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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 요한슨 주연,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루시>는 인간 뇌의 사용량을 100%로 극대화해 신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놀랍도록 사악한 영화이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줄거리는 빼고, 간단히 일곱 가지 포인트를 다루어 본다.
1. 아듀, 루시
'루시'는 학명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australopithecus afarensis)'로 불리는 최초 인류의 별명이다. 영화에서는 뇌의 용량을 초과해 사용하게 된 여주인공 루시가 시공을 초월해 원숭이 루시를 만난다. 그러나 루시는 이미 오래전에 인류와 관련 없는 '그냥 원숭이'이다. 이는 과학자들도 인정한 것으로 한 유명 과학 저널에서도 "아듀, 루시"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싣기도 했다. '아듀'는 '굿바이'보다 더 멀어지는,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는 이별에 쓰는 말이다. 이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유인원 화석은 인류와 어떠한 연관도 없는 해프닝들로 밝혀졌다. 아직도 그것을 붙드는 뤽 베송과 리처드 도킨스 같은 이들의 머리 속에나 있는, 포기할 수 없는 신기루이다.
2. 루시, 루시퍼?
Lucy라는 이름은 아마 루씰(Lucille)의 애칭인 것 같다. 이 이름은 Lux와도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루씰은 '빛'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루시퍼는 '빛을 나르는 자'인데, 현대역본들은 계명성이나 모닝스타(morning star) 등으로 루시퍼의 이름을 바꿔놓아 예수님의 이름 모닝스타(Morning star)와 똑같아지고 말았다. 고유명사를 뜻으로 표시해서 생긴 일이다. 이런 뉴에이지 성경들 때문에 예수님이 천상에서 타락했다고 가르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아무튼 '빛'이라는 공통점이 루시퍼와 루시에 들어 있다. 이니셜로 마약 LSD를 은유했다는 의혹으로 금지곡이 됐던 비틀스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도 떠오르는 이름이다. 미국에는 <루시스 트러스트(Lucis Trust)>라는 뉴에이지 출판사가 있다. 마귀의 신뢰성, 진실성 이런 뜻이다. 이것은 처음에 루시퍼 트러스트로 시작했다가 바꾼 것이라고 하는데, Lucy는 철자는 조금 다르지만 전지전능의 단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교만을 다룬 것이므로 충분히 루시퍼의 타락을 떠올리게 하는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다. 이 출판사의 스폰서는 유엔, 유니세프, 앰네스티, 그린피스 등이며 빌 게이츠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로고는 아침 해처럼 떠오르는 루시퍼를 형상화한 것이다.
3. 뇌 사용량
인간이 뇌의 10%만을 쓴다는 학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쓰면 무한대의 능력이 생긴다는 것은 영화니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10%만을 쓴다는 것도, 그야말로 10%의 사람들만 진실을 알고 나머지는 오해하는 낭설이다. 지능은 머리의 크기, 즉 뇌세포의 양보다는 뇌신경이 얼마나 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며, 뇌를 쓸수록 발전시킬 수 있다는 개념의 오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뇌는 인간이 밝혀내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뇌가 복잡하게 '진화'한 것이 맞는다고 해도 거기 정신과 혼이 깃드는 과정은 유물론적인 과학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세포보다 더 작은 원자는 이미 설계자의 계획 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일정한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이것은 누가 시켰는가? 이 무한대에 가까운 수명을 지닌 원자가 모이고, 거기에 생명이 깃들고, 사고하게 된 것은 진화에서 어떤 과정이 담당했는가? 진화론에는 답이 없다.
4. 자연 선택에 의한 영생
진화론에 의해 세포는 스스로 영생하거나 그게 안 되면 번식을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번식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며 스스로 세상에 오래 남아 있기 위해 자신의 속성을 남기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킨스는 자식을 사랑하는 행위도 그런 이기적 유전자의 번식욕의 한 형태라는 식의 설명을 한다. 그러면 루시가 뇌를 많이 사용하면서 엄마의 젖을 빨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사랑에 감격하는 행위는 무엇인가? 번식에 어떤 도움이 되기에 인간은 유전자를 퍼뜨린 선대의 은총에 감사하는가? 그렇다면 사람은 어머니뿐 아니라 모든 유인원과 그 위의 파충류와 아메바와 식물과 돌덩어리에도 그런 은총의 사랑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영화 속 루시는 두 가지 방법 중에 스스로 살아남는 영생을 선택한다. 창조물의 영생이 다윈이 말한 '자연 선택'으로 가능하다는 메시지이다.
