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변한다 영등철이 지나 바다가 몸을 바꿔 체온을 올리고 파도가 깃을 세우면 그들은 산란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빠른 물살이 곶부리를 휘어감는 곳 빠른 리듬을 타고 온다 영등 감생이의 시즌이다
바닷물의 출렁거림은 흐름과 갈래를 지녔다 가장 강한 놈은 가장 빠른 곳에서만 논다 릴을 던져라 저기 분류대를 향해 가쁜 숨 참으며 마음속 깊이로 채비를 흘려라 거칠고 빠른 그곳 거기 비늘을 펄떡이는 완강함 릴을 던져라
바다는 몸을 뒤채며 이리저리 본류대를 끌고 움직이지만 큰 놈은 언제나 본류에 있다 본류는 멀고 먼 데서부터 입질은 온다 바다의 마개를 뽑아 올릴 힘으로 나를 잡아채야 한다 팽팽한 포물선을 그리며 발밑에까지 끌려온 마찰저항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언제나 거기 있다 막, 채비를 흘려보냈다
온다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 시의 강점은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꽉 짜인 플롯입니다. 짧은 문장이 연속되고 명령형이 적절히 구사됩니다. 첫 연은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는 짧은 문장인데 끝 연은 "온다"라는 단 두 음절의 문장입니다. 언어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시를 갓 잡힌 물고기처럼 퍼덕거리게 할 수도 있고 배를 뒤집고 죽어 있는 물고기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시는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언어가 지닌 싱싱한 힘을 십분 느끼게 해줍니다. [감성돔을 찾아서]는 언어의 선택과 배치가 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소재와 주제가 그다지 새롭지 않을지라도 표현을 잘만 하면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감칠맛 나는 표현은 치밀한 묘사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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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海, 江華의 밤에 ㅡ윤성학
먼 바다와 가까운 바다가 내통하는 소리를 녹취하려 야음에 몸을 얹었습니다 삼별초 항쟁비 뒤 산그림자 짙은 곳 안주머니 깊숙이 감춰온 녹음기를 틀었습니다 바다는 밤을 새워 한 순간도 그치지 않고 교신합니다 먼 바다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마민족의 땀냄새도 사령관의 파이프 냄새도 잊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바다는 끝없이 민물에 간을 하여 멀리 흘려보내느라 바빴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아도 늘 어디론가 가고 또 밀려오는 바다처럼 시간도 그러합니까 나는 어디에서 오고 있습니까 팔백 년 후에 나를 닮은 청년은 이 자리에 서서 무엇을 생각합니까 한데에서 오래 떨고 있는데 새벽별이 하나 빛나고 뭍으로 돌아와 녹음기를 되감아 틀어보았습니다 나는 한밤 동안 안주머니에서 출렁이던 흐느낌만 담아서 돌아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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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랑권 전성시대
권법 없이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는 사람 수만큼의 권법이 있다 익히더라도 강한 것을 익혀야 산다 나는 당랑권을 택했다 매미를 잡아먹는 사마귀의 전술이다
상대와 마주섰을 땐 늘 중심을 뒤에 두고 정면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라 그래야 혈을 지킨다 사각으로 돌다가 연속적인 단타로 급소를 파고든다 그의 반격을 받아흘리며 쉼없는 상하연타를 구사해 승부를 몰아간다 나는 여기서 당랑권을 익혔다 강하게 파고들었다가 빠르게 빠져나오는 고수들을 보며 익힌 권법이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이것이 당랑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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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ㅡ 윤성학
미국을 움직이는 힘은 20달러를 내고 야구장에 가는 중산층이며 미국이 세계를 움직이므로 결국 프로야구가 세계를 움직이는 결정적인 힘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면,
