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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
차문화 선도하는 지리산 혜우스님
취재 | 전현자 (미주현대불교 한국주재기자)
혜우 스님
중국 차와 우리나라 차는 차 만드는 방법이 달라요
근원적으로 돌아가면 왜 차 만드는 방법이 달라졌을까를 연구해보니 물 때문에 그렇더라고요. 물!
기자: 스님!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차의 최고 스승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차를 하셨습니까.
스님: 스님들은 출가할 때부터 차를 하지요. 일단 차는 스님들의 수행생활에서는 늘 차를 마시게 되니까요. 특히 남부 일원에 있는 절에서는 봄철 차가 나와 만들 때가 되면 온 대중들이 다 나와서 울력을 해요. 스님들도 학인들도 전부 다 모여서 찻잎을 따기도 하고 또 그걸로 차를 만들게 되죠. 그 일이 절집에서는 큰 행사처럼 되어 있어요.
기자: 어느 절로 출가를 하셨길래 그러셨습니까?
스님: 저는 출가는 서울 쪽에서 했는데 수행생활은 대부분 남부 일원에 있는 절에서 수행을 했어요. 대부분의 스님들이 그렇듯이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러 절을 거쳐가며 수행생활을 하였지요. 그러다가 머무는 철이 차를 만드는 봄철이면 같이들 어울려 차를 만들게 되죠.
기자: 스님만의 특별한 어떤 차에 대한 맛깔을 마음으로 느끼신 계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 스님들은 다들 차를 좋아하시잖아요. 그런데 사실 차를 만드는 기간이 봄철에 잠깐 만드니까 기술자가 되기는 힘들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유독 차를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선방에 갔다가 작은 암자, 사람이 안 온다는 암자에서 한 철을 난 적이 있어요. 따뜻한 봄이 와서 다 쓰러져 가는 암자 뒤편에 산책을 하는데 양지 바른 곳에 춘난 밭이 있었어요. 춘난이 좋아 그 쪽으로 찻상을 들고 나가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다 쓰러져 가는 관음전 처마 밑으로 새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라고요. 쟤네들이 저기 뭐 먹을 것도 없는데 저렇게 분주하게 드나드나 가서 봤더니 집을 짓고 있었어요. 그때 그 새가 집 짓는 모습을 보고 저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가슴이 철렁했어요. 아, 새들은 자기가 살 집은 자기가 짓는구나. 그런데 나는 내가 입은 옷도 내가 만든 게 아니고, 내가 먹는 밥도 내가 농사지은 게 아니고 하물며 내가 사치스럽게 봄날 분위기 좋다고 나와서 마시는 차도 남의 손을 빌어서 만든 것을 마시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니까 살아온 날들이 무거운 짐이 되더라고. 그러면서 다른 것은 다 못해도, 천을 짜서 옷을 지어 입을 수는 없어도, 또 논에 가서 벼를 심어서 쌀을 거두어서 밥을 지어 먹을 순 없어도 내가 이렇게 마시는 차만이라도 내가 만들어 마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 때부터 내 차는 내가 만들기 시작 했습니다. 막상 만들려니 차란 것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더라고. 더구나 그 동안 좋은 차만 골라서 마시다보니까 입이 고급화되어 있잖아요. 웬만한 차들은 입에 안 맞는 거야. 형편없는 내 솜씨로 만든 차를 마시니 입에 안 맞는 거야, 그래서 그 때부터 어떻게 하면 좋은 차를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보니까 굉장히 오랫동안 차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고 연구하게 되다보니까 점점 차를 잘 만들게 됐죠.
기자: 얼마나 잘 만드셨으면 법정 스님께서까지 스님 차를 즐기셨다고 하지요!
