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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3 봄날의 무소유길 기억여행을 더듬으며 9월을 맞이하다.
따스한 봄날 순천 송광사 무소유의 길 법정스님이 다니던 불일암길을 친구 정용회와 걸어보았다.
송광사 불일암은 법정스님(1932~2010)이 17년간 머무르셨던 작은 암자입니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실천한 스님으로 부를 쫓는 속세의 사람들과 대비되지요.
국립철도학교전수부 기관사과3기생 용회친구와 조동화는 속세의 세상에서 욕심을 억제하고 작은 베푸는 마음으로 송광사 절을 산책하고 주암땜를 구경했으며 옛날에 올라본 죽도봉에 올라 순천시가지를 구경하였다.
용회친구는 꼬박 하루일정을 조동화를 위하여 시간을 할애하고 운전하며 즐겁게 해 주어 잊지않을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사람은 임종전 인생을 아래와 같이 후회하는데,
“내 뜻대로 한 번 살아 볼 걸, 일 좀 덜할걸, 도전하며 살아 볼걸, 화 좀 덜 낼걸, 친구들 좀 챙기면서 살아 볼 걸.” 이 모두가 다 가슴에 와 닿는 말로 용회친구가 조동화를 챙겨 주어 고맙다오.
한치앞을 모르는 길이 인생길 아니던가?
9/2 어제는 국교동창생 한사람이 이세상을 떠나갔다.
구 경찰서 원광새마을금고 횡단보도를 오토바이로 건너게 되었는데 택시에 받혀 현장에서 즉사하여 오늘 원대병원장례식장에 문상을 다녀왔수다.
인명은 재천이라 하였으나 인생의 허무함이 이럴 수 가 있는가?
옛날 같으면 유가족이 슬퍼서 눈물바다가 되얐건만 장례식장이 조용하였다.
살아있을적에는 천년을 살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돈의 노예가 되어 살지만, 누구나 저승길에 갈때는 달랑 수의 한 벌 입고 떠나가는데 악착같이 살아간다.
그친구는 근검 절약하여 여가를 즐길만큼 노후의 준비를 해 놓았지만 국교동창회도 탈퇴하고 자기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나 할까.
법정스님은 떠나가고 없지만 귀감이 될만한 법정스님의 어록을 8가지를 요약해봅니다.
1.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2.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3.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4.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5.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6.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7.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8.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2024년 8월의 찜통더위도 끝이나고, 아침 저녁이면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이 오고야 말았다.
세월을 이길 장사없다고 석양의 시간에 천하보다 소중한 건강을 위해 몸을 귀찮게 움직여 운동으로 천연보약 많이 많이 먹어 즐거운 인생 항해해야 하제.
우주보다도 더 소중한 인간의 생과 사!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속담이 있다.
오래살고자 하는 욕망이 나타나 있지만 오직 하늘만이 죽음의 순서를 안다.
죽는데에는 순서가 없다.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애써 죽음을 외면하면서 살 뿐이다.
이놈의 세월은 왜 이렇게 빨라.
인생 60대는 해(年)마다 늙고,
인생 70대는 달(月)마다 늙고,
인생 80대는 날(日)마다 늙고,
세월을 꽁꽁 묶어놓고 싶어지는구나.
십수년전 방문했던 용회친구의 옛집을 별장으로 단장했다니 구경하고 싶구려.
송광사 천자암에는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800년된 향나무 두구루가 있다고 하는구먼.
황혼의 시간 건강관리 잘 하세.
