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로버트가 경기장 안의 붉은 파도를 영국 국기인 푸른 파도로 바꾼 상상을 하고 있을 즈음, 이번에는 관중석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온다.
[ 아!!!! 정말 아쉬운 오버헤드킥!!! 양동현! 무서운 선수네요, 정말! ]
[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멋지게 오버헤드킥을 연출했는데요! 저건 웬만한 배짱과 순간적인 판단력 아니면 불가능하거든요! 양동현 선수, 이게 들어갔으면 정말 판타스틱한 골이 될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
[ 리플레이 나오죠. 자, 여기서 고창현의 크로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뒤로 가니까 바로 뒤로 누워서 오버헤드킥! 이게 골대 옆을 스치면서 빗나가 버립니다! 그야말로 깻잎 한 장 차이로군요! ]
[ 다시 봐도 아까운 오버헤드킥입니다. 양동현 선수 머리를 감싸 쥐고 아쉬워합니다만, 대단한 슛이었어요. ]
[ 자~ 한국 응원단들, 상당히 아쉬워합니다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죠? ]
[ 그렇습니다. 지금 아랍에미리트 수비가 상당히 부실해졌거든요. 한국팀이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
슬쩍 슛 장면만 본 로버트가 말했다.
“멋진 슛인데.”
“오버헤드킥이라. 양동현, 자료를 보니 아직 20살도 채 안됐는데.”
“그래? 어쩐지 많이 어린 것 같더라.”
“스페인 바야돌리드 2군팀에 있고, 파괴력도 많은 스트라이커. 오. 괜찮은데?”
“그래.”
한건은 계속 시큰둥한 반응만 보이는 로버트에 화가 났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와 친한 지 벌써 8년이 다 되어 가고 있지만, 이번만큼 그가 진지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한건은 한숨을 한번 내쉰 채 다시 경기나 지켜보기로 한 듯 경기장에만 몰두한다. 로버트는 또 관중석을 보고 있다.
[ 자, 후반전에도 역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는 한국팀. 정말 대견합니다. ]
[ 그렇습니다. 앞선 베트남이나 이라크와의 경기에서도 엄청난 공격력과 그에 상응하는 수비력을 보여준 한국팀, 아시아 지역 예선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선수들 변변한 공격도 제대로 못해보고 있지 않습니까? 차범근 감독, 그리고 포마스키 수석코치를 비롯한 모든 코칭 스탭들의 땀과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죠. ]
[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력 향상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팀입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아랍에미리트 공격해 들어옵니다. 아! 조병국 선수 잔디에 발이 미끄러지나요! R.라시드, 빈틈 놓치지 않고 그대로 슈팅!! ]
“뭐야? 갑자기 왜 넘어진 거지?”
“잔디에 미끄러진 것 같은데.”
“이런. 진정 좋은 수비라면 저런 것도 간파하고 있었어야지.”
내심 조병국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던 한건은 투덜댔다. 하지만 R.라시드의 슈팅은 골대를 빗나가 버린다.
[ 조병국 선수, 여기서 미끄러지면서 아찔한 상황을 연출했습니다만, 라시드의 슈팅이 골대를 벗어납니다. 오늘 아랍에미리트 슈팅이 이번 것까지 겨우 4개째로군요. 조병국 선수 비록 이번엔 실수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R.라시드 선수를 철통마크 해 줬거든요? 아주 좋은 모습 아닙니까? ]
[ 그렇죠. 조병국 선수, 이제 국가대표에서도 이미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오늘 같은 팀에서 죽 활동해온 조성환 선수와의 중앙 수비 호흡이 더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적절할 때 적절히 커버플레이가 되거든요. ]
[ 그렇습니다. 아주 효율적인 수비를 하고 있는 한국팀. 후반전 20분이 넘어가니까 조금씩 공격 빈도가 떨어지는 모습도 보이는데요? ]
[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선수들이 골을 향해서 악착같이 달려드는 모습이 필요하죠. 지금 한국팀 선수교체를 준비하나요? ]
[ 그렇습니다. 준비하는 선수는 9번의 설기현 선수입니다. 설기현 선수 킬러로서의 입지가 다시 살아나고 있죠? 자신은 윙으로 뛰는 것이 편하다고 말했지만요. ]
[ 그렇죠. 요즘 부쩍 연습경기에서도 골이 많아졌다고 하는데요. 아, 차범근 감독. 최태욱 선수를 빼는군요. 그럼 고창현 선수가 오른쪽으로 가고, 설기현이 왼쪽 윙으로 가는군요. ]
[ 설기현 선수가 윙포워드에 가깝지 전형적인 윙어로서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
[ 그렇죠. 윙포워드가 적성에 딱 맞다고 하는데요. 차범근 감독, 설기현 선수를 윙으로서 테스트하려는 의도로군요. ]
“나온다. 안더레흐트의 세올.”
