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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菩薩의 十種心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有十種心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精進心이니 一切所作이悉究竟故며不懈心이니 積集相好福德行故며大勇健心이니 摧破一切諸魔軍故며 如理行心이니 除滅一切諸煩惱故며 不退轉心이니 乃至菩提에 終不息故며 性淸淨心이니 知心不動하야 無所着故며知衆生心이니 隨其解欲하야 令出離故며 令入佛法大梵住心이니 知諸衆生의種種解欲호대 不以別乘으로 而救護故며空無相無願無作心이니 見三界相호대 不取着故며卍字相金剛堅固勝藏莊嚴心이니 一切衆生數等魔來라도 乃至不能動一毛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如來無上大智光明藏心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마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정근하는 마음이니 일체 짓는 일에 모두 끝까지 이르는 연고며, 게으르지 않은 마음이니 잘생긴 모습과 복덕의 행을 쌓아 모으는 연고며, 크게 용맹한 마음이니 일체 모든 마(魔)의 군대를 꺾어 깨뜨리는 연고이니라.
이치대로 행하는 마음이니 일체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연고며, 물러나지 않는 마음이니 보리에 이르기까지 마침내 쉬지 않는 연고며, 성품이 청정한 마음이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을 알아서 집착이 없는 연고며, 중생을 아는 마음이니, 그 지혜와 욕망을 따라 벗어나게 하는 연고이니라.
불법에 들게 하는 큰 범천에 머무는[大梵住] 마음이니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이해와 욕망을 알고 다른 법[乘]으로 구호하지 않는 연고며, 공하고 형상 없고 소원 없고 지음 없는 마음이니 세 세계의 모양을 보고 집착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만(卍)자 형상의 금강처럼 견고한 훌륭한 창고로 장엄하는 마음이니 일체 중생의 수효와 같이 많은 마(魔)가 오더라도 능히 한 터럭도 동요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 광명의 창고 마음을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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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심(十種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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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심(有十種心)하니: 열 가지의 심(心)이 있다. 아까 배가 있고 오장이 있었다. 여기는 심장이 있다.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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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등(何等)이: 어떤 것이
위십(爲十)고: 보살의 열 가지 심장이냐?
소위정진심(所謂精進心)이니: 먼저 정진심이다. 부지런한 심장을 가져야 된다. 정진은 어디서 오는가?
신심이 생긴 다음에 따라오는 현상이 정진이다.
정진하는 사람들은 어떠냐? 나를 반성하고 남에게 부끄럽게 여기는 정신을 가진다. 여론을 중시여긴다. 스로를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고 늘 참회하면서 따라오는 정신이다.
이것은 부지런한 사람한테 온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안 온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뭐가 오는가?
그다음부터 탐진치가 없어진다.
탐진치, 탐심은 어떤 것인가? 염착이다.
오염되고 집착이 강하다. 진심은 화내고 골을 잘 내는 것이다. 골 잘 내는 것은 항상 남을 손해 끼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말할 때 가만히 들으면 ‘저 사람 골났는가, 안 났는가’를 안다. 골난 사람들, 화를 많이 내는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가 안 들리기 때문에 목소리 톤이 점점 올라간다.
‘아, 화 많이 났네’ 하다하다 안 되면 다 들리는데도, 바로 앞에서도 “아아악 아아악” 있는 대로 땡강을 지른다. ‘아, 맛이 갔네’ 그러니까 불교를 알면 ‘아, 이래서 능엄경에 얘기하기를 귀 막고 땡강 지르는 놈을 화내는 것하고 똑같다고 하는구나’ ‘거짓말 잘하는 놈들은 똥을 말려 깎아서 향기를 기대하는 것과 비슷하구나’ 한다.
설악산 봉정에 갈 때는 향을 안 가져간다. 봉정에 올라가는 동안 힘이 들어서 마음이 청정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사람 자체가 향기가 된다. 그래서 향을 안 가져가도 향기롭다.
봉정, 설악산에 사는 나무들은 전부 다 향나무라. 소나무도 향나무, 꿀밤나무도 향나무다.
문수선원에 와서 공부하는 분들도 전부 계향, 정향이다. 가끔가다 해탈향도 있고 해탈지견향도 있다.
정진심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탐진치가 싸그리 사라진다.
남 손해 안 끼치고, 지저분한 생각이 조금 오그라들고 없어져 버리면 쪼그라들면 그다음에 뭐가 나오는가?
정신도 홀가분하고 육체도 홀가분하다.
몸이 아파도 ‘아유 견딜만하다’그런다.
탐진치가 많으면 몸이 묵직하고 정신도 골치 아프고 머리가 골치 아프고 우울증이 있다. 그런 것들은 전부 다 탐진치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 근본 조상은 뭔가? 아만이고 아집이다. 아집 때문에 탐진치가 일어나잖는가?
아집은 조정하는 놈이고, 탐진치가 바깥에 밀려 나온 놈이다.
그러면 아집의 원조 조상은 누구인가?
무명업상이다. 무명업상.
홀연히 나도 모르게 불각무명이 덮쳐서 아집을 일으키고 그놈이 밀어내서 분별사식이 되어서 생기식으로 고생하고 수고롭게 쪼장거리고 올라오는 것이 탐진치다.
탐진치만의견(貪瞋痴慢疑見) 신견(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이것이 근본번뇌이고 거기에 분(忿) 한(恨) 부(覆) 뇌(惱) 광(誑) 첨(諂) 교(憍) 해(害) 질(嫉) 간(慳) 그다음에 무참(無慚) 무괴(無愧) 뻔뻔스럽게 해서 혼침(昏沈) 도거(掉擧) 산란(散亂) 방일(放逸) 불신 그런 것이 있잖은가?
실념(失念), 해태(懈怠) 아이고, 이름도 지저분해서 하기도 싫다. 정신줄놓고 부정지(不正知)까지 스무 개가 쭉 따라가다가 온갖 곳에서 그걸 가지고 자기 살림살이로 삼는다.
그런 데서 좀 홀가분해지는 것이 정진이다.
정진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세 가지뿐이다.
‘보시하라. 계율을 지켜라. 인내하라’
보시하라 지계하라 인내하라
보시하라 지계하라 인욕하라
보시하라 지계하라 인욕하라
계속 반복되면 무슨 바라밀이 생겨지는가?
정진바라밀.
정진바라밀이 무엇인가?
보시 지계 인욕의 끝없는 반복이다.
정진, 정진, 정진 다음에 정진, 계속하다 보니까 보시 지계 인욕, 보시 지계 인욕을 하는 것이다.
탐진치 종자를 계속 끊는 걸 반복해서 정진하다 보니까 ‘아, 이래서 무탐 무진 무치가 따라오는구나’ ‘탐진치가 사라지니까 경안(輕安) 마음이 홀가분하고 편안해지는구나’ 마음이 홀가분하고 편안해지면 어떤가?
그다음부터는 무사공평, 공명정대, 사리분별이 또렷해서 내 편 네 편 없이 다 챙긴다.
그럼 마지막으로 오는 단계는 무엇인가?
불해(不害) 해코지하지 않는다. 남을 절대 해코지하지 않는다.
‘내 손해 보고 말지, 돌아서 버리고 말지, 아이고 지저분한 놈’ 하고 돌아서지, 미주알고주알 고소장 접수하고 이런 게 없다는 것이다.
여기도 그런 순서다. 정진하는 마음이니
일체소작(一切所作)이:온갖 일에
실구경고(悉究竟故)며:모두 끝까지 이르는 연고이고
불해심(不懈心)이니: 불해심이라 해태하지 않는 것, 게으르지 않는 마음으로 자기를 경책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입장에서는 자기를 계속 부지런하게 근면하게 해나가는 것이 정진심이고 불해심은 뭔가?
