韓半島에서부터 중국
遼寧 ∙吉林 지역 등에서 고루 출토되고 있어 古朝鮮 前期의 靑銅器文化를 대표한다,
=한국식동검(韓國式銅劍) -청동기시대 –복제품
BC 4세기 무렵부터 칼날이 더욱 단단하고 세련된 모양으로 바뀌었는데, 이때의
청동검은 길고 가느다란 모양으로 ‘細形銅劍’이라고도 한다.
주로 한반도 내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古朝鮮 後期의 청동기문화를 대표한다.
(07) 鐵이 국가를 만들다.
2. 영역의 확장. 三國時代~南北國시대
(08) 領域의 확장
(09) 광활한 대륙의 꿈-벽화로 본 고구려 생활모습
東北아시아 일대에서 문화적으로 발전했던 고구려는 현재 남아있는 각종 유적이나 유물,
고분벽화를 통해 정치, 사회, 문화가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高句麗 古墳壁畵는 生活風俗圖, 天文圖, 四神圖 등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생활풍속도에는 고구려 사회의 일상생활과 풍속, 과학기술, 예술활동, 宗敎信仰,
옷차림, 음악, 技藝, 체육활동 등의 내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고구려사람들의
생생한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다.
3. 문화의 享有. 고려시대~조선시대
(10) 문화의 享有
(11) 문자에 담긴 念願
우리나라 印刷術은 통일신라시대에 佛敎經典이 보급되는 과정에서 발전하였다.
佛國寺 釋迦塔에서 발견된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木版本으로
석가탑이 건립(751년)되기 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垢: 때 구)
고려시대에는 大藏經의 간행으로 木版印刷가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기 위해 시작된 八萬大藏經 組版은 기술적으로도 최고의 수준을 보여준다.
金屬工藝技術의 발전으로 고려 高宗 21년(1234)에는 <詳定古今禮文> 50권을 금속활자로
찍었으며, 禑王 3년(1377)에 간행된 <白雲和尙抄錄佛祖 直指心體要節>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金屬活字本으로 알려져 있다.
朝鮮 前期에는 癸未字(1403년), 庚子字(1320), 甲寅字(1434) 등을 鑄造하면서 금속활자
인쇄술을 완성하였으며, 금속활자 인쇄술의 발전과 조선 후기까지 계승된 목판인쇄술의
전통은 儒敎文化 발전에 기여하였다.
(12) 앙부일구(仰釜日晷) -보물 845호(복제품)-
해의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는 面이 오목한 半球形 해시계로, 가마솥과 비슷하다고
‘仰釜’라고 한다.
1434년 世宗의 명으로 처음 만들어 惠政橋(*현 광화문우체국 동쪽)와 宗廟 남쪽 길가에
설치하여 사람들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13) 측우기(測雨器) –복제품-
世宗 23년(1441)에 발명하여 觀象監과 各道의 監營 등에서 降雨量
관측장비이다.
농업중심사회에서 治水는 帝王의 責務로 降雨測定, 가뭄과 홍수의
대비는 매우 중요하였다.
전시된 측우기는 英祖 46년(1770) 제작된 작품의 복제품이다.
(14) 신구법 천문도(新舊法 天文圖) -보물 1318호(복제품) -18세기 초
조선 전기의 전통적 天文圖 <天象列次分野之圖)와 조선 후기의 서양식 신법천문도
<黃道南北兩總星圖>를 함께 수록한 천문도이다.
전통적인 천문도와 서양의 新法天文圖가 융합되었으며, 18세기 朝鮮의 과학적 인식과
宇宙觀이 나타나 있어 의미가 있다.
(15) 경직도 병풍[耕織圖 屛] -조선시대
농사짓는 일과 누에 치고 비단 짜는 일을 그린 風俗畵로, 統治者에게 農夫와 누에 치는
이들의 어려움을 알게 하여, 일반백성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勤儉節約하고 좋은
정치를 하도록 교훈을 주는 그림이다.
