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會上-
일승묘법연화경 일일법문:부처님 역시 이와 같아서
부처님 역시 이와 같아서
희유(希有-소승의 가르침)한 일 나타내신 것은
소승을 바라는 줄 아시고
방편의 힘을 써서
그 마음을 조복(調伏-다스려 항복시킴)시킨 다음에
이내 대지(大智-대승의 지혜)로 교화하셨나이다.4-96
佛亦如是 現希有事 知樂小者
以方便力 調伏其心 乃敎大智
佛亦如是하야 現希有事홈은
知樂小者하시고 以方便力하사
調伏其心한다음 乃敎大智하얏나이다.
佛-부처님 불. 亦-또 역. 如-같을 여. 是-이 시. 現-나타날 현. 希-드물 희. 有-있을 유. 事-일 사. 知-알 지. 樂-바랄 요. 小-작을 소. 者-명칭 자. 以-써 이. 方-방법 방. 便-편할 편. 力-힘 력. 調-다스릴 조. 伏-항복할 복. 其-그 기. 心-마음 심. 乃-이어 내. 敎-가르칠 교. 大-큰 대. 智-지혜 지.
1-이 게송은 모두 24글자로 노래를 하였다. 성문과 연각의 근기를 위해 먼저 소승의 가르침인, 사성제(四聖諦)와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을 가지고 교화를 하신 다음에 대승의 가르침을 가지고 교화하셨음을 노래한 것이다.
2-성문인이든 연각인이든 보살인이든 간에, 소승의 가르침과 대승의 가르침을 비록 통달하지 않았다고 해도, 소승의 회상과 대승의 회상에 참석을 하여야 법화경의 회상에서 가르침을 듣고, 원교여래의 계위를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3-다시 말하면, 대승의 회상에서 설법이 된 부처님의 가르침이든, 소승의 회상에서 설법이 된 부처님의 가르침이든, 이 두 회상에서 설법이 된 가르침을 알지 않고는 법화경의 회상에 참석을 할 수가 없다는 뜻이고, 또 동시에 이 두 회상에 참석을 하여 가르침을 들어야 법화경의 회상에서 그동안 깨닫지 못한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4-우리들의 경우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비록 소승의 회상과 대승의 회상과 법화경의 회상에 참석을 한 적이 없지만, 소승의 회상과 대승의 회상과 법화경의 회상에서 설법이 된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깨달아야 원교여래의 계위에 오를 수가 있다는 말이다.
5-질문, 우리들의 경우는 소승의 회상과 대승의 회상과 법화경의 회상에 참석을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가!
6-대답, 부처님이 소승경전과 대승경전과 일승경전인 법화경을 남겨주신 것은, 지금 현재 삼승의 근성의 지닌 중생을 위해 남겨주신 것이 아니고, 일승의 근성을 지닌 우리들을 위해 남겨주신 것이다.
7-지금 현재 이곳에 비록 삼승의 근성과 일승의 근성이 함께 존재하기는 하나, 지금의 시절은 법신여래의 시절이고 법신여래의 말법에 해당이 된다. 따라서 지금 이곳에 비록 삼승의 근성을 지닌 중생과 일승의 근성을 지닌 중생이 비록 함께 존재하기는 하나, 교화의 영역 안에서는 일승의 근성을 지닌 중생이 중심이 되어있다.
8-마치 일월등명불의 시절과 대통지승불의 시절에 비록 우리들과 같은 일승의 근성을 지닌 여래종족이 존재하였으나, 이들이 이 두 분 부처님의 교화영역 안에 들지 못한 것처럼.. 지금 이곳 남염부주에 비록 삼승의 근성을 지닌 중생이 있기는 하나, 이들은 법신여래의 교화영역 안에 들어있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9-질문, 소승인과 대승인은 부처님으로부터 무량한 겁을 걸치며 교화를 받아왔다고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매우 불가사의하여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들었다고 해도 그 가르침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까 말까 할 것인데, 우리들의 경우는 중생이고 과거세상에 부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 길이 없는 마당에 어떻게 부처님이 남겨주신 경전만을 의지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10-대답, 근기의 차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근기의 차이란, 마치 어떤 사람은 조밥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쌀밥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약밥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
11-소승인이 비록 성문의 경전을 좋아하는 것은! 소승인 자신도 왜 소승의 경전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알 길이 없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자신만이 좋아하는 장남감에 대해 자신이 이 장난감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가지고 노는 것과 같다.
