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인사방에서 보니...
안선생님께서 첨성대는 천문대가 아닌 용광로였고
그래, 그 옆의 해안도시 포항이 제철도시가 되는 것이란 말씀이 있으시군여...
저의 소견과 동감하시는 부분이 많으시단 격려의 말씀...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언제 여건되면 저도 한 번 뵙고 싶습니다.
지인분과 어린 시절부터 내내 이 부분을 파고 드시다가 책까지 내셨는가 본데...
말씀 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제 소견으론 틀리신 듯 합니다.
첨성대가 천문대가 아니란 학설을 꾀 제기됐었더군여...
단순한 신앙적 상징물이란 설도 있고...
최근엔 안선생님이 용광로란 학설을 내 놓으셨고...
내내...봉화대란 학설도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첨성대는 봉화대일 확률이 지대한 구조라 보입니다.
첨성대가 천문대가 될 수 없는 정황은 이렇습니다.
* 천문대라면 노구의 학자분들이 수시로 드나드실 자린데...그 오르내림이 너무 불편한 구조입니다.
비단옷 입으신 대 천문학자분들이...사다릴 타고...첨성대의 중간 비좁은 문으로 기어 들어가...
다시 사다릴 타고 상단부로 기어 올라 가시게 만들었으니...이를 설계한 자들은 곤장을 맞아야할 불편한 천문대를 지은 격입니다.
* 고로, 첨성대가 천문대라면...
노구의 천문학자님들께서 손쉽게 오르실 수 있도록...첨성대 외부에 나선형으로 바벨탑식의 계단을 만듬이 일반상식일 겁니다.
*첨성대 안에서 우물안에서 하늘을 보듯 관측했을 거라하는 학설도...
그러려면 그냥 맨땅에서 머리위를 보나...갸오 9미터 더 올라가 보나 마찬가지이니 올라간단 의미가 없습니다.
뭔가에 올라가 관측한다 함은...
몇 십광년이나 되는 별과의 거리로 봐선 무의미한 것이고...
지평선에 가린 별들을 최대한 높이서 관측해야 할 경우에 높은 천문대가 필요한 경우라 보이니...
첨성대 안에서 우물안 개굴이 식으로 하늘을 관측했단 학설은 무리가 많다 하겠습니다.
첨성대가 신앙적 상징물이란 학설도 문제가 많은게...
신앙적 상징물들은 이미 경주 불국사 석굴암,황룡사지... 등의 여러 거대 탑들이 잘 하던 역할였던 것이며...
첨성대 자체의 세부적 완성도를 보아선... 다보탑이나 중원의 여러 거대탑들에 비해 그 미려함의 세공도도 떨어지니...
왕이나 제사장(무당)을 상징하는 화려한 건축물은 아닐것으로 보입니다.
안선생님께선...
첨성대는 용광로라 하셨는데...
제가 아직 안선생님의 책자를 직접 읽어 보질 못해 이래서 아니다라 확정할 순 없으나...
상식적으로 이해 않 되는 부분들이 좀 있습니다.
* 용광로라면...철광석을 고로 안에 집어넣을 단단하고 완만한 외부 계단에 존재해야 합니다.
* 용광로라면 밑에서 강력한 불을 짚여야 하는데...첨성대 안에서 불을 짚이다간...
강력한 열에 첨성대 내벽들이 다 튀겨져 부서졌을 겁니다.
* 불을 짚이려면 나무를 넣어야 하는데...
굳이 사다릴 타고 나뭇짐을 지고 올라가 좁은 구녕으로 들어가는 구조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 첨성대가 용광로라면...최소한 첨성대 주변에...유서깊은 제철 관련 관청이나 대장간이라도 전수됐을법 한데 전혀 없단 겁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밑의 첨성대는...군사시설의 구조가 뛰어 납니다.
적의 전위 척후대의 급습에 대비해...출입은 사다리를 통해 좁은 문으로 하고...출입이 끝나면 사다릴 거두는 구조입니다.
이 문이 뚤려도...내부에서 상부로 또 사다리를 타야하는 구조니...상부에서 뚜껑을 닫거나 공격하면 도저히 올라가기 어려운 방어물입니다,
물론, 대규모 정규전일 경우는 그냥 석포로 부서 버리면 되고...
공성장비 위에서 깔아 뭉게면 그뿐 이겠으나...이미 그 때는 봉화가 훨훨 타고...할 역할을 다한 봉수대 대원들은 장렬한 최후만 준비하면 그뿐인 겁니다.
봉화대의 역할은 초기의 신속 정확한 신호입니다.
내부의 소수 배신자들이나 잠입한 소규모의 척후대 암살단들만 방어하면 됩니다.