(16) 청자(靑瓷)-분청사기(粉靑沙器)-백자(白磁)
(17)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국보 126호(영인본)-
慶州 佛國寺 三層石塔(釋迦塔, 국보 21호) 탑신부에서 발견된 세계 最古의 통일신라 때
佛經印刷本으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이다.
이 <다라니경>의 出刊 年代는 700년대 초~751년 사이로 추정하는데, 唐나라 則天武后
집권기간에만 통용된 新制字 4자를 발견할 수 있으며, 석가탑의 건립연대인 751년을
그 下限으로 보기 때문이다.
(18) 초조대장경 불설광박엄정불퇴전륜경(初雕大藏經 佛說廣博嚴淨不退轉輪經)
고려 顯宗(재위 1009∼1031) 때 佛法의 힘으로 契丹의 침략을 막고자 제작한 大藏經으로
대장경판을 새기기로 서원한 뒤 거란군이 물러갔다는 기록이 있다
佛法의 힘으로 敵軍을 몰아낼 수 있다고 믿고, 부처와 高僧의 말씀과 여러 經典의 말을
공부하며 자신의 素養을 기르는 등 불교의 커다란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9) 해인사 고려대장경 탁본(海印寺 高麗大藏經 拓本)(왼쪽)-해인사 고려대장경 목판
(海印寺 高麗大藏經 木版)
=海印寺 高麗大藏經 拓本 –인쇄본
=海印寺 高麗大藏經 木版 -국보 32호(복제품)
陜川 海印寺 大藏經板(국보 32호); 大藏經은 經·律·論의 三藏을 말하며, 佛敎經典의 總書로
고려 高宗 24∼35년(1237∼1248)에 간행하였다.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高麗大藏經’,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法文을 실었다고 八萬大藏經’이라고도 한다.
고려 顯宗 때 새긴 初雕大藏經이 高宗 19년(1232)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져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再雕大藏經’이라고도 한다.
불교의 힘으로 몽고군의 침입을 막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에서 임시기구 大藏都監을
설치하여 경남 南海에 설치한 分司大藏都監에서 새겼다
원래 江華山城 西門 밖의 大藏經板堂에 보관되었던 것을 江華 仙源寺를 거쳐
조선 太祖 7년(1398) 海印寺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數千萬 글자가 誤字∙脫字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名聲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며,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해인사에는 고려시대의 佛敎經典, 高僧의 저술, 詩文集 등을 새긴
목판 陜川 海印寺 高麗木板(국보 206호)도 있으며, 大藏都監에서 새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제32호)과는 달리, 지방관청이나 절에서 새겼다.
(20) 어정시운(御定詩韻)-불설대보 부모은중경(佛說大報 父母恩重經)
=어정시운(御定詩韻) (*韻: 운 운)
憲宗 12년(1846)에 간행된 韻書로 주로 漢詩를 창작할 때 韻字를 찾아보는 사전으로
이용되었다.
=佛說大報 父母恩重經 -보물 920호(사본)
‘父母恩重經이라고 略稱하기도 하며, 아이를 낳고 기르기까지의 부모님의 은혜를 10가지로
나누고 있으며, 부모님의 恩惠에 報答하기 위해 지켜야 할 10가지 規範이 變相圖와 함께
기술하였다.
(21) 계선판(界線板) -조선시대
行 사이를 구분하는 경계선을 그린 판으로 책판틀, 공책판, 원고지판 등에 사용하였다.
(22) 능화판(菱花板)
책 표지 등의 무늬를 박아 찍어낼 때 사용하던 목판으로 무늬의 종류나 판의 규격에 따라서
사용되는 용도가 다르다.
‘壽∙福∙富∙貴∙康∙寧’의 吉祥文字를 3단으로 陽刻하였다.