적집상호복덕행고(積集相好福德行故)며: 상호복덕행을 적집하는 까닭이다. 잘생긴 모습을 적집하는 까닭이다.
자기를 계속 부지런히 채찍질해 나가는 것이다.
대용건심(大勇健心)이니: 대용건심이니, 크게 용맹한 마음이니, 제일 용맹한 사람이 이 지구상에 한 사람 있잖은가.
시아본사용맹지. 어느 약초꾼의 이런 게송이 있잖은가.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그 약초꾼이 누구인가? 여러분들은 까먹는 데 천재다.
성불하시기 전 석가모니의 게송 아닌가.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부처님이 약초꾼 시절에 이런 게송을 읊었다.
화엄경 근본법회에도 보면 이렇게 나온다.
‘사냥꾼이 설산에 평생을 살더라도 사냥꾼의 눈에는 그 설산에서 사냥감만 보이고, 목동의 눈에는 잡초만 보이고, 약초꾼의 눈에는 약초가 보인다’
왜 약초인가?
어제병고(於諸病苦) 위작양의(爲作良醫)라.
관음보살대의왕, 관음보살을 왜 의왕이라 하고 의사라 하고 부처님을 양의(良醫)라, 좋은 의사라 하는가? 중생의 번뇌병을 치료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양약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
부처님은 왜 약초꾼이 됐느냐? 중생의 병을 치료하려니까 약초꾼이 안 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왜 부처님께서는 성불하시기 직전에 일주일 동안 잠도 안 자고 계속 불사불(弗沙佛)을 찬탄할 때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천상천하무여불…’ 입도 안 아프나, 일주일 동안 지겹도록 한 게송만 가지고 계속하셨는가.
천 게송, 만 게송을 하실 수 있는데 왜 한 게송만 했느냐?
뜻이 진실하면, 진짜면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라.
게송 하나만 가지고도 천 년을 해도 만 년을 해도 부족할 게 없다. 화엄경 하나라도 우리 인생이 평생 살아가는 데 아무 하자될 게 없고, 이세간품 한 품만 계속해도 괜찮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용수보살약찬게’ 뒤에는 못 외우고 그 두 구절만 해도 된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그거 끝나고 ‘나무아미타불’만 해도 구애될 것이 없다.
그래서 순자(荀子)는 막신일호(莫神一好)라. 하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신명나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하나가 내게 있느냐 없느냐, 막신일호 말 막(莫)자 신명날 신(神)자 일호(一好) 하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더 신명나는 것은 없다. 크게 용맹한 마음이니
최파일체제마군고(摧破一切諸魔軍故)며: 모든 마의 번뇌를 파하는 연고이고
여리행심(如理行心)이니: 여리, 이치대로 행하는 마음이니
제멸일체제번뇌고(除滅一切諸煩惱故)며: 모든 번뇌를 멸하는 까닭이고
불퇴전심(不退轉心)이니: 불퇴전심이라. 물러나지 않는 심장인데 견고하다. 아주 견고한 걸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지보리(乃至菩提)에: 내지는 보리에 이르도록
종불식고(終不息故)며: 쉬지 않는 연고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갈 때까지 쉼이 없다.
성청정심(性淸淨心)이니: 또 성품이 청정한 마음이니, 이 심장이 있다. 이게 뭐냐? 청정하다고 하는 것은 허공청정이다. 허공을 아무리 잡아 흔들어 보라. 허공이 흔들릴 리가 없다.
지심부동(知心不動)하야: 지심부동이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을 안다. 생각이나 흔들리지, 마음은 흔들리는 게 아니다. 없는 것이 어떻게 흔들리는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음을 알고
무소착고(無所着故)며: 집착이 없는 연고다.
지중생심(知衆生心)이니: 중생심을 아는 마음이니
수기해욕(隨其解欲)하야: 그 지혜와 욕망을 따라서 그 이해하는 정도와 ‘중생지근욕성(衆生之根欲性)이 수(殊)라’ 중생을 이해하는 정도와, 그 정도의 수준과, 그 사람의 의욕 정도의 근기에 딱 맞춰서
영출리고(令出離故)며:영출리고니라. 삼승을 닦을 사람, 일승을 닦을 사람, 자전거 탈 사람, 오토바이 탈 사람, 덤프트럭 탈 사람, 그 사람의 수준에 맞춰서 차량을 배분해 준다는 말이다.
지혜가 있어서 남을 깨닫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중생심을 안다고 할 수 있잖은가?
조금 전에 어른스님한테 올라갔더니 전에 간병하시던 분이 오셨는데 “아이고 스님, 간병을 하다 보니까 참 희한하대요?”하면서 우리가 너무 다 아는 이야기를 하셨다.
저도 강의할 때 한 번씩 그런 이야기를 한다.
‘저 나무가 평생 한 100년을 살고 10년을 살고 천년을 살더라도 한 번도 같은 이파리가 없다’ 저 사과나무가 수십 년을 살면서도 같은 사과를 달아본 적이 없다. 엇비슷하지만 그렇잖은가?
내 피부가 정말 어릴 때 백옥같았다. 그런데 쪼글쪼글하게 이상하게 됐다. 내가 나인데도 한번도 같은 사람인 적이 없다.
간병을 하다 보면 병도 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손가락 길이도 같은 사람이 없고 혈액형도 같은 사람이 없고 형제간이라 할지라도, 대동소이한 것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시력이 같은 분이 한 분도 안 계시다.
그 정도만 알면 중생 중에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바다의 미역 파래 김, 멸치 참치 꽁치 이 정도 다를 정도가 아니잖은가. 다른 것이 다 수용되는 것이 세주묘엄(世主妙嚴)이다.
병도 지금 병명을 아는 병도 있고, 모르는 병명도 더 많다. 하늘의 별도 쳐다보니까 아는 별 이름은 몇 개 없고 싹 다 거의 모르는 별들이다.
풀도 아는 풀 이름이 몇 개 없다. 풀 이름 모르면 어떻게 하는가? 억지로 갖다 붙인다. 그리고 오늘도 새로 만들어지는 풀도 있지 않은가.
화엄경을 보면 어떻게 옛날에 이런 이치를 꿰뚫고 있었는가, 정말 현미경과 망원경처럼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을 동시에 해놓았다.
특히 의상스님이 그걸 빡 압축해서 누구도 혓바닥을 못 대도록 한 자 줄일 수도 없고, 뺄 수도 없을 정도로 법성게 30구절 210자를 차돌멩이 같이 만들어 놨다. 법성게는 희한하게 천년을 굴러가도 흠집 하나 안 난다. 그걸 젖먹이가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이빨 없는 젖먹이는 씹을 수가 없다.
그 법성게는 화엄경을 다 하고 나서도 이게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의상스님께서 7년 10년 공부를 하시고 나서 마지막에 당신의 공부를 결집해서 ‘총체적으로 이겁니다’ 해놓은 것이잖은가.
불에 태워도 안 타고 물에 젖지도 않고 망치로 부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천년이나 왔다.
너무 탐나니까 중국 사람들이 ‘이거 중국 건데’ 이래 버리고,하다 못해 법성게를 저번에는 천주교도 가져가서 자기들 거라고 하는데, 아무리 가져가 봐도 자기들 게 될 리가 없다. 가져갈 수 있는 걸 가져가야지.
그 지혜와 욕망을 따라서 벗어나게 한다.
