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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위수명(見危授命)
위급함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나라의 위태로운 지경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을 말한다.
見 : 볼 견(見/0)
危 : 위태할 위(㔾/4)
授 : 줄 수(扌/8)
命 : 목숨 명(口/5)
(유의어)
갈충보국(竭忠報國)
견위치명(見危致命)
대의멸친(大義滅親)
멸사봉공(滅私奉公)
선공후사(先公後私)
진충보국(盡忠報國)
나라의 위기를 보면(見危) 목숨을 던질(授命) 각오를 해야 한다. 너무나 숙연한 이 성어를 보면 제일 먼저 안중근(安重根) 의사를 생각한다.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고 1910년 3월 26일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하기 전 고국의 앞날을 걱정하며 쓴 遺墨(유묵)의 글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목숨을 던지라고 극단적으로 말했지만 나라 위기가 아니라도 자기 앞에 닥친 일이 정의로운 일인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 아닌지 먼저 생각하고 그만큼 적극적으로 대처하라는 말이다.
견위수명은 공자님 말씀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편에 견리사의(見利思義)와 함께 등장한다. 제자 자로(子路)가 완전한 인격자에 대해 묻자 지혜, 무욕, 용기, 다재다능을 갖추고 예악으로 교양을 겸비해야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전 약속일지라도 잊지 않고 실천한다면, 그것이 완성된 인간(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이라고 답한다.
공자는 옛날의 성인에 미치지 못하지만 최소한 세 가지의 요건만 갖춘다면 완성된 인간이라 할 만하다고 기준을 낮췄던 것이다.
또 자장(子張)편에는 글자 한자씩 바꿔 ‘선비는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치고, 이득을 보면 의를 생각한다(士見危致命, 見得思義)’로 나오는데 같은 뜻이다.
눈앞의 위기에 그것을 헤쳐 나가야 할 사람은 바로 나라는 책임감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임이 빤한 작은 조직에서는 그럴 사람이 있겠지만 큰 조직일수록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안중근 의사의 솔선수범, 이 글귀가 더 빛났다. 위기상황일 때 진정한 리더십, 지도자의 역량이 확연히 드러난다.
견위수명(見危授命)
견위수명(見危授命)이란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나라의 위태로운 지경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을 말한다. 견위치명(見危致命)이라고도 한다.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나온다. 자로(子路)가 성인(成人)에 대해 묻자, 공자(孔子)는 지혜(知慧), 청렴(淸廉), 용기(勇氣), 재예(才藝), 예악(禮樂)을 두루 갖춘 사람이 성인(成人)이라고 대답(對答)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그러나 오늘날의 성인(成人)이야 어찌 반드시 그러하겠는가? 이로움을 보면 대의(大義)를 생각하고, 위태(危殆)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오래 전의 약속(約束)을 평생(平生)의 말(약속)로 여겨 잊지 않는다면, 또한 마땅히 성인(成人)이라 할 수 있다.
공자(孔子)는 여기서 지금의 성인(成人)은 옛날의 성인(成人)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위의 세 가지 요건(要件)만 갖추면 성인(成人)이라 할 만하다는 뜻으로 이른 것이다.
이 문장(文章)에서 유래(由來)한 견위수명(見危授命)은 이후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도 아낌없이 바칠 줄 아는 충신(忠臣)을 일컫는 용어(用語)로 굳어졌다. 흔히 견리사의(見利思義)와 함께 견리사의 견위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으로 어울려 쓰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1972년 보물(寶物) 제569호로 지정된 동아대 박물관(博物館)에 보관(保管)중인 안중근(安重根)의사(義士) 유묵(遺墨) 20점 중 제6호가 바로 견리사의견위수명(見利思義見危授命)이다. 따라서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치명(見危致命)은 뜻이 통하는 말이다.