스님: 그건 한참 뒤의 일이예요. 내가 차를 잘 만들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지리산 피아골에 있는 이 제다 교육원을 시작한 게 2004년도인가, 2005년부터인가 시작했거든요. 그러면 햇수로 15년, 16년 이렇게 됐어요. 봄철이면 일 년 마실 차를 만드는데 다니면서 보니까 차를 만들어서 파는 집인데도 보면 제대로 못 만들더라고 차를 만들어서 돈으로 바꾸는 정도로 상품화시키는 사람들인데도 차를 제대로 만들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 이유를 찾아보니 우리나라에는 차 만드는 걸 가르쳐주는 데가 없는 겁니다. 차를 만들어 생업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차 만드는 것을 일하러 갔다가 어깨 너머로 배우는 거에요.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것은 기자님도 어제 해봤지만 많은 손길이 필요해요. 대부분 인부로 들어가서 그걸 하게되죠. 기자님이 배운 오늘의 마무리 작업은 보여주지 않고 대부분 주인이 혼자서 해요. 마무리 작업은 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니 문 닫고 들어가서 혼자서 하는 거죠.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만들어진 차가 팔리고, 이익이 난다는 것을 안 사람들에 의해 화개나 보성이나 차 나오는 곳은 집집마다 솥이 걸려 있고 다 나름나름 만들어서 아는 지인들이나 어디 가게나 이런 데로 다 판단 말이에요. 처음엔 다들 이렇게 시작하죠. 그러니까 사실은 그 진짜 기술은 못 배우고 어깨 너머로 배웠으니까 서툴 수 밖에 없고 그러니 만든 차가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죠
기자: 그럼 스님께서는 스스로 배우시고 연구하시어 발전시키셨군요 묘책이라도 발견하셨는지요?
스님: 묘책이라기보다도 그렇게 품질이 떨어지는 차를 마시게 되니 사람들이 녹차를 마시면 속이 쓰리다 그렇게 얘기들을 하며 녹차 마시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죠. 차는 차가운 성미가 있어서 속이 냉한 사람은 안 맞는다. 그런 얘기 흔히 하잖아요.
기자: 차를 좋아할 뿐 잘 모릅니다.
스님: 차의 성미는 차겁기 때문에 속이 냉한 사람들이 마시면 부작용이 있다는 말들을 합니다. 속이 쓰리다면서 녹차를 안 마시는 거에요. 그런데 전통 우리 제다법은 차의 성미를 변화시키는 방법이 제다법의 원리이거든요. 제가 그것을 연구 하면서 찾아냈어요. 옛날 문헌에도 구중구포한다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그걸 왜 그렇게 하는지를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죠. 중국의 차 서적에는 구중구포란 말이 안 나와요. 중국에는 그건 상관이 없어요. 중국 차와 우리나라 차는 차 만드는 방법이 달라요.
근원적으로 돌아가면 왜 차 만드는 방법이 달라졌을까를 연구해보니 물 때문에 그렇더라고요. 물! 중국은 거의 한 70프로 이상이 석회암 지대이다보니 물이 세고, 물맛이 떨어지니 그 물로 어떤 요리를 해도 맛이 없죠. 석회암 지대의 물로는 요리를 하면 맛이 없으니까 대부분 중국 음식이 기름에 튀기거나 볶거나 물을 이용한 것은 찌거나 탕인데 양념을 강하게 하든지 향신료를 많이 넣어 물 맛과 냄새를 숨기지요. 그래서 중국에 여행 가보면 골목길을 가다 보면 향신료 냄새가 굉장히 많이 나잖아요. 그래서 우리와 밥상 차림도 틀리지요. 우리나라는 한상 가득 요리를 차려야 하고 중국은 요리가 한 개씩 나와요. 그리고 식간에 꼭 차를 따라주지요. 그 이유는 기름으로 조리를 한 음식을 먹으면 혀가 기름으로 코팅이 되고 그래서 여러요리를 동시에 맛을 볼 수가 없죠. 하나씩 나오는 요리도 먹으면서 차를 마셔 혀를 씻으라는 과정이지요. 한편으로 그렇게 중간중간 차를 마셔주는 것이 과도한 기름 섭취를 해도 흡수하지 못하게 하니 건강에 도움을 주게되죠.
기자: 그래서 중국에 차가 발달하게 되었고 가짓수도 많게 되었나봅니다.
스님: 그렇게 센 물에다 차를 마시려면, 차의 맛과 향이 강해야 마실 만한 차가 되죠. 그러다보니 필요에따라 향차가 중국에 많이 발달되어 있어요. 자스민 차라든지 여러 가지 향을 집어넣은 차들이 있고 또 한 가지는 녹차 같은 경우는 향이나 맛을 강하게 하려면 생차나 다름없이 만들어야 하는 제다법으로 만들어야 하죠.
