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 나 태주
좋은 것만 보면 무어든
네 생각이 나고
어여쁜 경치 앞에서도
네 얼굴이 떠올라
어떻게든 너에게
선물하고 싶지만
번번히 그럴 수는 없어
안달하다가 무너져 내리다가
절벽이 되고 산이 되고
끝내는 화닥화닥 불길로
타오르는 꽃나무
이것이 요즘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이란다
평행선 / 오경택
뒤돌아 보고서야 비로소
기쁨 보다 슬픔이
가까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현이 끊어진 바이올린처럼
빈자리가 커 갈수록
맞닿을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다툼에서 미운 사랑보다
나눔에서 고운 사랑의 섭리를 깨닫는 날
그 날조차도
하나이지를 못했습니다
차라리
이대로 나란히 갈까 봅니다.
낙화/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땡볕/ 손광세
7월이 오면
그리 크지 않는 도시의 변두리쯤
허름한 완행버스 대합실을
찾아가고 싶다.
죽이 다 된 캐러멜이랑
다리 모자라는 오징어랑
구레나룻 가게 주인의
남도 사투리를 만날 수 있겠지.
함지에 담긴 옥수수 몇 자루랑
자불자불 조는 할머니
눈부신 낮꿈을 만날 수 있겠지
포플린 교복 다림질해 입고
고향가는 차 시간을 묻는
흙백사진 속의 여학생
잔잔한 파도를 만날 수 있고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행려승의 밀짚모자에
살짝 앉아 쉬는
밀잠자리도 만날 수 있겠지.
웃옷을 벗어 던진 채
체인을 죄고 기름칠을 하는
자전거방 점원의
건강한 웃음이랑
오토바이 세워놓고
백미러 들여다보며 여드름 짜는
교통 경찰관의
초록빛 선글라스를 만날지도 몰라
7월이 오면
시멘트 뚫고 나온 왕바랭이랑
쏟아지는 땡볕 아래
서 있고 싶다.
https://youtu.be/DhkfSmRPFIE?si=4WJhHHRZfviZSC2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