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시간
마르야레나 램브케 지음/ 김영진 옮김 /시공사
김연희
얼마 전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미신 같은 건 믿지 않지만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손없는 날을 알아보고 이사비용도
더 들여가면서 이사를 했다. 그럼에도 시어머니는 점집에 가서 가족들 생년월일을 넣어서 좋은 날을 받아야
하는데 미리 얘기 안 했다고 한마디 하셨다.
그리곤
이사하기 전날 팥과 소금을 가지고 가서 새집에 구석 구석 놓아두라고 하신다. 솔직히 귀찮았지만 혹시나
어머니 말씀을 안 들었다가 생길 후환이 두려워 이사 전날 미리 집안 구석구석에 팥과 소금을 놓아두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머니 말씀을 듣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우리네 어른들이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예측할 수 없는 불행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만들어낸 작은 위안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
레나도 새집으로 이사를 한다. 아빠와 가족들이 함께 지은 새 집에서 레나는 이 행복이 영원할거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레나에겐 비밀은 없다.
그러나 앞집에
사는 비르기트는 비밀이 있다. 지혜로운 할머니는 처음부터 그걸 알아본다.
비르기트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자라면서 억압된 감정을 가지고 그 감정은 엉뚱한 쪽으로 발산이 된다. 물건을 홈치는 것이다.
한번씩 촌철살인을 날려 주시는 레나 할머니의 말씀처럼 새집과 어린애는 비밀이 없는 법이다.
항상 행복하기만 할 것 같던 레나의 가족에게 불행이 닥친다. 아빠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신 것이다. 아빠는 한쪽 몸이 마비가 되고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아야 했다. 아빠가 쓰러지면서 가족들은 모두 힘들어지고 항상 밝고 명랑하던 레나도 조금씩 걱정이 많아진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행복한 가족은 모두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족은 각자 불행에 빠진다’ 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레나의 가족도 그렇다. 엄마는 아빠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 힘들어지고 아빠는 자신의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서 힘들어한다. 레나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가족들이 불행하게 보내는 게 걱정이다. 비록 힘든 상황이지만 크리스마스에는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라던 레나는 비르기트의 도움을 받는다.
가족들의 선물을
홈친 것이다. 그러나 레나는 물건을 홈친 이후로 더 불행해지고 만다.
이제 레나에게도 비밀이 생겼다. 비밀이 생긴 이후로 레나는 달라진다. 말이 없어지고 불안해한다.불행해서 비밀이 생기는 것인지 비밀이 생겨서
불행한 건지는 모르겠다.
레나는 홈친 물건을
산속에 묻어버린다. 그렇게 자신의 비밀을 산속에 묻고 돌아오면서 레나는 며칠을 앓아 눕는다. 다행히 아빠는 몸 상태가 좋아지셨고 친척할아버지와 이웃들의 선물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다.
비밀을 공유한
레나와 비르기트는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는 친구가 된다. 비르기트는 홈친 물건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레나에게 선물로 주고 레나도 엄마가 주신 회색 손가방을 비르기트에게 준다. 그렇게
두 소녀는 고통과 아픔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따뜻함이다. 한 겨울에 난로 앞에 앉아서 할머니가 해주시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내용은 조금 무거울 수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그 속에서 가족들의 사랑과 친구와의 우정은 우리가 어떤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레나의 할머니는 인생은 뜨개질 같은 거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데는 너무 가늘어서 뜨개질하기조차 힘들다가 또다시 보슬보슬 털이 많아지면서 양털에서 금방 뽑은 실처럼
보드라워진다고..그렇지만 이렇게 ‘행복’이란 털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자아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또
그렇기 때문에 좋은 거라고…
행복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건 조금 슬프지만 불행이 영원하지 않다는
건 조금 위로가 된다. 이제 레나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면서 이어지는 털실 같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