봉황대기 고교야구 대회에 출전하려 상경해 동대문구장 옆 여관에 짐을 풀고 늦은 밤까지 골목에서 배팅 연습을 하던 까까머리들이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일까 조금씩 닳아 없어져갈 그들의 지문을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김치찌개집 신발장에 놓인 고단한 신발들의 축에서 닳아 없어진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돌짝밭을 고르던 호미의 닳아 없어진 쇠들은 문명 이래 얼만큼이며 그것들은 지금 어디에 가 있을까를 깎을 필요도 없이 늘 뭉툭해 있던 엄마의 손톱에서 닳아 없어진 각질 세포들은 어디에 묻어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어디로 갔으며 지금 어디에 있을까 정말 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지구를 이렇게 둥글게 다듬어놓은 힘 천천히, 쉬지 않고 지구를 굴리는 힘
—《현대시》2009년 7월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데미안 ㅡ 윤성학
시간은 알을 깨고 나온다
가스레인지 모서리에 계란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을 깨 밖으로 나왔다 시간은 자신이 낳은 알을 쪼고 있었다
琢琢
계란이 가장 맛있는 프라이로 되는 시간은 2분이며 세상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이분법이지 헷세가 탁자 위에 계란을 돌리며 말했다
돌던 계란을 잡았다가 놓았을 때 그대로 탁, 멈추면 삶은 알 멈추는 듯 다시 돌기 시작하면 날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가 슬픈 것은 관성 때문이었어 헤, 헷, 헷세가 말을 더듬었던 것도 같은데
관성이 삶에 작용한다는 것은 그 삶이 삶겨지지 않은 까닭이므로 젊은 시인이 슬픈 것은 관성 때문이 아니라 네가 가진 계란은 죽었니 살았니 묻는 이분법 어느 날부턴가 누군가 묻지 않아도 그 물음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현대시》2010년 12월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쌍칼이라 불러다오 (외 2편)ㅡ 윤성학
쌍칼,
그의 결투는 잔혹하다 어지간히 무거운 상대라도 높이 들어올리면 전혀 맥을 추지 못한다 지게차의 작업은 그렇게 냉정하다 일말의 동요도 없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상대의 중심 깊숙이 두 개의 칼날을 밀어넣는다 아무 표정 없이 들어올린다 그의 무게중심을 흩뜨리지 않는다 그를 자신보다 높이 추켜올린다
쌍칼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완벽한 전술이다 그를 오래 보고 있으면 결투의 원리를 알 것 같다
시멘트 포대를 지게차가 들어 올리는 장면을 보았을 때 노동은 아름답지만 허무한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노동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된 것이다. 고된 노동이 허무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고된’이라는 낱말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노동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도 하고 형편없이 망가뜨리기 노동의 ‘고됨’에서 피곤이 아니라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언어의 쌍칼로 삶을 깊숙이 찔러 밑바닥에서부터 천천히 끌어올리는 시인의 노동은 고된가 그렇지 않은가?ㅡ조재룡 (문학평론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열병합발전소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함구령이다
늦은 밤 성산다리를 넘어 맞닥뜨린 발전소는 거룩했다 뜻이 높은가 굴뚝이 높았다
예의 바르게 발언권을 청하는 오른팔이다 중생대부터 너를 그리워했다고 안에서 타는 말들을 정연하게 풀어놓아본 사람은 안다 나와 당신도 언젠가 화석연료가 되어 오백만 년 후의 밤하늘에 울려 퍼질 것이라고
말은 말이 되지만 말이 되지 못한 것이 열병이 된다 열병과 열병이 모이고 열병이 뭉쳐 저리 타오른다 굴뚝은 열병을 장전하여 쏘아 올리는 포신이다 말을 만들려고 더듬거리는, 내 입술을 가로막는 너의 검지손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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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력벽(耐力壁)
실평수 17.15평의 생에 기둥이 하나 서 있다 기둥은 안으로 들어와서 벽이 되어 서 있다
내 안으로 들어와 벽이 된 것 조금만 더 작았더라면 삶의 전용면적이 더 넓어질 수 있었을 것을
공연히 평수만 차지하고 있다 이 벽 이마로 쿵쿵 두드려본다 내 것이 아니면서 버리지 못했던 그리움들 잡아두려 했으나 나를 떠난 눈물들 일상의 문장 안에 자꾸 늘어만 가는 괄호들 이 자들을 밖으로 다 들어낼 수 있다면
