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시의 전개
김지하-신경림을 이은 시인으로는 최하림(1939-2010), 이성부(1942-2012), 조태일(1941-1999)를 꼽는다.
이들은 1960년 대 중반에 문단에 나와 현실에 비판적인 의식을 밀도 있는 언어로 표현했다.
*최하림의 시는 시적 경험의 설정 자체가 언제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시에는 언제나 춥고 매운 겨울의 이미지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어둠과 추위와 공포와 고통으로 이어지는 시적 정황은 서정적 자아의 표현으로 하였는지도 모른다.
* 이성부는 현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정적이다. 그는 삶의 모순과 현실의 부조리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룬이라고 인식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도 경험이지만 역사적 뿌리에서 원인을 찾아간다.
그러나 이들 두 시인은 1980년 대에 와서는 자기의 신념을 표현하는 대산에, 일상에 대한 자기의 관조를 잘 보여준다.
* 조태일은 연작시 형태의 ‘국토’를 통하여 시적 주제의 폭과 깊이를 확대하고, 심화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모습이다. 작품의 언어는 투박하기 때문에 시적으로 세련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시적 열정으로 역사적 주제들을 담아내려 한다.
그의 시 ‘국토’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민중의 삶의 모습을 시를 통해 자진의 주체적인 모습을 나타내려 하였다.
그가 연작으로 담아낸 것은 서정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서의 반복이 아니다. 민중의 역사적인 삶의 양상과 분단된 국토에 대한 인식을 다양하게 전개하려는 형식일 뿐이다.
*민중시 3편
이성부의 ‘백제형’
잡혀버린 몸
헛간에 눕혀져
일어설 줄 잊었네
고요히 혀 깨물어도
피 흘리는 손톱으로 흙을 쥐어 뜯어도
벌판의 자궁에서 태어난 목숨
그 어머리는 두 팔이 감싸주네
이 목마른 대지의 입술 하나
이 찬물 한 모금
죽은 듯이 다시 엎디어 흙을 볼에 비벼보네
해는 기울어
쫒기는 남편은 어찌 했을까
별들이 내여와 그 눈을 맑게 하고
바람 한 점
그 손길로 옷깃을 여며 주네
어둠 속에서도
눈 밝혀 걸어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귀에 익은 두런거림
먼데서 가까이서
더 큰 해일을 거느리고 사랑을 거느리고
아아 기다리던 사람들의
돌아오는 소리 들려오네
*이성부(1942-2012)는 전남 광주 출신으로 1961년에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으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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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의 ‘한 겨울의 꿈’
소나무 숲이 천둥소리를 내며 넘어지고
밤 폭설이 내리고
꽁꽁 언 내를 건너서 우리들이
산 밑 마을을 가고 있을 때
서둘러 가고 있을 때
짐승들이 울고
더욱 기승스럽게 짐승들이 울고
눈에 묻힌 짐승들이 마침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꿈을 꾸고 있을 때
불안도 굶주림도 그곳에서는 모두
땅에서 솟아오른 무성한 나무 같았지
바람에 흔들이는 나무 같았지
*최하림(1939-2010)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회색수기’로
이후 여러 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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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일의 ‘물 바람 국토 빛 11’
물과 물은 소리없이 만나서
흔적없이 섞인다.
차가운 대로 또는 뜨거운 대로 섞인다.
바람과 바람도 소리없이 만나서
흔적없이 섞인다
세찬 대로 혹은 부드러운 대로 섞인다.
빛과 빛도 소리없이 만나서
흔적없이 섞인다
쏜살같이 혹은 느릿느릿 섞인다.
한 핏줄끼리는 그렇게 만나고 섞이는데
한 핏줄의 땅을 딛고서도
사람은 사람을 만날 수가 없구나
사람이면서 나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구니
*조태일(1941-1999)은 전남 곡성 출신으로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 선박’으로 당선
여러 권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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