‘아, 중생심이다’ 중생의 그런 다양함, 그러니까 병도 같은 병이 없고, 사람도 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몸무게도 같은 사람 한 사람도 없고. 오죽하면 성격 같은 사람도 한 사람 없는 줄 아니까 부처님이 ‘아, 다 같은 사람이 없으니까 복장을 열고 데바닫다도 수행해라’
약 먹고 건강해지는 것보다 독 먹고 안 죽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다. 독극물, 그렇잖은가?
만독불침(萬毒不侵)이라. 어떤 마구니가 오더라도 침탈당하지 않는 그 마음이 대단하다. 부처님한테도 얼마나 많은 마구니가 왔는가, 마지막 성불할 때까지 마장이 왔지 않은가. 그런데 만독불침이다. 부처님에겐 삼독이 통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삼독이 삼시세끼 밥이다.
*
영입불법대범주심(令入佛法大梵住心)이니:불법에 들게 하는, 대범처에 머무는 마음이니, 대범처는 사무량심이다.
지제중생(知諸衆生)의: 갖가지 지혜와
종종해욕(種種解欲)호대: 욕망을 알고
불이별승(不以別乘)으로: 다른 승으로
이구호고(而救護故)며: 구하지 않는 연고이니라.
공무상무원무작심(空無相無願無作心)이니: 공무상무원무작심이니, 이것이 거의 불교 경전의 주제다.
공과 무상과 무원, 화엄경은 무작을 하나 더 붙여놨다.
공 무상 무원 불교 모든 경전의 핵심인 이것을 알면 마음 전체를 안다는 것이다. 공 무상 무원.
공은 본래 없다.
무상이다. 현상으로 나타나도 없는 줄 알아야 된다.
무원, 실제적으로 구제해도 구제한 바가 없고, 원해도 원하는 바가 없다. 다만 장엄으로 있을 뿐이다.
공하고 형상 없고 소원 없고, ‘소원 없는 것’ 이런 것을 가지고 ‘원력이 없다’ 이래버리면 안된다.
진짜 원력은 원하지 않는 것이 원이잖은가. 아무 대가나 바람이 없는 것이다.
지음 없는 마음이니, 무작심이니, 무작이라 하기도 하고 무위라고 하기도 한다. 무작위라고 하지 않는가. 무위, 무작 똑같은 말씀이다.
견삼계상(見三界相)호대 : 삼계의 모양을 보고
불취착고(不取着故)며 : 집착하지 않는 연고이고
만자상금강견고승장장엄심(卍字相金剛堅固勝藏莊嚴心)이니: 만자 형상의 금강처럼 견고하고 훌륭한 장엄으로써 장엄하는 마음이니
일체중생수등마래(一切衆生數等魔來)라도: 일체중생의 수와 같이 마가 오더라도
내지불능동일모고(乃至不能動一毛故)라: 능히 한 터럭도 동요하지 않는 연고다. 바람이 아무리 불어본들 허공이 흔들리는가?
시위십(是爲十)이니: 이와 같이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 법에 편안히 며물면
즉득여래무상대지광명장심(則得如來無上大智光明藏心)이니라 : 여래의 위없는 큰 지혜광명, 광명장심 갈무리의 큰 지혜장, 광명장의 마음을 얻는다.
그래서 천수경에 ‘신통장이요 광명당이요’ 라고 나오잖는가.
원각경에도 ‘신통광명장(神通光明藏)에서 여래께서 법을 설하셨다’ 이렇게 나온다.
화엄경 2회차부터 설하는 곳이 보광명전이다. 전부 광명장이잖은가. 원각경 말씀이다.
‘원각이 어디에 있는가? 신통광명장에서 설했다’ 바깥으로 나오는 신통이 안쪽의 광명으로부터 표출되는 것이다.
달마대사가 출가하게 되는 문답에도 나온다.
‘이 세상의 가장 훌륭한 광명은 지광이다. 지혜광명이다’
이 세상의 가장 훌륭한 보배는 뭔가?
법보, 심보다.
그러니까 저 바깥의 다이아몬드 구슬 보배 그것이 보배가 아니라 진짜 보배는 법보 같은 심보가 가장 보배다.
(9) 善慧地
가.菩薩의 十種被甲
佛子야菩薩摩訶薩이有十種被甲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被大慈甲이니 救護一切衆生故며被大悲甲이니 堪忍一切諸苦故며被大願甲이니 一切所作究竟故며 被廻向甲이니 建立一切佛莊嚴故며 被福德甲이니 饒益一切諸衆生故며 被波羅蜜甲이니 度脫一切諸含識故며 被智慧甲이니 滅一切衆生煩惱暗故며 被善巧方便甲이니 生普門善根故며 被一切智心堅固不散亂甲이니 不樂餘乘故며 被一心決定甲이니 於一切法에 離疑惑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被如來無上甲冑하야 悉能摧伏一切魔軍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입는 갑옷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크게 인자한 갑옷을 입음이니 일체 중생을 구호하는 연고며, 크게 가엾이 여기는 갑옷을 입음이니 일체 모든 괴로움을 견디고 참는 연고며, 큰 서원의 갑옷을 입음이니, 모든 하는 일을 다 성취하는 연고이니라. 회향하는 갑옷을 입음이니 모든 부처님의 장엄을 세우는 연고며, 복덕의 갑옷을 입음이니 일체 모든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연고며, 바라밀다 갑옷을 입음이니, 일체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연고며, 지혜 갑옷을 입음이니 일체 중생의 번뇌를 없애는 연고이니라. 교묘한 방편의 갑옷을 입음이니 넓은 문의 착한 뿌리를 내는 연고며, 일체 지혜의 마음인 견고하여 산란하지 않은 갑옷을 입음이니 다른 승(乘)을 좋아하지 않는 연고며, 한 마음의 결정한 갑옷을 입음이니 모든 법에 의혹을 여의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갑옷을 입고 모든 마의 군대를 모두 꺾어 부수느니라.”
*
선혜지(善慧地)
*
보살(菩薩)의 십종피갑(十種被甲)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피갑(有十種被甲)하니: 또 열 가지의 피갑이 있으니, 열 가지의 갑옷이 있는데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소위피대자갑(所謂被大慈甲)이니 :안쪽으로 배나 오장육부, 심장이 탄탄해지면 바깥으로 남한테 보여져야 되지 않는가? 예를 들면 중생들한테 설법을 할 때가 그렇다.
이것이 선혜지다. 안으로 꽉 차 있으면 바깥으로도 보여져야 한다. 여기서 제가 난닝구 입고, 파자마 입고 앉아서 화엄경을 강설하면 점수가 빵점이다. 그런데 바깥으로 그럴싸하게 가사 장삼 입고 여법하게 하는 것은 중생의 근기에 보여주려는 의도다.
선혜지쯤 가면 변재라고 하지 않는가.
중생들한테 법을 설할 때는 언제 해야 되는가? 여법할 때 한다. 아플 때, 때밀 때 이런 때 법문을 하면 안 된다고 하잖는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항상 높은 자리에서 한다. 법이 높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서 법문을 해야 된다.
그런데 범어사 불교대학은 극장식으로 되어서 설법하는 사람이 저 밑에 있다. 보기 좋다고 그렇게 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사(事) 이사(理事)를 몰라서 그렇게 해놓은 것이다.
법상을 일부러 올리는 것은 법에 대한 존중이다.
하다못해 불기를 밑에 받쳐서 올리고, 제기나 불기도 받쳐서 올려놓는다. 궁중요리 신선로도 받침대에 올려놓잖는가.
그것은 존경과 존중과 귀함의 상징이다.