감사하는 마음과 긍정적 생각으로 행복한 내일을 열어가보세.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
경남 양산 통도사 경남 합천 해인사 전남 순천 송광사
삼보사찰로 꼽히는 이 세 사찰은 가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산의 통도사는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보사찰이 되었고, 합천의 해인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경전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어 법보사찰이 되었습니다. 또 순천의 송광사는 고려 말 16명의 국사를 연이어 배출함으로써 승보사찰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조계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승보종찰 (僧寶宗刹)의 근본도량으로서, 한국불교와 역사를 함께해온 유서 깊은 고찰이다.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선사에 의해 창건되어 송광산 길상사라고 하였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9년 동안의 중창불사를 통해 절의 규모를 확장하고, 정혜결사를 통하여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한 근본도량으로 참선을 중요시하는 선종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이후 보조국사 지눌을 포함해 16분의 국사가 주석했던 선종사찰로, 오늘날까지도 승보종찰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 선종사찰로 여겨지고 있다. 그 동안 정유재란 및 임인년(현종 8년 : 1842년)의 대화재,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8차례의 대규모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송광사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불교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43호), 국사전(국보 56호), 금동요령(보물 179호), 하사당(보물 263호) 소조사천왕상(보물 1467호)등을 비롯해 총 8천여점의 불교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무소유의 삶 법정스님어록
법정(法頂, 본명 박재철, 1932년 10월 8일 ~ 2010년 3월 11일,
전남 해남 출생)은 대한민국의 불교 승려이자 수 필가이다.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많은 저서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널리 전파해왔다.
1954 년에 승려인 효봉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1970년대 후반에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佛日庵)을 지어 지냈다.
2010 년 3월 11일에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길상사에서 지병인 폐암으 로 인해 향년 78세(법랍 54세)로
입적(入籍)하였다.
1932년 10월 8일에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목포시에서 지냈다.
목포상업고등학교(현 전남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 상대에 진학했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에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때인 1954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3월에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년 4월에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대표 저서
* 《무소유》
* 《영혼의 모음》
* 《서 있는 사람들》
* 《말과 침묵》
* 《산방한담》
* 《텅 빈 충만》
* 《물 소리 바람 소리》
* 《버리고 떠나기》
* 《인도 기행》
*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
* 《산에는 꽃이 피네》
* 《오두막 편지》
*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스님 일대기
이 시대의 정신적 스승 법정 스님은 전라남도 해남에서 1932년 10월 9일 태어났다.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하다가 대학 재학 중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선다. 1954년 오대산의 절을 향해 떠났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로 올라와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 스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뒤 그 자리에서 삭발하고 출가했다. 다음 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했으며,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 탑전으로 가서 스승뭄래사시고 정진했다. 그 후 해인사 선원과 강원에서 수행자의 기초를 다지다가 28세 되던 해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는다. 서울 봉은사에서 운허 스님과 더불어 불교 경전 번역 일을 하던 중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1975년 본래의 수행승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제자들에게조차 거처를 알리지 않고 강원도 산골 오두막, 문명의 도구가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왔다. 그리고 2010년 3월 11일 세상을 떠나셨다. 대표 산문집 <무소유>는 그 단어가 단순히 국어사전에 있는 사전적 개념을 넘어 '무소유 정신'이라는 의미로 현대인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서 있는 사람들> <물소리 바람소리> <산방한담> <홀로 사는 즐거움> <아름다운 마무리> 등의 산문집과 명상집 <산에는 꽃이 피네>는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사람들의 영혼을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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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아름다움이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중에서-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산방한담 중에서-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생명의 신비인 사람도,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오두막 편지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산에는 꽃이피네 중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버리고 떠나기 중에서-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만남과 마주침의 차이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 법정의《오두막 편지》중에서 -
우리처럼 한평생 산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산은 곧 커다란 생명체요. 시들지 안는 영원한 품 속이다.
산에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일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사상이 있고, 종교가 있다..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나 종교가 벽돌과 시멘트로 된 교실에서가 아니라,
때묻지 않은 자연의 숲속에서 움텃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법정스님-
이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한때이다... 한생애를 통해서 어려움만 지속 된다면 누가 감내하겠는가? 다 도중에 하차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이 다 한때이다.. 좋은 일도 그렇다. 좋은 일도 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오만해진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덜 가지고도 더많이 존재 할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관심갖지 않던 인간관계도 더욱 살뜰히 챙겨야 한다.