12-우리들의 경우는 삼승의 근성과 근본적으로 그 근기에 있어 차별이 있다. 왜냐하면 삼승의 근성은 해탈지에 놓인 상태에서 대승경전의 회상에 참석을 하지만, 우리들은 생사지에서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중간에 대승경전을 읽게 되면 대승의 회상에서 부처님께 직접 가르침을 들은 것과 같이 깨달음을 얻게 된다.
13-따라서 만약에 법화경만 존재하고 다른 경전 즉 소승경전과 대승경전이 존재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원교여래의 계위에 오를 수가 없다. 또 소승경전과 대승경전과 존재하고 일승경전인 법화경이 존재하지 않으면, 역시 원교여래의 계위에 오를 수가 없다.
14-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우리들을 위해 소승경전과 대승경전과 일승경전을 남겨주신 것이고, 이 일승경전을 중심으로 하여 소승경전과 대승경전을 모두 통달하게 하신 것이고, 이렇게 삼교(三敎)의 경전 즉 소승(小乘-성문교와 연각교이니 소승의 모든 경전을 가리킴)과 대승(大乘-보살교이니 대승경전을 모두 가리킴)과 일승(一乘-여래교이니 법화경을 가리킴)의 경전을 모두 통달하여야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15-어떻게 삼교의 가르침을 통달해 가는가! 첫째 성문의 사성제(四聖諦)를 통달하는 것이고, 둘째 연각의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을 통달하는 것이고, 셋째 보살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을 통달하는 것이고, 넷째 여래의 여래오품위(如來五品位)를 통달하는 것이다.
16-이 모든 가르침 안에 생멸(生滅)과 무생(無生)과 무량(無量)과 무작(無作)과 무상(無上)을 가지고 깨달음을 얻게 된다.
17-우리들의 경우는 여래오품위를 닦는 중에, 사성제와 십이인연법과 육바라밀을 깨닫게 되는데, 성문경전의 가르침은 사성제 안에 모두 있고, 연각경전의 가르침은 십이인연법 안에 모두 있고, 보살경전의 가르침은 육바라밀 안에 모두 있듯이.. 여래경전의 가르침은 여래오품위 안에 모두 존재한다.
18-또 사성제에 있어 성문의 사성제와 연각의 사성제와 보살의 사성제와 여래의 사성제에 있어 깨달음에 깊고 넓음에 차이가 있고, 십이인연법에 있어 역시 성문과 연각의 십이인연법과 보살의 십이인연법과 여래의 십이인연법에 있어 깨달음에 깊고 넓음의 차이가 있고, 육바라밀에 있어 역시 성문과 연각의 육바라밀과 보살의 육바라밀과 여래의 육바라밀에 있어 깊고 넓음의 차이가 있다.
19-원교보살의 계위에 오게 되면 보살오품위(菩薩五品位)를 닦지만, 일교보살인 우리들의 입장에서 여래오품위(如來五品位)를 닦아야 부처님의 계위에 오르게 된다.
20-여래오품위란! 첫째 여래수희품(如來隨喜品). 둘째 여래독송품(如來讀誦品). 셋째 여래설법품(如來說法品). 넷째 여래공양품(如來供養品). 다섯째 여래유통품(如來流通品). 이다.
21-이 여래오품위는 원교보살이 닦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 일교보살이 닦는 일이고, 이 여래오품위는 보살의 육바라밀과 비교조차 하지 말라고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50번째 사람의 공덕은 불가사의하여 4백만억 세계에 사생의 중생을 모두 일시에 아라한과에 올려놓았다고 해도 이 50번째 사람의 공덕을 비교할 수가 없느니라.”하시었으니, 이 50번째 사람이 얻은 공덕이란 여래오품위 중에 첫째 여래수희품(如來隨喜品)에 속한다.
22-여래수희품(如來隨喜品)이란!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법화경의 가르침 중에 깨달음을 조금씩 깨쳐가는 것을 가리켜 여래수희품이라 말하는 것이다.