“음. 케인 할아범 말로는 미들스브로에서 꼭 데려갈 테니 절대 가만 놔두라는데.”
“그 할아버지, 해낸다면 꼭 하잖아.”
“모르지 뭐. 하아.”
“한숨 좀 그만 쉬어. 너 아스날에서 안 놔줄지도 모르는데.”
“모르겠다. 뭐 어떻게 되겠지.”
로버트는 막상 자신이 계획하고도 앞날이 깜깜함을 깨달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구상중인 건지, 아니면 답답해 담배 피우듯 한숨만 쉬고 있는 건지 한건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설기현, 들어가자마자 박지성으로부터 볼 이어 받습니다. 설기현 몸 가볍게 흔든 뒤 오른발로 치고 들어가죠! 왼쪽 코너 플랙 부근에서 뒤꿈치로 제꼈습니다!!! 올라가야죠! 그대로 크로~스!! 약간 낮아서, 수비가 걷어냅니다! 아쉬운 크로스였습니다만, 그 전 동작이 좋았죠? ]
[ 그렇습니다. 수비가 예측을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마지막 패스가 조금만 높았더라면 양동현 선수 머리에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수비수가 한 발 먼저 나와서 걷어내 버렸습니다. 아쉽네요. ]
[ 사실 이제 승리는 거의 확실하다고 보고, 남은 것은 오래간만에 매진까지 나면서 경기장을 찾아준 우리 팬들에게 멋진 골로 보답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 그렇죠. 멋진 골이 터진다면 이 무더운 날씨를 훌훌 날릴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 선수들, 시원한 골이 하나쯤 터져 줬으면 좋겠는데요. ]
[ 한국, 스로인으로 경기 재개됩니다. ]
한국은 맹렬히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관중석의 응원소리도 더 커졌다. 아랍에미리트 선수들은 붉은 함성이 메아리칠 때마다 움찔움찔했다. 그리고 붉은 유니폼을 입은 한국 선수들은 골을 향해 맹수같이 달려들었다.
[ 박지성, 한 명 뚫고 나갑니다! 압박이 들어오자 다시 뒤로 넘겨주고, 볼 이어받는 고창현! 고창현 선수, 오늘 넓은 활동폭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대로 드리블! 선수 하나 제치고, 또 다른 선수마저 제칩니다! 두 명을 제치고 가운데로 크로스!! 정조국 넘어가는 볼, 달려들며 권집, 오른발 슛!! ]
권집은 고창현이 오른발 안쪽으로 휘감아 올려 준 크로스만 주시했다. 그리고 공은 무사히 정조국과 그에게 따라붙는 수비수의 머리를 넘어왔고, 공은 발에 맞는다.......!!!!
“아아아아아아악!!!”
순간 권집의 비명소리가 그라운드를 메웠다. 순간적으로 열렬히 골을 바라고 있던 붉은 악마의 응원 소리도 멈췄다.
[ 권집 선수!! 이건 아랍에미리트 선수 당장 퇴장이죠! 경고도 이상한 상황!! 아, 권집 선수 많이 다쳤나요? 무척 고통스러워 하는데요. ]
[ 그러게 말입니다. 저기서 슈팅을 하려고 발을 든 상태에서 반대쪽 디딤발을 발바닥으로 걷어채지 않습니까? 지금 보세요. 저건 비신사적 행위, 바로 레드카드가 나와야 합니다! ]
주심은 곧장 페널티 킥을 선언하며 레드카드를 들어 보인다. 아랍에미리트 선수들도 항의를 포기한 듯 했다. 그러나 권집은 극도의 고통에 신음 소리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야, 권집! 괜찮아?”