더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써 기쁨을 느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어떤 어려운 시기를 당했을 때, 도대체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지위나 돈이나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써 우리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서 삶의 가치가 결정 된다..
-법정스님-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 무소유-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 -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삶으로 가르친 '무소유' ..."산은 구름을 탓하지 않는다"
-무소유의 삶과 침묵 중에서 ...법정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는 발걸음으로 걸어가라.
닥치는 모든 일에 대해 어느 것 하나라도 마다 하지 않고
긍정하는 대장부(大丈夫)가 되어라
... 무엇을 구(求)한다, 버린다 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는 인연 막지 않고 가는 인연 붙잡지 않는
대수용(大收容)의 대장부가 되어라
일체(一切)의 경계에 물들거나
집착(執着)하지 않는 대장부가 되어라
놓아 버린 자는 살고 붙든 자는 죽는다
놓으면 자유(自由)요, 집착함은 노예(奴隸)다
왜 노예로 살려는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있고
설상가상(雪上加霜)인 경우도 있다.
그런다고 흔들린다면 끝내는 자유인이 될 수 없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데 무엇에 집착할 것인가?
짐을 내려놓고 쉬어라
쉼이 곧 수행(修行)이요. 대장부다운 살림살이이다
짐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수고로움을 면할 수 없다.
먼 길을 가기도 어렵고 홀가분하게 나아가기도 어렵다.
자유를 맛 볼 수도 없다
쉼은 곧 삶의 활력소(活力素)이다.
쉼을 통해 우리는 삶의 에너지를 충전(充塡)한다
쉼이 없는 삶이란
불가능할 뿐더러 비정상적(非正常的)이다
비정상적인 것은 지속(持續)될 수 없다.
아무리 붙잡고 애를 써도
쉬지 않고서 등짐을 진채로는 살 수 없다
거문고 줄을 늘 팽팽한 상태로 조여 놓으면
마침내는 늘어져서 제 소리를 잃게 되듯이..
쉼을 거부한 삶도
마침내는 실패(失敗)로 끝나게 된다
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삶의 정지가 아니라 삶의 훌륭한 일부분이다
쉼이 없는 삶을 가정(假定)해 보라.
그것은 삶이 아니라 고역(苦役)일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선율(旋律)이라도
거기서 쉼표를 없애버린다면
그건 소음(騷音)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쉼은 그 자체가
멜로디의 한 부분이지 별개(別個)의 것이 아니다
저 그릇을 보라
그릇은 가운데 빈 공간(空間)이 있음으로써
그릇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단지 덩어리에 불과하다
우리가 지친 몸을 쉬는 방(房)도
빈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지 벽을 이용하는게 아니다
고로 텅 빈 것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유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삶의 빈 공간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쉼은 소중하다
붙잡고 있으면 짐 진 자요.
내려놓으면 해방된 사람이다
내려놓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유와 해방을 쫓아내는 사람이요.
스스로 노예(奴隸)이기를 원하는 사람이다.하필이면 노예로 살 건 뭔가?
"산은 날보고 산 같이 살라하고
물은 날보고 말없이 물처럼 살라하네."하는 말이 있다.
산은 거기 우뚝 서 있으면서도 쉰다
물은 부지런히 흐르고 있으면서도 쉰다.
뚜벅뚜벅 걸어가면서도 마음으로 놓고 가는 이는 쉬는 사람이다
그는 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살찌게 한다.
그는 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빛나게 한다.
풍요(豊饒)와 자유를 함께 누린다, 쉼이란 놓음이다.
마음이 대상(對象)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짓고 마음으로 되받는
관념(觀念)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몸이 벗어나는 게 아니고 몸이 쉬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지어 놓고 그 지어놓은 것에 얽매여 옴치고
뛰지 못하는 마음의 쇠고랑을 끊는 것,
마음으로 벗어나고 마음이 쉬는 것이다
고로 쉼에는 어떤 대상이 없다.
고정된 생각이 없고 고정된 모양이 없다
다만 흐름이 있을 뿐이다.
