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달팽이 '인공와우 정부 지원 확대 서명 캠페인'
인공와우 외부장치인 어음처리기는 시간이 지나면 소리가 정확히 들리지 않고, 배터리 지속 시간이 짧아지는 등 성능이 점점 떨어지다가 고장 난다. 이 기기를 교체하려면 한쪽에 1000만원이 드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평생 딱 1번만 기기교체비 40%를 지원해 주고 있다. /사랑의달팽이 제공
오감 중 청각만큼은 유일하게 현대 의술로 완치에 가깝게 치료할 수 있는 감각이다. 선천적으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고도난청 환자도 인공와우(인공 달팽이관) 수술로 다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방법이 있는 데도 많은 환자가 청각을 포기한다. 수술받은 환자도 기기가 고장 날까 날마다 노심초사다. 한쪽에 1000만원을 호가하는 엄청난 가격 때문이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사랑의달팽이는 청각장애인이 경제적 부담으로 들을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인공와우 정부 지원 확대를 촉구하는 서명 캠페인을 시작했다.
◇외부장치 교체, 경제적 부담 커
인공와우는 난청 환자들에게 다시 생긴 두 번째 귀다. 그러나 영구적이진 않다. 인공와우는 달팽이관에 삽입돼 청신경을 자극하는 내부장치(임플란트)와 소리를 전달하는 외부장치(어음처리기)로 구성된다. 내부장치는 반영구적이지만 외부장치는 마치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처럼 시간이 지나면 소리가 정확히 들리지 않고, 배터리 지속 시간이 짧아지는 등 성능이 떨어지다가 고장 나곤 한다. 이때마다 난청 환자는 다시 청각이라는 매우 중요한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새 제품 교체는 쉽지 않다.
"너 진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세 살 때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지원이(가명·13)가 들은 말이다. 수업 태도는 물론, 성적도 좋은 모범생이던 지원이는 최근 친구들과 소통이 어려워졌고 수업 집중력도 떨어졌다. 10년간 착용해 온 인공와우 기기가 노후화로 소리가 끊기고, 불규칙하게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원이의 어머니 박은숙씨는 "코로나로 어려워진 형편이라 인공 와우 기기 교체는 매우 부담스럽다"며 "그냥 아이한테 듣지 말고 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며 눈물을 닦았다. 선천적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난 자매의 어머니 곽혜영씨도 고민이 크다. 곽씨는 "치료비가 부담스럽지만, 치료 일정으로 맞벌이를 할 수 없어 외벌이가 불가피하다"며 "아이들이 듣기 위해 살아가지 않기를, 인공와우 교체 비용 때문에 하고 싶은 거, 배우고 싶은 거 못 배우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했다.
20년 전, 어릴 때 인공와우 수술을 한 뒤 성인이 된 손정우(27)씨는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을 모두 접어야 할 위기에 빠졌다. 손씨는 "클라리넷으로 음대 일반전형에 합격했다"며 "인공와우 기기 노후화로 점점 잘 못 듣게 돼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인공와우 수술 후 무리 없이 직장 생활을 하게 된 한정임(52)씨도 매일이 불안하다. 한씨는 "16년 전 인공와우 수술을 했다"며 "소리가 안 들리면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데, 기계가 고장 나 버리면 2000만원(양쪽 교체비용)을 당장 써야 해 그저 막막하다"고 말했다.
손정우 20년 전 수술_클라리넷으로 대학 합격했지만 기기 노후화, 음악 어려움 겪어(왼쪽). 한정임 16년 전 수술_직장 생활 무리 없이 해내 다시 못 듣는 일상은 ‘공포’(오른쪽).
◇우리나라, 평생 딱 1번만 교체 지원
우리나라 정부는 인공와우 이식 후 평생 딱 1번만 기기교체비 40%를 지원한다. 그 이후엔 기능 문제를 떠나 기존 제품이 단종돼 수리가 불가능하거나 파손·분실했어도 모든 비용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보통 10년이면 노후화가 심해져 교체가 필요하다. 선천적 난청 환자가 평생 10번 기기를 교체한다고 가정하면 무려 2억원이 드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지원 폭이 매우 좁다. 네덜란드·캐나다·벨기에 등은 3년마다, 호주와 싱가포르에서는 5년 주기로 교체비용을 지원한다. 한국난청인교육협회 이지은 이사장은 "외부장치 교체비는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비용"이라며 "평생 인공와우에 의지해 생활해야 하는 청각장애인에게는 부담이 상당하다"고 했다. 게다가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난청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치료비는 외부기기 교체뿐만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고, 인공와우가 잘 들리도록 맵핑해야 하며, 소모품도 지속해서 구매해야 한다. 난청으로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두 아이를 둔 어머니 남은정씨는 "건강보험 혜택으로 기기를 교체해도 비용 부담이 큰데, 그마저도 수술 후 1회만 된다는 현실이 부담스럽다"며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부모가 부담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해 어른이 된 후 기기 교체 등으로 경제적 부담 질 걸 생각하면 답답하다"고 했다. 청각을 포기하면 사회생활이 어려워지는건 당연하고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도 유발돼 기기 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아동은 교체 시기를 놓치면 언어, 인지, 사회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성인이 된 후 청각 장애가 생겼을 땐 인공와우 수술 자체가 부담이다. 현 정책에선 19세 이상 환자는 한쪽 귀 수술만 지원하고 있다. 한쪽만 수술하면 방향 인지가 어렵다. 인공와우 수술을 한 한국인공와우사용자협회 안재권 회장은 "성인은 한쪽 귀 수술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며 "단순히 지원 개수만 정하는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2022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장애 등록된 청각장애인은 42만5224명으로, 전체 장애인 중 비중이 두 번째로 크다. 이 중 1만5000명 정도가 인공와우를 사용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랑의달팽이, 인공와우 정부지원 확대 촉구 서명 캠페인 진행 중
사랑의달팽이는 인공와우 정부지원 확대를 촉구하는 서명 캠페인으로 인공와우 정부지원 확대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의 서명을 모아 국회와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캠페인에 참여한 아주대 의대 이비인후과 정연훈 교수는 "기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교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며 "최소 10년에 한 번은 교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분실하거나 고장이 났을 때는 물론 기기의 발달에 따라 더 나은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1일 기준 서명캠페인에는 7625건 이상의 서명이 모였다. 사랑의달팽이 조영운 사무총장은 "높은 비용이 부담돼 어쩔 수 없이 다시 소리 없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청각장애인이 경제적인 이유로 듣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여러 사람이 모여 서명에 동참한다면 청각장애인들도 들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회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해당 캠페인의 자세한 사항은 사랑의달팽이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한편, 사랑의달팽이는 복지단체로, 매년 경제적으로 소외된 청각장애인들에게 인공와우 수술과 보청기를 지원하고 있다.
출처 : https://health.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6/06/20230606013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