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물야 옥돌봉
세벾공기를 가르며 오전 약수터를 지나
굽이굽이 차를몰고 높은제에 도달하니
이름하여 박달령제
차를 길옆에 세우고 옛부터 세워져 있었는진
모르지만유명한 산신각에
두손모아 합장하고 오늘산행 무사하게
마칠수 있도록 간절히 빌었다.
늦은봄 휘귀한 약초를 찻아서
두사람 산을 오른다.
산으로 올라서자 양옆으로 수백년된 노송이
끝없이 이어저 역시 백두대간 코스답게 웅장하다.
대간산행은 힘들어서인지
등산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우거진 숲속에 산 목련이 하얗게
꽃을피어 코끝에 향기 그윽하다.
철따라 피고지는 꽃속에 엄청난 군락을 이루고
며느리 밥풀꽃이 정말 많이도 피어있다..
오 !! 이렇게 많을수가 빨간 하트 모양에
하얀밥풀 같은 꽃잎을 주렁주렁 달고서
옆에 함께 산행 하시는 지인께서 예기를 꺼내셨다.
*제가 이꽃의 전설을 알고 있지요. *
* 올라 가기도 힘든데 지겹지 않게
옛날예기를 하나 해드리지요 들어 보세요 *
그날 난 구수한 예기 덕분에 힘들지 않게
정상에 도달 할수있었다.
옛날 어느산골에 아주작은 오두막 집에
세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었지요.
홀 시어머님과 아들내외 아들은 결혼한지
얼마 안된 신혼부부 였지요.
옛날엔 자식을 낙태도 못 시키고 피임도
못하였으니 생기는 데로 낳았으니
양식은 귀한데 자식을 열명이상 낳아 키웠지요.
그러자니 소위 말하는 보릿고개 인 봄철에
식량이 바닥나면 딸들을 한입을 덜기위해
무조건 곰보든 쩨보든 밥만 먹으면 시집 보냅니다.
좋튼싫튼 딸들은 시집을 가야하고 양식 귀할때
들어온 며느리를 시어머님 들은 모두 미워 했습니다.
그래서 옛날 시집살이 고추보다
맵다 라는 말이 생기기도 .
더군다나 홀 시어머님은 오죽 했겠 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외동아들
지아비 먼저 하늘나라로 가시고 금이야
옥이야 키워논 자식이 장가를 가더니
정다운 눈빛모두 며느리에게
뻿기니 더욱더 외로워 지는지라.
질투는 노여움으로 더군다나
신혼부부 깨가 서말 쏱아지니
엄마는 본체도 않고 온통 마누라한테 신경이
다가 있는 아들이 못마땅 했을 겁니다.
그런데 미운 며느리 혼구멍을 내고 싶어도
책 잡을게 없는지라 너무 잘하는 겁니다.
반찬잘해 시 어머님 깍듯이 공경 잘해
뭐하나 나무랄 때가 있어 야지요.
어느날 아침 열여덝난 며느님이
정지칸에서 아침밥을 짓고 있었지요.
옛날엔 어르신만 쌀을 약간 섞어 드리고
다른식구들은 보리밥이나 조밥만 먹었지요.
그날도 예외없이 밥상을 다 차려놓고
세 그릇의 밥을 풀일만 남았지요.
무쇠솦 뚜껑을 여는 순간 구수한 밥내음이
그것도 십팔세 까지 한번도 먹어본적 없는 쌀밥 내음
물론 시어머님 밥그릇에 몽땅 퍼올려야 하지요.
임신 3주인 나이어린 신부는 자기도 모르게
주걱으로 쌀있는 쪽으로 조금퍼서 먹어 봅니다.
밥이 설었나 뜸이 잘들었나 확인하기위해
그런데 운이 없게도 쌀알하나가
입가에 붙어 버렸 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며느리는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 갑니다 .
* 어머님 진지 드셔요. *
시 어머니 며느리의 얼굴을 본순간
얼굴이 노래 집니다.
아니 !! 이 X 이 그동안 수지밥을 X 먹어어서
살이 피둥피둥 졌구나 !!
에라이 베라먹을 X 노발대발 밥상이 마당으로
날라가고 그날부터 어린신부는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 습니다.
그리고 신랑은 약간 나사가 빠진듯한
남자라 엄마가 시키는 데로만 하니
신부는 완전 외톨이로 시집 살이를 하니
더욱 고단 하였지요.
홀 시어머님의 심술은 대단 했습니다.
매일 정지칸에 들어와서
부지깽이로 며느리를 쥐잡듯 했습니다.
이 X 수지밥을 먹으니 맛있더냐 !!
하면서 매일 두둘겨 팼습니다.
너무맞아 아기도 유산하고 나이어린 신부는
시들시들 꽃이 시들듯 죽어 갔습니다.