대상과 하나 되는 흐름,저 물 같은 흐름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쉼은 대긍정(大肯定)이다 오는 인연(因緣) 막지 않는 긍정이요
가는 인연 잡지 않는 긍정이다
산이 구름을 탓하지 않고
물이 굴곡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은 그것이 곧 긍정이다
시비(是非)가 끊어진 자리
마음으로 탓할 게 없고 마음으로 낯을 가릴 게 없는
그런 자리의 쉼이다.
자유(自由)와 해방(解放)
누구나 내 것이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 그 길은 쉼에 있다
물들지 않고 매달리지 않는 쉼에 있다.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 일도 어떤 즐거운 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한 때이다.
한 생애를 통해서 어려움만 지속된다면
누가 감내하겠는가.
다 도중에 하차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이 한때이다. 좋은 일도 그렇다.
좋은 일도 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오만해진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덜 가지고도 더 많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관심 갖지 않던 인간 관계도
더욱 살뜰히 챙겨야 한다.
더 검소하고 작은 것으로써 기쁨을 느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다.
-무소유의 삶과 침묵 중에서-
*** 행복의 비결... ***
세상과 타협하는 일보다 더
경계해야 할 일은
자기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다...
스스로 자신의 매서운
스승 노릇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일단 어딘가에 집착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안주하면
그 웅덩이에 갇히고 만다...
그러면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자기답게 거듭거듭 시작하며 사는 일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마음이 있는 한 나눌 것은 있다...
근원적인 마음을 나눌 때
물질적인 것은
자연히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자신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듯
행복을 찾아 오묘한 방법은 내 안에 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나마져도 잃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물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우주의 기운은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일단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온다고 한다...
그러나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우리의 삶을 밝게 비춘다.......
*** 법정스님의 "잠언집..." 中에서***
"중년의 삶 "
친구여!!
나이가 들면
설치지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 불평일랑 하지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고도 적당히 아는 척, 어수룩 하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친구여!!
상대방을 꼭 이기려고 하지 마소
적당히 져 주구려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하는 것
그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친구여!!
돈,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 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친구여!!
그렇지만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은 놓지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 하오
옛 친구 만나거든 술 한잔 사주고
불쌍한 사람 보면 베풀어 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푼 줄 돈 있어야
늙으막에 내 몸 돌봐주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오.
우리끼리 말이지만 이것은 사실이라오
옛날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
잘난체 자랑일랑 하지를 마오
우리들 시대는 다 지나가고 있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봐도
가는 세월은 잡을 수가 없으니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마음씨 좋은 이로 살으시구려
멍청하면 안되오.
아프면 안되오.
그러면 괄시를 한다오
아무쪼록 오래오래 살으시구려
===법정스님====
모두들 잘 지내지
가슴에 와닫는 글귀여서
적었어
우리네 인생사가 이런거 아니것어
건강들 챙기시게나...
.......................................................
법정 스님 유언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 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 올런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런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걸음 한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결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 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서는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 같은걸 남길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흔히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하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혼자서 왔고 갈 때도 나 혼자서 갈수밖에 없다. 그것은 보랏빛 노을 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 이것 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된 이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른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할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저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해서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는 것이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괴의 눈이 멀고 작을 때에만 기억이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그 한 가지일로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문덕 문덕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가 없고 말을 더듬는 불구자였다.
대여섯 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 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밖에 내지 않았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가 만약 넉살좋고 건장한 엿장수 이었더라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자라는 점에서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 인지 그때 저지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쫓고 있다.
이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때 한 인간의 순박한 신의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 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 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샤드)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는 가진 것이 없으므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무일물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 관념이다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 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게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나는 간단 명료한 것을 따르고자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대신
어느 여름날 좋아 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 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을 곳이라면 아무데서나 다비(화장)해도 무방하다.
사리 같은걸 남겨 이웃을 구하는 일을 나는 절대로 하고싶지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 나라 같은 곳이다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런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런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 없을 것이므로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수행자 가되어 금생에 못 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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