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버스를 탔다. 나를 배웅 하느라 동생들도 새벽에 일어나고 아버지는 버스 정류장까지 짐을 실어주셨다. 괜히 돈들이고 왜 사서 고생이냐시던 아버지는 어제 짐 꾸리는 것을 도와주시고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셔서 딸을 배웅 하셨다.
평상시 나를 잘 갈구던 사촌동생은 쿠키를 구워주며 잘 갔다오라고 해서 감동을 주었고
그는 전날 내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여행 잘 다녀오라고 했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내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 설레임도 주지만 이제부터는 철저히 나 혼자라는 두려움도 준다. 혼자 공항에 제시간에 도착하고 수하물을 부치고 환전을 하고 또 혼자 밥을 먹는다. 그러다 늦지 않게 제 장소로 와서 비행기에 탑승해야 한다. 평소 덜렁거리고 실수가 많은 나이기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 모든 일이 해나가야 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또 혼자 하기에 독립된 인간이 가지는 뿌듯함도 느낀다. 그래 나는 혼자다.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더 자유를 느낀다. 그를 두고 그를 당분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여행에 대한 그 동안의 기대와 흥분을 상쇄시켰지만 또 막상 떠나니 새로운 세상과 내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에 대한 설레임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도 여기 내 옆에 있다면…. 하지만 나 혼자만의 자유 여행은 그것 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여행에서 새로운 나를 찾고 싶다. 여행이 주는 자유를 느끼고 싶다. 나는 언제나 떠나고 싶어했으니까.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는 10시 30분에 출발 예정이었으나 날씨탓인지 한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홍콩에 당연히 1시간 늦게 도착했고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시간이 1시간 반이었던 나는 뛰면서 비행기 승강구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비행기를 잘 갈아탔다.
런던 까지는 18시간 나는 내 옆 좌석에 누가 앉을지 궁금했다. 11년전에 캐나다 갔을 때는 예쁘고 영어 잘하는 일본 여자애가 타서 그 애와 많이 이야기 하며 즐겁게 가서 이번에도 이야기 상대하기 좋은 사람이 옆에 앉기를 기원했는데 중년의 마치 인디언 처럼 생긴 아저씨가 내 옆에 앉았다. 에효~ 한숨이 나왔지만 실망의 기색을 감췄다. 그 아저씨는 나를 보고 Hello! 라고 인사를 하고 예의 바르게 앉았다. 보니 옆의 사람과 일본어로 떠들고 있었다. 혹시나 영어를 잘 하는지 몇가지 물어봤지만 쉬운 질문은 대강 알아듣고 짧게 대답할 줄 알았지만 계속 대화를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티비 작동을 못하자 도와주고 내 짐도 올려주는 등 배려를 잘 해 주었다.
나는 가는 내내 가이드북 읽다가 일기 쓰다 티비로 영화를 보다 그러다 지쳐 잠들다가 몸이 괴로워 일어나면 다시 앞에 하던 일을 반복했다. 좁은 공간에서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18시간을 있는 것은 거의 고문이었다. 캐나다 갔을 때는 이렇게 까지 힘들지 않았는데 역시 나이가 들어서 인가?
나는 싸고 또 홍콩에 경유할 수 있어 처음 케세이 퍼시픽을 이용했는데 좌석이 좁고 불편하고 기내식이 느끼했다. 그 기내식도 가는동안 2번 주는데 한번 먹고 7시간을 기다렸다가 주어서 도중에 배가 고팠다. 승무원을 불러 배가 고프다고 언제 저녁을 주냐고 하니 햄과 치즈가 들어있는 조금은 짜고 역시 느끼한 샌드위치를 주어 그걸로 허기를 채웠다.
그러나 시간은 가게 마련이고 괴로웠던 비행을 마치고 나는 드디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수화물을 잘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내 수화물은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수화물을 찾고 여권 심사하는 곳을 갔다. 기다리면서 나는 왜 왔냐? 얼마나 머무냐? 어디에 있을 거냐? 자세히 물을까 하여 언니 주소가 적인 카드를 잡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Holliday?”
“Yes”
“How long will you stay? “
“ I will stay here for 6days”
딱 두 질문하더니 도장을 쉽게 찍어주었다.
나는 이렇게 아무 탈 없이 런던에 무사히 온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출구를 찾아 나갔는 데 기사를 모시고 픽업을 온다던 선주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나가자 마자 “수연아~” 하며 언니가 날 반겨 줄줄 알았는데 한 20분을 기다려도 언니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당황해 하지 않고 나는 한국에서 산 전화카드를 들고 언니가 준 명함을 쥐고 낯선 공중 전화기에 가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드번호를 누르고 거기서 하라는 대로 다 하고 명함에 적힌 언니 핸드폰 번호를 눌렀지만 되지 않았다. 언니의 집전화를 눌렀는데도 역시 되지 않았다. 혹시 이 전화기가 고장인가 하여 다른 전화기에 가서 사용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카드를 이용을 못하는 건지 전화가 안 되는 건지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몇 번을 해보아도 역시나 되지 않았다. 이쯤 되니 나도 슬슬 불안해 졌다.
