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부魏府 흥화興化 존장存獎 선사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최崔 선사 처소에서 왔습니다.”
“최 선사의 할을 가져왔는가?”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최 선사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로구나.”
스님이 할을 하니, 대사가 때렸다.
대사가 대중에게 말했다.
“나는 그저 복도에서도 할을 하고,
뒷마루에서도 할을 하는 것을 들어왔다.
여러분, 그대들은 맹목적인 할이나 혼란스런 할은 하지 말라.
설사 흥화(나)에게 할을 해서 하늘 중간에 머무르게 하고,
다시 두드려 떨어뜨려서 기절을 시키고 싶더라도,
흥화가 소생하면 그대들에게 도가 없다고 하리라. 무슨 까닭인가?
나는 자주 비단 장막 안에서 진주眞珠를 그대들에게 뿌려본 적이 없기 때문이니,
허공 속에서 혼란스럽게 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대사가 유나維那 극빈克賓에게 말했다.
“그대는 오래지 않아 도를 제창하는 스승이 되리라.”
극빈이 대답했다.
“그러한 보임의 무리[保社]에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알고서 들어가지 않는 것인가,
알지 못해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인가?”
“전혀 그런 것과 상관없습니다.”
대사가 문득 때리고서 말했다.
“극빈 유나는 법의 싸움[法戰]에서 이기지 못했으니,
벌금 5관貫과 한 대중에게 음식을 베풀라.”
이튿날 대사가 손수 대중에게 말했다.
“극빈 유나는 법의 싸움에서 이기질 못해서
벌금 5관貫을 물고 대중에게 음식을 베풀 것이오.
그러므로 음식을 먹지 못할 것 같으면 얼른 절 밖으로 나가시오.”
어떤 스님이 물었다.
“국사國師가 시자를 부르신 뜻이 무엇입니까?”
“한 소경이 뭇 소경을 이끌고 가는 것이니라.”
대사는 가끔 “아무개야” 하고 스님을 불러서,
그 스님이 “네” 하고 대답하면, 이렇게 말했다.
“점고[點]하면 도달하지 못한다.”
그대가 거기 있다고 점고(인정)하면
“나와 그대는 완연히 다르므로
그대는 나에게 이르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 따로 한 스님을 불러서 그 스님이 “네”라고 대답하면,
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도달했으면 점고하지 말라.”
대사는 나중에 후당後唐의 장종莊宗의 스승이 되었는데,
어느 날 장종이 대사에게 말했다.
“짐朕이 대량大梁을 손에 넣으면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밝은 구슬을 하나 얻었는데,
아무도 값을 정하지 못하오.”
대사가 말했다.
“폐하시여, 구슬을 보여 주십시오.”
황제가 손으로 복두(幞頭:머리에 쓰는 관) 끈을 풀었다.
대사가 말했다.
“군왕의 보배를 누가 감히 값을 매기겠습니까?”
[현각玄覺이 말하기를 “흥화는 동광(同光:장종 때의 연호)을
수긍한 것인가, 동광을 수긍하지 않은 것인가?
수긍했다면 흥화의 안목은 어디에 있었을까?
만일 수긍하지 않았다면 허물이 어디에 있었으랴?”라고 하였다.]
대사가 입멸한 뒤에 광제廣濟 대사라 시호를 내렸고, 탑호는 통적通寂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