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포기할 순 없지
- 2023.6.4 챌린지 군산새만금 국제철인3종대회 후기 (후편)
새만금 방조제와 주변 도로는 바닷가라 바람이 많이 부는 점만 빼면 라이딩 하기에는 그만이었다. 힘든 언덕도 없고 매끈한 노면 상태, 그 넓은 도로에서 신나게 라이딩 하다 보면 우리 모두가 황제가 된 기분이었다. 주최측에 의하면 풍속이 초속 5m가 조금 안된다고 했으니 약한 태풍과 맞먹는 강한 바람이 불었다. 앞 바람을 맞으면 속도가 25km/hr 아래로 떨어지고 뒷 바람을 타면 페달에 발만 갖다대도 40km/h 가까이 속도가 붙는다.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다 보니 맞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갈 때는 자전거 속도가 점점 더 떨어지고 그에 비례하여 다른 선수들 뒤에서 빨대 꽂고 따라가고 싶은(드래프팅) 유혹은 점점 커져만 간다. 그래도 철인은 ‘독고다이’ - 혼자 서서히 사그라져 마지막 불꽃마저 꺼져 들어갈 지언정 철인의 명예를 지켜야지. 또한 진행요원한테 발각되어 페널티라도 받으면 얼마나 창피한가?
수영을 마치고 라이딩을 절반 정도 넘어설 때쯤이면 점심 시간이 된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에서 파워젤 또는 에너지바 같은 것들을 그것도 바꿈터 또는 자전거 위에서 시간에 쫓기며 먹었으니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된 것이다. 출발 전 맡겨 둔 스페셜푸드 - 팥죽과 황도를 먹을 생각을 하니 절로 힘이 솟아났다.
그런데 스페셜푸드 죤 바로 직전에 있는 보급소에 접어들면서 스페셜푸드 죤에 물이 없었던 것 같은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고 그렇다면 이 보급소에서 반드시 물 보급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감과도 같은 생각에 미치자 그냥 지나치려던 당초 계획은 급변경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순간 물통을 들고 있는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물통을 들고 서 있는 마지막 자원봉사자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왼 손으로 핸들 바를 잡고 오른 손으로 물통을 잽싸게 낚아채려 했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물통을 잡지 못하고 놓치면서 몸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 나와 나의 애마는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고 5m 이상 미끄러져 나가면서 내 팔과 다리는 성한 데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다들 괜찮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의료관계자가 와서는 상처 소독과 드레싱을 해야한다고 나를 텐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어렵게 상처를 소독했지만 드레싱 재료를 찾으러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 에고~ 왜이리 동작이 굼뜬지…. 무릅과 팔꿈치에서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레이스를 포기해야 하나…. 대회를 준비한 기간은 짧았지만 나름 열심히 훈련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의료진에게 드레싱은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나와서 자전거를 우선 살펴보았다. 넘어질 때 충격으로 왼 쪽 핸들바가 45도 정도 휘어져 있었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앞 쪽 드레일러 변속이 잘 안되는 점 말고는 전체 구동계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래, 이 정도 낙차사고로 레이스를 포기할 수는 없지… 그리고는, 50m 정도 떨어져 있는 스페셜푸드 죤을 향해 잔차를 끌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스페셜푸드 죤에 도착해 보니 대형 물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아아~~ 너무 허무했다. 직전 보급소에서 굳이 물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면 낙차사고도 없었을 것이고 큰 어려움 없이 레이스를 즐길 수 있었을텐데… 설사 스페셜푸드 죤에 물이 없다 하더라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보급소로 되돌아가 물을 받아 왔어도 되었을텐데…. 내 머리를 쥐어 박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낙차 후 라이딩을 하는 동안에는 유바를 잡을 때 마다 팔꿈치 상처가 짖눌려 고통스러웠지만 달리기 하기에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피가 흐르다 말라붙어 있는 무릅 상처가 볼상 사납기는 해도 두 다리와 두 팔이 자유롭다. 관절의 자유로움을 느껴보자. 이번 대회 런에서의 목표 서브포(4시간 안에 달리기) 달성을 위해 열심히 뛰어보자.