언니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픽업하는 장소에 많은 의자들이 있고 그 앞에 컴퓨터들이 3대가 둥그렇게 놓여져 있었다. 보니 인터넷을 이용하는데 5분에 1파운드였다. 1파운드면 2000원 허걱.. 하지만 다른 방법도 없고 해서 이거나 해야겠다 했는데 동전을 넣어야 하는 것이다. 공항에 잡지랑 과자 파는 가게에 들어가서 잔돈 좀 바꿔 달라고 했더니 옆으로 가란다. 알고 봤더니 옆이 바로 돈을 바꿔주는 곳이었다. 거기서 돈을 바꾸고 동전을 넣어 인터넷으로 내 메일로 들어갔다. 당근 한글 버전이 없었다. 영어로 언니에게 내가 왔다고 지금 공항이라고 혹시라도 보게 되면 빨리 와 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내고 나니 5분이 다 되었다.
한 시간이 넘었는데도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만약 다른 숙소라도 알아 놨으면 거기라도 갈 수 있을텐데 언니만 믿고 왔는데 언니가 보이지 않으니 정말 불안해지고 난감했다. 그러다 pick up 하는 곳에 한국 사람인 것 같은 남자가 있길래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혹시 전화카드 어떻게 쓰는 줄 아냐고 물었더니 자기 전화를 쓰라면서 선뜻 그의 전화기를 빌려 주었다. 내가 버벅거리자 자신이 직접 카드에 있는 언니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신호에는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 이번에는 집전화로 했는데 일본어로 메모 남기라는 말만 나오고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분은 “ 안되네요 다시 한번 해볼게요” 하고 몇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거기 주소가 어떻게 되요? 하면서 밑에 주소를 보는데 “ 아 여기는 잘 모르는데” 하더니 옆에 영국 사람에게 여기가 어딘지 물었으나 그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다 그가 픽업하려던 사람이 나오고 그도 가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고 그는 끝까지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표정으로 여기서 잘 기다려 보라고 말하고 떠났다.
도와주던 한국 사람마저 떠나고 나는 더욱 막막해졌다. 언니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분명 8시 반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9시 반이 훨씬 넘었는데 혹시 다른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여기에 있기 보다는 언니 집으로 찾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여 사람들에게 물으러 가는 도중 아까 내 옆자리에 앉았던 일본 사람을 보았다. 그는 기내에서는 내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더니 여기서 대뜸 나보고 학생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누가 픽업 하냐고 해서 아는 언닌데 아직 픽업 나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조금 안된 눈으로 쳐다 보더니 여행 잘하라고 인사를 했다.
그와 헤어지고 나는 의자에 앉아있는 영국 사람에게 가서 주소를 보여주며 아냐고 하자 그는 여기서 멀진 않은데 버스를 많이 갈아타야 하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택시 타는 곳을 알려주었다. 나는 택시요금이 비싸지 않냐고 했더니 30파운드 정도 될거라 했다.
30파운드면 6만원? 허걱…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며 터벅 터벅 걷고 있는데 멀리서 익숙한 단발머리의 치마를 입은 여자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선주언니 라고 불렀는데 그 사람은 내 소리를 못들은 건지 아니면 선주언니가 아닌 건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공항 수레를 빨리 밀며 언니로 보이는 여자에게 달려갔다. “언니 선주언니” 다행히 언니였다. 언니가 얼마나 반갑고 또 늦게 와 원망스럽던지…
“언니 어떻게 된거야? 왜 이렇게 늦었어?”
“오다가 사고가 좀 있었어. 너 몇 시에 나왔어?”
“ 8시 30분에”
“그래? 8시 30분에 도착한다고 해서 수화물 찾고 여권심사하면 한시간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비행기가 빨리 도착했나 보네 그리고 네가 정확한 비행기 편을 이야기 안해서 언니가 그거 찾아 오느라 더 늦었다. 피곤하지 어서 가자 다케시 상이 차 대기 하고 기다리고 있어.”
언니의 남편은 일본 사람이었다. 캐나다에 있을 때 잠깐 봤다.
다케시 상과 짧게 인사를 하고 짐을 트렁크에 싣고서 나는 차 안에서 편안해진 마음으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언니네 집을 향해 갔다. 이렇게 나는 첫 여행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출처 : ★ No.1 유럽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