“야, 어디가 아픈데? 레프리! 들것, 들것!”
권집은 쓰러져서 일어날 줄 몰랐다. 차범근과 포마스키는 걱정이 돼 발만 동동 굴렀다. 자신이 어떻게 손써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의 팀닥터들은 허겁지겁 들것에 실려 나온 권집의 발목부터 확인했다. 신발이 채 들어가지 않을 정도까지 발이 부었다. 팀닥터들은 차범근에게 더 이상 안 된다는 표시를 해 주었다.
“젠장……. 두현이 준비해라!”
“두현이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쓰고, 지성이를 내리시려구요?”
“응. 지성이 수비형 미드필더도 적응을 시켜놔야 돼. 유럽 애들은 워낙 공격력이 쎄서.”
[ 한국팀, 결국 권집 선수를 교체하고 김두현 선수를 투입합니다. 모쪼록 권집 선수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한국팀의 페널티 킥. 키커로는 최태욱 선수가 나섭니다. 최태욱…….달려들며 슛! 고올!! 최태욱, 멋지게 골키퍼를 속이고 반대 방향으로 집어 넣습니다! 이제, 4대1! ]
한편 차범근은 골을 넣고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팀닥터들의 말에 의하자면, 권집은 병원으로 이송되어 큰 진찰을 받아봐야 한다고 한다. 페널티 킥이 준 이득보다 권집을 잃은 손해가 훨씬 더 많았다. 수비형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드물게 칼날 같은 패싱력과 테크닉을 갖춘 선수였는데. 차범근은 아쉬움만 짙게 밴다.
[ 후반전도 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후반전 42분. 한국팀, 4대1로 여유롭게 앞서가고 있습니다. 볼 뒤로 돌리는 한국팀, 이제 체력 안배를 시작하는거죠? ]
[ 그렇습니다. 아시아 지역 예선이 끝나고, 일주일 뒤에 유에파 컵 우승팀은 스페인의 발렌시아와 평가전을 한 차례 치르고, 네덜란드 아약스,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망과 연속으로 친선 경기를 갖습니다. ]
[ 한국팀, 분발해 주길 바랍니다. 박지성, 볼 잡고 멀리서 중거리 슛! 합니다만, 골대를 훌쩍 넘어가 버립니다. ]
[ 그렇죠. 지금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벌려서,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게 좋았을 텐데 박지성 선수, 아쉽습니다. ]
한국은 여유를 가지고 경기를 진행한다. 불과 몇 분 뒤면 아시아 지역 예선도 끝난다. 앞으로 남은 것은 ‘실전’뿐.
“로버트, 슬슬 일어날 준비 하자. 내가 오늘 저녁 살게.”
“그래? 그럼 나야 좋지.”
한건과 로버트가 주위를 정리하는 사이, 주심의 긴 호각이 울렸다. 경기 종료. 한국이 3전 전승, 조 1위로 리틀 월드컵 출전 티켓을 따내는 순간이었다. 차범근은 이라크 전에서 사실상 확정되었을 때부터 담담하려 했지만 기쁨을 숨길 순 없었다. 리틀 월드컵, 이제 남은 두 달 동안 철저하게 준비해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얻으리라. 자신과 함께 한 약속이자, 언론을 통해 국민들과 한 차범근의 약속이다. 차범근은 다시 한 번 그 약속을 상기시키며 각오를 다졌다. 세계 어떤 강호들이라도 상관없다는 걸 보여 줄 것이다. 우린 홈이고, 더구나 강하다. 차범근은 웃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
이제 평가전과 조추첨, 그리고 진짜 리틀 월드컵만 남았군요..
첫댓글 권집선수 꼭 살려주세요...ㅋㅋ
최태욱 교체되짜나요- _-;;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