그 이치를 알아야 자연스럽게 받쳐 올리고 이렇게 한다.
와인잔 같은 건 받쳐 놨는데 막걸리잔은 안 받치잖는가. 막걸리니까 대접에 사발에 막 이렇게 놓고 마시잖는가.
소주? 소주는 응무소주니까 받쳐야 한다.
스님은 진로 소주 얘기하시고.
여기 바깥에 피갑이 나오는데, 안에 제품이 좋은 것은 바깥도 좋다.
인물이 되는 사람이 화장발이 받는다.
인물이 안 되면 성형도 견적이 안 나오는 수가 있다.
피갑이라는 것은 대충 그런 뜻이다.
‘폼잡고 설법해라’ 이런 뜻이다.
자, 선혜지. 선혜지 나왔잖은가.
뭐가 우리의 갑옷이 되느냐? 우리 수행자의 갑옷은 피대자 갑옷이다. 대자, 인자한 갑옷을 입고
구호일체중생고(救護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구호해야 된다. 우리의 갑옷은 뭐냐? 대비심이다.
피대비갑(被大悲甲)이니:피대비갑이라.
눈물이 막 쏟아질 것 같잖은가.
이렇게 자세하게 해놨다.
좀 가슴이 감동으로 울렁거리는 거 없는가?
그렇게 불감적으로 인생을 살면 안 된다.
어른스님께서 우리가 은해사에서 공부할 때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학원생들이 하도 답답하게 공부도 잘 못하고 감동없이 빼짝마른 지식으로 공부하고 이러니까 “경전을 읽을 때는 해설하고 설명하려 하지 말고 감동받을 준비를 해라.” 경전 읽을 때마다 감동받을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이제사 30년이 훨씬 더 지나서 금강경을 봐도 ‘와, 여인입암(如人入闇)에 즉무소견(卽無所見) 이렇게 잘 돼 있네’
여인유목(如人有目)에 일광명조(日光明照) 근데 어릴 때는 ‘금강경 한편 읽으면 만 원 나온다 빨리 읽자’ 다다다다 그러니까 스님께서 지난 번 <화중연화 전집>을 봉정식하실 때 ‘다이아몬드가 쏟아진다’ 이랬잖은가.
잘 못들으면 귀에 잘 안 들어온다. 사람들은 그냥 말씀만 멋있는가 한다.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느끼시는 것이다.
요즘도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서 땡강을 지르신다.
일어나시면서 “대박이다. 또 살았다. 기적이다. 한 껀 했다!”
생명의 소중함이 그렇게 사자후를 안 하고는 못배기게 하나보다. 당신 혼자, 아무도 안 듣잖은가? 속이 시원하신 것이다. ‘로또다’이러신다. 로또 잘 안 맞는데.
저 벽에 붙어 있는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저기에 감동 있는 분도 있고 아무… 눈에 안 차는 사람도 많잖은가?
우리가 생각할 때는 스님은 일찍이 몸이 편찮으시면서 인생이 소중한 걸 확실히 체득하셔버린 것 같다.
끝도 없이 매일 그렇게 하시는 거 보니까, 그런 어른이 옆에 계신다.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 대비의 갑이라, 대자대비로 중생을 크게 가엾이 여기는 옷을 입고
감인일체제고고(堪忍一切諸苦故)며: 대비는 모든 괴로움을 참고 견뎌야 된다.
좀 추우면 ‘아, 추워라’ 보일러 안 틀어 준다고 원주실에 가서 따지는 놈이 없나 아이고.
우리 학인들은 이제 하다하다 나중에 보니까 저도 깜짝 놀랐다. 샤프심까지 사 달라고 한다.
엔간하면 밥도 대신 먹여 달라하지. 사프심 있잖은가. 연필도 사 달라고 한다. 그 정도로 공심이 없다.
겐로쿠라는 일본의 문화가 있다.
사슴은 녹명(鹿鳴)이라고, 자기 공부하는 서재 이름을 녹명헌이라고 지은 선비들도 많다. 사슴이 운다, 목을 쭉 빼고 사슴이 우는데, 사슴은 목이 길잖은가.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노천명 사슴, 쭉 빼고 우는데. 사슴은 맛있는 걸 발견하면 빨리 오라고 자기 동료들을 부른다는 것이다. 목을 쭉 빼고, 오라고.
돼지는 안 그런다. 돼지는 목이 짧잖은가. 돼지는 목이 짧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꿀맛이라. 꿀꿀꿀 꿀맛. 꿀이다, 꿀. 돼지가 말하는 거 봤을 것이다. 꿀꿀 꿀꿀 꿀이라. 그래서 돼지는 꿀꿀이고.
사슴은 눈도 맑잖은가. 목도 길고. 뭐 발견하면 ‘다 오라 이거’ 부처님이 탄생한 곳이 녹야원이다. 녹야원에서 설법하셔서 불교가 탄생하였잖은가. ‘다 모여라’ 녹야원.
부처님이 꿀꿀이 돼지집 옆에서 하시면 안 된다.
그래서 녹명이라고 사슴이 우는 것은 보현행원이라.
보현행원, 그런 정신이 우리 인류 사회에 많이 퍼져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잘 되어 있는 것이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화엄경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화엄경 제 삼십여덟 번째 대원정진력구호일체중생주야신(大願精進力救護一切衆生主夜神) 이름도 긴 선지식 거기서 선복태자가 ‘내가 선복태자(善伏太子)였을 때 나를 죽이려고 했던 저 사람 지금의 저 데바닫다 무리가 그때 대신들이었다’라고 하였다.
오백 대신들, 법화경 설할 때는 공부 안 하고 도망간 사람들 있잖은가. 좀 데바닫다들이다.
그런 사람들까지 다 성불해야 된다 이렇게 해놓았다.
성불할 때의 이름도 묘하게 해놨다.
데바닫다 그 500명의 사람들이 성불을 하면 그 사람이 부처님 이름을 갖게 되는데, 구호부처님이 될 것이고 이름도 너무 아름답다. 대비부처님이 되고, 대비사자부처님이 되고 또 의왕부처님이 되고, 그 못된 데바닫다 무리들이 성불하는데도 그들이 될 부처님 이름이 전부 대자대비 부처님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우리도 법명 받은 거 있지 않은가?
우리 법명, 우리 불명, 우리 깜냥을 보면 법명하고 사람하고 전혀 안 맞는다.
법명은 거의 부처님에 가깝게, 부처님처럼 받았는데 살림살이는 전부 오만과 편견으로 살아간다.
그래도 우리가 화엄경을 읽으면서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이렇게 모여서 공부하는 것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유일할 것이다. 몇십 년, 십몇 년을 쭉 이렇게 공부해왔다.
그래서 저는 선배스님들 이런 분들을, 후배스님들도 계시지만 정말 존경한다.
이렇게 우리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면 금고가 하나씩 생기는 것이다. 전에는 좀 거짓말 보태서 화엄경을 읽으면 산도 하나 생겨지고, 하루에 바다도 한 개 생겨진다고 했는데 그건 좀 거짓말 같고, 금고 정도, 돈 가득찬 금고 ‘저 사람 한번 만났는데 행운이다 금고다’ 이런 식으로 되는 것이다.
그걸 갖다가 생금장이라고 한다.
장(藏)자가 앞에 많이 나왔었다.
금이 늘 나오는 장, 여수생금(麗水生金)이라. 맑은 물에야 달도 비치고 여수생금이라. 금이, 부처님이 탄생하는 것이다.
지저분하고 그런 데서는 안 된다.
아까 법회 전에 다실에 앉아서 이야기했는데 “경전이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경전이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다.