(23) 훈민정음(訓民正音) -국보 제70호(복제품)
世宗 28년(1446) 集賢殿 학자들이 世宗의 命으로 훈민정음을 漢文으로 해석한 책으로
한글의 제작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24) 아학편(兒學編)-천자문(千字文)
=아학편(兒學編)
조선 후기의 實學者 茶山 丁若鏞이 아동의 漢字학습을 위해 엮은 2권 1책의 교재로
상하 2권으로 나누어 각각 1,000자의 문자를 수록하였다.
茶山은 당시 대표적인 한자학습서인 <천자문>이 글자가 체계적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아
初學者에게 학습의 단계성이나 難易度가 무시되어 있어, 이러한 내용 및 체계상의 결점을
극복하고자 이 책을 찬술하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천자문(千字文)
漢文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을 위해 교과서 겸 習字敎本으로 쓰던 책으로 한글로 音과
訓(뜻)이 실려있으며 韓石峯의 筆體로 되어있다.
*千字文: 중국 南朝 梁의 주흥사(周興嗣: 470?∼521)가 글을 짓고 東晉의 王羲之의
필적 중에서 해당되는 글자를 모아 만들었다고 하며 四言古詩 250句,
합해서 1,000자가 각각 다른 글자로 되어 있다.
(25)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계몽편(啓蒙篇)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正祖 21년(1797) 王命으로 원래 전하는 <三綱行實圖>와 <二倫行實圖> 합하여
수정∙보완하여 간행하였다.
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 등 五倫에 모범이 된 150가지 사례를 추려 적고, 그 옆에
金弘道의 畵風이 역력한 그림을 덧붙였다.
=계몽편(啓蒙篇)
조선시대 初學 아동교육용 교과서로, 書堂이나 鄕校에서 學童에게 글을 가르칠 때,
먼저 千字文 등으로 漢字를 익히게 한 다음, 敎訓的인 교재로 <계몽편>이나 <童蒙先習>을
가르쳤다.
(26) 병풍 오륜행실도(屛風 五倫行實圖) -19세기
五倫行實圖의 여섯 가지 古事를 그린 병풍으로 각 폭마다 그림을 模寫하고 해설과
한글번역이 있다.
1폭 환영분상(桓榮奔喪); 漢나라 桓榮이 스승이 죽자 급히 달려가 무덤을 만들고 그곳에서
제자 수백 명을 가르쳤다.
2폭 유곤수병(庾袞守病); 晉나라 庾袞이 염병에 걸린 형을 끝까지 간호하여 병을 낫게 하고
자신의 건강도 지켰다. (*袞: 곤룡포 곤)
3폭 군량척처(君良斥妻); 唐 劉君良이 형제간 節義를 저버리게 한 부인을 내쫓았다.
4폭 서회불부(徐誨不負); 唐 徐誨가 좌천되는 친구와 끝까지 友情을 지켜 나라 일에 부름을
받았다. (*誨: 가르칠 회)
5폭 제상충렬(堤上忠烈); 신라 충신 朴堤上이 볼모로 잡혀간 王의 아우들을 풀어주고 倭에
끝까지 남아 忠節을 지키다가 죽음을 당했다.
6폭 왕씨감연(王氏感燕); 어린 나이에 홀로 된 宋나라 王氏 부인의 남편에 대한 節介에
제비도 감동하였다.
(27) 질그릇과 석간주(石間硃) (*硃: 주사 주)
17세기 이후에는 酸化鐵 성분이 많이 포함된 釉藥을 바른 石間硃 등 黑釉로 된 瓷器를
많이 만들었다. (*釉: 광택 유)
貯藏과 醱酵飮食을 저장하는 질그릇[甕器]도 오랜 전통의 陶器아래 잿물을 바른 褐色의
옹기들이 생산되는 등 다양한 형태와 技法으로 발전하였다.
(28) 이층 농(二層 籠) -20세기 초
의복을 보관하는 가구로 2층 또는 3층으로 구성되며 안방가구로
많이 사용하였다.