23-여래수희품이란! 마치 보름달을 하루 밤 남겨놓은 것과 같아서, 비록 중생의 몸을 하였으나 부처님과 거의 근접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살의 육바라밀을 가지고 여래오품위와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마치, 성문의 사성제를 가지고 보살의 육바라밀과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24-부처님이 법화경에서 이르시길, “부루나미다라니자가 비록 변설(辨說)에 있어 뛰어나지만, 부처님 외에 부루나미다라니자의 변설을 뛰어넘을 사람이 없다.”하심에 있어, 우리들이 소승을 깨닫는 것과 대승을 깨닫는 일에 있어, 실제로 소승인과 대승인보다 우리들이 소승과 대승을 깨달음에 있어 더욱 뛰어남을 말씀하신 것이다.
25-다시 말해 사성제(四聖諦)에 있어 생멸사제(生滅四諦)는 장교보살이 깨닫는 것이고, 무생사제(無生四諦)는 통교보살이 깨닫는 것이고, 무량사제(無量四諦)는 별교보살이 깨닫는 것이고, 무작사제(無作四諦)는 원교보살이 깨닫는 것이고, 무상사제(無上四諦)는 일교보살인 우리들이 깨닫는 것이다.
26-또 십이인연법에 있어, 장교보살이 깨닫는 십이인연법을 생멸인연법(生滅因緣法)이라 하고, 통교보살이 깨닫는 십이인연법을 무생인연법(無生因緣法)이라 하고, 별교보살이 깨닫는 십이인연법을 무량인연법(無量因緣法)이라 하고, 원교보살이 깨닫는 십이인연법을 무작인연법(無作因緣法)이라 하고, 일교보살인 우리들이 깨닫는 십이인연법을 무상인연법(無上因緣法)이라 말한다.
26-또 육바라밀에 있어, 생멸육도(生滅六度)는 장교보살이 깨닫는 것이고, 무생육도(無生六度)는 통교보살이 깨닫는 것이고, 무량육도(無量六度)는 별교보살이 깨닫는 것이고, 무작육도(無作六度)는 원교보살이 깨닫는 것이고, 무상육도(無上六度)는 우리들 일교보살이 깨닫는 것이다.
27-마지막에 오품위(五品位)에 있어, 보살오품위는 첫째 보살수희품(菩薩隨喜品). 둘째 보살독송품(菩薩讀誦品). 셋째 보살설법품(菩薩說法品). 넷째 겸행육도품(兼行六度品). 다섯째 정행육도품(正行六度品). 이고, 우리들이 닦는 여래오품위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28-보살수희품과 여래수희품은 차이가 있으니, 보살수희품은 원교의 맨 처음에 속하나, 우리들이 닦는 여래수희품은 원교묘각의 맨 처음에 속한다. 따라서 같은 수희품이라 해도 이렇게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偈頌-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달해야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1
만약에 일월등명불이
설법하신 가르침과
대통지승불이
설법하신 가르침과
아미타불이
설법하신 가르침을
알지 못한 채 부처님이 되는
일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2
지금 경전회상은
영산회상과 다르지 않아서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달하는 도량이다.-3
우리들은 시방세계 안에서
가장 뛰어난 근기라고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말씀을 하셨으니,
“여래가 출현하는
일도 드물지만
법화경을 연설하는 일이
더욱 드물다고 하나,
여래 멸도한 뒤에
법화경을 지닌 채
읽고 외우는 사람이 가장 드물다.”하심은
바로 우리들의 근기를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4
우리들은 반드시
여래오품위를 닦는 중에
법화경을 통달하게 되고,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달한 뒤에
부처님의 자리에 앉게 된다.-5
경전회상이
비록 생사회상(生死會上)에 속하나
해탈회상(解脫會上)인
영산회상과 다르지 않아서
우리들 역시
경전을 지닌 마당에
어찌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랴!!-6
우리들은 중생을 버리지 않은 채
생사회상에서
법화경을 읽고 외우며
널리 유통하는 중에
반드시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경전과
법화경을
통달하게 될 것이라고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분명하게 말씀을 하시었다.-7
-寶雲地湧 調伏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