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미노 나눔 (나는산티아고신부다.인영균끌레멘스 p132-135)
카미노 나눔은 내가 순례자들과 라바날델카미노까지 오면서 한 체험을 서로 나누고, 축복하는 시간이다. 산티아고 사도와 만남의 시간이기도 하다. 사도의 삶과 카미노의 역사와 영성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려고 노력한다. 우리 수도원에 묵는 순례자뿐 아니라 라바날 마을에 체류하는 순례자들도 초대한다.
라바날에 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나는 순례자들에게서 카미노의 경험담을 들으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로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카미노를 직접 체험하기 전이어서, 나의 한계를 분명히 느꼈다. 어디까지나 ‘너의 카미노’였다. 2016년 10월 20일부터 40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를 떠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첫 번째 순례를 통해 ‘너의 카미노’에서 ‘나의 카미노’가 되었을 때, 비로소 카미노 나눔에서 순례자들을 내 몸처럼 만날 수 있었다. 나눔을 거듭할수록 카미노에 대한 강한 ‘확신’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카미노가 단순히 여행이나 걷기가 아니라 진정한 순례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육체적이고 외적인 차원에서 시작해서 영적이고 내적인 차원을 보게 되었다. 이 확신에서 나를 만나러 수도원으로 온 순례자들이나 우연히 만나게 되는 순례자들에게 대뜸 “가던 길을 멈추세요. 여기서 쉬었다 가세요”라고 초대하게 되었다. 변화한 내 모습에 나도 놀란다. 어디에 홀린 사람처럼 자신 있게 사람들을 ‘멈춤의 신비’에 초대한다.
갑작스러운 초대를 받아들인 부부 순례자가 있었다. 수도원에 한국에서 온 베네딕도회 신부가 있다고 해서 인사하려 잠시 들렀는데, 길을 멈추라는 말에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계속 앞만 보고 바삐 걷느라 힘든 것도 피곤한 줄도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에게 잠시 휴식의 시간이 필요함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가 이길을 가고 있는지, 또 무엇 때문에 걷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2019년 봄 라바날 수도원에 며칠 묵고 떠난 헬레나 자매는 라바날에서 멈춤과 카미노 나눔을 새로운 빛에 비유했다. “여기 라바날까지 카미노는요, 비유하자면 퍼즐 전체 그림을 몰라서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이리저리 군데군데 맞춰 놓는 일이었어요. 여기 머물면서 퍼즐의 전체 틀을 깨닫고 나니, 이제는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제자리를 쉽게 찾아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해 여름 카미노 나눔을 하고 떠난 모녀 순례자는 며칠 뒤 멈추고 머물게 해준 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왔다. “그동안 왔던 길과 오늘의 순례길은 아주 달랐습니다. 날개를 달았는지 아니면 천사가 ‘배낭을 들고 따라왔는지’ 배낭도 가볍고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그동안 관광 같아 답답했습니다만, 오늘은 진정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에 내내 좋았습니다.”
사실, 그 앞의 카미노나 영혼의 카미노에서 몸이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오르막 내리막길에 다리가 아픈 것도, 배낭이 무거운 것도, 갈 길이 먼 것도 똑같다. 그러나 마음이 달라졌고 정화되었다. 그래서 발걸음은 새털처럼 가볍다. 그들은 멈춤의 신비로 생명의 호수에서 생명수를 마셨기 때문이다. 멈췄기에 가능하다.