기자: 그럼 우리 차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스님: 우리나라 땅의 70프로가 물이 좋고, 한 30프로가 물이 안 좋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요리는 대부분 물로 조리를 하는 물의 요리라고 할 수 있죠. 우리는 기름으로 조금만 조리를 해도 속이 니글거린다하죠. 우리는 물로 요리를 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어요, 물의 요리기 때문에, 상차림이 한 상 가득 차게 나와요. 밥에다가 찬들을 먹으면 그 찬의 각각의 맛을 다 느낄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식간에 차를 안 따라줘요. 차를 마시려면 우리는 상을 물리고 다과상을 차리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차를 마시기 위한 차고, 중국은 물을 마시기 위한 차에요. 물론 중국에서도 차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차를 마시기 위한 차도 있고 그렇지만 우리는 물을 마시기 위해서 차를 마시지는 않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서 마시는 것은 보리차! 정도이지요.
기자: 스님! 우리의 차가 있어왔는데 중국에서부터 차가 왔다고들 하는지요?
스님: 지금도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 차를 마셔요. 중국차 중에 녹차는 마실 수가 없어요. 왜냐면 중국하고 우리나라하고 녹차 제다법이 달라진 이유가 있어요. 고려 시대 때나 삼국 시대 때나 국경이 있었으나 지금처럼 살벌한 국경은 아니어서 중국으로 유학들을 많이 갔지요. 귀족들과 스님들이 유학을 갔다가 들어올 때 그 쪽 차들을 많이 갖고 들어왔어요. 거기서 식생활하면서 공부하면서 차를 많이 접하다가 거기서는 괜찮았는데 우리나라만 갖고 들어오면 강해서 속이 불편했던것이지요.
혜우스님의 차 교육 장면
기자: 같은 녹차인데요?
스님: 네. 옛날에 선조들이 어떻게 생각했을까. 추측하건대 이렇게 차가 명약이라는데 우리는 왜 속이 쓰리지? 그때 이런 생각을 한 거죠. 속을 쓰리게 하는 것은 차의 차거운 성미일테니 성미를 다스리면 누구나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의 제다법이 시작된거라 볼 수 있죠.
기자: 그래서 구중구포가 생겼나 봅니다.
스님: 그렇지, 제다법의 뿌리가 거기에 있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서부터 고려 시대까지 계속 전쟁이 많았어요. 그리고 차라는 것은 이거 안마시면 죽는다하는 것이 아니지요. 중국 같은 경우는 전쟁이 있었어도 물을 마시려면 차가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물이 좋기 때문에 길거리 가다가도 옛날 이야기에 나오듯이 버드나뭇 잎 띄워서 훅 불고서 마시라는 그런 얘기가 있듯이 물이 어떤 매개체가 필요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아까도 얘기했듯이 유학 다녀온 스님들, 유학 다녀온 유생들 그런 사람들은, 귀족들은 차 생활을 했단 말이에요. 먹고 살만 할때 차를 마시는데 일반 서민들은 어떻겠어요?
기자: 먹고 살기 바쁘죠.
스님: 그렇죠. 서민들한테 차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찢어지게 가난한데 차를 마셨겠어요? 지금 사람들이 잊고 있는 건 뭐냐면, 우리나라 태평성대는 약 50년정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취월장했잖아! 그런데 그 전에는 하나같이 전쟁 중이었어요. 그리고 일본에게 36년을 그 밑에서 살면서 이런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몇 프로가 되냐고. 그거 끝나고 나니까 6.25 전쟁 터졌잖아요. 우리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었지요, 살아남는 것이 최선인 시대이었으니 차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나마 그 명맥이 유지되어 왔던 거는 남부 일원에 있는 절집에 남아있는 차밭이 있어 스님들이 수행생활에 필요한 만큼 만들어 써왔던 것이 지금까지 명백을 잇게 된 것이라 보면 되죠.
필자 전현자
기자: 스님들의 역할이 차 문화에도 아주 막대합니다.
스님: 아니, 차 문화에서 막대한 정도가 아니고, 절대적으로 차지하고 있죠.
기자: 그러시면 스님께서는 어떻게 차를 보급하고 계시는지요?
스님: 지금 여기 구례에 있는 ‘혜우전통차제다 교육원’에 해마다 교육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한 500여분 이상이 되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지금 여기서 이렇게 한가하게 있는 거지.
