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세번째 이야기는 흥미롭다. 어떤 부자가 많은 보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반지를 세명의 아들 중에 한명에게 물려주고 반지를 받는 자가 상속자가 된다. 부자는 아들 셋을 똑같이 사랑했기에 모두에게 반지를 물려주고 싶어 했다. 고민끝에 똑같은 반지를 두개 더 만들어 아들셋에게 물려주었다. 똑같은 반지를 하나씩 나눠 낀 아들들은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는게 불가능했기에 상속자는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문학회정기모임에 스승님이 스카프 세개를 들고 왔다. 데카미론을 읽고 난 후유증 때문일까 스승님이 스카프 세개를 들고 이렇게 말하는 것 처럼 들렸다.
"요 스카프 세개 중에 하나는 명품브랜드이고 두개는 짝퉁이예요."
세명의 시선은 일제히 스승님이 들고 있는 스카프로 향했다. 투명비닐봉지 안에서 알몸을 드러내 놓고 있는세개의 스카프는 정사각형 자세를 취하고 있다. 사각 자세의 사이즈도 똑같고 명품이름표 마저 없으니 색상으로 스카프를 선택해야 했다. 물욕 욕심없기로 소문난 지금사장님이 일등으로 외쳤다.
"난 초록색."
초록색 스카프가 지금주인장과 인연을 맺고 나니 스승님은 남은 두개를 내 앞으로 내 밀었다. 하나는 보라색에 가깝고 또 다른 하나는 검정색에 가까웠다. 밝은 색 옷을 즐겨 입는 나는 검정색의 스카프가 필요햇다. 보라색 스카프를 든 손이 빠르지도 그렇다고 잽싸지도 않게 천천히 정지된 화면이라고 착가 할 정도의 속도로 황단아작가님을 향해 움직였다. 황단아작가님 가슴에 스카프가 도착 하기 전에 황단아작가님이 스카프색상을 결정 해주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도 있었고 만약 검정색을 원하시면 양보해야겠다는 비장의 각오도 했다. 황단아작가님은 스카프를 두고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았다.
데카메론 세번째 이야기에서 해결되지 못한 숙제의 진정한 상속자는 황단아작가님 이라고 부자에게 말해주고 싶다.
기온이 내려갔다. 나에겐 한파 같은 온도라 살색 내복을 껴입고 그 위에 봄 치마를 껴 입었다. 봄 바람이 홑 겹 같은 치마를 들추기라도 한다면 내복이 드러난다. 하늘하늘 여성스러운 봄 치마를 유혹하려다가 자물쇠로 겨울을 꽁꽁 숨겨놓은 듯한 내복을 보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아까? 달아나거나 유턴을 하던가 유혹 할 맛이 떨어진다고 투덜투덜 댈 것이다. 여자가 옷을 입고 있을 땐 다 다르다는 것을 봄 바람은 모르고 있다. 여자는 옷 속에 많은 것을 숨긴다. 빈약함도 숨기도 풍만함도 숨기고 여성서러움도 때론 숨긴다.
수업을 마치고 산책이 하고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경주보문 단지를 산책 하는 내내 봄 바람이 스승님과 황단아작가님과 내 곁은 맴돌았다. 꽃 구경 나온 사람이 꽤 많았는데 유난히 우리곁을 떠나질 않았다. 느슨하게 두른 스키프를 단단하게 조였다. 홑 겹 치마를 덜추던 봄 바람이 이젠 목 언저리에서 자꾸만 스카프를 흔든다.
경주 보문단지를 걷는 젊은 여자, 아이를 데리고 걷는여자 ,노년의 여자, 중년의 여자 참으로 연령층이 다양하다. 문득 데카메론의 암닭 이야기가 생각이 났고 스승님이 가르켜준 여자는 벗겨놓으면 다 똑같다는 말을 떠올리다가 그 말이 중년의 여자인 나에게 위안이 되고 감동이 되기도 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여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맨 살을 내놓고 봄을 즐기고 있는 젊은 여자랑 동급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로또 1등 당첨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여자는 벗겨 놓으면 다 똑같다는 스승님 말을 믿고 많은 사람들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갔다. 그날 경주보문단지에 있었던 사람들은 ,스승님 황작가님 나 우리세명의 여자를 두고 깊이가 있는 뿌리라고 여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