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롭고 험한 길을 그렇게 걸어 갔었구나!
선구자의 길은 그렇게 다 외롭고 험한 길인 것인가?
그러면서도 그속에 오직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뿐이니..
나라를 구하고자 세운 그 서원을 이루기 위해
그 어떤 명령에도 불복을 하였구나
그러면서도 역적으로 몰리니 그대로 놓고 따르는 감수를 하였구나
그 심정이 감지가 되니 그대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죽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죽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죽은폭 대고 사는 길이다.
그것을 이렇게 이순신이 또 확인해 주고 보여주고 있다.
그 옛날 한동지가 우리9인 선진님들은 죽지 않았지 않았느냐
다른 종교에서는 죽었다.
하면서 죽는 순교정신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죽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죽은 폭 대고 사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자기라는 것이 남아 있다면 진정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일념만 있을 뿐
나라는 것도
체면이라는 것도
모든 것을 벗어 났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순신을 통해
나 자신을 보면서 창조의 고난을 생각해 본다.
오직 성역화를 향한 나의 심정과 틀리지 않으니...
나역시 외롭고 험한 길이니..
그렇게 무시를 해도
그렇게 알아 주지 않아도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가려고 하는가?
나에게 질문을 해 본다
이순간 나 자신에게
그러나 나도 똑같은 답을 내릴수 밖에 없다.
나라를 구하는 길이기 때문에 그 험한 길을 택하하듯이..
나 또한 한국성역화를 향한 오직 그 서원의 가슴만 있으니..
가슴속에 깊이 새겨진 이 서원이
가슴의 한으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
난 여한없이 외롭고 힘든 고난의 길을 택한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이순신은 성군이고 성장이다.
그 분이 고난의 길을 택해서 나라를 구하는 길을 만들었다.
나 또한 고난의 길을 택해서 한국성역화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조직의 명령에 따르는 것만이
천신만고와 함지 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없이 가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말에도 굽히지 않듯이
몸을 사리지 않고
나를 사리지 않고
그 어떤 고난도 마다 하지 않고 걸었듯이
서원을 향해 가는 길에
나타나는 방해로운 명령도 다 감수 할수 있을때
그 또한 천신만고와 함지 사자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는 길을 걸음이 아니겠는가?
속으로 우는 눈물이 없이
어찌 그 힘든 길을 헤쳐갈수 있으리요
속으로 품은 뜻이 없이
어찌 개척자의 길을 갈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