5. 세포의 진화
세포가 한 개였다가 두 개로 분열됐다? 그러면 그 세포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원시지구에서 유기물질에 막이 형성되고 어쩌고 했다는 코아세르베이트 실험 같은 소설이 교과서에도 실린다 해서 진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세포의 생성에는 증거가 없다. 원시세포 등의 개념도 없으며 원시지구가 유기물 수프인 바다를 지녔다는 등의 가설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그런 과정이 없으면 지구에서 꽃피운(?) 다윈의 생물진화론과 우주의 생성이라는 빅뱅이 연결될 수 없기 때문에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뿐이다. 그보다 확실한 것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파스퇴르의 명제 "생명은 생명에서만 나온다"는 생물속생설이다. 다른 것을 제시하려면 이것부터 깰 수 있어야 한다.
6. 무소부재
인간은 죽기 전에 삼차원을 뛰어 넘을 수 없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 우리의 혼이 사차원에 동참하게 되면 물체의 제약을 받지 않고 공간을 넘나드는 것이 더는 기적이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도 시간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것은 곧 무소부재, 즉 편재(遍在, 모든 공간에 있는 것)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는 어떤 천사나 마귀도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페르시아 왕국의 통치자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나, 보라, 우두머리 통치자들 중의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느니라. 내가 거기서 페르시아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었느니라. (단 10:13)
이처럼 사차원을 다니는 천사도 시간을 극복하지 못해 지체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의 루시는 시간과 공간을 모두 초월하고 '모든 곳에' 존재한다. 영화를 보면 아주 잘 표현돼 있다. 이는 천사였던 루시퍼가 꿈꾼 하나님을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편재'는 영어로 유비쿼터스이다.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유비쿼터스 세상이 사탄주의자들의 이상향이다.
7. 세계정부, 세계통제
과거에 스티븐 킹 원작의 <론머맨, 1992>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왕따였던 한 정원사 청년이 뇌파 등을 통해 세상의 모든 통신망을 제어하는 신적인 존재로 변해가는 SF 영화였다. 그 영화의 광고 카피는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론머맨을 만들었다!"였다. 이처럼 세상을 통제하는 것은 신적인 존재가 되고픈 인간의 욕망이다. 맘에 안 드는 자를 뇌파 하나로 제거하고, 나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무력화시키는 것, 그들 앞에 유리벽을 만들어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 심판의 재림 주를 말하며 끝내 비워낼 수 없는 찜찜한 양심의 소리를 나불대는 '근본주의자'들을 윙크 하나로 처단하는 것... 이것이 세상의 주인이 되고픈 자들의 욕망이다. 이제 영화 <루시>는 통신망은 물론 컴퓨터를 제어하고 현상세계까지 제어한다. 론머맨은 루시의 서막이었다. 루시는 이제 베리칩과 같은 것으로 전 세계를 제어하는 세계정부와 신세계 질서의 서막이 되고 싶어 한다.
더 긴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영화가 개봉 중이라 이 정도만 짚고자 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 흥분할 필요가 없지만 이 영화를 통해 허탄한 것들에 대한 심증을 굳힐 연약한 영혼과 세상 사람들이 걱정이다. 과연 탁월한 감독의 신성모독 완결판이다. 루시의 욕망은 루시퍼의 욕망과 동일하다. 그리고 루시퍼는 온 세상을 속인 뒤 바닥 없는 구덩이, 즉 무저갱에 갇힐 사탄 마귀의 이름이다.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민족들을 약하게 만든 자야, 네가 어찌 끊어져 땅으로 떨어졌는가! 네가 네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내가 하늘로 올라가 내가 [하나님]의 별들 위로 내 왕좌를 높이리라. 또 내가 북쪽의 옆면들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 위로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너는 끌려가 지옥으로 곧 그 구덩이의 옆면들로 내려가리로다. (사 1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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