기자: 지금 제게 주신 차가...우리 차!
스님: 예, 법정 스님이 좋아하시는 차.
기자: 네! 최고의 맛입니다.
스님: 그 사람들이 대부분 차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한테 우리나라 차 맛의 진수를 가르쳐주게 되죠. 그리고 농민들은 즉 차 만들어서 파는 사람들한테는 차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주죠. 그렇게 해서 차를 사는 사람과 차를 만드는 사람이 결국은 연계되는 것이죠. 이러이러한 차를 사라. 누구네 집 차를 사라, 그게 아니고. 맛을 봤을 때 어떤 차를 사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기자: 그렇게 해서 보급해주시는군요.
스님: 그럼 이제 서로 다리가 되는 것이죠.
기자: 제가 어렸을 때 법정 스님께서 차를 몇 차례 우려 주셨어요. “차는 소박하게 마셔야 제맛을 느낀다”셨는데 차마시는 방법이 너무 많은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스님: 어떤 형식을 정립하는 것은 필요해요. 정립하는 과정속에 부작용도 있는 것이고 또 미흡한 것도 생기는 것이며, 그러면서 그 시대의 문화가 형성하게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하죠. 다도를 하고 행다를 하는 것을 정립할 필요가 있죠.
기자: 차를 마실 때는 어떤 마음 자세로 마시면 좋을지 가르쳐주십시오.
스님: 일단은 마시는 것부터 얘기하자면, 무엇을 먹고 마시는 일은 편안해야 해요. 물론 아까 얘기했던 다시 다도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건 서양식으로 얘기하면 테이블 매너에요. 그렇다고 서양 사람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모든 사람들이 정식 어떤 파티에 가서 테이블 매너처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왕 식구들끼리 모여 앉아서 자유롭게 음식을 먹고 나누는 것 자체는 그 테이블 매너하고 상관없잖아요. 더 자유롭고 편안하잖아요. 그것과 같아요, 마시는 일은. 아까 얘기한 다도라고 하는 것은 티파티의 정말로 지켜야 할 절도 있는 예절이란 말이에요. 그게 필요해요. 그렇지만, 식구끼리 아는 사람과 차를 마시면서까지 형식이 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차는 늘 그 차를 우리는 물이 중요한 것도 알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기자: 차나무가 자라면서의 물도, 또 땅도 중요하겠고 우릴때의 물이 참 중요하다는 말씀이십니다.
스님: 그렇습니다. 물 맛이 달라서!!! 요즘에 내가 하나 농담처럼 하는 얘기가 있어요. 지금까지는 중국의 보이차나 중국의 다른 여러 가지 차 즉 대웅포나 청차류나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수입이 되고 보급이 되었지만 앞으로 역으로 우리나라 차가 해외로 갈 것이다. 왜냐면 북경가면 사람들이 지금은 물병을 들고 다니는 대신에 생수병을 들고 다니지요. 생활이 풍요로워지다보니까 물론 오염된 여러 가지 것들이 있어서 그렇겠지만 중국은 지금 생활이 부유해지고 워낙 물이 안 좋으니까 좋은 물 마시려고 한단 말이에요. 물을 좋은 물 마시는 사람이 음식을 할 때 좋은 물을 쓰겠지요. 더우기 차를 마실 때 좋은 물 안 쓰겠어요? 당연히 좋은 물 쓰겠지요. 그러면 중국차는 강하다 싶게 우려나온단 말이죠. 역으로 얘기하면. 좋은 물을 거기서 쓰면 자기네 차가 맛이 없는 거야. 그때에 우리 차가 자연스럽게 거기로 흘러 들어가지 않겠어요?
기자: 스님! 훌륭한 가르침 주십니다. 차! 곧 수행이셨겠습니다.