장이 잘 안 되고, 구더기가 이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런가?
내가 간수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간수만 잘하면 구더기가 안 슨다. 경전은 하나도 잘못이 없다. 경전은 하나도 잘못 없고 어렵지도 않고 재밌다.
피대원갑(被大願甲)이니: 대원력의 갑옷이라 서원의 갑옷을 입은
일체소작구경고(一切所作究竟故)며 : 모든 하는 일이 끝나는 연고이고
피회향갑(被廻向甲)이니:회향의 갑옷이요.
건립일체불장엄고(建立一切佛莊嚴故)며:회향의 갑옷은 모든 부처님의 장엄을 세우는 연고이고
피복덕갑(被福德甲)이니: 복덕의 갑옷이니
요익일체제중생고(饒益一切諸衆生故)며: 일체중생을 요익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스님께서는 아예 이러신다.
‘자리(自利)는 화엄경에 없다. 오직 이타(利他)뿐이다.’
완전한 이타가 제가 볼 때는 완전한 자리 같다.
피바라밀갑(被波羅蜜甲)이니 :바라밀다의 갑옷을 입으니 바라밀다의 갑옷. 우리의 갑옷은 바라밀다다.
어른스님께서 강의하셨다면 이렇게 하실 것이다.
“근사하잖아. 별표 한 세 개 쳐요. 밑줄 긋고.”
하도 오래 듣다보니까 어른스님 흉내도 낼 수 있다.
바라밀다의 갑옷을 입으니
도탈일체제함식고(度脫一切諸含識故)며:도탈일체제함식고니라.
바라밀다는 뭐냐?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법보시를 바라밀다라고 하는구나.
바라밀이라고 하는구나.
피지혜갑(被智慧甲)이니: 지혜의 갑옷을 입음이니
멸일체중생번뇌암고(滅一切衆生煩惱暗故)며: 일체중생의 번뇌를 없애는 연고이다.
*
피선교방편갑(被善巧方便甲)이니: 선교방편이라. 교묘한 방편 갑옷을 입으니
생보문선근고(生普門善根故)며: 보문선근을 내는 연고이고
피일체지심견고불산란갑(被一切智心堅固不散亂甲)이니 : 피일체지심견고라. 지혜의 마음이 견고하여 산란하지 않는 갑옷을 입음이니.
우리 수행을 갑옷에 이렇게 비유해 놨구나 싶은 것이다.
이치를 사실로 전환시켜서, 법리적으로 화엄경에 너무 잘해놨다.
불락여승고(不樂餘乘故)며: 다른 승, 쪼잔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연고다.
범이 되어서 생쥐를 잡아먹지 않는다고 하잖는가.
여왕벌은 한번 집을 떠나면 다시 그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 일벌이나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한다.
화엄경을 배워버리면 다른 데 성문 연각 사성제 연기하고는 별볼 일 없다, 이런 말씀이다.
범은 산을 의지해서 사는 것이지 범이 마을에 어슬렁거리면 똥개한테 물린다. 똥개한테 꼬리 뜯긴 범이 있잖은가.
용이 큰 바다나 맑은 물, 깊은 데 점잖게 안 살고 용이 삐죽삐죽 조그만 도랑, 얕은 도랑에 나왔다면 새우한테 까여서 용 꼬라지가 참 그렇다.
화엄경을 보는 사람들은 돈벌이하고 상관없다.
귀하게 살다 가기 때문에 돈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 있다.
이 화엄경을 일승별교라고 하고, 화엄경 정수의 가르침이 바로 돈오돈수라 하잖는가. 돈 되게 되어 있다. 돈오돈수다.
화엄경은 수행하는 수준에 따라서 설하지만, 법화경은 그렇지 않다. 법화경은 동교라고 한다. 삼승이 다 공부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진짜 화엄경의 가장 요체는 뭔가?
처음에는 화엄경을 확 설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돈오돈수하니까 못 알아들어서 한참 다른 경을 설하고 난 뒤에 설했다고 하였다.
화엄경에는 유식도 있고, 중관도 있고, 다 들어있는데 그런 걸 떠나서 화엄경은 일승별교, 돈오돈수를 원래 주창한다. 잘 맞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저는 보니까 점오점수도 안되는 것 같다.
피일심결정갑(被一心決定甲)이니:일심결정갑이다.한마음의 결정한 갑옷을 입으니
어일체법(於一切法)에:일체법에
이의혹고(離疑惑故)라: 의혹을 여의는 연고다. 일체법에 의심이 없다.
의심이 없으면 신심이 생기는 것이다.
의혹만리라. 의심하면 부처님하고 십만 리, 천만 리 떨어져 버린다. 십만팔천 리가 떨어진다고 하잖는가.
극락세계도 여기서 10만8천리가 떨어져 있다.
“그건 뭡니까?”
이렇게 물어봤더니
“십선법, 팔정도다.”
10바라밀, 8정도가 극락으로 가는 길이다.
10만 8천리라. 중생이 가기엔 참 먼 길이다.
시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피여래무상갑주(則被如來無上甲冑)하야 :부처님은 여래의 무상갑옷, 최고의 갑옷을 입고
실능최복일체마군(悉能摧伏一切魔軍)이니라 :모든 마구니의 군대를 꺾어 부수느니라.
나. 菩薩의 十種器仗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器仗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布施가 是菩薩器仗이니 摧破一切慳恡故며持戒가 是菩薩器仗이니 棄捨一切毁犯故며 平等이 是菩薩器仗이니 斷除一切分別故며智慧가 是菩薩器仗이니 消滅一切煩惱故며正命이 是菩薩器仗이니 遠離一切邪命故며 善巧方便이 是菩薩器仗이니於一切處에 示現故며略說貪瞋癡等一切煩惱가 是菩薩器仗이니 以煩惱門으로 度衆生故며生死가 是菩薩器仗이니 不斷菩薩行하야 敎化衆生故며說如實法이是菩薩器仗이니 能破一切執着故며一切智가 是菩薩器仗이니 不捨菩薩行門故라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能除滅一切衆生의 長夜所集煩惱結使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무기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시하는 것이 보살의 무기이니 모든 인색함을 부수는 연고며, 계율을 지니는 것이 보살의 무기이니 모든 범하는 일을 버리는 연고이니라. 평등함이 보살의 무기이니 모든 분별을 끊어버리는 연고며, 지혜가 보살의 무기이니 모든 번뇌를 소멸시키는 연고며, 바르게 생활함이 보살의 무기이니 모든 삿되게 사는 것을 멀리 떠나는 연고이니라.
교묘한 방편이 보살의 무기이니 온갖 곳에 나타나는 연고이니라. 간략히 말하여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 따위의 모든 번뇌가 보살의 무기이니 번뇌의 문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연고이니라. 생사가 보살의 무기이니 보살의 행을 끊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연고이니라. 실다운 법을 설함이 보살의 무기이니 능히 일체 집착을 깨뜨리는 연고이니라. 일체 지혜가 보살의 무기이니, 보살의 행하는 문을 버리지 않는 연고이니라. 이것이 열이니,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일체 중생의 긴긴 밤에 모은 번뇌의 맺어 부림을 없애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기장(十種器仗)
*
선혜지 두 번째 단락 들어가겠다. 앞에 갑옷이 있었다.
방어가 있었으면 이제 공격이 있다.
방어를 내가 어떻게, 내 마음을 다독거리며 방어할 것인가? 갑옷처럼 자비심으로 나를 감싸라.
공격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공격은 똑같은 칼이 있더라도, 그 칼로 요리를 해서 남에게 밥을 해먹이느냐, 그 칼로 강도짓을 할 것이냐, 이 차이다.
