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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0년 넘게 군복무를 한 사람입니다.
그 동안 ‘군인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자위하면서 <박정희 정권>부터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의 질곡을 애써 외면하며 살아 왔던 사람입니다.
저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전개되어온 정치 혼란의 외곽에 서서 군인에게 주어지는 ‘정치 면책의 특권’을 누리며 제 자신이 군 복무를 통해 국가에 기여한 것보다는 국가로부터 받은 혜택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감사 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겪은 몇 차례의 국가경제의 위기 속에서도 제가 가장의 역할을 안정되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군 장교라는 신분으로 인해 오히려 국가로부터 무한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저를 보호해준 삶이였던 것입니다.
한편, 군인으로서 보장받은 안정된 생활을 누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어두운 추억도 있었습니다. 사관생도 시절 군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자랑스럽기보다는 불편하기도 했었습니다. 특히 12.12 사태와 5.18광주 민주화 항쟁을 거치면서 우리 사관 학교출신 군인들은 마치 정권의 하수인양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습니다. 군인을 비하하는 속어인 ‘군바리’라는 말을 들으며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이 억울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했기에 상부의 부당한 정치적 지시라고 판단되는 일에 대하여 조차 이의를 제기 하지 못하는 저의 무력감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오로지 군인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자기최면을 걸어가며 살아왔으며, 그 동안 당신 같은 분들의 민주화 투쟁 덕분에 군사정권은 끝이 나 직업 군인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군사정권이 종식된 뒤 우리나라의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독재는 좀 사라진 듯싶었지만 정치권력 싸움은 더 치열해지고, 부패해지고, 국가 도덕과 질서는 점점 더 문란해 졌습니다. 돈과 권력과 언론의 협잡이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바른 정치는 사라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소박한 국민들의 눈을 가리는 정치조작이 판을 치게 되었습니다. 국가의 미래가 참으로 암울했습니다. 단지 줄기찬 경제성장 덕분에 먹고 살기 좀 편해진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국민들은 물질적 풍요와 향락에 빠져들었으며, 이러한 경제 환각에 빠졌던 국민들에게 97년 IMF 위기는 ‘경제 없인 못살아’ 라는 경제중독을 한층 더 가중 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국민들이 힘을 합쳐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였으나 양극화라는 치명적 부작용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경제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모두가 함께 힘들면 북한 정도의 위기가 아닌 한 참을 만 한 것 아닌가 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일 이십년 전만해도 IMF 시기보다 열악한 생활을 잘 참아 왔던 우리 국민들이였기 때문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서 IMF위기를 잘 극복하고, 국민들에게 새천년의 희망을 심어주며 국가 질서가 회복되는 듯 했으나, 지역감정과 남북관계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정쟁은 끊이질 않고, 권력주변의 도덕성은 군사정권 못지않은 부패를 드러냈습니다.
5년짜리 권력을 중심으로 정치 싸움은 점 점 치열해지고, 향락에 빠진 국민 각자의 이기적 경쟁만이 치열해져가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정치는 지역구도에 빠져 한치 앞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 암울했던 시절에 ‘노무현’이라는 이름의 깃발이 등장을 하고 당신을 향한 대중의 사랑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저도 당신,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당시 군인신분이었으며, 더구나 직책을 맡고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행위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저 마음만으로 뜨거운 지지를 보내며 당신의 성공을 기도하며 살아왔습니다. 한편으론 ‘노무현’을 지지하면 무조건 빨갱이라는 지독한 비난이 가해지던 현실 이였기에 저는 저의 정치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열정적 지지를 잠재우면서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이제 제 나이 50대, 저도 한국사회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어 온 전후 세대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럭저럭 자식들 대학 공부시키고, 강남사람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당신도 퇴임 후 소박한 생활을 꿈꾸었고 잠시 그 행복을 누리시는 듯 보였으나 더 이상 허용이 되질 않았습니다. 당신은 떠나시고 저는 남아서 나라 지켰다는 명분하에 분에 넘치는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당신의 죽음을 추모하며 당신에게 빗진 자로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제가 당신을 좋아하여 열정적 지지를 보내고, 대통령 만드는 일에 한 표를 드렸지만 그 알량한 한 표를 던지면서 저는 당신에게 권력을 드린다고 생각했고, 당신이 우리의 소망을 실현시켜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당신에게 홀로 감당키 어려운 짐을 지워 드린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저뿐만이 아닌 듯도 합니다. 노란 풍선 매달고 눈물 흘려가며 대통령 당선시켜 좋은 나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그 많은 사람들 중 일부의 사람들만 ‘노빨’, ‘좌빨’ ‘맹신도’ 소리 들어가며 몸부림을 쳤을 뿐 대부분 사람들은 구경 만 했습니다. 당신을 지지하는 마음을 거두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대통령을 믿기 보다는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책을 펼칠 때마다 야속하게, 무섭게 당신을 버렸습니다. 집권 기간 내내 들쥐 같은 언론과 야당의 눈에 비친 당신은 성격파탄자요 무능력의 화신이었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의 후광효과를 얻은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조차도 외면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많은 기득권 세력이 일어나 당신을 조롱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며 당신을 지지했던 한 사람으로서 비통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몹시 억울했습니다. 성조기 들고 나와 흔들면서 자국의 대통령을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사람들과 고졸 출신 운운하며 대통령 자격을 들먹이던 사람들의 주장을 들으며 저의 억장은 무너졌으나, 정작 대통령 당신께서는 이런 난국을 헤쳐 나오느라 얼마나 힘드셨을지…….
