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처럼 새꿈 공원을 찾았다.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처절하게 떨어지는 봄날이지만, 날씨는 이미 여름에 접어들었다.
곳곳에 모여앉아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구멍가게 입구에 이준기와 이남기씨가 보였다.
다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는데, 이준기가 “형님! 뭘 드시고 싶냐?”며 식혜를 하나 사 주었다.
오래 전 ‘버려진 사람들 초상전’에 내걸었던 사진을 전해주려 갔으나 문이 걸려 방문 앞에 두고 왔는데,
하필이면 병원 간 시간에 들렸다며, 고맙다는 인사로 사준 것이다.
이남기씨도 너무 오랜만이라 그동안 왜 그렇게 나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나와도 별 재미가 없어 티브이나 보며 사는데, 뭐 좋은 일 없냐?”며 되묻는다.
며칠 전에는 티브이에 빠져 라면 끓이려고 불 피워 놓은 것도 잊어버려
큰일 날 뻔했다는 하소연도 했다.
쪽방 화재는 그만의 일이 아니라 수시로 발생하는 일상사다.
단지 다른 곳으로 옮겨 붙지 않아 조용하게 끝나지만, 쪽방 사람들은 불을 안고 산다.
편하게 발 뻗고 눕기도 힘든 좁은 방에서 불을 피워 밥 해 먹는다 는 것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인화성이 높은 온갖 잡동사니로 둘러싸인 비좁은 공간이라 불이 번지기 안성마춤이다.
다들 연세가 많아 동작이 굼뜬데다 이씨처럼 티브이 화면에 빠지다보면
불 피워 놓은 것 자체를 잊어버리는 치매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지난달에는 동자동 쪽방건물 3층에서 불이나 한 명이 죽고 한 명은 화상을 입는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그 당시 아산에 내려가 있을 때라 보지 못했지만, 휴대용 가스버너에서 불이 옮겨 붙었다고 한다.
주변에 살던 주민 15명이 긴급 대피하여 다른 쪽방에서 밤을 지세는 일대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 후로 층마다 소화기를 비치하는 등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때 뿐이다.
화재가 무서워 밥을 굶을 수야 없으니, 방에서 불을 피우지 않을 수 없다
쪽방 층마다 공동주방을 만들어 방안에서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다.
하기야! 쪽방에 하자가 생겨도 수리조차 해 주지 않는 악덕 건물주들에게
층마다 공동주방을 만들어 달라는 것은 하늘에 집지어 달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최선의 방법은 동자동 공공개발을 빨리 추진하는 길 밖에 없다.
30년 이상 노후화된 건물 70여개에 900여명의 빈민이 오밀조밀 모여 사는
동자동 쪽방촌 건물주들의 갑 질은 날이 갈수록 도를 넘고 있다.
3년 전 정부에서 공공재개발을 공표했으나 악덕건물주들 반발로 아직까지 첫발도 못 떼고 있다.
건물주들은 철거될 건물이라는 핑계로 물이 새거나 누전 등 건물에 하자가 생겨도
일체의 개선 없이 월세만 꼬박꼬박 현금으로 받아 챙긴다.
정적은 밑구멍까지 샅샅이 파헤져 끝장을 보는 무시무시한 검찰정권이
빈민들의 간을 빼먹는 이런 악덕 탈세자들의 만행은 왜 모른 척 눈 감아 주는지 모르겠다.
천만다행인 것은 서울시에서 실시한 하루 한 끼의 동행식당 사업으로
밥해 먹는 일이 반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방에서 불을 피우지 않을 수가 없다.
당장 쪽방촌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건물주들을 강제하지 못한다면 정부에서 건물 층마다 공동주방을 설치해 줄 수 밖에 없다.
그 보다는 동자동 공공개발을 강력하게 밀어부치는 것이 최상의 해결책이다.
민생! 민생! 제발 말로만 노래하지 마라. 이것이 바닥 민생의 실체다.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