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되니
추석이 되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제가 어렸을 적 어느 추석에, 굉장히 고즈넉해서 되게 이상했던 날이 생각납니다. 추석답게 무척 날도 가을볕이 좋은 날이었는데 집안이 너무도 조용했습니다. 제가 5남매인데 그 당시에 누나 형들은 시집 장가를 갔고, 아마도 저나 아니면 그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던 작은 형과 둘만 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해서 출가한 형제들도 당시 목회자라는 특수한 상황이나 또는 시집의 형편 등으로 추석이지만 집에 귀성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가 월남하신 분이었고 어머니 고향은 멀어도 너무 먼 남쪽이어서, 정말 추석 명절인데 평일 같이 조용한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결혼하면 자식을 한 타스 낳아야 하겠다고요. 축구팀을 만들 정도로 낳아야 하겠다고요. 추석 명절인데, 날도 너무 좋은데, 집에서 아무런 음식 냄새(?)도 안나고 조용하니, 더 적막하게 느껴졌던 그런 추석이 몇 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저까지 모두 결혼을 하면서 추석이면 부모님 댁으로 모여 북적대는,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죠. 해마다 설날이나 추석이면 이제 꽤나 소란하고, 어머니도 이런저런 음식을 장만하느라 부산하고, 집안에 전 냄새도 좀 나고, 그래서 명절 같은 명절을 보냈죠.
막둥이였던 저는 항상 전날에 미리 가서 부모님 댁에서 잠을 잤고 막내 며느리인 처는 전날부터 명절 준비를 했죠. 그래서, 그 유명한 일화도 나왔습니다. 다른 형수님은 명절 당일에 오니까 당연히 옷을 잘 차려입고 왔는데, 집사람은 전날에 와서 자고 계속 일을 하느라 츄리닝 바람으로 있으니, 다빈이가 와서 엄마에게 귓속말로 “엄마도 화장 좀 하라”고 했던 추억. 그렇게 한동안 온 가족이 명절이면 시끌벅적하게 모여, 어린 시절에 적막했던 명절을 잊혀져 갔죠.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가시니, 다시 많이 조용해졌습니다. 어머니 솜씨가 듬뿍 들어간 겉절이 김치와 함께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 앞에서 어머니가 눈물 콧물로 감사 기도를 드리던 모습도 아득해졌고요. 이제 아버지도 가셔서 형제자매가 명절에 모일 일도 사라졌습니다. 물론 형제자매가 각각 부모로서 그 자식들과 손주들과 명절을 보내겠지만요. 이제는 내가 부모님이 되어 자녀들과 추석을 세는 나이가 되었지만, 왠지 이건 진짜 명절이 아닌 것 같은, 어떤 묘한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이게 인생이겠지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그리운.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서글픈. 명절에서 인생의 본질을 느끼게 됩니다☺
(2024년 9월 15일 주일 주보에서)
▲ 2003년 설날에 자녀 세대별로 부모님께 세배하기 전에 일어난 어떤 웃기는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