나라나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희생(犧牲)한다는 뜻의 한자성어(漢字成語)는 여럿 있다. 공적인 것을 앞세우고 사적인 것을 뒤로 한다는 뜻의 선공후사(先公後私), 국가의 대의를 위해 부모 형제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의 대의멸친(大義滅親), 사사로운 것을 버리고 공을 위해 봉사한다는 뜻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충성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를 갚는다는 뜻의 진충보국(盡忠報國), 갈충보국(竭忠報國) 등이 있다.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수명(見危授命)
논어 헌문편에 공자와 그의 제자 자로의 대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가 그의 스승 공자에게 성인의 품격은 어떤 조건이어야 할 것이냐는 질문에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수명(見危授命)이라고 한데서 유래한 고사성어(故事成語)다. 사람이 눈앞의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을 바치라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는 이 고사성어를 좌우명처럼 마음에 새기며 살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유묵으로 남겼다고 한다. 이것을 찾아내어 석비에 새겨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 새워짐으로써 글귀의 소중함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견리사의(見利思義)와 반대되는 말로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있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갖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말이다.
필부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하지 못한다. 관포지교(管鮑之交)에서 포숙아가 그의 친구 관중의 아량을 칭송하는 말에서도 필부의 태도를 언급한다. 둘이 함께 전쟁에 나갔지만 포숙아는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도망쳐 왔지만 관중은 그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늙은 부모를 봉양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해서 관중의 덕스러움을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직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도 처와 어린 자식들을 돌봐야하기 때문에 조그마한 비리쯤은 어쩔 수 없다고 얼버무리고 살아간다. 형제간 유산다툼으로 칼부림으로 발전했다는 소식이 늘어나고 있고, 자식이 부모의 재산을 탐하여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친구 간 거래는 이미 옛말이 되었다. 전쟁터에서 친구를 두고 뒤로 물러서고, 물질의 문제로 부모, 형제를 죽이고, 그리고 친구가 없어졌다.
취업준비생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공무원이라는 대답이 대부분 이였다고 하고, 이러한 대답을 반영하듯이 공무원시험의 경쟁률이 평균 100대 1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선발된 공무원들의 성적이 뛰어날 것이라는 것은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들이 안중근 의사와 같은 좌우명을 가지면 우리사회는 일취월장(日就月將)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 중 일부는 견물생심(見物生心)하는 사례가 많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정을 차치하고 그 이후 대통령들이 자신이나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비리로 구속됨으로써 권력의 상층부가 부패가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상층부의 문제뿐 아니라 하위직의 부패는 끝을 모르고 일어나고 있어 국민을 더욱 실망시키고 있다. 공무원의 부패를 막기 위하여 기관별 청렴도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고위공무원들의 재산을 등록하고 공개하고 있지만 효과는 의문이다.
공직자의 공직의 태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덕목중의 하나가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이어야 한다. 더욱이 선출직 공직에 나가려는 사람은 이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들의 대부분은 기관을 책임지는 장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감시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적개념이 없이 견물생심 한다면 국가는 어떻게 되겠는가?
남미, 동남아,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황을 본다면 우리나라의 장래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민들이 그들을 판단할 때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수명(見危授命)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최소한 그들을 판단할 때 첫째는 견리사의 하는 삶을 살아 왔는지 살펴야 한다. 그들이 공적개념에 대한 생각이 없이 사적이익을 탐하면 국가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재산형성 과정이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유산이 받지 않았음에도 많은 재산을 보유했다면 분명문제가 잇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견위수명이다. 선출직에 나가려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면 희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때 씁쓸함을 지을 수 없다. 그들이 자신을 희생한 사례는 있는 것인지 살펴야 한다. 자신의 희생 없이 봉사운운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국가, 사회, 그리고 자신이 처한 집단 안에서 희생의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새마을 회장을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장, 조합장, 지방의원, 도의원, 시장, 군수, 도지사, 광역시장, 그리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선거로 공직을 부여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들을 평가할 때 가져야할 분명한 기준은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수명(見危授命)이어야 한다.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수명(見危授命)
나라와 사회가 혼란스러운데 자신만 호의호식하는 것은 지식인이라 할 수 없다. 사회 정의가 죽었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지식인으로서 마땅히 출세라는 그릇된 길을 걷기보다는 정의와 도의를 세우고자 힘쓰고 애써야 한다.