똑같은 마음이잖은가?
똑같은 건데 우리에게는 칼이 있다. 무기가 있다. 무기를 가지고 뭘 하느냐? 번뇌를 잘라버린다.
탐진치만의견(貪瞋痴慢疑見) 신견(身見) 변견(邊見) 사견(邪見) 견취견(見取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열 가지의 근본 번뇌를 싹뚝싹뚝 잘라버리는 무기가 있다. 그 무기로 어떻게 자르는가?
미소가 있다. 미소. 염화미소 향화청 향화청 산화락 산화락 특히 법화경이나 화엄경이나 대승의 최고의 경전들은 보면 연화좌가 있잖은가.
연꽃 같은 마음, 연화 같은 마음.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고, 자비 앞에서는 적이 없다. 부처님 앞에 무슨 적이 있겠는가? 데바닫다 그 핵무기도 녹아 버리는데.
피갑은 안쪽을 보호하는 것이고 이 무기는 바깥쪽으로 항마(降魔) 깨뜨린다 하잖는가.
수행의 무기는 바라밀이다. 그래서 ‘내 눈에 눈물을 나게 하면 네 눈에는 웃음꽃이 피게 한다’‘내 가슴에 못을 박으면 네 가슴에 꽃다발을 안겨 주겠다’ 우리는 법문할 때 계속 그렇게 말씀하셔야 한다.
그럼 또 효봉스님 잘 쓰시던 말씀이 있다.
‘니나 잘해라’
자, 그다음에 우리의 무기가 드디어 나왔다.
육바라밀이 무기다. 그렇지 않은가?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기장(有十種器仗)하니: 열 가지 무기가 있는데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냐
소위보시(所謂布施)가 :이른바 보시하는 것이 보살의 무기다.
베푸는 것이
시보살기장(是菩薩器仗)이니: 보살의 무기다.
최파일체간린고(摧破一切慳恡故)며 : 그래서 내 마음 일체의 간인을, 인색한 것을 부수는 연고이고
지계(持戒)가: 지계바라밀이 우리의 무기다.
시보살기장(是菩薩器仗)이니: 이것이 보살수행자의 기장이고 병장기다. 계율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큰 무기다.
항마진언을 하는데, 무식한 마구니들은 항마진언을 못 알아들어서 제압이 안된단다. 항마진언을 하는데도 뭔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마구니들도 좀 배워야 된다.
기사일체훼범고(棄捨一切毁犯故)며: 모든 파괴하는 일을 버리는 연고다. 기사일체훼범이라. 계율을 지키고.
*
평등(平等)이 :평등이
시보살기장(是菩薩器仗)이니: 보살의 무기다. 무사공평한 것. 그래서
단제일체분별고(斷除一切分別故)며: 모든 분별심을 끊어 버리는 연고다.
지혜(智慧)가:지혜가
시보살기장(是菩薩器仗)이니:보살의 무기다. 병장기이니
소멸일체번뇌고(消滅一切煩惱故)며: 일체번뇌를 소멸시키는 것은 지혜가 있어야 된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제(一念頓蕩除)라
태양이 한번 떠버리고 나면 천겁만겁 의심에 드는 어둠이 확 사라진다는 말씀이다.
정명(正命)이: 바르게 생활하는 것이, 명하고 업은 조금 구별해야 한다고 월창거사가 술몽쇄언에서 이야기했다.
업이라고 하는 것은 선악, 악을 고쳐서 선으로 돌아가는 개과천선, 개악천선하는 것이다. 악을 고쳐서 선으로 나를 바꾸는 것이 업에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해 명은 운명적으로 숙명적으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가을이 왔는데 이 가을을 내가 여름이고 싶어서 바꿀 수는 없다. 일본한테 우리가 식민지가 됐다면 나혼자 식민지가 아니다,라고 할 수가 없다.
그 명이 바뀌는 데 따라서 더울 때도 있고 추울 때도 있지만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그 명에 순응하면서 바람 불 때, 비 올 때 젖지 않는 방법은 ‘극복’하는 것이다.
명은 극복하는 데 의의가 있고, 업은 고치는 데 의의가 있다.
명은 비록 내가 그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극복할 수는 있다. 여기도 정명(正命) 바르게 생활하는 것이 나왔다. 이것은 일단 양심껏 사는 것이다. 부처님의 사명을 가지고 살 듯이 바르게 생활하는 것이
시보살기장(是菩薩器仗)이니: 보살의 무기이니
원리일체사명고(遠離一切邪命故)며: 모든 일체 사명 삿된 것을 원리한다. 아주 얍삽하게 족제비 같은 것, 여우 족제비처럼 사는 것을 원리한다.
명은 극복해야 될 현실의 과제이고, 업이라고 하는 것은 개선해야 될 선악의 과제다.
*
선교방편(善巧方便)이:여섯 번째 선교방편이
시보살기장(是菩薩器仗)이니:보살의 무기라.
어일체처(於一切處)에: 일체처에
시현고(示現故)며: 시현고라. 남에게 교묘하게 아주 알맞게 설명을 잘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선교방편이 원래 다를 것이 없지만 마치 이독제독 (以毒制毒)하듯이, 독으로 독을 다스리고, 이성지성(以聲止聲 )소리로써 소리를 그치듯이, 이열치열(以熱治熱)하듯이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하잖는가.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
그러니까 도적은 누구한테 맡겨야 되느냐? 또 다른 도적놈한테 맡긴다. 이것이 선교방편이라.
부처님이 무슨 선교방편이 있겠는가. 말씀이 없다. 묵묵부답이다. 묵묵부답은 골수를 얻은 사람이다. 부전지묘라, 염화미소, 곽실쌍부, 다자탑전분반자(多子塔前分半座) 이런 것은 전부 다 골수를 얻은 사람들한테 마음을 전하는 부전지묘(不傳之妙)다. 전할 수 없는 묘잖은가.
말로 전하고 선교방편으로 방편을 써서 이렇게 전하는 것들은 도둑놈을 시켜서 도둑놈을 제압하는 것이라. 할 수 없이 독으로써 독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독제독이다.
그런 걸 염두에 두시고
약설탐진치등일체번뇌(略說貪瞋癡等一切煩惱)가: 간략히 말하여 탐심 진심 치심 일체번뇌가 보살의 무기다. 여기 나왔잖은가. 탐진치가 도둑놈들이잖은가.
때로는 화낼 게 없지만 일부러 화를 내고, 때로 탐날 게 없지만 탐심을 가지고 사람을 살살 꼬셔야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유화온순하고 성숙한, 이미 다 익은 중생들은 법을 가지고 바로 법리로써 해석해 주고, 이치를 이야기해 주고, 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사탕발림해서, 사탕발림은 약이 아니지만 안 그러면 먹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사탕발림이 선교방편이고 탐진치다,라는 뜻이다.
화엄경은 얼마나 잘 써놨는지 모른다.
도수가 딱 맞다. 응무소주는 몇 도인가?
시보살기장(是菩薩器仗)이니: 일체번뇌가 보살의 무기인데
이번뇌문(以煩惱門)으로: 이 번뇌의 문으로써
도중생고(度衆生故)며:중생을 제도한다.
강강난화중생 수업시간에, 이렇게 강의하는 시간에 공부 안 하고 휴대폰 본다든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 조타삼천모타팔백 아침에 3천 대 두드려 패고 저녁에 8백 대 더 두드려 패고 잘 때 꿀밤 두 대 더 두드려 팬다.
조주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강강난화 중생은 뭘로 다스려야 되느냐? 세력으로 다스려야 된다. 미친개는 몽둥이로 두드려 패야 된다.
