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가 크나큰 충격을 받고, 지금 온 미국 백성은 큰 슬픔과 분노 속에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바드대학교의 정치학자 새무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통해 21C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문명의 충돌이 있을 것을 일찍이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번 테러 사건을 그러한 시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신학을 공부한 신학도로서 이번 사건은 대단히 영적이고, 신학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미국은 세계의 어느 나라와는 영적으로 분명히 다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질 수 없다고 했는데 1만명이 넘는 생명이 희생된 이 사건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미국은 기도로 세운 나라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새운 나라입니다.
기독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이 나라의 가치관과 정신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은 미국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를 참으로 짧은 역사 속에서도 세계 최고, 최강의 나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구약의 유대 나라처럼, 하나님은 이 시대의 선민의 나라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워 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미국은 선민의 나라로 살아가고 있으며, 선민으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감히 그렇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바라보면,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저 이방 나라를 일으켜 선민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연단시키셨습니다.
그러기에 이번 사건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만 미국을 향한 하나님의 연단이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는 비단 미국의 백성들만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믿는 자들이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29장의 첫 시작이 탄식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여러분, 아리엘이 누굽니까? 아리엘이 무슨 뜻입니까?
1절 말씀 "슬프다 아리엘이여,"라고 탄식한 후 곧 뒤이어 나온 말씀이 "다윗의 진친 성읍이여"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진친 성읍은 예루살렘성입니다.
다윗은 여부스 족속들이 살고 있었던 이 성읍을 정령하고 다윗의 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이 아리엘은 다름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대나라의 수도입니다.
단순한 수도가 아니라,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은 만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모든 삶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내가 필경 너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네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리엘, 곧 예루살렘 성을 괴롭게 할 것이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퍼하고 애곡하게 될 것이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2절 끝 부분에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의 문맥을 보면 아리엘이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아리엘을 징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슬퍼하고 애곡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절 끝 부분에서 "너희는 내게 아리엘과 같을 것이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기 2절 끝에 나오는 아리엘은 무엇일까요?
주경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 해석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유력한 해석이 하나님의 번제단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43장 15절, 16절에 보면 번제단의 크기와 모양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번제단이 히브리 원어로 아리엘입니다.
번제단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구약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양이나 염소와 같은 제물을 가지고 와서 이 번제단에 올려놓고 불에 태워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아리엘, 번제단과 같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싸움과 피흘림으로 인하여 마치 짐승을 사로잡아 불사르는 번제단처럼 징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선민, 그 백성을 만나주셨고, 축복해 주셨던 바로 그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번제단에서 타오르는 연기처럼, 불같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4절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다는 말은 그 고통이 너무나도 커서 "어- 어 신음소리만 낸다"는 말입니다.
"네 말소리가 지껄거리리라"는 말씀은 "날카로운 소리로 말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무나도 엄청난 사건을 목도하면서 두려움과 공포의 비명을 지른다는 말입니다.
평화의 도성 예루살렘이 번제단처럼 불에 타고 연기에 휩싸이게 될 때,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도 그 고통이 커서 겨우 신음소리만 지르게 될 것이고, 너무나도 끔찍한 일을 목격했기에 두려움과 공포의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왜요?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왜 택한 백성들에게 이런 엄청난 사건을 허락하실까요?
그 이유를 9절부터 16절까지 오늘 본문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이유입니다.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고살아야 할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눈과 귀와 입을 다 막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읽어도 마치 봉한 책처럼 도무지 깨달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12절을 보면 무식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 하면 "나는 무식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못하겠노라"고 거절합니다.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모든 백성들이 귀를 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눈을 감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으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한 징계의 첫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형식적인 신앙입니다.
13절을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그 마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잃어버린 껍데기뿐인 신앙이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적인 힘을 의지했습니다.
1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화 있을찐저 자기의 도모를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여 그 일을 어두운 데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당시 유대는 앗수르라고 하는 강한 나라를 대적하기 위해서 애굽과 비밀히 동맹을 맺고, 애굽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이 동맹을 맺은 것은 은밀히 맺은 것이기에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앗수르가 쳐들어온다 할지라도 애굽이 우리를 도와 줄것이라는 헛된 확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6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토기장이가 그가 빚은 토기를 상세히 알고 있듯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이 몰래 세운 모든 도모를 다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그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그 위로를 얻기보다는 세상적인 힘과 권력을 의지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이방나라를 들어서 징계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번제단에 타오르는 불과 연기처럼, 예루살렘 도성이 어느 날 한 순간에 불타오르게 될 것이고, 그 끔찍한 사건을 목도한 백성들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슬픔을 삼키는 신음소리만 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예언의 말씀은 주전 701년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성을 침공함으로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또 우리 눈앞에 목격된 이 끔찍한 사건을 영적인 눈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 미국은 영적인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미국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출발한 축복받은 나라입니다.