일찍이 안중근 장군은 이익을 보거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먼저 생각하고,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친다는 신념을 가진 분이었다.
견리사의(見利思義)와 견위수명(見危授命)은 논어, 헌문편에 자로(子路)와 공자의 대화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지만, 우리에겐 안중근 장군의 유묵으로 인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삶은 견리사의하고 견위수명했다. 그는 나라가 위기였을 때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지 않았으며, 가산을 처분해민의 계몽과 교육에 전념했다. 나아가 국권이 위기에 처하자 이토의 15가지 죄악을 물어 척살한 의사(義士)였다.
우리는 살면서 크고 작은 이익을 앞에 두고 갈등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는 것부터 무슨 옷을 입을 것인가와 같은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어떤 전공을 공부하고, 무슨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고뇌한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소년과 학도들이 나라를 위험에서 구하려고 자원입대했다. 견위수명한 소년병들과 학도병들이 강토를 지키고 이슬처럼 사라졌다. 이런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요즘 뉴스의 많은 내용이 견리사의보다 견리사득(見利思得)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까짓 부귀와 영화를 닭벼슬처럼 가벼이 볼 수 있는 지혜로움을 배우고 습득해야 할 텐데, 많은 사람이 작은 이득에 눈이 멀어 일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함정에 빠지고 있다. 사회 정의가 무너지고 혼란하면 결국 그 사회는 망한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 19사태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인류의 존재를 근원적으로 위협하는 악성 전염병이 우리를 위축시켰지만, 위기는 기회이기도 했다.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이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사선으로 뛰어든 헌신적인 행동을 보였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희망이며 자랑이자 견위수명을 실천한 것이다.
망우당 곽재우는 스승인 남명 조식처럼 명리(名利)를 쫓지 않는 처사형 선비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0일 만인 4월 23일 가솔(家率) 10여 명으로 의병을 일으켜 곧 50여 명에서 2000여 명까지 확보한다. 그는 천강홍의 대장군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유격전을 전개한다.
경남 의령을 거쳐 호남으로 진격하려는 왜군을 정암진 전투에서 전멸시키며 왜군의 내륙 진격과 보급로를 차단한다. 육지에서 최초의 승리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대단하다. 이로써 경남 창녕, 의령은 물론이고 김해와 성주까지 안전하게 됐다. 곽 장군은 견리사의 견위수명의 모범이었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을 보여줬다.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전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충무공 이순신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지만, 남은 전력은 겨우 12척의 판옥전선뿐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이 충무공은 “신에게는 아직 전선 12척이 있습니다”라면서 수군을 폐하고 육군에 복속하라는 임금 선조의 명을 되돌린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겁먹은 부하들을 수습해 필사즉생의 각오로 적을 이길 전략과 전술을 수립한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앞장서서 싸운 이순신은 견위수명을 실천한 최고 지휘관이었다.
