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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나침반
손정의를 읽고 그가 앞을 보는 선견지명의 예로, 지도와 나침반을 기업은 준비해 황금을 캐는 금맥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글이다. 그는 지도가 된 “소프트뱅크”를 발판으로 나침판인 “람”을 인수하고, 금맥인 “야후재팬”을 만들어 오늘의 대성을 이룬다.
손정의는 대구출신 할아버지 손종경 씨가 돈을 벌기위해 굴욕의 왜정 식민지 조선 시에 도일한 사업가적 DNA을 가진 사람의 손자다. 아버지 손삼헌 씨의 4남중 둘째로, 태어난 손정의는 할머니가 손수레에 자신을 태워 돼지 사료용 잔반을 얻으러 다닐 때 한국인이란 것이 싫었다. 그의 아버지 교육방법은 본 받을만하다. 손삼헌 씨는 매일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하고 장사에 나선다. “역시 웃는 얼굴이 장사엔 최고야” 그 가친 손종경 씨는 돼지를 먹여 호구지책으로 삼으나 아들 손삼헌 씨는 밀주를 불법으로 만들어 소주를 내려 과감히 판다. 화약장사가 돈을 번다고, 그도 형편이 펴지자 조센징이란 차별과 번지 없는 부락민 마을의 멸시와 냉대를 피해 가솔을 이끌고 후쿠오카로 이주하여 파친코와 사채업을 했다. 손정의가 중학생이 되자 그의 집안은 빨간 금붕어를 잡으면 1만 엔이라는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낚시장을 해 손님을 모은다.
손삼헌 씨는 늘 손정의에게 “난 돈 때문에 눈앞의 장사에 쫓기며 살지만 넌 어른이 되면 돈 버는데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너라면 더 큰 일을 할 수 있어” 그리고 그는 아들에 꾸중을 하지 않는 교육법을 쓴다. 손삼헌 씨의 교육방침은 언제나 무섭게 칭찬을 하는 것이다. 늘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는 자세로 “대단해 넌 천재야” 맨트를 날린다. “부모에게서 칭찬을 받는 아이는 기분이 좋고 또 칭찬을 받기위해 노력을 한다. 그는 부모에게 공부하란 소리를 듣지 않는다. 공부는 부모가 아닌 내가 하는 것이니까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부모의 전략이었던 것 같습니다”
후쿠오카 명분 선발고등학교에서 자퇴를 한 뒤 그는 미국으로 고교시절 유학을 결심한다. 휴학을 하라는 선생님의 만류에 돌아올 곳이 있으면 미국서 곤란한 일이 더 크게 느껴진다. 때문에 독하게 나의 퇴로를 스스로 끊는 것이 제 인생의 첫 번째 패러다임의 시프트였다 말한다.
소년 손정의가 후쿠오카 명문고을 자퇴한 것은 그가 존경하는 사람처럼 자기도 탈 번을 한 모험을 한 것이다. 명문고 졸업, 동경대학교 거쳐 대기업이나, 고시를 보면 한 세대 금 수저로 잘 살 수 있던 1957년생인데, 그는 과감하게 새로운 뜻의 길로 도약키 위한 모험을 선택한다. 마치 소년 손정의가 심취한 일본 근대사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의 탈 번 하는 얘기처럼!
탈 번은 무사가 섬기는 봉건 군주와 그 영지, 그리고 벼슬을 버리고 떠나 낭인이 되는 것으로 당시엔 큰 죄다. 료마의 누이는 료마의 결심에 봉건 영주의 벼슬을 하는 남편에 이혼을 당하는 큰 희생을 해야 하지만, 남자가 큰 세상으로 나감은 당연하다며 탈 번을 부추긴다. 그리고 누이는 조실부모한 료마가 한 남자로서 구국 대의를 위해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널 돕는 것은 널 기르는 부모 역으로서 내 의무야. 그리고 그 가문의 선조 사당에서 맹세를 한다. 조상님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무엇인가 큰일을 하게 살펴주세요! 간절히 기도한다. 여명이 밝아 오는 새벽, 호리병 하나와 노잣돈, 누이가 목숨과 바꿔 료마에 선물한 명검을 차고, 대망을 위해 눈이 녹지 않은 산중을 걸어 나간다. 그리고 그는 1867년 에도 막부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도사번 대표 료마가 제시한 천황에게 국가통치권을 돌려주는 대정봉환에 날인한다. 사리사욕 없이 국가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료마의 결의를 보고 소년 손정의가 감명을 받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은 1866년 병인양요로 쇄국을 하고 대원군이 섭정을 하던 고종3년이다.)