스님: 한 번도 수행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이걸 수행이라고 생각했으면 안 했을 거에요. 즐거웠으니까 내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즐거웠으니까. 내가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이 스님들께 공양 올리라고 하면서 나는 스님이면서도 스님들께 공양을 한 번도 안 올렸음을 떠올려보고 깨달은 것으로 내게 어떻게 공양을 올리라고 하는가 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봄철에 한 20일 고생하면 차 공양 올릴 수 있으니 20일 고생스러웠어도 즐거웠어요. 내가 존경하는 스님들께, 도반 스님들한테 차를 나누었지요. 내가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차 만들면서 들어가는 비용을 n분의 1을 해보니까 한 통에 얼마씩 거두어 대신했죠. 그렇게 해서 돌려주고 그래도 또 남는 게 있으면 저 산골짜기에 있는 도반 스님들에게 나눠주러 가면서 전화를 해 길거리에서 만나 차를 전해주고 난 또 다른 스님 차 갖다 주러 가고. 봄만되면 차공양 올리는 것이 내 일이었어요. 그동안 늘 스님들하고만 교류하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내가 토굴 살림을 하려고 생각하니까 나는 원래 신도들하고 어울려서 뭘 하는 일을 안했어요. 그래서 친한 신도도 없었어요. 신도들 누구 기도를 해 준다거나하는 일을 하지 않았어요. 우리 스님들하고 의논해서 나는 토굴에 들어가서 공부 좀 더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그랬더니 “스님, 토굴 들어가요. 그러면 이제 우리가 차를 사 마실게.” 그렇게되어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봄철에 차를 만들러 다니다 보니까 농민들이 차 만드는 기술을 배울 데가 없는 것을 해결하고자 차 만드는 가르쳐주는 학교를 시작 하였습니다. 평생을 얻어먹고 도움을 받고 이렇게 살았는데 내가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한테 내 삶의 5년만 내주자고 결심 했습니다. 폐교를 사용해 하고 싶었는데 순천시청에 아는 분이 계셨는데 폐교 나왔다고 알려와 그때 겨울날 살림 날 돈이 200만원이 있었는데 순천시청에서 세를 주는 방법이 되어 무조건 계약을 쓰고 들어갔습니다. 그곳이 섬진강변 구례역쪽에 있는 폐교였는데 그곳에서 5년 동안 차 학교를 했습니다.
기자: 예, 훌륭하시네요.
스님: 훌륭한 게 아니고 그냥 즐겁게 했어요, 즐겁게. 그러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죠.
기자: 스님들께 차는 참 좋은 친구같다고 생각됩니다
스님: 차는 우리 절집안의 문화 중에서 제일 비중이 높은 것 중에 하나에요. 차는 선방 안에서 참선을 하면서 마시는 물건이 아니에요. 지대방에서 마시는 것이지요. 선방에서는 굉장히 치열하고 긴장이 되어 있고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된 정신을 지대방에서 쉴 때 그때 차를 마시게 되죠. 그리고 차의 성분 중에는 카페인 성분들이 들어있으니까 정신을 맑게 하고 또 잠을 쫓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일이고, 차는 말 없이 차를 마실 수도 있고 말을 나누더라도 안정적이며 침묵으로 걸러진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하는 것과는 깊이가 다르다 말하고 싶습니다.
어느 틈에 우리에게 미국식 문화가 스며들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일상이 되버린 것이 안타깝기도합니다. 우리 절에서라도 차를 음미하고 차를 나누는 삶이 이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녹차는 차가웠을 때 마시면 떫다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스님: 아까 우려낸 차라서 지금 차거워졌는데지금 어때요? 마셔보세요.
기자: 아! 안 떫네요.
스님: 따뜻한 차가 식으면 처음에는 향이 먼저 날아가요. 향은 가볍기 때문에 곧 날아가요.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거나 어떤 음료를 마실때 가장 맛있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자: 스님! 한국 차가 세계적으로 보급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까.
스님: 제가 아는 사람 도자기 작가 중에 그 사위가 프랑스 사람이에요. 그 할배가 맨날 나한테 “스님, 차 안보내줘요? 차 나왔으면 차 보내줘요” 그 작가는 사위한테 보내주려고 늘 제 차를 원합니다. 그 사위는 아침마다 차를 마신다고합니다. 차를 우려마시고 찻잎까지 몽땅 먹는다고 해요. 차마심이 아침식사라고도합니다.
기자: 차의 스승이신 스님은 누구십니까?
스님: 나?
그 무슨 어리석은 질문인가?
날짜: 4월 17일
장소 : 지리산 피아골 ' 혜우 전통차 제다 연구원'
혜우 전통차 제다 교육원
전남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668-2
전화: 010-9308-7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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