우리는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6‧25사변 같은 참사를 기억하며 항상 주변국의 야욕을 징비(懲毖)해야 할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주변국의 이해관계를 살피며 우리도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 감정으로만 역사를 공부하고 국제관계를 안일하게 보면 곤란하다. 도산 안창호의 무실역행, 곽재우, 안중근 그리고 이순신의 견리사의 견위수명 같은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나라의 힘을 기르고 굳건히 하는 데 우리의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
▶️ 見(볼 견, 뵈올 현)은 ❶회의문자로 见(견)은 간자(簡字)이다. 안석궤(几; 책상)部는 사람을, 目(목)은 눈을 뜻한다. 見(견)은 눈의 기능으로, 보는 일을 말하는데, 이쪽으로 부터 보는 것을 視(시), 저쪽으로 부터 나타나 보이는 것을 見(견)으로 나누어 썼다. ❷회의문자로 見자는 ‘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見자는 目(눈 목)자와 儿(어진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다. 見자의 갑골문을 보면 人(사람 인)자에 큰 눈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물을 보는 눈을 강조해 그린 것으로 ‘보다’라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다만 한자에서는 目자가 주로 ‘눈’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고 있다면 見자는 ‘보다’와 같이 보는 행위에 주로 쓰이고 있으니 차이점을 알아두는 것도 좋다. 또 예전에는 見자가 現(나타날 현)자 대신 쓰인 적이 있기에 ‘나타나다’나 ‘보이다’와 같은 의미도 있다. 이때는 ‘현’으로 발음한다. 다만 見자의 기본 의미는 ‘보다’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보는 것’이나 ‘보이는 것’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見(견, 현)은 ①보다 ②보이다 ③당하다 ④견해 그리고 ⓐ뵙다(현) ⓑ나타나다(현) ⓒ드러나다(현) ⓓ보이다(현) ⓔ소개하다(현) ⓕ만나다(현) ⓖ현재(현) ⓗ지금(현) 등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타날 현(現), 볼 시(視), 뵐 근(覲), 볼 관(觀), 뵐 알(謁), 나타날 현(顯),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숨을 은(隱)이다. 용례로는 보고서 깨달아 앎을 견해(見解), 듣거나 보거나 하여 깨달아 얻은 지식을 견문(見聞), 남에게 거절을 당함을 견각(見却), 실지로 보고 학식을 넓힘을 견학(見學), 남의 일을 보고 배워서 실지로 연습하는 것을 견습(見習), 사물을 관찰하는 입장을 견지(見地), 남에게 미움을 받음을 견오(見忤), 얼른 스쳐 봄을 별견(瞥見), 분실이나 유실을 당함을 견실(見失), 책망을 당함을 견책(見責), 마음에 생각하는 점을 의견(意見),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알려지지 아니한 것을 찾아냄을 발견(發見),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편견(偏見), 서로 다른 의견을 이견(異見), 남의 일에 간섭함을 참견(參見), 사물을 식별하고 관찰하는 능력을 식견(識見), 무슨 일이 있기 전에 미리 짐작함을 예견(豫見), 보고 헤아리는 생각이나 올바로 인식하거나 올바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소견(所見), 신분이 높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손님을 만남을 접견(接見), 지체 높은 사람을 찾아 뵙는 일을 알현(謁見), 임금께 나아가 뵈옴을 진현(進見),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뜻에서 지나친 욕심을 절제함 또는 대의를 위해서 부귀영화를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의 견금여석(見金如石),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견리사의(見利思義),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대책을 세운다는 견문발검(見蚊拔劍),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견위수명(見危授命), 항상 잊지 않음을 이르는 견요어장(見堯於墻), 물건을 보면 욕심이 생긴다는 견물생심(見物生心), 나라의 위급함을 보고 몸을 바친다는 견위치명(見危致命) 등에 쓰인다.