탐심 많은 놈은 더 탐심을 내서 다 뺏어버려야 된다. 진심 골 잘 내는 놈은 더 골을 낸다. 그러니까 차 새치기하고 이런 놈들은 본네뜨를 막 뜯어버려야 된다. 벌칙금을 부과해서 될 일이 아니다.
생사(生死)가: 생사가
시보살기장(是菩薩器仗)이니: 이 보살의 장이다. 우리는 열반이 보살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화엄경은 생사가 보살의 장이라고 한다.
어른스님 표현대로 ‘근사하잖아요?’
생사가 보살의 무기다.
이런 것을 보니까 영가 증도가 첫 구절이 생각난다.
절학무위한도인은 공부 끝마쳐버린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절학무위한도인은 부제망상불구진이라 없앨 망상도 없고 구해야될 진여도 없다.
환화공신이 즉법신이요 무명실성이 즉법성이다.
중생의 새까만 독극물 같은 완전 시커먼 양심덩어리가 무명실성이 즉 부처님의 환한 불성과 같고, 환화공신이, 콧물 눈물 찔찔 나고 아파서 병든 이 몸, 환화공신이 오척 단구 육척 단구 지지리도 못난 이 몸뚱이 육신이 즉법신이다. 그대로 법신이다. 생사가 보살의 무기니
부단보살행(不斷菩薩行)하야:보살의 행을 끊지 아니하고
교화중생고(敎化衆生故)며: 중생을 교화하는 연고다.
어릴 때는 제가 되게 아프고 막 수술하고 이러니까 저를 지도해 주시던 스님께서 “몸 잘 건사해야 된다. 몸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스님이 중이 이런 몸에 집착을 하셔가지고 그러시나’ 했다. 요즘 생각하니, 몸뚱이가 무너지니까 참선도 못 하고 눈 나빠지면 경전도 못 본다.
지금 보니까 이게 아주 소중한 것이다.
전에는 시건방지게, 젊을 때 몸이 파닥파닥거릴 때는 ‘좀 아픈 것 가지고 엄살떠나’그러잖는가?
엄살떠는 것이 곧 보살의 무기다. 보살은 엄살로써 종지를 삼는다, 이제는 그런 말이 이해가 간다.
그래서 상불경보살이 보살은 남한테 몽둥이로 두드려 맞아서도 안 되고, 남이 돌팔매질를 하면 멀리 도망을 가야 된다고 했다. 왜 그런가? 맞아 죽으면 불법을 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지 가늘고 길게 전법도생해야 된다.
그 구절 있잖은가.
가사정대경진겁(假使頂戴經塵劫) 신위상좌변삼천(身爲床座遍三千) 부처님께 예경하고 부처님을 이고 다닌다. 경진겁이라 천년만년 부처님을 이고지고 하담여래하고 예경하고 모시고 다니고 신위상좌변삼천 이 몸뚱이로 부처님의 법상이 되어서 엎드려서 설법하는 온 데 설법을 다 듣고,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고 박사가 몇 개나 되더라도 약불전법도중생(若不轉法度衆生)이면 만약에 중생을 위해서 전법하지 않는다면 중생을 도탈시켜서 제도하지 않는다면 필경무능보은자(畢竟無能報恩者)라. 그 사람은 필경에 마침내 끝내는 무능하다. 불가능하다.
보은자 부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화엄경을 이렇게 하는 것은 어른스님께서 늘 강조하듯이 “돌아가서 꼭 각자대로 아는 만큼 강의하세요.” 하려는 것이다. 안그러면 필경무능보은자다.
그래서 스님께서 또 잘 쓰시는 말씀이 이렇다.
“자기 골목 한 귀퉁이라도 밝혀야 된다. 부처님 태양과 같이 만천하는 못 밝혀도 내 살아가는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한 귀퉁이라도 밝혀야 된다.”
경전을 밝히든, 경전하기 싫으면 떡을 주든지, 떡돼버리라고, 어쨌든지 전법해야 된다는 말이다.
저는 환희롭고 재미있다.
여러분들은 좀 괴로운 것이 제가 한이다.
설여실법(說如實法)이: 실다운 법을 말하는 것이 진실법을 설하는 것이
시보살기장(是菩薩器仗)이니: 보살의 무기다.
능파일체집착고(能破一切執着故)며: 일체의 집착을 깨뜨리는 연고다.
보살의 진짜 무기다운 무기를 우리가 지금 보고 있다.
남 찔러 죽이고 못되게 하고.
오늘 어른스님 말씀을 자주 드렸는데 스님께서는 가만 들으면 큰 법문이 많다.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비문제들, ‘우리가 이런 무기 만들었다. 나는 이런 무기 만들었다’ 서로 자랑하는 거 있잖은가.
그거 10분의 1이라도 무기 안 만들고 중생이 아픈 데에 힘을 쏟으면, 또 우주로 우주선 날려보내고 그런 연구는 좀 있다 하고 일단 눈앞에서 쓰러져 가는 같이 살아가는 중생들 있잖은가. 그 사람들을 위해서 허기지고 배고프고 병들어서 불치병 있는 사람들 그런 데에 온통 머리 좋은 사람들이 연구하도록 투자한다면, 사회복지와 인류 복지 자타일시성불도가 얼마나 많아지겠는가.
정신머리 없이 자기한테 노벨상 안 준다고 내 상 달라고 고함 지르는 사람이 없나, 그리고 더 웃기는 것은 노벨평화상 받은 사람, 마차도가 전화를 하니까 트럼프는 뭐라고 하기 미안하니까, 트럼프 동생이 슬럼프 아닌가.
“상을 수상한 분이 나한테 전화 왔는데 참 인격이 되는 사람이다. 나한테, 각하가 원한다면 그 상을 양보할 수도 있고 주고 싶다대. 그러니까 딱 보니까, 얘기 하다보니 너무 착한 분이라, 내가 상 달라고 하면 주겠던데?”
그 얘기 듣고 내가 신문을 보면서 빵 넘어갔다.
야, 대단하다 이래서 참 트럼프다. 아무나 미국대통령 하는 게 아니다.
우리 흔히 원효스님 기신론 제일 첫 대목 귀명(歸命)할 때 ‘최승업변지(最勝業徧知)시며 색무애자재(色無㝵自在)하신 구세대비자(救世大悲者)’ 그렇게 한다.
구세대비자 세상을 대자대비로 구제하시는 분, 부처님을 대자 대비 구세대비자라 하잖는가.
중생을 대비로 구제하시는 분.
귀명진시방(歸命盡十方) 온 시방 세계의 최승업변지, 그 지혜가 가장 수승한 업으로 최승업변지로 뛰어나시고 색무애자재 정신도 뛰어나고 육체도 뛰어나고 색이 무애자재하신 구세대비자, 정신과 육체가 완전히 여의주 같은 우리 부처님께서는, 하면서 원효스님은 대지도론의 해석을 빌린다.
‘어린아이는 우는 것으로 힘을 삼고 연약한 유약한 사람들은 질투로써 힘을 삼고, 수행자는 인욕으로 힘을 삼고, 아라한은 삼매로 힘을 삼으며 부처님은 대자대비로 힘을 삼는다’
그 앞에 한 구절이 있다.
‘왕은 아만으로써 힘을 삼는다’
야, 기신론이, 용수보살이 그 대지론에 해놓은 말이 어떻게 이렇게 기똥차게 딱 맞는가. ‘트럼프는 아만으로 힘을 삼는다’ 그러니까 트럼프는 아만을 부려야 맞는 것이다. 대지도론이 맞으려면 그렇다.
