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백운 골짜기에서 가재를 잡으며 왕따를 극복했던 어린 시절,
얼마 전 영암 쌍계사지를 가는 산 길 그 골짜기에서 그 마을의 최대휴씨가 가재를 잡아 보겠다면서 돌 하나를 들추자 집게를 세운 가재가 잡혀 올라왔다. 내가 살던 고향 진안에서도 보지 못하는 가재가 영암 덕룡산 자락에 살고 있다니, 그 가재를 보며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무르익은 봄날 아침이었다. 할머니가 학교를 가기 위해 책보를 등에 메는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핵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라 이. 나는 가는골에서 밭매고 있을 랑개 살강에 얹어놓은 밥 먹고 일찍 와라 이.”
왜 그럴까? 무슨 일을 하라고 그런 건 아닐까? 오전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따라오는 것을 피해 도망치듯 집으로 달려와 살강에 있는 밥을 게눈감추듯 먹고, 가는골 밭으로 갔다.
“우리 큰손주 왔네, 내가 재미난 것 가르쳐줄게.” 할머니는 호미를 밭 가장자리에 놓고서 내 손을 잡은 채 시내로 갔다.
시냇가에는 조팝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고, 찔레순이 제법 탐스럽게 올라와 있었다. 할머니는 시냇가의 웅덩이에 가서 자그마한 돌을 들췄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잡았다.
“이게 가재란다.”
내가 처음 본 가재가 할머니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이 가재를 잡으면 내가 저녁에 간장 넣고 조려줄 테니 많이 잡아라.”
말을 마치고 할머니는 옆에 있는 싸리나무 가지를 꺾었다.
그리고 위를 자르더니 가재의 부채 부분을 그 싸리나무에다 꿰었다.
“이게 가재 뀀지다. 이렇게 하면 되니, 많이 잡아라.”
할머니는 다시 밭을 매러 밭으로 갔고, 나는 난생처음으로 가재를 잡는 가재 사냥꾼이 된 것이다.
그런 나날 속에서 혼자 노는 방법을 터득했는데, 그게 바로 내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이 되는 놀이였다.
내 고향 백운의 진산이라고 할 덕태산의 가슴께에서부터 조금씩 흘러내린 시냇물이 조금씩 모아지고 어디쯤에서 둠벙이되는 그 경이를 나는 가는골에서 발견했다. “할머니”하고 내가 부르면, 그 뙤약볕에서 밭을 매고 계시던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던 할머니는 나에게 “밥은 먹고 왔냐?”고 소리치지만, 할머니 말은 이미 내게 들리지도 않는다.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올라가는 길섶엔 얼마나 많은 여러 가지 사물들과 사건들이 내 눈을 번쩍번쩍 뜨이게 하는지, 찔레나무 우거진 숲을 들여다보면 뒤늦게야 올라온 찔레의 새순이 윤기가 번질 번질나게 통통하게 살찐 채 기다리고 있었다.
몇 개를 꺾어서 그 껍질을 벗겨 먹으면 입안을 감도는 그 감미로운 맛, 그 맛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랴? 흐르는 물소리가 잦아들 무렵 내 발길은 멎고 그곳에서부터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가재사냥’이 시작되었다.
물은 차다. 먼저 엎드려 물을 마신다. 뱃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온몸이 오싹하도록 차가운 이 물맛, 나는 물속에 그 작은 손을 한참을 담근 다음 가재가 있음 직한 돌멩이를 가만히 떠들어본다. 있다.
그 가재가 그의 은신처가 아니 그만의 그 집이 백일하에 드러난 줄도 모르고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나는 물속에 손을 가만히 들이밀고 순식간에 가재의 몸통을 붙잡는다. 가재는 몸부림치며 그 무서운 집게발을 허공에 허우적거리지만, 내 두 손가락에 붙잡힌 이상 빠져나갈 길은 이미 어디에도 없다.
용서하시라. 나는 그 가재의 끝부분 부채를 떼어내고 날렵하도록 가느다란 싸리나무 가지를 벗겨 그 몸통을 뀐다. 가재는 마지막으로 버둥거리다가 한참 후에 숨을 거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초등학교 2학년 조그만 어린아이가 겁도 없이 깊고도 깊은 산 속에서 가재를 잡는 것도 신기하고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 살아 있는 가재를 잡아 서서히 죽게 만든 것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가재를 잡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잘하는 일이었고 최상의 즐거움이며 모험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골짜기를 내려갈수록 시내는 더욱 넓어지고 둠벙은 더욱 커진다. 어떤 때는 돌멩이 하나를 들추면 가재는 없고, 거무스름한 개구리가 웅크리고 있기도 했지만, 두세 마리의 가재가 모여 있다가 눈치를 채고 멀리 헤엄쳐가고, 나는 그때부터 그 가재들과 숨바꼭질 같은 전쟁을 벌인다. 가재에게는 목숨이 걸린 절체절명의 전쟁이고, 나는 날쌔게 도망가 버린 두어 마리의 가재를 놓쳤다는 서운함만 남는 기이한 전쟁, 그 전쟁은 대부분 나의 승리로 끝나고 만다.
“나는 늘 홀로였다. 싸움은 많았지만, 승리는 늘 내 것이고 남는 패배는 늘 내 것이었다.”고 노래했던 내가 좋아한 조태일 시인의 시구절이 그때만큼은 맞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내 어린 시절의 하늘과 같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지 45년의 세월이 흘렀고, 나 역시 이 세상의 쓴맛 단맛을 보며 산지 오래인데, 가재를 보며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 것은 가을비가 내려서 그런가, 내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가?
2026년 10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