▶️ 危(위태할 위)는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병부절(卩=; 무릎마디, 무릎을 꿇은 모양)部와 厃(우; 사람이 벼랑가에 선 모양, 깎은 듯이 선 벼랑, 쳐다보다, 위태롭다)로 이루어졌다. 또는 뜻을 나타내는 병부절(卩)部와 厃(우, 위)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危자는 ‘위태롭다’나 ‘불안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危자는 ‘재앙’을 뜻하는 厄(재앙 액)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또는 厃(우러러볼 첨)자와 㔾(병부 절)자가 결합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厄자는 기슭 아래에 사람이 굴러떨어진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재앙’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재앙’을 뜻하는 厄자 위로 사람을 그려 넣은 危자는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 사람이 ‘위태롭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危(위)는 높고 험한 경사진 땅으로 위태롭다, 위성(危星)의 뜻으로 ①위태하다, 위태롭다 ②불안하다 ③두려워하다, 불안해하다 ④위태롭게 하다, 해치다 ⑤높다, 아슬아슬하게 높다 ⑥엄하다(매우 철저하고 바르다), 엄정하다(엄격하고 바르다), 엄하게 하다 ⑦발돋움하다 ⑧병이 무겁다, 위독하다 ⑨바르다, 똑바르다 ⑩빠르다 ⑪마룻대(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용마루(지붕 가운데 부분에 있는 가장 높은 수평 마루) ⑫별의 이름 ⑬거의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편안 안(安)이다. 용례로는 위험한 고비를 위기(危機), 실패하거나 목숨을 다치게 할 만함을 위험(危險), 형세가 매우 어려움을 위태(危殆), 위태롭고 급함을 위급(危急), 병세가 무거움을 위중(危重), 매우 간절함을 위간(危懇), 두렵고 불안함을 위공(危恐), 아주 위독함을 위극(危劇), 위급하고 절박함을 위발(危悖), 매우 피로함을 위비(危憊), 병세가 매우 중하여 생명이 위태로움을 위독(危篤), 위태로워 망하려 함을 위망(危亡), 두려워함 또는 그런 느낌을 위구(危懼), 위험한 상황 또는 위험스런 지역을 위역(危域), 처신이나 행동이 매우 그릇됨을 위왕(危枉), 위험한 말을 적은 글장이란 뜻으로 직언의 상소문을 이르는 말을 위장(危章), 위험을 무릅쓰는 심정을 위종(危悰), 중형에 해당하는 죄를 위죄(危罪), 위태로운 목숨을 위천(危喘), 위독한 병세가 지속됨을 위철(危綴), 위험을 무릅쓰는 충정을 위충(危衷), 대단히 황망함을 위황(危惶), 편안함과 위태함을 안위(安危), 외롭고 위태함을 고위(孤危), 위급한 것을 구함을 구위(救危), 위험한 지경에서 벗어남을 탈위(脫危), 형세가 위태로움을 경위(傾危), 위태롭게 여김을 회위(懷危), 위태한 때를 탐을 승위(乘危), 위태로운 처지를 붙들어 줌을 지위(持危), 머리털 하나로 천균이나 되는 물건을 끌어 당긴다는 위기일발(危機一髮), 알을 쌓아 놓은 것같이 위태롭다는 위여누란(危如累卵), 아슬아슬한 순간을 위여일발(危如一髮), 아침 이슬은 해가 뜨면 곧 사라지듯이 위기가 임박해 있음을 위여조로(危如朝露), 몹시 위험함을 위험천만(危險千萬), 위험한 곳에 들어가지 않음을 위방불입(危邦不入), 매우 위태함을 위태위태(危殆危殆), 시국이나 병세가 매우 위급하여 안심하기 어려움을 위다안소(危多安少), 위험이 조석에 달려 있다는 위재조석(危在朝夕) 등에 쓰인다.