이 한국 땅과 열방 가운데 복음을 전하여 준 나라입니다.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미국은 경건의 모양도, 경건의 능력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경제부흥에 열중하고 있던 지난 세기말 동안에 미국은 너무 많이 변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면서 지난날 로마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공공 장소에 십자가를 거는 것을 금지되어 있고,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을 공부하는 일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금지하면서 관광지에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세워지고 '그랜드 케니언'의 봉우리에는 이집트와 그리스의 신들과 힌두교의 신들의 이름이 붙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가치관은 성경적인 가치관보다 인간적인 가치관으로 팽배해 있습니다.
이제 다시 미국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나라가 되려면 청교도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시 영적인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저들은 오만했습니다.
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미국은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중심, 팍스 아메리카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계 최강의 축복을 주셨다면 마땅히 지구촌을 섬겨야 함에도 저들은 함부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경찰 국가를 자임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 국가들을 함부로 다루었습니다.
지난 세기말에 자본주의를 견제하던 공산주의가 지구촌의 경제력은 급속히 미국의 자본가들에게로 집중되었습니다.
미국의 큰손들은 전세계의 금융시장을 마음대로 주물렀고, 동아시아 지역에서 IMF 파동이 일어나자 빌딩과 기업과 은행들을 헐값으로 인수했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정권이 들어선 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더욱 강경해지고 오만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토에서 열렸던 세계 기후협약의정서에 서명을 거부했고, 유엔이 주최한 인종차별회의에서도 이스라엘과 함께 대표단을 철수했습니다.
1,2세기 전 세계 많은 나라들에게 도움을 주며 섬겼던 미국은 이제 약하고 가난한 나라들에게 많은 아픔을 안겨다 주는 오만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최강의 경제력과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함부로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강하면 부러지는 법입니다.
이번 사건은 오만한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셋째, 미국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돈과 무기의 힘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편 20편 7절에 "혹은 말과 병거를 자랑하거니와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한다"고 했는데 미국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고 의지하기보다는 말과 병거를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참 진리보다는 눈에 보이는 기술과, 세상적인 가치에 집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미국 금융의 중심, 아니 세계 경제의 중심인 트윈타워가 일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미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국방성, 펜타콘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왜 하필이면 무역센타이며, 그 철옹성같은 페타콘입니까?
바로 그곳은 오늘 우리들이 세운 바벨탑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깊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나라가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세운 바벨탑을 의지했을 때, 하나님은 징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됩니다,
택한 하나님의 백성이 잘못했을 때, 이방 나라를 도구로 들어서 택한 백성들을 징계하시는데 그럼 그 이방나라는 어떻게 하시는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연단시키기 위해서 때론 이렇게 이방나라를 도구로 사용하시고, 저들이 하는 짓들을 허용하시지만 결코 하나님은 저들을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괴롭힌 이방나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벽력과 지진과 큰소리와 회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는 꿈같이, 밤의 환상같이 사라질 것이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과 지난 화요일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보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어야 하겠습니다.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으십니다.
힘 주실 때, 축복주실 때, 겸손해야 합니다.
영적인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에서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가 움켜지고 있는 것은 일 순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평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속에서 힘과 힘의 대결은 항상 파멸을 가져 왔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사도이며, 섬김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자살 테러는 사단적인 방법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방법과는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당신이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로부터 테러를 당하시고 예루살렘 민중과 로마의 조직적인 폭력으로부터도 테러를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책임을 모두 자신의 십자가에 지우시고 골고다로 향하셨습니다.
성도가 따를 길은 바로 이 십자가의 길, 섬김의 길 밖에 없습니다.
기름은 자신을 태워 빛을 밝히고 소금은 자신을 녹여 맛을 냅니다.
폭력과 수난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으로 헌신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만이 그분의 증인이 되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미국은 울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미국 전역에 기도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남북 전쟁이후 최악의 국난을 당한 미국의 교회들은 이번 사건속에서 영적인 음성을 들으면서 긴급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지난 14일 국가적 기도와 추도의 날에 파킨슨씨 병으로 거동이 부자연스러운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은 온 미국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이 같은 고난을 주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이 대 재난을 통해 서로가 하나가 되고 새로운 영적 회개의 각성이 일어날 때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비록 세계무역 센터 등 테러를 받은 건물은 무너졌지만 기초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의 기초를 다시 재건합시다.
테러를 당한 이번 주가 외면적으로는 엄청난 슬픔의 주일이지만 영적으로는 새로운 기초를 세우는 놀라운 믿음의 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의 팔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레이엄 목사님은 모든 미국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때에 더더욱 기도하는 성도가 됩시다
출처: 은혜목회정보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