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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The Relationship between Christ and the Church)
성경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 머리와 몸, 목자와 양무리, 포도나무와 가지들, 모퉁이 돌과 돌들 등 상징적·영적으로 묘사했다.
Ⅰ. 신부로서의 교회(The Church as the Bride)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성도들)와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묘사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신랑이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Jesus Christ is the bridegroom of the church and the church is the bride of Jesus Christ)라고 하였다(고후 11:2 엡 5:23-32; 계 21:9;).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깊은 관계를 상징적, 비유적, 영적, 신비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말씀이다. 진실로 교회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표현들 중 하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호칭이다. 교회는 회심시(at conversion) 이미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며, 또 한편 약혼녀도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고찰할 때에는 그리스도와 약혼한 관계이다.
1. 그리스도의 역할(Christ’s Role)
에베소서 5:22-29은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성도들)를 어떻게 사랑하시며, 다스리시며, 정결케 하시며, 양육하시며, 보호하시는지를 교훈 한다.
(1)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Christ loves the church<엡 5:25, 28>)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기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이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① 아가페 사랑(avga,ph love): 사랑이란 애정에 대한 깊은 느낌·헌신·호의이다. 헬라어 원문에 아가페 사랑은 “필레오”(file,w) 사랑과 “에로스” (evrwj) 사랑과 구별되었다.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사랑, 필레오 사랑은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친구에 대한 사랑이요, 에로스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을 말한다. 인간의 사랑은 필레오 사랑, 에로스 사랑을 넘지 못한다. 아가페 사랑은 순수한 사랑, 고귀한 사랑, 무조건적 사랑, 희생적 사랑, 구속적 사랑, 무한한 사랑을 다 포함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가페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신다.
② 무조건적 사랑(unconditional love): 무조건적 사랑이란 조건 없는 사랑, 절대적 사랑(love without condition or absolute love)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성도들)가 사랑받을 만한 신분이나 자격이나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 실제상 교회는 세상과 짝하여 음행하고, 주님을 늘 배반하고, 불순종하며 곁길로 달음질치는 자들이었다(약 4:4). 그러한 우리들을 그렇게 사랑하시니 사람들의 사랑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③ 희생적 사랑(sacrificial love): 희생이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래함이니라”(마 20:28, 막 10:45)” “나는 선한 목자라…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느라”(요 10:11) 바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사랑이라고 하였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엡 5:2). 에베소서 5:25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셨다”, 곧 에가페센 카이 파레도켄(hvga,ph sen kai. pare,dwken; loved and gave)이라는 말씀은 부정과거 시상(aorist tense)으로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이미 바치신 사랑으로 역사적 기정 사실을 가리킨다.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이미 바치신 사랑은 희생적 사랑이다. 참된 사랑은 폭넓은 이해와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것이 참 사랑이다. 누구든지 사랑한다고 하면서 시간·재물·몸·정성 등을 바치지 않고 말로만 사랑한다면 그것은 참된 희생적 사랑이 아니다.
④ 구속적 사랑(redeeming love): 구속이란 대가를 지불하고 구출·해방하는 것을 뜻한다. 구속에 있어서 대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곧 생명이다(레 17:11).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심으로 우리 죄인들을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신 구속적 사랑이시다. 죄인의 구속을 위한 주님의 근본 동기는 사랑이시다. 그 사랑의 역사가 죄인을 구속하신다. 이런 의미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은 독특한 사랑이시다.
로마서 5: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5:15,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
⑤ 무한한 사랑(infinite love): 무한이란 끝이 없는(endless), 제한 없는(unlimited), 측량할 수 없는(unmeasurable)이라는 뜻이다. 주님의 사랑은 무한 방대하여 측량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엡 3:18-19 참조)고 하였다.
(2)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정결케 하심
(Christ purifies the church(엡 5:26, 27>)
에베소서 5:26,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물”(water)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엡 5:26; 약 1:18; 벧전 1:23). 하나님의 말씀을 물이라고 비유한 이유는 물은 씻어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더럽고 추한 모든 죄를 씻어 깨끗케 하는(세탁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말씀”(레마, r`h/ma; word, saying; 말씀·구두로 전파한 말씀)은 산 음성(living voice)을 가리킨다(엡 6:17; 롬 10:8, 17; 벧전 1:25). 이 단어는 신약에 약 70회 기록되어 있는데 그중에 56번은 말씀(word)으로, 9번은 구두로 전하는 말씀(saying)으로 번역되었다. 말씀이라는 또 다른 한 단어는 로고스(lo,goj; Word)로서 로고스는 기록된 말씀(Written Word)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에는 레마로, 그 다음에는 로고스로 귀결되었다. 우리는 로고스(기록된 말씀)를 레마(구두로 전하는 말씀)로, 즉 하나님께서 직접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씻는다”(루오, lou,w; to bathe, wash the body; 목욕하다, 몸 전체를 씻다)는 말씀은 몸 전체를 목욕한다는 의미이다. 몸의 어느 한 부분만 슬쩍 씻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한 마지막 간구 중의 하나는 “주의 말씀으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요 17:17)라는 말씀이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성화의 방편이 되어 우리의 먹보다도 더 검은 그리고 피보다 더 붉은 죄와 허물을 정결케 씻어 주신다.