(29) 행려풍속도 8폭병풍(行旅風俗圖 八幅屛風) -金弘道 作(模寫本)
‘行旅風俗’은 선비가 世俗을 유람하면서 보는 風情을 담은 일종의 풍속화로 주인공은 대개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로 등장한다. 1778년 34세의 金弘道가 姜熙彦의 집 澹拙軒에서
그린 것으로 山川을 유람하는 풍류과객이 지방의 풍속을 취재하듯이 살펴보고 있는
모습이다. (*澹: 맑을 담 *拙: 옹졸할 졸)
각 폭의 위쪽에는 豹菴 姜世晃의 그림 評이 적혀 있으며, 山水人物畵 형식의 이 그림은
대장간, 강변, 벼 타작 장면 등 다양한 세상살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豹: 표범 표 *晃: 밝을 황)
1폭 路上訟事; 사또가 행차할 때 백성들이 길에서 訟事하는 모습이다.
*사또가 쓰고 있는 갓이 삐딱할 정도로 술에 취해있어 <醉中訟事>라고도 한다.
2폭 妓房爭雄; 기생집 안팎의 풍경
3폭 街頭賣占; 길에서 사당패들이 부적을 팔고 있는 모습
4폭 路上風情; 소를 타고 가는 아낙네를 살펴보는 선비
5폭 後苑遊宴; 士大夫 집 후원에서 선비들과 여인들이 즐기고 있는 모습
6폭 破顔興趣; 목화 따는 아낙네들을 은근히 훔쳐보고 있는 나그네
7폭 雪中行事; 겨울에 양반이 길거리에서 기생과 만나는 모습
8폭 雪後野宴; 눈이 내린 밤에 벌어지고 있는 宴會모습
(30) 화초함(花草函) -조선시대
의복이나 小品 등을 보관하는 家具로 나무함에 종이를 바르고 옻칠을 했으며, 앞에는
자물쇠가 달려있다.
4. 대중의 등장과 성장
(31) 대중의 등장과 성장
(32) 축음기 판촉광고-축음기(蓄音機)
=축음기 판촉광고 -皇城新聞 –光武 3년(1899) 3월 13일자
서양에서 발명한 유성기(축음기)를 구입해 와 奉常寺 앞에 진열하였는데, 그 소리 중에는
노래, 생황(笙簧), 거문고와 같은 소리가 기계가 움직이는 대로 들려 극장과 같으니 여러
紳士들은 이곳으로 오셔서 구경하시오. (*笙: 생황 생 *簧: 서 황)
=축음기(蓄音機) -20세기 초
音盤에 녹음한 音을 재생하는 장치로 蓄音機 또는 留聲機라고 한다.
高宗 3년(1866) 美國公使 알렌(H. L. Allen)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33) 입체경(立體鏡)-명함-선풍기(扇風機)
(34) 풍속화첩(風俗畵帖) -1907년
독일인 헤르만 산더가 1907년 한국인 화가에게 주문해 그린 風俗畵帖으로 영상물은
풍속화첩의 내용을 재편집한 것이다.
(35) 세계로 문을 열다. 開港과 開化
(36) 대중의 형성과 변화하는 일상
일제강점기의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日常에 대한 변화는 삶의 여러 곳에서 구체화되었으며,
대중들의 삶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汽車와 鐵道는 근대적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고, 청결한 衛生은 질병의 고통을 덜어
주었으며, 새롭고 진기한 음식과 조미료는 전통적인 입맛도 바꾸어놓았다.
거리에는 축음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맥고모자. 양복, 洋裝, 洋靴, 화장품 등 상품들이
넘쳐흘렀으며 대중의 일상적 삶도 再構成되었다.
(37) 漢江의 奇蹟을 만든 主役, 大衆의 새로운 삶
20세기 후반은 새로운 力動的인 삶을 요구한 시대로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漢江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재건과 성장의 신화를 이루었으나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대중문화도 발전하여 서양과 新∙舊文化의 다양성으로 또 다른 형태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38) 장승[長栍]
사람의 얼굴 형태를 그리거나 彫刻하여 마을이나 寺刹입구에 세운
彫刻像으로 마을이나 사찰의 위치나 경계를 나타내고, 里程標 구실도
하지만, 주로 雜鬼나 疾病으로부터 마을사람들을 지켜주는 守護神의
성격이 강하다.
