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하나에 짐을 무기로 가졌다. 귀는 뚫려 있고 짐은 찌르기 좋게 생겼다. 오장육부를 통틀어 장기(臟뚫)란 게 고작 두 개뿐이다. 은색 도금으로 치장한 몸매치곤 완벽한 기형이다. 듣는 귀만 있고 새살떠는 입은 없으니 오히려 존경스럽다. 두 쪽 귀로 듣고 세치 혓바닥을 놀리는 걸 부끄럽게 만든다.
신체구조상 외짝을 같지만 우린 그것을 성치 못한 육신이라고 비아냥거리지 않는다. 마디 없이 매끈하니 인과관계처럼 매듭 묶어 원수질 일은 없다. 바늘의 짝지는 삼신상(三神床)에 놓이는 실타래이다. 두 가지는 서로 짝을 이루어야만 헛말이라도 공치사를 받는다. 바늘귀에 실을 꿰려면 지극정성이 필요하다. 손끝에 침을 묻혀 실을 비벼 꼰 채 공을 들인다. 나이 들면 돋보기를 코 위에 얹고서도 헛손질을 할 때가 허다하다.
색실을 끼워 바느질을 한다. 연(姸)은 닿고 선(鮮)은 베풂이다. 바늘 끝으로 오작교를 놓고 해묵지 않은 마음끼리 열게 해준다. 시집가는 딸에게 친정어머니가 반드시 챙겨주는 혼수용품이 반짇고리다. 그 가문의 풍습을 익혀야 하는 새댁에게 바느질 도구는 예절만큼 중요하다. 시집살이가 바늘방석 같아도 손끝만 야무지면 사랑받을 거라고 딸의 어깨를 다독인다. 새색시 손맵시 좋다는 말은 음식 솜씨와 바늘 끝에서 나온다고 했다.
현모양처일수록 바늘을 놀리는 손재주가 다재다능하다. 갓 시집간 며느리는 시어머니 곁에 앉아 집안의 풍습과 가풍을 전수받는다. 기성복이 흔치않아 한복은 손으로 직접 지어내야만 했다. 눈썰미가 없으면 바지저고리를 짓는 건 곤욕이다. 잘못 뒤집으면 팔 다리가 문어발처럼 몇 가닥이 나와 버린다. 한복의 멋을 살리는 데는 예전부터 바늘 솜씨가 좋아야만 흉잡히지 않았다.
햇살 좋은 날은 앞마당에 빨랫줄이 쳐지고 바지랑대가 이불 홑청을 떠받들고 있다. 풀 먹은 이불이 꾸덕꾸덕해지면 끝자락을 서로 맞당겨 주름을 펴고 발로 자근자근 밟는다. 대청마루에 놓인 다듬잇돌을 사이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무릎맞춤을 하고 앉아 방망이질을 한다. ‘토닥토닥’ 장단 맞추는 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진다.
주름이 완만하게 펴진 모시두루마기 손질은 마무리가 까다로웠다. 참나무 숯불을 놋화로에 담고 인두를 꽂았다. 시름시름 앓아가는 불을 인두로 지그시 잠을 재웠다. 끝이 날렵한 인두는 동정받침의 끝을 닮았다. 바늘로 시침질을 하고 앞으로 돌려 인두로 지그시 눌려주면 저고리 앞섶 모양이 살아났다. 한복이 갖춰지면 이젠 바늘로 버섯코를 세울 차례다. 버선코를 살리는 데는 바늘 끝만 한 게 없다. 바늘 끝으로 끌어올리면 버선코가 오뚝 살아났다.
아름다운 선을 이어주는 바늘은 대가족 제도다. 굵은 것과 가느다란 게 섞여 도합 스물네 개. 바늘 한 쌈이라 부른다. 연(姸)과 선(鮮)을 잇는 도구라 쓰임새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주로 어머니들의 전용이 라 가정마다 상비약처럼 구비되어 있다. 하잖게 여길지 몰라도 생활용 품이라 없으면 불편하다. 아무리 바빠도 그것의 허리에 실을 묶어서 쓸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속담까지 담고 있다.
비가 그치면 지렁이가 기어 나오던 골목에 하나 둘 호롱불이 켜졌다. 그 아래서 앉아 어머니는 구멍 난 양말을 꿰맸다. 볕 좋은 날 빨았던 이불호청은 멍석을 펴놓고 시침질을 했다. 묵직한 솜이불은 돗바늘로 속통을 떠주지 않으면 뭉치거나 포장지처럼 펄럭거렸다. 거개 형제가 많아 바늘 한 쌈처럼 이불 속에 오글오글 발을 모으고 살았다.
혼사를 준비하던 언니는 25번사 프랑스 자수실로 한 땀 한 땀 십자수를 놓았다. 베개 모서리엔 봉황을 수놓고 횃댓보엔 다복솔을 새겼다. 내가 입은 내의는 무릎이 구멍이 뚫리고 소맷귀가 낡아 나달나달했다. 어머니는 자투리 천으로 여러 모양을 본떠 무릎에 덧대어주었다. 팔꿈치와 무릎 위에는 동물농장처럼 온갖 그림이 그려졌다. 가끔 바느질을 할 때면 되돌아볼 추억이 있다는 건 그리움을 삭히는 특효약이 된다.
‘한국의 미’를 살려주는 조각보는 우리 고유의 생활 민예품이다. 자투리 천을 조각조각 잇대 만든 오방색 밥상보는 장인 정신이 오롯이 스며든 것 같다. 고전을 살려 현대 감각에 맞춰 전통미를 살려낸 멋스러움은 한복과도 잘 어울린다. 어느 나라에서 바늘 끝 하나로 그처럼 아름다움 민속예술을 이어오는 걸 보았는가. 조선 여인의 바느질 솜씨는 외국인들을 탄복하게 만든다.
연(姸)이 끝나는 곳에 선(鮮)이 있다. 아무리 편리한 세상이라도 바늘로 할 게 따로 있다. “필요가 사라지면 도구는 유물이 된다"라는 말이 있지만, 풍경은 사라져도 그리움이 쌓인 사연은 사라지지 않는다. 평생 바느질을 해온 조선 여인은 손에서 바늘을 놓지 않을 것이다.
- 김임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