그걸 욕할 순 없다. ‘아, 소임을 다 하시는구나’
부처님은 어떻게 되는가? 대자대비로.
수행자는 부처님을 닮아가는 사람인데 자비롭지 못하다면 자비롭기 이전에 뭘 하는가? 인욕하라. 인욕하기 전에 뭘 하는가? 잘 지켜라. 지키기 전에 베풀어라.
베풀고 지키고 참고. 베풀고 지키고 참고를 계속 반복하면 정진바라밀이다.
기신론의 정진바라밀, 화엄경에서는 열 꼭지로 되어있는 것을 줄여서 기신론에서는 다섯 꼭지로 해 놓았잖은가.
화엄경은 보현행원 항순중생(恒順衆生) 보개회향(普皆廻向)까지 예경제불(禮敬諸佛) 칭찬여래(稱讚如來)부터 시작해서 쫙 넘어가는데 정진바라밀을 뭐라고 해놨는가?
예경하라. 아만스러운 사람,아집스러운 사람은 절대 공손하지 못하다. 예경하고 그다음에 참회하라.
참회하고 남 좋은 일이 있으면 수희공덕 기뻐하라. 그리고 좋은 법문이 있다면 찾아가서 권청하라. 너 혼자만 권청하고 소수들만 할 게 아니고 널리 방송으로 이렇게 회향하라.
방송 저 카메라 하나 찍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 않은가? 아니다.
우리끼리 공부하는 게 이 모습 자체가 여러분들도 회향하고 있고, 저도 회향하고 있고, 우리를 통해서 화엄경도 같이 회향되고 있다.
그 당시만 끝나는 게 아니고 유튜브에 올라서 세계로 회향되고 우리가 다 죽고 나더라도 미래에 회향이 된다.
미래에 회향하는 것을 우리가 복을 심는다 하잖는가.
식복(植福)
지금 현재 있는 복을 아껴서 쓰는 것을 석복(惜福)
그래서 어른스님은 짜투리 시간을 귀하게 여겨서 공부를 해야 된다고 강조하셨다. 티끌모아 태산이다. 석복(惜福) 복을 아껴라. 복을 아끼되 더 유능한 사람은 자기의 재능을 남하고 같이 나눠서쓰기 때문에 그것을 분복(分福) 작복이라고 한다.
복을 나눠야 된다. 콩 한 쪽도 나눈다.
재산이 있으면 재산이 있는 대로, 학문이 있으면 학문이 있는 대로, 능력 있는 사람들은 체력이 있으면 체력으로, 재력이면 재력으로, 자기의 법력이 있으면 법력을 나누어서 쓰라. 분복, 복을 나누어라.
제일 복이 많은 분은 누구인가?
부처님이다. 귀의불 양족존.
복은 자비라는 것이다. 자비와 지혜가 충분하게 원만구족하신 귀의불 양족존 그 이야기가 지금 쭉 연결되고 있다.
일체지(一切智)가: 일체지라고 하는 것은 너나 상관없이 능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 지혜다. 일심자리 그것을 일체지라고 한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자기의 수준에 따라서 몸무게나 지식의 정도가 다르듯이 거기서 나오는 솜씨를 일체종지라고 한다.
성향, 종류별로 색성향미촉법으로 갈라진 것은 일체종지라.
색성향미촉법에 관계되는 것 없이 안이비설신의에 관계되는 것 없이 무르녹아 있는 것이 일체지다.
일체지가 살바야가
시보살기장(是菩薩器仗)이니: 보살의 병장이니
불사보살행문고(不捨菩薩行門故)라:보살의 행문을 버리지 않는 연고이니라.
시위십(是爲十)이니:이것이 열 가지이니, 모든 것에 덕망을 성취하는 것이 무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열 가지이니 그러니까 하다 하다 안 되면 마지막 결론이 ‘일체지’ 이렇게 딱 묶어 버린다.
기장 얘기를 더 하자면 8만4천 가지가 있다. 그런데 줄여서 이만큼 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열 가지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일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능제멸일체중생(則能除滅一切衆生)의: 일체중생의
장야소집번뇌결사(長夜所集煩惱結使)니라 : 긴긴 밤에 모은 장야에 소집한 긴긴 밤 무명의 캄캄한 모지리 중생들 일체중생의 캄캄한 즉무소견 여인입암 즉무소견 그 섣달 그믐밤 같은 것, 제야의 밤, 그 캄캄한 밤에 모은 번뇌, 결사도 번뇌다. 맺을 결(結)자. 눈에 맺힌 것, 귀에 맺힌 것, 코에 맺힌 것, 혀에 맺힌 것, 몸에 맺힌 것, 생각에 맺힌 것, 육결이라 하지 않는가.
능엄경에서는 육결을 이렇게 해놨다.
‘매듭을 풀 때 한쪽에서만 당겨서는 매듭이 풀리지 않는다. 매듭을 풀 때 양쪽을 같이 당겨야 풀린다’
6결. 그러니까 여섯 매듭이 다 풀리고 나면 뭐가 남는가?
육해일망(六解一亡)이라고 능엄경에서 딱 그랬놨다.
여섯 매듭이 다 해탈돼 버리고 나면, 풀려지고 나면 무안이비설신의가 되고, 그러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육해일망(六解一亡) 육해일무(六解一無)라 그렇게 이야기한다.
번뇌의 결사를 없애나니라.
대승경전 중에 그 결(結)자가 대표적으로 완전히 꼭 나오는 경전이 능엄경이라고 볼 수 있다.
육해일망(六解一亡) 아주 유명한 구절이다.
육해일망 나오면서 그 뒤에 나오는 이근원통(耳根圓通) 들어갈 때 나오는 대목이 뭔가?
제가 이게 여러분들 눈치 보니까 그때 배울 때는 배우고 그 뒤에 수행지침서로 안 써서 다 잊어버린 것 같다.
입류망소(入流亡所)라고 나오잖는가.
유(流)가 육결이다.
유라고 하는 게 마나라(摩拏羅)존자의 게송에도 나온다.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나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라
수류인득성(水流認得性)하야, 수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유(流)를 따라서, 유(流)가 뭐냐? 폭류 욕류 욕심을 따라서 내 안이비설신의 의식을 따라가는 잡스러운 생각을 따라서 소발자국을 따라가서 끝내 소를 잡듯이 유(流)를 따라서, 내 눈을 따라서 소리를 따라서 내 공부를 따라서 쫙 가서 마침내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까지 간다.
산진수궁처(山盡水窮處)라. 산도 끝나고 물도 끝나고 길이 다 끝나 버리는 막다른 골목까지, 진퇴를 떠나서 생각이 앞으로도 뒤로도 진퇴양난 못 가도록 그 끝까지 잡념없는 쪽으로 나를 몰아붙이겠다.
입류망소라고 하는 게 그렇게 나오잖는가.
유(流)에 들어가되 망소(亡所) 무안이비설신의 그 처소가 소가 없어져 버렸잖은가.
경전은 우리가 수행할 때 굉장히 좋은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다 외워놔야 된다.
외운 것만 자다가도 자기를 공부시키고 세수하다가도 공부시키고 길걷다가도 공부를 시킨다.
안 외워놓고 ‘전에 봤는데?’ 그럼 책이 성불하고 노트가 성불한다.
어떤 분은 ‘스님은 강사니까’핑계 될 거 없어가지고 아이고. 자 여기까지 선혜지가 끝났다.
법운지는 상당히 1번부터 13번까지 내용이 상당히 많다. 그러면 법운지의 머리부터 나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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