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댐을 만들어 사는 동물’ 하면 뭐가 떠오를까?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지만,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비버’를 생각할 수 있다. 비버는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약 1m, 서 있는 키가 30cm쯤 되는데,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비버를 반려동물로도 키웠다고 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비버에게 접근하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야생에서 비버는 나무를 갉아 쓰러트리는 튼튼한 앞니로 사람을 공격할 수 있기에 말이다. 비버는 나무와 진흙, 풀 등을 이용해 댐을 만드는데, 비버가 댐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에 프랑스 사람들이 제작한 영화 <리틀 비버 (White Tuft, The Little Beaver)>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 4월에 개봉했는데, 무한도전의 유재석이 내레이션을 맡고, 이경규, 김구라와 김동현(김구라의 아들)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목 뒤에 하얀 털을 가진 리틀 비버는 엄마와 여동생과 살고 있다. 불행히도 아빠는 숲 속으로 먹이를 구하러 갔다가 무시무시한 늑대에게 잡혀먹혀 버려, 엄마는 혼자 댐을 보수하고 먹이를 구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날 새끼 곰을 찾으러 나선 엄마 곰이 비버 가족이 사는 댐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엄청난 곰의 무게에 댐이 무너지고, 주인공 리틀 비버는 급한 물살에 밀려 한참을 밑으로 떠내려가 버리게 된다.
홀로된 리틀 비버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숲 속을 헤매는데, 배고픈 검은 늑대 무리를 만난다. 간신히 도망쳐 노총각 비버의 집에 살게 되지만, 늑대 무리는 곧바로 노총각 비버 집도 습격한다. 한편 엄마 비버가 리틀 비버를 찾으러 다니는 사이 여동생에게도 위험이 찾아오고, 설상가상으로 숲 속에 불이 번지면서 엄마에게도 피할 수 없는 위기가 닥친다. 리틀 비버와 비버 가족들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댐 위 물 속에 만들어진 비버 가족의 집. 물 속에 지은 집은 늑대와 같은 포식자들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영화 스틸컷
모피 때문에 수난당한 비버영화 <리틀 비버>는 어린 비버의 모험담을 담고 있는 가족영화다. 비버 가족 외에도 부엉이, 살쾡이, 곰, 고슴도치, 스컹크, 늑대, 두꺼비 등도 등장하는데,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함께 봐도 좋을 듯하다. 또한 흩어진 가족을 찾는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미국 MIT 환경공학 교수인 앨리스 아웃워터의 《물의 자연사》에 따르면 비버는 약 1천 만 년 전부터 댐을 만들었다. 비버가 댐을 만드는 이유는 영화 <리틀 비버>에서 비버 가족이 댐 위에 지은 집과 노총각 비버가 댐 없이 물가에 지은 집을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비버 가족의 집 입구는 깊은 물속에 있어서 웬만한 포식자들은 찾을 수조차 없지만, 물가에 있는 노총각 비버의 집은 수시로 늑대들이 들이닥치는 상황이다.
비버는 늑대와 같은 포식자들로부터 집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한 물 높이를 유지하는 댐을 만드는 것이다. 비버의 생존을 위해 만든 댐은 비버뿐만 아니라 다른 동식물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우선 비버의 댐은 다른 동물들이 물을 쉽게 건너게 할 수 있는 다리가 된다. 또 물의 흐름을 늦춰 주변에 습지가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된다. 그런 식물들을 먹기 위해서 다양한 동물들이 댐을 찾으며 숲 속에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된다.
댐 주변에 사는 비버의 특성은 포획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엄청난 수난을 가져왔다. 사람들은 비버 고기는 식용으로 먹고, 비버 항문 부근에서 나오는 분비액 주머니는 진통제 등 약용 및 해리향이라는 향신료로 사용했다. 특히 비버의 모피는 양털이나 토끼털보다 더 가늘고 촘촘하며 방수가 돼 고가로 거래되는 품목이 됐다.
13세기 유럽에서는 모피 수요가 폭발했는데, 비버 모피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신분에 따라 모피 재질을 규제하는 법률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구하기 쉬운 토끼털은 서민들이 쓰도록 하고, 비버 가죽은 왕과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비버 가죽으로 만든 모자는 중요한 유산 품목으로 지정될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비버 모피가 얼마나 고가였는지 알 수 있다.
유럽에서 비버의 씨가 마르자 신대륙 아메리카에서도 살육이 자행됐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꼬드겨 비버 가죽을 자신들이 만든 총과 탄약 및 생활용품과 교환하기도 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벌어진 비버 모피를 위한 대량 학살의 결과 최초 2억 마리로 추정됐던 비버는 현재 1,000만 마리로 격감했다.
댐 없이 물가에 지은 노총각 비버의 집. 물 속에 지은 집에 비해 늑대와 같은 포식자들의 습격이 비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영화 리틀 비버 화면 갈무리
비버의 댐과 인간의 댐영화 <리틀 비버>는 프랑스 자본에 의해 제작됐지만, 정작 촬영은 캐나다 쌩진(SaintJean) 호수 부근에서 촬영됐다. 그 이유를 《물의 자연사》에서 유추할 수 있는데, 비버는 댐을 만드는 방법을 부모로부터 학습을 통해서 배운다고 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비버는 그나마 여전히 댐을 만들 수 있지만 개체 수가 절대적으로 감소한 유럽의 비버는 강둑에 굴을 파고 산다. 앨리스 아웃워터 교수는 “유럽 비버들이 댐을 만드는 방법을 망각해 버렸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물에 댐을 만드는 동물’ 중에는 비버 외에 인간도 있다. 그러나 비버의 댐과 사람이 만든 댐 사이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 우선 크기 면에서 콘크리트로 강을 막는 인간의 댐은 기껏해야 개울을 막는 비버의 댐과는 비교도 할 수조차 없다. 우리나라 소양강댐의 유역면적은 여의도를 최대 300개 이상을 담을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비버의 댐은 하천의 기본적 특징인 ‘소(작은 연못)’를 만들지만, 인간의 댐은 거대한 호수 또는 저수지를 만든다. 비버의 댐은 동식물의 서식지를 다양화하지만, 반대로 인간의 댐은 동식물의 서식을 오히려 방해한다. 댐이 너무 넓어 동물들이 건널 수조차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18,000여 개의 크고 작은 댐이 있다. 댐 개수로는 세계 7위에 해당하지만, 댐 밀도로는 단연 세계 1위에 해당한다.
그러고 보면 비버가 없는 땅에 비버를 사칭한 인간들이 참 많다. 비버의 댐과는 정반대의 악영향을 미치면서 말이다.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16개의 ‘보’라 불리는 댐은 더욱 심각하다. 가뭄에 물을 공급할 수가 있나, 물을 맑게 하기를 하나. 오히려 홍수 때 파여 나가 불안만 가중시키고, 불법과 탈법, 비리의 온상으로 국민의 혈세만 축내니, 말 그대로 백해무익이 아닐까 싶다.
강원도 양구군과 화천군에 걸쳐 있는 평화의 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