▶️ 授(줄 수)는 ❶형성문자로 손(手)으로 준다는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受(수; 받다)가 합(合)하여 주다를 뜻한다. 음(音)을 나타내는 受(수)는 물건을 주고 받고 하는 것이며, 본디는 받는 것도 주는 것도 受(수)였으나 나중에 구별하여, 준다는 뜻의 경우에는 다시 재방변(扌)部를 더하여 授(수)라 하였다. ❷회의문자로 授자는 ‘주다’나 ‘수여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授자는 手(손 수)자와 受(받을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受자는 배에서 물건을 하역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받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전에는 受자가 물건을 주거나 받는다는 뜻으로 쓰였었다. ‘주다’와 ‘받다’의 구별이 없었다. 그래서 소전에서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 受자는 ‘받다’로 여기에 手자가 더해진 授자는 ‘주다’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授(수)는 ①주다 ②수여(授與)하다 ③전수(傳受)하다 ④제수(除授)하다(천거에 의하지 않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다) ⑤받다(=受) ⑥가르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줄 급(給), 줄 뢰/뇌(賚), 줄 사(賜), 줄 증(贈),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받을 수(受)이다. 용례로는 학업이나 기술을 가르쳐 줌을 수업(授業), 주고 받음을 수수(授受), 상장이나 상품 등을 줌을 (授與), 상을 줌을 수상(授賞), 정자를 난자에 결합시키는 일을 수정(授精), 일정한 자격이나 권리를 수권(授權), 글을 가르쳐 줌을 수서(授書), 학문이나 예술 등을 가르쳐 주어 익히게 함을 수습(授習), 임무나 위임을 줌을 수임(授任), 차례 차례로 전하여 줌을 전수(傳授), 신이 내리어 줌을 신수(神授), 하늘에서 내려 줌을 천수(天授), 법을 어기고 함부로 줌을 모수(冒授), 벼슬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제수함 또는 임무를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맡김을 분수(分授), 일정한 임무를 맡기어 줌을 차수(差授), 한 사람에게 돈이나 물건을 거듭 줌을 첩수(疊授), 가르쳐서 깨우쳐 줌을 개수(開授), 강의하여 가르침을 강수(講授), 젖먹이에게나 새끼에게 젖을 먹여 기르는 기간을 수유기(授乳期),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나라의 위태로운 지경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말을 견위수명(見危授命), 말과 마음으로 전하여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구전심수(口傳心授),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자기가 요구해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읍아수유(泣兒授乳), 비전 등을 오직 한 사람에게만 전하는 일 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전수받은 것이라는 말을 유수일인(唯授一人) 등에 쓰인다.
▶️ 命(목숨 명)은 ❶회의문자로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令(령)의 합자(合字)이다. 입(口)으로 뜻을 전한다는 뜻으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命자는 ‘목숨’이나 ‘명령’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命자는 亼(삼합 집)자와 口(입 구)자, 卩(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亼자는 지붕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그린 卩자가 더해진 命자는 대궐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상관이 내리는 명령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 한다. 그래서 命자는 ‘명령’이라는 뜻 외에도 ‘목숨’이나 ‘생명’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命(명)은 (1)목숨 (2)운명(運命) 등의 뜻으로 ①목숨, 생명(生命), 수명(壽命) ②운수(運數), 운(運) ③표적(標的), 목표물(目標物) ④명령(命令), 분부(分付)⑤성질(性質), 천성(天性) ⑥말, 언약(言約) ⑦규정(規定), 규칙(規則) ⑧가르침 ⑨작위(爵位), 작위의 사령서나 그 신표(信標: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 ⑩하늘의 뜻, 천명(天命) ⑪도(道), 자연의 이법(理法) ⑫호적(戶籍) ⑬명령하다 ⑭가르치다, 알리다 ⑮이름짓다, 이름을 붙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윗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무엇을 하도록 시킴을 명령(命令), 시문의 제목을 정하여 주는 것을 명제(命題), 사람이나 물건에 이름을 지어 붙임을 명명(命名), 살아 있는 목숨을 이어 가는 근본을 명백(命脈), 겨냥한 곳에 바로 맞음을 명중(命中), 생명의 근본을 명근(命根), 목숨의 한도를 명한(命限),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를 운명(運命), 관직에 명함 또는 직무를 맡김을 임명(任命), 타고난 수명이나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날 때부터 타고난 운명을 숙명(宿命),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목숨을 비명(非命), 맡겨진 임무나 맡은 일을 사명(使命), 생물이 살아 있는 연한을 수명(壽命), 사람의 목숨을 인명(人命),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명재경각(命在頃刻), 한 시대를 바로잡아 구할 만한 뛰어난 인재를 명세지웅(命世之雄), 연거푸 생기는 행복을 명야복야(命也福也), 병이나 상처가 중하여 목숨에 관계됨을 명맥소관(命脈所關), 팔자가 사나움을 명도기박(命途奇薄), 목숨을 義에 연연하여 가볍게 여기다는 명연의경(命緣義輕)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