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나달과 다비드 페러(이상 스페인) 마리아 샤라포바와 마라트 사핀(이상 러시아) 등 톱선수들이 비 때문에 긴 하루를 보냈습니다
프랑스오픈 1회전 둘째날, 하루종일 내린 비로 몇시간째 대기시간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오후 1시 반에 경기가 시작되긴 했으나 스베틀라나 쿠즈넷소바(러시아)의 경기 외에는 채 끝내지도 못해 5시간을 대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비가 쉽게 그칠 것 같지도 않고, 일기예보도 이번주 내내 비가 온다고 전했으나 프랑스오픈 마니아들은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않습니다.
관중석에서 잠시라도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우비를 입은 채 '프랑스 테니스 사총사 광장'에서 진을 치고 있는 무리도 많습니다.
테니지엄을 아세요?아멜리 모레스모(프랑스)의 경기를 보다가 비가 내려 발길을 돌리던 중 필립 샤트리에 코트 앞에 있는 '테니지엄(Tenniseum)'에 들어갔습니다.
프랑스오픈 기간 동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이 테니스 박물관은 2003년 처음 문을 열어 프랑스의 테니스 역사와 전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수천자루의 나무라켓이 탄성을 자아냅니다. 그립이 다 해지거나 스트링도 없는 손때 자욱한 라켓들은 저보다도 나이가 많았습니다.
옆에는 테니스 사총사 중 한명인 자크 앙리의 특별 전시관이 있었고, 르네 라코스테가 우드라켓에 그립을 감는 흑백필름도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올해로 설립 80주년을 맞은 스타드롤랑가로스(롤랑가로스 스타디움)의 공사장면과 조감도도 전시돼 있으며, 1928년 당시 15프랑에 판매된 티켓도 보이더군요.
특히 2천권에 달하는 테니스 관련 도서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테니스 개론과 역사를 비롯해 의학, 심리학, 재료학과 사회경제학은 물론 테니스 관련 예술과 문학작품집까지 그야말로 테니스 천국과도 같았습니다.
발길을 옮기면 18세기 때 어떻게 공을 만들어 쳤는지, 우드라켓은 어떻게 만들었고 스트링은 어떻게 맸는지 기구와 함께 영상이 돌아갑니다. 100년 전에는 공을 청소하는 기구도 있었다네요.
저는 수잔 렝글렌의 빛바랜 추모 영상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발레하듯 라이징볼을 처리하는 그녀의 필름 앞에서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테니스의 역사를 대표하는 여인의 생존모습을 지켜보니 테니지엄의 존재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밖에 라코스테의 디자인 스케치와 프랑스오픈의 역대 챔피언의 명예의 전당 역시 테니지엄의 볼거리입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박물관 사진에서 보았던 야니크 노아를 실제로 보았습니다.
야니크 노아의 방문1996년 은퇴하기까지 프랑스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야니크 노아. 1983년, 프랑스 선수로는 37년만에 롤랑가로스 우승을 차지하며 영웅으로 추앙되었던 노아는 당시 아더 애시 이후로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한 두번째 흑인선수로 기록되었습니다.
6년 전,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매츠 빌란더를 3-0으로 꺾고 타이틀을 거뒀던 노아, 그 이후로 프랑스오픈 단식에서 우승한 프랑스 선수는 나오지 않고있지요.
은퇴한 이후로 가수로도 활동하며 멋진 파리지앵의 삶을 보여줬던 노아가 프랑스오픈을 다시 찾았습니다. 오후 3시경에 사인회를 가진 것입니다. 수많은 팬들이 빗속에서도 사인을 받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비록 1시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역사적인 인물을 눈 앞에서 만났다는 사실에 역시 그랜드슬램의 현장에 와있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