큰 사람 옆에는 늘 그를 돕는 사람들이 모인다. 10명의 은인이 바로 그들인데, 손정의도 이십 초반에 직원 8명으로 창업을 하여, 자금난으로 은행에 1억 엔 융자를 얻는데 그는 담보물이 없다. 그는 신용융자를 원하고 은행은 전화번호부책에 이름도 없는 회사를 예측 불가능한 PC사업, 앞날은 보고 융자를 해주는 위험을 할 곳은 없다. 은행은 긴급회의를 한다. 보수파들은 턱없는 소리마라 일색이고, 젊은 지점장과 팀장은 당대 대기업인 큰 회사가 신용을 담보한다니 모험을 하자고 하는데, 산업자원부 젊은 행원이 앞으로는 PC는 여러분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지만 점점 성장해 유망한 업종이 될 것이고, 이 사실은 모르는 사람들은 일본의 뒤처진 은행원들 밖에 없다고 열변을 토한다. 사원의 일갈에 늙은 부서장들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그리고 손정의는 신용담보로 융자에 성공하여 순풍에 돛을 단다.
1980년에 창업된 소프트뱅크는 81년에 25억 엔 , 82년에 45억 엔의 매출을 올린다. 그는 매출을 두부 모 세듯이 1조 2조(일본 발음이 두부 한 모와 兆는 발음이 같다 함)하고 세는 날이 올 것이라고 창업 시, 8명의 직원을 세우고 귤 상자위에 올라 연설을 했다. 이제는 접이식 의자에 올라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고 격려를 한다. 그러나 시련이 그를 검문하고 나선다. 직원 신체검사에서 “재검필요” 판정을 받고 살피니, 그는 B형간염으로 당시는 만성간염으로 사망에 이르는 큰 병이 그를 불러 세운다. 의사 판정은 앞날은 5년 정도라는 사형선고를 내린다. 그는 이제 장가들어 마사미와 와 딸을 하나두고 둘째는 임신 중이다. 그리고 2년의 투병생활을 한다. 그러면서 그는 물욕이 없어졌다. 집도 차도 양복도 필요 없다. 그냥 살 수 만 있다면 ,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딸의 웃는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다. 그는 그 기간에 득도를 한 셈이다. 마음을 비우고 그는 이 기간 동안에 엄청난 독서를 한다. 3000권의 책을 읽었다 하니 천재는 천재인 모양이다. 우리 범인은 일 년에 30권의 책도 읽기 어렵다 나는 2년에 50~60권이나 될지 모르니 그는 천재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B형 간염을 치료하는 ‘스테로이드 이탈요법’으로 그는 병마를 벗어난다. 1984년 3월, e항원 수치가 떨어져 간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앞으로는 모든 책상위에 PC가 놓일 날이 온다.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우리 곁에 있고, 이것은 PC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열변을 토하기 시작한다. 사업에 경쟁자는 늘 있지만 예로든 사람도 금 수저 출신의 천재라 추앙 받는 ‘니시 가츠히코’얘기가 나온다. 학생 시절부터 고급 호텔을 단골로 정해두고 숙박하고, 긴자에서 하룻밤에 로마네콩티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와인, 가격은 병당 100만원이 넘는다) 7병을 비우던 생활을 하던 사람이다. 이술이 호텔에서 마시면 250이상? 나는 맛도 모르는 와인이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을 보내고 난 1990년대 소프트뱅크는 디지털혁명의 새로운 흐름을 타고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간다. 그가 번 돈으로 덤벼든 것은 지도와 나침반이다. 