철인3종 대회 때 마다 늘 하는 다짐이지만 오늘도 마음 속으로 되뇌여 본다. “하프 지점까지는 물 뒤집어 쓰지 않기”, “보급소는 하나 걸러 하나 씩만 들르기”, “한 보급소에서 1분 이상 머무르지 않기” 등등. 물론, 한 번도 나와의 이 약속을 지킨 적은 없다. 아니 지키는 것이 불가능했다. 수영과 라이딩으로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뛰어보라, 체온이 상승하고 피가 끓어 오른다. 한마디로 머리 뚜껑이 열리는 기분이다. 얼음 물을 뒤집어 쓰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동계훈련 때 달리기를 열심히 해서 그런지, 아니면 날씨가 생각보다 덥지 않아서 그런지 오늘은 평소보다 페이스가 좋았다. 꽹과리까지 동원한 클럽 자봉천사들의 열띤 응원과 하프 경기를 마치고 나온 철우들의 응원에 좀 더 힘을 내본다. 드디어 마지막 랩에 들어섰고 잘하면 서브포도 가능한 시간대다. 작열하는 한 낮의 더위도 한풀 꺽이고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려고 할 때쯤 난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었다.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나만의 세레머니를 하고 완주의 즐거움도 만끽해 본다. 낙차사고로 경기를 도중에 포기했더라면 이 짜릿한 완주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으리라. 거기에다 덤으로 나의 킹코스 개인기록을 갈아치웠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 기록 11:54:08, 60-64에이지 2위 (수영 01:25:48, T1 00:11:50, 바이크 06:10:54, T2 00:04:52, 런 04:00:45)
(끝)
첫댓글 회장님 상장과 트로피를 이제야 보네요. 입상 하신거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 올해는 낙차없는 완주와 입상 기대할게요 ~^^
회장님 군산대회가 처음인 저에게는 많은 도움과 설램은 배가 되고 긴장은 완화되는 후기 감사 합니다.
후기 잘 봤습니다. 회장님. 휘어진 핸들바사진에 자꾸 시선이 갑니다.
글에서 멋짐이 마구 뿜어 나오네요. 응원 하겠습니다. 화이팅.
정말이지 너무 멋진 완주 후기입니다.
지난날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회장님 모습
대단하셨습니다
낙차에도 최고기록 완주라니! 역시 철인은 정신력! 올해도 기록 갱신 응원합니다~~~
작년의 군산이 주마간산처럼 스쳐갑니다.~~
낙차후에도 웃으시면서,
마치 암것도 아닌것처럼......
태연하게 경기하시는 모습에...
별일 아니라 생각했는데....
대회후에 숙소에 함께가서 씻는데.....
상처부위를 보면서...경악...
저는 런에서 퍼져서 또 걷다가
형님한테 따였는데.....
정말 멘탈에서 또 놀랬습니다.~~
다시한번 완주와 입상 축하드립니다.
타잔 형님 리스펙합니다. 꾸벅
뒤늣은 후기 광팬이....
낙차후에 저를 쌩 하고 지나가셔서 깜놀... 그리고 경기 마치고 샤워하다가 몸매가 너무좋으셔서 더깜놀^^ 회장님 올해도 입상 기원합니다~~
낙차와 악 조건 그 모두 물리친 철인 !
올해도 입상을 작년 임원진 자봉 엄청 고마웠다오
부상에도 불구하고 불꽃같은 투혼으로 입상까지 해내는 회장님! 엄지척!
끊임없는 도전과 성취~ 멋진 인생임돠~^^ 응원함돠~힘!!!
멋지다 !
경험후에 읽어보는 후기라 더생생하다. 역시 철인은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