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첫눈에 난
내사람인 걸 알았죠
내앞에 다가와 고갤 숙이며 비친 얼굴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답죠
웬일인지 낯설지가 않아요
설레고 있죠 내맘을 모두 가져간 그대
조심스럽게 얘기할래요 용기 내볼래요
나 오늘부터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처음인걸요 분명한 느낌 놓치고 싶지 않죠
사랑이 오려나봐요
그대에겐 늘 좋은것만 줄게요
웬일인지 낯설지가 않아요
설레고 있죠 내맘을 모두 가져간 그대
참 많은 이별 참 많은 눈물
잘 견뎌냈기에
좀 늦었지만 그대를 만나게 됐나봐요
지금 내앞에 앉은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요
두근거리는 맘으로 그대에게 고백할게요
조심스럽게 얘기할래요 용기 내볼래요
나 오늘부터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처음인걸요
놓치고 싶지 않죠
사랑이 오려나봐요
그대에겐 늘 좋은것만 줄게요
내가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영화 '황해'를 보았습니다.
무자비한 살육이 자행되는 무서운 영화였습니다.
관객에 따라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또한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하기에 다채로운 평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과거에 큰 반향을 불러왔던 영화 '추격자' 사단이 이번에도 일을 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연출했고, 하정우,김윤식,조성하 씨가 열연했습니다.
오랜시간, 작업을 함께 했던, 호흡이 척척 맞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하정우 씨의 실감나는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이런 잔혹한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데 대해선
적잖은 우려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더욱이 한 해를 갈무리하며, 감사와 은혜를 생각해 보고, 희망과 내일을 준비해 보는 세모에
이런 컨셉의 영화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조금 무거웠습니다.
물론,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어린 자식을 버리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행인을 아무런 이유 없이 찌르며, 사람의 목숨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거나 경시하는 풍조가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때로는 화가 납니다.
살인을 청부하는 사례들도 점증하고 있는 세태입니다.
여기저기서 무섭다, 두렵다, 걱정스럽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가 등등
긴 탄식과 염려스런 푸념들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어라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입사하려 난리입니다.
인지상정입니다.
경력이 쌓이면 많은 연봉을 받습니다.
직급과 직책이 더 높아지고 커집니다.
그러나 각인의 행복지수가 연봉이나 직책에 꼭 비례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극심한 갈등과 고민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분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분들은 스스로에게 반문하곤 했지요.
"내 삶이 진정 행복한가?"
영화 '황해'도 결국은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데서, 가족이나 지인에 대한 살인을 부탁하고,
누구는 돈만 생긴다면 '살인'쯤이야 푸줏간의 주인이 돼지고기 다루듯,
사람을 향해 거침없이 무서운 손도끼를 휘둘렀고, 섬뜩한 회칼을 연장으로 삼아 도륙을 자행했습니다.
잘 살수록, 경제적으로 윤택해질수록 사람들은 감사하며 마음을 비우는 게 아니라,
더더욱 탐욕으로 얼룩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 영화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통해서 매일 목도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미소짓던 신께서 아마도 진노하실 날이 그리 멀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작품의 극적 전개와 살아있는 리얼리티를 위해 1-2번의 잔혹한 영상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간 중간에 빈번하게 그런 류의 영상으로 스크린을 채워나가는 건 아니지 싶습니다.
은유와 복선, 그 고유한 아름다움이 사라진 현대사회.
깊은 사유와 오랜 기다림으로부터 말미암는 넉먹한 풍미와 멋스런 낭만도
저만치에 밀쳐두고 짐짓 모른 체하며, 돈과 출세를 쫓는 현대인들.
정신과 영혼의 균형이 깨지고, 신체의 밸런스까지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 쌓인 눈을 뚫고 출근하면서
왠 일인지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가 제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얘기할래요, 용기 내볼래요,
나 오늘부터 그댈 사랑해도 될까요,
처음인 걸요, 분명한 느낌"
우리네 삶에서
일정 수준의 건물을 지었으면
그 다음엔 그 건물에 어떤 향기로운 컨텐츠를 채우고, 어떤 감동의 물감으로 덧입힐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듯합니다.
유물론과 형이하학적 사고에 매몰되어 계속해서 건물을 쌓기만한다면 필경 바벨탑이 될 것이고,
인간의 탐욕을 먹고 자라는 그 바벨탑의 끝은 끝내 붕괴와 좌절 뿐입니다.
같은 한국어를 써도 서로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해 극심한 분열로 이어지겠지요.
슬픈 일이고, 때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입니다.
아듀, 2010.
세밑 인사를 건네면서 다시 한번 유리상자의 노래를 음미해 봅니다.
한잔의 구수한 커피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만족스럽습니다.
내년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나누고 섬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좀 더 손해보면서,
내가 먼저 져주면서,
내가 먼저 양보하면서,
높고 푸른 하늘을 자주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조금 늦게 뛴다고 해서 세상의 레이스에서 탈락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랑하는 사랑발전소 지기님들께
진심어린 감사를 전합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엔 더욱 건강하시고, 더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