* 동아일보|오피니언 입력 2021-08-13 03:00
한국문화와 기모노가 만났을 때[이즈미의 한국 블로그]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도쿄 올림픽은 8일 막을 내렸고 24일 패럴림픽이 시작된다. 이번 도쿄 올림픽은 코로나19로 1년 연기됐고, 개최 반대 여론 속에 철저한 방역을 내걸었다. 경기는 무관중으로, 개·폐막식도 소박하게 열렸다. 개·폐막식과 여러 시상식을 보며 행사 진행요원들이 참가국 피켓을 들 때나 시상식에서 메달이나 꽃을 전할 때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를 입었더라면 더 품격이 높고 화려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나는 세 살이었다. 내 어머니에 따르면 당시 나는 작은 흑백TV 앞에 단정히 앉아 구경했다고 한다. 어렸지만 기모노를 입은 진행요원들의 모습이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은 서울의 집에서 TV로 봤다. 발전해 나가는 한국의 모습이 화려하고 우아한 한복과 하나가 돼 멋지게 보였다. 이처럼 거대한 이벤트에선 전통의상이 더 특별하게 큰 힘을 발휘한다. 전통의상은 손님을 대접할 때 예의를 갖추는 옷이자, 외국인에게는 개최국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시각으로 전달하는 지름길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기모노와 인연이 깊다. 기모노 전문가를 꿈꾸며 고교를 졸업한 후 3년간 기모노 디자인에 입문해 염색과 무늬 그리는 일을 했다. 하지만 내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다시 대학으로 진학했다. 전문가가 되진 못했지만 기모노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이런 이유로 올림픽에 기모노 등장이 적은 게 아쉬워 자료를 찾다가 특이한 기모노들을 발견했다. 형태는 기모노가 틀림없는데 색채나 그려진 소재가 이색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알고 보니 도쿄 올림픽에 맞춰 준비했다가 채택이 안 된 ‘기모노 프로젝트’였다. 후쿠오카현의 오래된 기모노 전문점 대표 다카쿠라 요시마사씨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각 국가와 지역 이미지로 기모노를 만들어 ‘국가적 대립이나 분단을 넘어서 국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모노를 통해 하나가 되자’라는 의미로 2014년에 시작됐다. 2020년 6월까지 213개국의 후리소데(振袖)라는 기모노와 오비(帶)를 완성했다. 후리소데는 기모노 중 미혼여성들이 입는 정장으로 소매 폭이 넓고 길어 화려한 의상이다. 제작비는 나라마다 200만 엔(약 2000만 원)으로 정하고 자금은 클라우드펀딩에 기부로 모았다. 다카쿠라 씨에 따르면 수많은 단체와 개인이 뜻을 모았고, 20대에서 70대의 노장까지 일본의 일류 작가 수천 명이 제작에 참여했다. 모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중 한국 이미지의 후리소데는 교토의 작가 오카다 히데키씨가, 오비는 핫토리 오리모노회사가 제작했다. 스폰서는 도야마(富山)현 다카오카(高岡)청년회의소다. 다카오카청년회의소는 대구수성청년회의소와 1991년 우호교류를 맺은 인연으로 나섰다고 한다.
오비는 고려청자를 연상케 하는 고운 색조에 당초문을 금박 등으로 넣어 손으로 짠 것으로, 후리소네는 한복 이미지를 살리면서 전통적이고 모던하게 디자인했다. 동정과 옷자락은 전통 한복에서 가져왔고, 왼편 가슴과 오른편 소매 뒷부분에는 길조인 까치, 그리고 국화인 무궁화를 배치했다. 또 흰 바탕에 세계문화유산인 창덕궁과 수원화성을 그렸다. 착용하고 위에서 보면 어깨 부분에 태극무늬가 보이는데, 디자인과 모티브는 주일 한국대사관 문화원 감수를 받으며 진행했다. 이들은 백두산 이미지를 담은 북한의 기모노도 만들었다. 요즘엔 기모노보다 한복을 입을 일이 많다. 시댁에서 명절이면 늘 한복을 입는다. 그리고 매년 진행되는 한일축제한마당에서도 한복을 입었다. 한복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입기 편하고, 활동성도 좋다보니 즐겨 입게 된다. 그러나 올해 축제에서는 오랜만에 기모노를 입어볼까 한다. 코로나로 2년간 고향에 못 가서인지 그리움이 커졌다.
다카쿠라 씨는 “제작한 기모노들이 올림픽에 참여하지 못해 아쉽지만,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일에 활용하고, 특히 한국을 위해 만든 기모노는 한국분이 입어 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나는 정치 경제가 아닌 전통의상인 한복과 기모노를 통해 서로의 장점은 기리고 양국이 평화롭게 교류하길 늘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