그런데 당신은 어쩌자고 이것이 여태 내가 걸어온 내력이라 말하는가
—시집『쌍칼이라 불러다오』(2013)에서 ------------
나무남자 ㅡ윤성학
나무가 돼야겠다 다음 생이 오기 전에
눈 쌓인 숲길에 하얗게 벗고 서서 영하를 견디는 눈부신 은사시는 말고 누군가를 멀리 보낼 때 언덕에서 내게 어깨를 빌려 주었던 느릅나무도 말고 약수터에서 물 마시느라 고개를 들면 이마에 그늘을 장만해 주는 상수리도 말고 아프게 죽은 조선의 민씨 여인이 아까워 백 년을 울고 서 있는 느티나무도 아니라
나무가 돼야겠네 뿌리에 줄을 친친 감고 4.5톤 트럭에 묶여 누운 채로 흔들리며 뒤채며 의금부로 압송되던 혁명가처럼 머리채를 끌리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어디 심어질지 알지 못하네 알 수 없어 애태우며 마음 쓰며 머물지 못하고 매일 어디론가 가는 나무 길 떠나는 나무가 돼야겠네
—《시작》2013년 가을호 ------------
내외 ㅡ윤성학(1971~ )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오붓한 산길을 조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숨길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에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 내외는 남녀 사이에 서로 피한다는 뜻도 있지만 부부라는 뜻도 겸하고 있다. 서로 피함으로써 부부로 통하는 게 내외인 셈이다. 여기서 안팎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 둘 사이에 감질 맛 나는, 생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거리가 있으면 된다. 신경선이 바짝 조여진 이 거리, 온 우주가 내통하기에 적당한 그 1㎝를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손택수 (시인) “너무 멀지도/너무 가깝지도 않은” 관계.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거리. 흰 색과 검은 색의 중간색. 서늘하면서 뜨거운 관계. 그게 내연(內緣)의 관계일까, 내통(內通)의 관계일까. 눈이 밝은 사람에게는 보인다. “1㎝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이. 푸른 빛 풋고추가 붉은 빛 태양초로 이르기까지는 보랏빛의 단계를 거쳐야 된다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세상에는 푸른 고추와 붉은 고추 밖에 없다고 생각했지, 그 서툰 젊은 시절에는. 좌와 우, 중간색이 사라지고 있는 이 극단의 세상이 너무 두렵구나. 그런데 가만! “내외”란 저 제목은 '내외하다 란 말의 “내외”인가, '부부'란 말의 “내외”인가. 절묘하구나, 그 말의 “간극”ㅡ장옥관 (시인)
일단은 저 예쁜 내외처럼 짝을 잘 만나고 볼 일입니다. 보일락 말락 들릴락 말락 그래서 들킬락 말락 저 말락 내외처럼 절로 벌어지는 거리 안에서 서로에게 자유로워지고 볼 일입니다. 이를테면 초겨울 살얼음판에 살짝 줄 간 순정한 실금 같은 거 있잖아요, 틈 같은 거 있잖아요, 세상에 이보다 더 빛나는 눈금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 옛날 집들이 담을 사이에 뒀듯, 그 옛날 연인들이 담장 아래 발길을 못 돌렸듯, 오늘을 살고 오늘을 사랑해야 할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흙과 벽돌로 단단히 다진 간극이라는 이름의 담벼락일지도요.ㅡ 김민정(시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편백나무 베개ㅡ윤성학
편백나무 베개를 베고 잔다 요즘 편백나무 베개를 베고 누워 잠들기 전 편백나무 베개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눈을 감고 편백나무 베개를 베고 있으면 그런데 편백나무가 아닌 다른 것들이 자꾸 떠오른다 편백나무 베개에 놓인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편백나무 조각들이 바스락거리고 편백나무 향이 먼 데서부터 찾아오고 편백나무의 이 향은 누군가와 함께 걸었던 편백나무였는지 송백나무였는지 화백나무였는지 측백나무였는지 편백나무와 같은 교목이 길게 늘어선 길에서 맡은 향기다 편백나무 향이라고 믿는 향기가 어쩌면 편백나무 향이 아니라 누군가의 체취일지도 모른다 편백나무 욕조에 앉아 온천을 하던 때의 그 향기는 편백나무 향이 아니라 누군가의 젖은 머리칼 향기일지도 모른다 편백나무는 불볕도 한설도 상록의 몸으로 서서 견디는데 편백나무 베개를 베고 누운 자는 왜 자꾸 몸을 바꾸는지 편백나무 베개를 베고 누운 자의 기억은 왜 점점 닳아지는지 편백나무 베개를 베고 누울 때마다 편백나무에 대한 시를 쓰겠다고 생각하지만 편백나무 조각들처럼 바스락거리며 오래 잠들지 못한 채 편백나무 시는 좀처럼 써지지 않고
—《유심》2015년 3월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소금 시 ㅡ윤성학 (1971~ )
로마 병사들은 소금 월급을 받았다 소금을 얻기 위해 한 달을 싸웠고 소금으로 한 달을 살았다