이제 시작된 정보화 혁명 분야는 전인미답의 황야지대였다. 그 곳에서 황금 보물이 묻힌 산을 발견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첫 먹이 감이 세계최대 컴퓨터 전시회장인 컴덱스였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업계 관계자들의 마당이고 정보혁명이 넘치는 곳이다. 이 소유주는 ‘셀던 아델슨’ 유대인으로 당대에 부를 축척한 인물로 싱가폴의 명 건물, 세 개 빌딩을 배 모양으로 연결한 ‘마리나 베이샌즈’ 호텔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그에게 손정의는 컴텍스를 사고 싶다 말을 한다. 그러자 당돌한 요구를 들은 아델슨은 그만한 자금은 확보했나? 묻는다. 지금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들 테니 다른 사람에 팔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아델슨과 그의 참모들은 코웃음을 친다. 그리고 자금이 마련되면 오게 말을 한다. 그 후 1년 ,손정의는 아델슨과 1대1로 협상을 한다. 저는 컴덱스를 놓고 이리저리 재면서 매수 가격을 깎을 생각은 없습니다. 단 한 번에 승부를 결정짓고 싶습니다. 받고 싶은 가격을 한번만 말씀해주십시오. 그 가격을 못 맞춰드릴 것 같으면 그냥 포기 하겠습니다. 아델슨은 잠시 생각 뒤 입을 연다. 8억불. 좋습니다. 손정의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소프트뱅크의 몸집을 넘어서는 대형 M&A가 한 방에 체결되는 순간이다.
아델슨은 20년 전부터 손정의의 눈부신 교섭력에 감동한다. 그리고 손정의에게 트럼프 당선자를 만나도록 권유한다.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도날드 트럼프”를 손정의가 빈손으로 만날 리는 없다. 급히 생각해낸 만남의 선물로 500억불 투자와 5만 명의 고용 창출이었다. 1987년 시애틀로 간다. 이 도시는 미국에서 실시하는 각종 ‘살고 싶은 도시’에서 항상 최상위에 든다. 바다와 숲이 많고 강은 깊은 곳까지 감싼다. 이곳에 마이크로포트 본사가 있다. 이 곳에서 손정의는 빌 게이츠가 애독하는 잡지 “PC WEEEK”를 처음 본다. 그는 이 잡지 일본어판을 내기 위해 판권을 산다. 출간사 “지프 데이비스”가 잡지 부문을 매각한다 하자 즉시 입찰에 응한다. 그러나 이 입찰은 형식적인 것이고 실제는 밀실에서 이루어진다. 이에 손정의는 출판사가 아니면, 전시회 부문이라도 매수한다. 후에 출판부문도 인수하여 지도와 나침반을 마련한 셈이다.
일본 정부가 철도, 전화, 담배 사업을 민영화한다고 발표한다. 이 것이 JR, NTT, JT이다. 이에 손정의는 NTT에 대응할 두 번째 통신사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일본법에는 회사의 전화기 중 1대는 반듯이 전신전화공사의 것을 쓰도록 법제화 되었는데, 이는 나머지는 어느 회사 것을 써도 된다는 말이 되는 셈이 아닌가? “정부의 힘이 셀 때는 민간 기업을 버리고, 민간 기업의 힘이 셀 때는 정부를 버리는 게, 통신을 골라 쓰는 이용자의 마음이 아닌가? 이 에 힌트를 얻어 ”NCC. BOX“를 만든다. 이 기기는 자택 전화와 연결하면 전화를 걸 때마다 가장 요금이 저렴한 통신사 회선을 순식간에 찾아 연결해주는 장치다. 이 것으로 NTT(Nippon telegraph and telephone 일본 전신 전화국)독점은 끝이 된다. 손정의는 이 기기를 팔지 않고 소비자에 공짜로 나눠준다. 그리고 선택한 통신사의 로열티를 받도록 한다. 그로 인해 통신사 간의 공정 경쟁기회가 주어지고, NTT가 지배한 통신요금에 가격파괴가 일어난다.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일본 국민이 된 것이다.
