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 같은 자리에서 만나는 구름 이야기
한영미
하나의 표지판을 가진 두 바다가 있었어요
절벽으로 막혀 있어 이스턴 비치는 파도를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바다에요 그곳엔 카페가 통창의 눈으로 서 있었어요 벽면에는 바스키야의 그림을 닮은 낙서들이 걸려 있었고요 아무리 뒤섞인 마음도 잠시만 앉아 있으면 정적인 바다의 배경이 되곤 했어요
반대편엔 심해를 뒤엎어놓은 것처럼 파도가 드높은 버클랜드 비치가 있어요 소라껍질이 되어 가만히 귀를 열어두고 서 있으면 어느 순간 안에 가둬둔 소리가 쏟아졌어요 가끔 그 시간이면 커다란 개와 산책 나온 노인이 손을 흔들어 주곤 했어요 짖지 않는 개는 황혼 내리덮인 주인 뒷모습을 닮았어요
바닷가 편의점에서 종일 알바를 하던 동양인 여자를 알게 되었어요 영어가 짧은 그녀의 말은 두 단어에서 끝나곤 했어요 하이, 땡큐! 그런데 유독 드높이 파도치던 날, 그녀가 무수한 말을 할 줄 안다는 걸 알았어요 보고 싶다와 가고 싶다는 말이 교차하는 동안 자폐를 앓고 있다던 아이 이름을 열 번쯤 되뇌였어요
이스턴 비치와 버클랜드 비치를 오가는 구름들이 있어요 한 자리에 오래 머물다 돌아서는 구름을, 다른 날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두 바다를 가진 하나의 표지판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