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어느 한 개인의 소유물이 되길 원치 않는다.
나라 곳곳을 답사를 다닐 때, 가끔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저마다 다른 생각들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우주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형상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 땅을 사서
무슨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고,
땅 값을 많이 받고 팔아서 부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집을 짓고서 살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그곳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것이 가장 적성에 맞는 일이다.
노마디즘, 그러니까 유목민의 피를 타고난 모양이다.
하여간에 그런 절경을 만나면 별장을 지어 노년을 보낼 생각을 하거나
펜션을 짓고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
옛 사람들은 그런 곳에 집을 짓지는 않았고, 정자를 짓거나
초막을 짓고서 가끔씩 그 공간을 이용했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은 없지만 그 차이는 사뭇 크다.
“지금 만일 더위에 무거운 짐을 지고 길에 시달린 사람이 가다가 무성한 나무와 맑은 시내를 만난다면, 누구든지 시원하고 반가워 차마 놓고 가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복잡한 일에 시달린 사람도 그윽한 숲, 청정한 땅에 수석이 아름다운 데를 가게 되면 또한 시원하고 좋아서 차마 떨치고 가지 못할 것이니, 이 두 개의 경우가 무슨 다름이 있으랴!
<시경>에도 ‘ 뉘 능히 뜨거운 것을 쉬고야 찬물로 헹굴 생각을 아니 하랴!’ 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는 천하 사람의 공통된 심정인 것이다.
그러나 욕심이 심한 자는 딴 판 다르니, 석공은 돌을 보면 때려서 계단이나 주추를 만들 생각만 하며, 목공은 나무를 보면 베어서 그릇을 만들 생각만 하여 품은 바가 다만 자기의 이익을 생각할 뿐이다.
만일에 저 외관을 차린 부귀한 사람이 절경을 만나게 되면, 또 반드시 기생을 이끌고 살진 고기를 굽고 음악을 베풀고 또는 앞잡이를 놓아 서슬 좋게 호령하여 길을 물리며 떠들어 댈 것이니, 이러고서야 이른바 시원하고 좋은 그 즐거움이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이상수李象秀의 <동행산수기東行山水記>에 실린 글이다.
유원지 근처를 걷다가 보면 때를 가리지 않고 풍기는 고기 굽는 냄새와
“맨 날 술이야”라는 노래 구절처럼 이술 저술 가리지 않고 한 잔씩 마셔대는 술병이 유혹을 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고기 맛이 좋겠습니다.“고 너스레를 떨어서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을 마시고 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곳을 소유하는 것보다 인생이 그렇듯이 가끔씩 머물다가 가는 것
“자연은 어느 한 개인의 소유물이 되길 원치 않아요. 한 사람의 소유물이 되면 자연은 사악한 독약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화평은 깨지고 자연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날뛰게 되지요.
끝없는 근심과 험악한 열정을 수반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면 자연은 남몰래 그 소유자의 땅 밑을 파서 깊은 땅속에다 그를 얼른 매장해 버리지요. 그렇게 해서 자연은 이 손에서 저 손을 거치면서 모두에게 속하려는 자신의 성향을 서서히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
노발리스의 <푸른 꽃>에 실린 글이다, 스스로 자自에 그러할 연然의 뜻을 지닌 자연自然이 누구에게 소유되길 원하겠는가? ’자연은 어느 한 개인의 소유물이 되길 원치 않는다.‘ 명심하고 또 명심할 말이다.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며 저마다 달리 사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이상수李象秀의 뒷말은 더욱 여운이 남는다.
“대개 인간의 길도 갈래가 많아 그 심오한 데는 보통 사람이 찾아들기가 어려운 것이니, 대개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이름을 붙여 무슨 장한 것이나 본 듯이 꾸미기 때문에 ‘뒤’ 사람을 그릇됨이 적지 않은 것이다.”
나더러 하는 말 같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겠다.
2026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