나는 소금 병정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월급을 받는다 소금 방패를 들고 거친 소금밭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소금기를 더 잘 씻어내기 위해 한 달을 절어 있었다
울지 마라 눈물이 너의 몸을 녹일 것이니
...............................................................................고대 로마에서는 병사들의 급료를 소금으로 지불했다고 한다. 급료를 뜻하는 영어 단어‘salary’나 소금으로 급료를 받던 병사 ‘soldier는 모두 소금을 가리키는 라틴어 ‘salarium’에 어원을 두고 있다. 소금은 금의 가치와 엇비슷해 ‘하얀 금’ ‘작은 금’이라 불렸던 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마태복음 5:13)라는 구절도 경제적인 환산가치를 내포하는 표현이었던 셈이다. 상품으로서의 내재가치를 지닌 소금, 조개, 모피, 금, 은 등이 화폐 역할을 하다가 그 가치를 법으로 보장해 주는 돈이나 수표 등의 신용화폐가 사용된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다. 최근엔 가상(전자)화폐의 사용도 늘고 있다. 시인은 소금이 돈이었던, 상품의 실질가치(사용가치)가 교환가치(시장가치)를 결정했던 원시시대의 패러다임에 주목한다. 또한 소금이 우리 ‘몸 안의 소금기’, 즉 땀과 노력에서 나오듯, 돈이란 마땅히 정직한 노동에서 나와야 한다는 반자본주의적 발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돈 벌다’의 다른 표현으로 시인이 사용하고 있는 싸우다, 내주다, 버티다, 절다, 울다, 녹다 등의 술어가 비유적 표현만은 아닌 셈이다. 실은 소금이 우리를 먹여 살리고, 우리는 우리 월급에 매일매일 우리 안의 소금을 녹여 넣으며 산다. 고대 수메르나 이집트에서는 맥주를 월급으로 지급했다고 한다. 맥주의 도수와 양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구분되었고 취해 토할 수 있는 자가 권능을 가진 자였다니, 나는 ‘맥주 시’나 한 편 써야겠다. “하루를 내주고 맥주 한잔을 얻노니/ 들이켜라, 한 잔이 네 안의 소금기를 씻어내고 또 한 잔이 너의 눈물을 토하게 할 테니” 운운. 정끝별 (시인, 이화여대 교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 가기 전에 ㅡ 윤성학
수백 명의 재두루미들이 솟구쳐 오릅니다 비밀경찰의 체포조가 지척에 다가온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봄이 포위망을 좁혀오면 겨울새들은 처소를 옮깁니다 나는 그들이 추운 곳으로 왔다가 다시 추운 곳을 찾아 떠나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은회색의 날개들이 돌개바람을 만난 듯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습니다 한참이나 색종이 뒷면처럼 반짝이더니 떠오르면서 차례로 잿빛으로 변하는 것은 날개 안쪽에 어둠을 감추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너무 오래 떠나 있어 여기가 망명정부인지 본국인지 그들은 이제 잊은 듯도 했습니다 수백 번 윤무輪舞를 마치고 몇 개의 무리를 지어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너무 오래 떠나 있어 이것이 떠나는 것인지 돌아가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이가 철새들뿐은 아니었습니다 떠나기로 마음먹고도 오래 맴도는 것을 미련이라 부르던가요
모두 떠났습니다 추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월간 『현대시』 2014년 10월호 발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공손
윤성학
호각이 울리고 프리킥이 선언되자
파울을 저지른 자들 억울하다며 길길이 날뛰다가 억울한 자들이 그러하듯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서서 뭐 대단한 거라고 낭심 위에 공손히 손부터 올려놓았다*
——— * 고영민의 시 「공손한 손」에서 빌려옴.
—《문장웹진》2015년 8월호 ------------- 나무남자/ 윤성학
나무가 돼야겠다 다음 생이 오기 전에
눈 쌓인 숲길에 하얗게 벗고 서서 영하를 견디는 눈부신 은사시는 말고 누군가를 멀리 보낼 때 언덕에서 내게 어깨를 빌려 주었던 느릅나무도 말고 약수터에서 물 마시느라 고개를 들면 이마에 그늘을 장만해 주는 상수리도 말고 아프게 죽은 조선의 민씨 여인이 아까워 백 년을 울고 서 있는 느티나무도 아니라
나무가 돼야겠네 뿌리에 줄을 친친 감고 4.5톤 트럭에 묶여 누운 채로 흔들리며 뒤채며 의금부로 압송되던 혁명가처럼 머리채를 끌리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어디 심어질지 알지 못하네 알 수 없어 애태우며 마음 쓰며 머물지 못하고 매일 어디론가 가는 나무 길 떠나는 나무가 돼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