어느날 기여코 며느리는 한많은 인생
버리고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너무너무 한이 맺혀 하늘나라로 가있으니
그것도 신랑 이라고 보고 싶어서
꽃으로 다시 태어나 싸립문옆에
신랑한번 더 볼려고빨간 입술에
하얀밥풀을 주렁주렁 달고서
고개 숙이고 활짝 피어 납니다.
정말 슬픈예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그꽃을 다시한번 자세히 보게 되었 습니다.
그날 뜻하는바 약초는 보이지 않아
옥돌봉 정상에서 겹겹히 보이는 산들이
아마 선달산, 국망봉, 비로봉, 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등산객 세명이 지나 가더군요.
어디로 가시 나이까? 물으니
형제봉을 간다네요 . 아니 형제봉도 있었나?
지인께 물으니 형제봉 저기 있네요 .
어디 어디 과연 봉우리 두개가 나란히
정답게 붙어있는 산이 있더군요.
내려 오다가 오전 약수탕에 들려 목을 축이고
며느리 밥풀꽃 ( 금낭화 ) 예기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다음산행을 기대 하면서....
이옥례.
첫댓글 어우 .......넘 슬퍼서 훌쩍훌쩍 그시어머니 며느리 앞세우고 과연 행복 했을까요 쌀밥 많이 많이 드시고 얼마나 오래 사셨을까 참 궁금합니다...우리 선배님께선 좋은 산구경 하시고 예기 옮기시는 글제주도 대단하십니다
고마워요 ..답글을 주셔서 옛날 산행때 들은예기를 옮겨봤는데 뜻데로 써지지 않네요...
옛날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관계는 같은 여자들인데 왜 그렇게 못살게 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정도로 좋지 않았으니 그런 전설이 탄생 했다고 생각하며 지금은 예전의 종속 관계에서 각각 독립된 인격체로서 변했읍니다. 가정이 화목 할려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 존중해 주고 아껴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인격을 무시하는 언행은 삼가해야 하겠지요. 옥례 선배님이 좋은 교훈을 암시하는 작품을 게재해 주어서 잘감상했읍니다.
심심해서 되지도 않은글을 .. 그래도 옛날예기 듣는다 생각 하시고 보셨으면 좋겠 습니다. 제미있었다 하니 고마워요...
옥례야, 이제야 시간이 나서 이 글을 읽었어. 금낭화가 며느리 밥풀꽃이었구나. 난 오히려 이팝꽃이 며느리밥풀꽃과 이미지가 닮았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제 보니 정말 바알간 입술에 밥풀 하나 달고 있는 것처럼 예쁘기 보다는 왠지 서글퍼 보이는 금낭화가 우리들의 엄마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자식들 먹이느라 허기진 치맛고리를 옭아맸어야 했을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도 저 글에 넣었다면 더 생생하고 마음 찡한 글이 되었을 거야. 옥례야, 황산사 이야기나, 우리 멱감던 이야기, 집 뒤 둑방에서 키우는 것들의 쏠쏠한 재미 등 다음 작품도 기대할게.
옥희야 생각나니? 우리세들살때 막딱쏘 멲감으로 갈때 우리집뒤 개구멍으로 담배창고 지나서 갈때 우리모두 옷을 하나도 안입고 걸어갔던일이 막딱쏘 밑에는 남자애들이 멲감고 위에는 여자애들이 놀았지 물위에 바위 위에서 몸에 물도 안바르고 그냥 뛰어 내렸지 .그때말로 펑 뛴다 그러면서 뛰어 내리면 엉덩이가 쪼개 지는것 같았어.ㅎㅎㅎㅎㅎ
나도 뛰어내리다 엉덩이를 물속 바위에 박아서 어기적거린 기억이난다그야말로 말딱쏘나 위에 송탁공장, 그리고 창고는 우리들 놀이터였였지말뚝소 천방뚝의 추억은 영원히 우리 소꼽친구들 기억속에 아름다운 유년의 추억으로 영원히 남아있을거야
은희야 담배창고에는 찔레가 억수로 많았어 무지꺽어먹었던 기억이난다..토끼풀도 무진장 많았고 우리앞집에 상뭐라드라 그집에 큰살구나무에 살구는 왜그리 많이 달리는지 세벾3시에 일어나서 살구주우러 가던 기억이 나는구나..ㅎㅎㅎ
상국이(45회)상대오빠,한해후배 창영이 그집은 서씨로 우챗걸살다 이사온집이고 마당에 벌통두고 벌을 키웠기에 어린우리는 무서워서 그집엔 얼씬도 못했지 아마 그리고 앞 텃밭엔 언제나 토마토냄새가 진동을했고 그집하면 벌하고 토마토만 생각나그리고 그집 형제들이 약간 바지랬던기억도.....밤에는 풀무간이있던 그곳이 무덤도 있었고 살구나무아래가 무서워서 지나가기도 으쓱했고 머리가 쭈삣거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