“깨끗하게 한다”(카다리조, kaqari,zw; to cleanse, to make clean; 정결케 한다, 정화하다, 맑게 하다, 순결케 하다, 오염이 없게 하다)는 말씀은 도덕적 의미에서 “죄의 오염으로부터”(from the defilement of sin) 그리고 “범죄로부터”(from the guilt of sin) 정결케 씻는다는 말씀이다. 씻는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죄사함을 가리킨다.(행 15:9; 고후 7:1; 엡 5:26; 히 9:14; 요일 1:7)
요한복음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모든 죄 사함받았다. 이는 마치 온 몸을 씻은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의 몸에는 아직도 죄의 성질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말씀으로 씻어 정결케 하는 일(성화의 역사)을 이 세상 떠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3)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양육하심(Christ nourishes the church)
에베소서 5:29, “…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양육하고 보호하시기를…”
“양육한다”(에크트레포, evktre,fw; to nourish; 양육하다, 자양분을 준다)는 말씀은 영양분 있는 음식을 공급하여 키운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양분이다. 주님은 우리를 항상 말씀으로 양육하시므로 우리의 영이 강건하고 장성한다. 사람은 육신을 위하여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중생한 영을 위해서는 영의 양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영의 양식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허약해지고, 쇠잔하고, 병이 들고, 심지어는 죽는다. 이와 같이 우리 속사람은 영의 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허약해지고 병이 든다.
(4)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심(Christ protects the church)
“보호하신다”(달포, qa,lpw; to heat, soften by heat, keep warm; 따뜻이 하다, 가열하다, 열(온기)로 부드럽게 하다, 온화하게 하다, 보온하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를 보호하여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은 송장 같은 찬 상태에 놓여 있는 완악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열시켜 녹여 주신다. 이는 마치 어미 새가 깃털로 새끼 새들을 감싸고 따뜻하게 하듯이(신 22:6), 사람이 옷을 입어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듯이, 주님은 우리를 보호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2. 신부의 반응(The Response of the Bride)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니 참으로 존귀한 신분(exalted position)이 되었다. 신부로서의 교회는 신랑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며, 신앙의 정조를 지키며, 순복하며, 전적으로 헌신하며,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한다.
(1)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것.
성도들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에 대한 반응이다. 요한일서 4:19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함은 먼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하셨다(신 6:5; 10:12; 11:1; 13:3; 19:9; 30:6, 16, 20 마 22:37;). 마음·목숨·뜻(heart, soul, and mind)은 자신 전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
(2) 신앙의 정조를 지킬 것.
일반적으로 “정조”란 여자의 순결한 절개를 말한다. 신앙의 정조는 거짓 스승들의 이단사설에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정통 신앙을 가리킨다. 약혼녀나 신부는 정조를 지켜야 하듯이, 성도들은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의 정조를 버리고 사신우상을 섬기고 타락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더 이상 나의 아내가 아니라고 책망하셨다(호 2:2, 14-20).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한다. 교회는 순수한 처녀로서 신랑 되시는 그리스도께 안내되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11:2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함이로다”라고 하였다.
신앙의 정조를 버리고 영적으로 간음하는 교회를 성경은 영적인 바벨론(Babylon), 음녀(harlot) 또는 창기(prostitute)라고 하였다(계 17:1, 5, 15, 19:2). 순수한 처녀는 정조를 지키듯이, 순수한 교회는 믿음의 도리를 힘써 지켜야 한다.
(3) 신랑 되신 예수님께 순복할 것.
에베소서 5:24에 교회는 그리스도께 순복하라고 말씀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시요, 주인이시요, 상전이시요, 영적 신랑 되시니 주님께 순복해야 한다.
“순종하다”(휘파쿠오, u`pakou,w)라는 단어는 밑에서(휘포, u`po; under)와 귀담아 듣는다, 주의 깊게 듣는다(아쿠오, avkou,w; to hear, listen)로 구성된 합성어이다. 따라서 순종이란 분부하는 말씀을 밑에서 정신 차리고 주의 깊게 귀담아 듣는 것을 뜻한다. 순종은 자기 의지를 그리스도께 굴복시키고 기쁜 마음,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행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행위이다. 순종은 행위를 수반한다.
(4) 신랑 되신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할 것.
로마서 12:1, “너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였다. 구약시대는 흠 없는 제물을 잡아 죽여서 드렸다. 이는 자신의 모든 혈기와 죄의 못된 성질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신약시대 성도들은 몸을 산 제물(living sacrifices)로 드리라고 하신다.
“몸”(쏘마, sw,ma; body, instrument of life)은 몸·육체·생명의 도구를 가리킨다. 몸(육체)은 물론 몸 안에 있는 마음·뜻·재능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드리라”(파라스테사이, parasth/sai; present, offer)는 바치라, 증정하라, 드리라는 말씀이다.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성령에 의한 중생한 새생명의 영적 활동을 가리킨다. 산 제물로 드리는 제사(예배)는 한갖 의식적 행사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여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께 일찍 죽임을 당하사 보배 피로 우리를 속량하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죽은 영을 살리시고 심령 좌소에 내주하시면서 감화·인도·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 뜻과 정성이 담긴 헌신, 감사의 예물로 감사와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세세 무궁토록 돌려야 한다.
(5) 신랑 되신 예수님 맞이할 준비를 할 것.
마태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깨어 있으라”(그레고레이테, grhgorei/te; watch, awake; 주의하라)는 말씀은 현재시상의 계속적 행동으로서 계속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다.
“그 날과 그 시”(the day and hour)는 인자(the Son of man)가 다시 재림하시는 날과 시간을 말한다. 인자가 다시 재림하실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재림의 정확한 날과 시간은 아버지의 권한에 두시고 우리에게 알려 주시지 않으셨다.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깨어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날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구원의 날이요,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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