당신이 떠난 지금 마음이 몹시 허탈하고 아파서 이 미친 세상이 증오스럽습니다. 현 집권자, 언론, 검사, 당신을 우롱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했던 정치인들, 혹은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부 맹목적 반대자들까지 모두가 다 미운 사람들 뿐입니다. 폭탄테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이 원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렇다고 당신의 유언대로 화해를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다만 “원망하지마라” 라는 당신의 유언을 냉철한 이성으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슬픔과 울분이 진정되면 ‘참여정부’라는 기치를 내걸면서 당신이 국민들에게 부탁하셨던 수준 높은 정치참여를 실천하려합니다. 폭력이 아닌 합법적 모든 방법을 통해 정치인들을 감시 감독하며,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함으로써 당신의 가치를 실천하려 합니다.
저는 당신의 서거소식을 처음 접하고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 홈페이지에 남긴 글들을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죽음을 선택하신 당신의 뜻을 다음과 같이 헤아려보았습니다.
첫째, 저는 당신의 죽음은 포기가 아니라 '승리'요 '부활' 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누구도 지키기 어려운 도덕성의 가치를 죽음으로 지키셨다고 생각합니다. 전직 대통령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법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주장 할 수도 있으나, 티끌 같은 흠이라도 대통령의 책임이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였습니다. 앞으로 그 어떤 정치인이라도 이와 같은 엄격한 도덕성을 실천 하지 않고는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승리하신 것이고 죽음으로써 정치인의 도덕적 가치를 부활시킨 것입니다.
둘째, 그 죽음은 '원망'때문이 아니라 '사랑'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도왔던 정치적 동지들을 보호하려는 뜻을 가진 사랑의 죽음입니다. 한 동안 주군의 비리를 대신 뒤집어쓰면서 주군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보여준 사람들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조폭들의 세계에서도 그런 충성이 의리라는 이름으로 미덕이 된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달랐습니다. 검찰이 대통령을 흠집내기위한 목표를 가지고 표적 수사를 전개하면서 지난 일 년 간 주변 인물에 대한 무차별 수사를 전개했습니다. 그들 개인의 비리를 먼저 포착하고 그 것을 빌미로 대통령의 흠을 찾아내는 전략이었습니다. 이제 그것이 막바지에 이르러 평생동지는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고통이 가해졌습니다. 이러한 점이 당신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의 죄 없음을 주장하는 것보다 무리하게 수사 받는 동지들의 고통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그리하여 스스로 목숨을 던짐으로써 검찰 수사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그들 따랐던 정치적 동지들을 보호하려 하셨던 것입니다. 장세동이 전두환을 대신하여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전두환이 장세동 감옥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을 저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대통령답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아니 대통령 깜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당신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대통령, 곁에서 섬기고 싶은 주군으로 남아있습니다. 사람을 존중할 줄 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진 대통령 이였습니다. 그리고 외롭게 자신의 책무를 다한 분입니다. 흔히들 노사모의 광신이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노사모의 요구만을 따라 대통령직을 수행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노사모의 간부들조차 집권 기간 동안 끊임없이 대통령을 비판했고, FTA,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당신과 결별을 선언하였지만 당신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가 아닌 따듯한 마음과 논리적 토론을 통하여 정책을 실천해가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없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노무현 대통령 님.
늦게나마 당신의 죽음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진정성과 헌신을 알게되고, 온 나라가 당신을 추모하는 분위기에 싸여있습니다. 슬픔에 젖어있는 저에게 이 같은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되지만 현실적으로 당신의 가치를 실현하기에는 우리 앞에 많은 숙제가 놓여 있습니다.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선 다른 후보와 싸워 이기면 되지만 당신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성숙한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열정적으로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일수록 분노를 삭이고, 서로 협동해야하며, 특히 말보다는 실천적 행동을 보여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놓고 비겁하다느니, 나약하다느니, 좀스럽다느니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삼성한테 받았으면 몇 천억 일도 아니고 절대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 원래부터 큰 그릇이 아니었다" 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반대자들과의 대화는 어쩌면 우리 능력을 벗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부턴 영혼의 세계에 계실 터이니 부디 조국 산하를 떠나지 마시고 이 땅에 평화와 행복이 넘치도록 지켜주십시오.
당신은 ‘자기를 버려 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제 당신의 따듯한 미소를 지우려 합니다. 그리고 작지만 제가할 수 있는 일 하나, 내 조국 대한민국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성숙한 민주시민의 도리를 다해 나갈 것을 다짐하면서 부디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당신은 빨갱이라 야유를 받았지만 당신이 대통령 이였을 때 우리의 국방력은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그리고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에게 너무 큰 짐을 지워드렸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퇴역 군인이 올립니다-
첫댓글 공감이 가는 글이라 다음아고라에서 옮겨왔습니다
어찌 저의 속내를 이렇게 잘 표현하셨는지 하루에도 몇번씩 노대통령님의 모습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