일본의 인터넷은 세계에서 가장 느리고 비쌉니다.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뜻을 세웠던가? 디지털 정보혁명을 위해서다, 여기서 기가 죽을 수는 없다, 그래서 NTT와 싸워보자 . 브로드밴드로 승부를 가려보자? 1999년 말 인터넷의 세계 보급률은 19%였다. 당시 NTT는 ISDN(integrated services digital network 종합디지털 통신망)방식에 의한 회선보급이 목표였다. 이 방식은 느리고 브로드밴드가 아니고 전화회선사용료와 또 통신사용료를 내야 하는 구조다. 하지만 이 시대는 NTT가 예측하는 방식보다 훨씬 빠른 초고속 인터넷 망을 요구하고 있다. 그 방식이 ADSL(asymmetric digital subscriber line)방식이다. 이에 손정의는 속도가 5배 빠르고 요금은 1/4 가격에 기타 세금 및 봉사료 포함 NTT의 절반이 안되는 가격으로 설정하여 단숨에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세운다.
1998년 빌 게이츠와 손정의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방미 중에 만났다. 한국은 통화위기로 나라가 경제에 어려움을 엮던 때다. 이 에 김대중 대통령이 손정의에 선견지명을 받고자 무엇이 한국경제에 필요한가? 묻자. 손정의가 먼저 방법은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도 부로드벤드, 두 번째도 부로드벤드, 세 번째도 부로드벤드 이외는 없다. 답을 하자 빌 게이츠도 동의 한다 . 브로드벤드는 인터넷을 지금보다 1000배 빠르게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두 사람의 의견을 듣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국의 모든 학교에 인터넷에 브로드밴드를 도입한다. 이것이 한국이 인터넷 강국의 기점인 셈이다. 그리고 삼성전자를 정정으로 전자산업도 눈부시게 발전한다.
“야후” 창업자 “제리 양”은 대만계 미국인이다. 양도 손정의처럼 창고에서 출발하여 머리로 돈을 번 사람인데 손정의가 양에게 묻는다. 앞으로 인터넷의 세계는 어떻게 보시는가? “인터넷의 세계는 무한한 우주와 같아서 어디서든 자유롭게 드나든다. 너무 넓어서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 양이 만든 포털검색사이트 야후였다. 손정의가 거금을 들어 산 지도와 나침반으로 찾은 보물은 결국 “야후”였다, 대만 출신의 양은 걸리버 여행기에서 나오는 야만종족의 이름이다. 신기한 빛이 나오는 돌을 가지고 싸우는 이 야만인들은 돌이 사실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물건임을 알지 못한다. 이제 막 태어난 인터넷 세계도 가치를 모르는 돌과 같은 정보들이 널려있다. 가치 있는 진정한 정보를 이용자들에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려 만든 것이 야후다. 손정의는 야후 주식을 취득하고 “야후재팬”을 만든다. 그리고 야후는 망하지만 야후재팬은 성공을 한다. 지금의 야후 재팬의 가격은 13조 엔이 넘는다. 그 후 “리먼브라더” 사태로 부침은 있었으나 손정의는 굳건하다.
손정의는 이제는 재일한국인3세가 아닌 일본인의 국적을 취득한 일본인이다. 그는 푸틴러시아 대통령과 전력을 가지고 아시아 슈퍼 그리드의 송전망 계획을 참여하기 위해 움직인다. 일본 대지진에 전기가 끊기니 PC건, 통신이건, 컴퓨터건, 모두 부처님 손바닥안의 손오공이었음을 알았다 . 손오공과 손정의는 공교롭게 같은 손 씨라고 중국 시진핑 주석에 비위를 맞추기도 한다. 우리인간은 전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을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몽고에서 풍력과 러시아에서 수력발전의 전기사업을 꿈꾸고 큰일로 일본국민 이익을 위하여! 바쁘게 뛰고 있다. 성공을 바란다.
그리고 일본도 하는데 우리 한국인은 더 잘 할 것이니 모두들 관심분야에서 멍 때리지 말고 뛰자
손정의는 어릴 때 이런 목표를 세운다!
20대에 사업에 이름을 내건다.
30대에 사업 자금을 모은다.
40대에 사업에 큰 승부를 건다.
50대에 사업을 완성시킨다.
60대에 사업을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 , 손정의는 2017년 8월에 환갑이 지났다.
우리나라 소년들이 보고 본 받을 위인임에 틀림없다. 이 글을 우리 손녀 손자들이 보기를 바라면서
2018 04 12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
서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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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손정의! 정말 대단합니다 훌륭합니다 존경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꼭 본받아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