몸통에 ‘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이라는 銘文을 강 많이 쓰고 있으며,
雜鬼를 막는다는 뜻으로 ‘逐鬼’, 이정표로서 五方(동∙서∙남∙북∙중앙)을
뜻하는 문자도 쓴다.
(39) 장승 앞에서
제2전시관: 韓國人의 日常
(40) 한국인의 日常
(41) 경직도(耕織圖) -2015 프로젝션 영상
節氣에 따라 농사를 짓고 베를 짜는 농민의 일상을 그린 耕織圖를 생동감 있게 표현했으며,
假想의 현대소년과 소녀가 경직도 안으로 들어가 철 따라 변하는 자연과 농사일을 체험하고
있다.
(42) 산신도(山神圖) -1890년대
충남 扶餘 恩山面 恩山里에 모시는 山神 그림으로 山의 王으로 여기는
호랑이를 함께 그렸으며, 山神圖의 호랑이는 山神을 호위하는 의미가 있다.
(43) 대전통편(大典通編)-목민심서(牧民心書)
=大典通編 -正祖 9년(1785)
正祖의 命으로 撰集廳을 설치하여 <經國大典>과 <續大典> 및 그 후에 간행된 법령집을
통합하여 편찬한 法典으로 世祖 때 편찬에 착수하여 成宗 16년(1485)에 반포한
<經國大典> 이후 300년 만에 새로운 통일법전이 이룩되었다.
=牧民心書 -1818년
조선후기의 實學者 茶山 丁若鏞이 古今의 여러 책에서 地方官의 사적을 가려 뽑아 治民에
대한 道理를 논술한 책으로, 茶山이 全南 康津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 저술하여
유배가 끝나는 1818년에 완성하였다
전반적으로 百姓의 입장에서 농민의 실태, 胥吏의 부정, 土豪의 작폐, 島嶼民의
생활상태 등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어, 조선후기의 지방 실정에 대한 社會經濟史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44)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農家의 행사를 月別로 나누어 교훈을 섞어가며 농촌 풍속과 勸農을 노래한 것으로,
月令은 그 달의 할 일을 적은 행사표라는 뜻이며, 당시의 農俗과 옛말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45) 각종 農器具
(46) 두레와 風物
두레는 마을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공동으로 작업하는 풍습으로 마을의 노동조직이다.
모 찌기∙모심기∙논매기 등의 힘든 일이 있을 때 두레를 운영하여 공동으로 작업했다.
두레패는 農旗를 앞세우고 행진하면서 꽹가리∙장구∙북∙징 등의 풍물을 울리는 것으로 고된
작업에 힘을 보태고 興을 돋아 주었다.
*風物: 風樂에 쓰이는 器物
(47) 나물채취용 도구. 구황(救荒)
봄이 되면 마을 주변 산과 들에는 쑥∙냉이∙달래 등의 봄나물로 가득 차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찾아주는 봄의 전령이기도 하나, 묵은 곡식이 다 떨어지고 햇곡식은 아직
익지 않아 궁핍한 때에 배고픔을 면해주기도 했다.
곡식이 바닥난 春窮期에는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힘겨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나라에서도 춘궁기에는 여러 救荒策을 벌여 백성들의 굶주림을 덜어 주었다.
*救荒: 흉년 등으로 飢饉이 심할 때 빈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도록 도움.
(48) 절미통(節米桶) -20세기
쌀아 부족할 때를 대비하여 밥을 지을 때 쌀을 한 줌씩 따로 모아두던 그릇.
(49) 구황방(救荒方) -조선 후기
흉년 등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곡식의 대용 식물을 먹는 방법. 또는 굶주림이나 질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적었다.
-景福34 제70차 文化遺産踏査; 國立民俗博物館-宗親府(4-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