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보네 에세이 49
달빛을 품고 곰을 다스린
삼가리의 지혜
달로 배를 채울 수 있는가.
어리석은 질문이 아닙니다.
소백산 자락에 살았던 우리 선대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해보다 달이 더 오래 머무는 곳
소백산 비로봉을 중심으로
세 갈래의 골짜기가 뻗어 있다.
그 골짜기마다 마을이 산재해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삼가리(三街里).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달밭골이 있다.
해발 750m. 비로봉으로 향하는 길목,
구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이 워낙 높고 깊어
해는 일찍 저물었다.
오후 네 시만 되어도
산그늘이 마을을 뒤덮었다.
어떤 이는 이 험한 산골에
왜 사람이 사느냐고 했다.
차라리 평지로 내려가 살면 어떠냐고.
하지만 달밭골 사람들에게는
달이 있었다.
밤이 되면 온 골짜기가
하얀 달빛으로 가득 찼다.
높은 산이 바람을 막아주니
달빛은 더 깊이, 더 오래 머물렀다.
산 아래 마을에서는 구름에 가려
달을 볼 수 없는 날에도, 달
밭골에서는 달이 홀로 떠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곳을
옥토끼망월형(玉兎望月形)이라 불렀다.
옥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형상의
명당이라는 뜻이었다.
명당이라 해도 삶은 녹록지 않았다.
봄에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고,
겨울에는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
척박한 산골이었다.
어느 밤, 배고파 우는 아이를
어머니가 안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크게 걸려 있었다.
은빛 달빛이 지붕 위로, 마당 위로
소리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달을 가리켰다.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곰수골의 공포
달밭골에서 조금 내려가면
서쪽 계곡에 성황당이 있다.
입구에는 수령 500년을 헤아리는
방등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곰수골,
혹은 곰실이라 불렀다. 이름이 말해주듯,
이 깊은 숲속에는 곰이 살았다.
달밭골 사람들에게
가난은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곰수골 사람들에게는
가난보다 더 무거운 것이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가을이 되면 겨울잠을 앞둔 곰들이
배를 채우러 내려왔다.
그들이 먼저 노린 것은 가축이었다.
어느 가을밤이었다.
한 농부가 외양간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소가 울부짖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
그는 등불을 들고 나갔다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집채만 한 곰이
외양간 문을 부수고 서 있었다.
곰은 농부를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눈빛은 고요하고 단호했다.
농부는 떨리는 다리를 끌고
집 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소는 포기하자."
그날 밤 이후, 해가 지면
마을 사람 모두가 문을 걸어 잠갔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도 나가지 못했다.
아이들은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하면 저절로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의논했다.
창과 활로 잡자는 말도 나왔고,
덫을 놓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곰은 너무 세고, 너무 영리했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절망했다.
붓 한 자루의 기적
그때 비로사에서
스님 한 분이 내려왔다.
곰수골 소식을 들은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하소연을 늘어놓자
스님은 허허 웃었다. 사람들은 의아했다.
이 심각한 상황에 왜 웃는가.
스님은
품에서 종이 한 장과 붓을 꺼냈다.
사람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창도 아니고 칼도 아니고, 붓이라니.
스님은 먹을 갈았다.
그리고 천천히, 정성스럽게
세 글자를 썼다.
獅 子 項
사자목(獅子項). 사자의 목.
"이것을 곰이 지나다니는
길목 나무에 붙이시오."
스님은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날 저녁,
그들은 곰이 자주 나타나던
큰 나무에 종이를 붙였다.
그날 밤이었다.
여느 때처럼 마을로 내려오던 곰이
그 나무 앞에서 멈췄다.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세 글자.
곰은 코를 벌름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더니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종이 앞에서
멈춘 곰의 발자국을 보았다.
발자국은 산 쪽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 침묵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훗날 사람들이
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어찌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스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사자는 어디서든 사자라오."
달빛과 지혜가 흐르는 마을
그 후 곰수골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들이 저녁 무렵까지
마당에서 뛰어놀았고, 가축들은
편안히 외양간에서 잠들었다.
달밭골과 곰수골 사람들은
이따금 함께 모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두 마을은 하나의 골짜기 안에 있었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그 달빛이 두 마을을 고루 비추었다.
한 어르신이 말했다.
"우리 삼가리는 복 받은 땅이오.
달밭골에는 달이 있고,
곰수골에는 지혜가 있지 않소."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빛나는 달빛
세월이 흘렀다.
어느 가을밤,
한 사내가 비로사로 가는 길에
달밭골을 지나게 되었다.
직장을 잃고 사업에 실패한
서른 남짓의 사내였다.
그는 길가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달이 보였다.
이상했다. 분명 어디서나 보는 달인데,
이 골짜기에서 보는 달은 달랐다.
더 크지도, 더 밝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다른 달이었다.
마치 오래 기다린 것처럼,
그 자리에 조용히 있었다.
옆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왔다.
"젊은이, 추운데
거기 앉아 있으면 어떡하나."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한동안
달을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우리 선조들은
밥이 없을 때도 저 달을 보았단다.
그리고 이튿날 다시 일어났지."
그뿐이었다.
할머니는 안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한동안 달을 바라보았다.
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빛나고 있었다.
수백 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삼가리의 달은
오늘도 그 자리에 있다.
달밭골의 달빛과 곰수골의 사자목.
가난한 산골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것 대신 쌓아둔
두 가지 재산이다. 한쪽은 희망이고,
한쪽은 지혜였다.
그것으로 그들은 살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여기 있다.
2026.4.19
시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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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네 에세이 49 / 달빛을 품고 곰을 다스린 삼가리의 지혜
신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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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4.20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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