그래,중원의 봉화대 규모들도...대개 첨성대와 비슷한 규모인 겁니다.
봉화대를 방어하는 군 시설이나 성벽이나 목책은 따로 있고...봉화대는 그 안에 다시 따로 짓는 구조입니다.
너무 큰 방어물일 경우...적들의 은밀한 침투와 내부 내통자들의 침투에 취약하기에...
최소이자 필수적인 인원으로...최고 정확하고 독립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불을 짚일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던 이치라 그런 겁니다.
좋게 정리된 자료들을 쫀쫀허니 펌이 않 되더군여...아쉬운데로 밑의 자료를 보시겠습니다...ㅡ.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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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가 봉화대가 될 수 없단 기존 학설들의 근거는 이겁니다.
봉화대는 높은 산지에 건설해야 국경을 넘는 적들을 관측할 수 있고...
멀리 떨어진 아군에게 신호도 잘 보낼수 있는데...첨성대는 평지의 구릉위에 있어...봉화대의 역할에 어늣난단 설입니다.
일단, 맞습니다.
봉화대는 적들의 대규모 침투를 변경에서 도성으로 전하고...
도성의 지시를 변경으로 전하는 역할도 했어야 했으니...높은 산지가 적당한 구조일 겁니다.
허나, 첨성대는 그런 봉화대의 기본 입지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함에도...
저는 첨성대는 봉화대라 예상합니다.
그 구조가...철저히 방어적인 봉수대의 구조이고...
천문대나 상징물이기엔...그 구조가 너무 불편하거나 섬세치 아니합니다.
그럼, 평지내의 조금 높은 구릉에 왜 봉화대가 필요하냐 하실 겁니다...?
제가 보기에 경주는...신라의 황도도 아니요...고도도 아닙니다.
거대한 공동묘지 입니다.
수 많은 정체불명의 묘지들 중...갸오 몇 십 기의 신라관련 유물들이 좀 나온 것 빼곤...
신라 고도란 증거들은 없고...신라 황실만의 공동묘지란 증거도 불충분 합니다.
제 생각엔
연나라에 밀린 기자조선이 서역으로...일부는 만주와 한반도로 몰릴 때...
제일 약탈의 대상이던 무덤 부장물들의 안전을 위해 한반도 최고 외진 곳에 귀족&왕족들의 무덤을 조성했을 가능성 많다 하겠습니다.
이후, 선비족(동선비=조선)이 고구려에게 밀릴 때도 그랬겠고...
동예(동부여)와 옥저국(오오츠크)이 고구려에 밀릴 때도 그랬겠고...
고구려가 당에게 밀렸을 때도 그랬겠고...
통일신라가 고려에게 밀렸을 때도...
발해(대진)가 요나라에게 밀렸을 때도...
금나라가 탕구트(왕건고려)&몽골에 밀렸을 때도...
대륙의 최 동남쪽 반도 중,,,최고 동남부 태백준령 넘어 경주는...
대륙의 기마군단 침략에서 최고 안전하게 역대왕릉들의 부방품들을 유지할 수 있는 입지조건였을 겁니다.
허나, 하나 문제가 됀게...
백제의 속국이자...해양 해적들인 동남아 섬 원숭이들과 혼혈된...튀기 일본열도인들의 해적질에 안전치 못합니다.
백제와 신라가 망하곤...그 유민들이 왜노들 지역으로 대거 망명하여 더 업그레이드 되곤...더 문제가 많아 집니다.
실제...경주의 지척인 울산 왜성터를 보건데...
아예, 한반도 남쪽 해변엔...이미 왜인들의 무역을 위한 자치 구락부까지 형성됐던 것으로 보아...
이 자치 구락부에서 소규모 도적떼들이 수시로 경주 왕릉을 도굴했을 것이며...해안으로 타고 들어온 좀 큰 규모의 왜구들도 경주 황릉들을 여러번 침입했을 겁니다.
정규군의 전면전이 아닌...
도적들의 ...오로지 부장품들의 도굴이 목적였겠져...
경주의 수 많은 무덤들 중간에 첨성대가 있습니다.
고귀한 천문관들께서...궂이 천문관측을...공동묘지지 안에 들어가 할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역대 황가들의 유구한 공동묘지 한 가운데...
도굴꾼들을 막기위한 방어기지이자 봉수대가 지어진게 첨성대이고...
무기를 든 대규모 왜노 도굴꾼들의 침입시는...주변 경주관청에 신호를 보내는 역할이자...
더 큰 규모의 침입시는 ...멀리는 대구등지로 구원을 요청하는 봉수대라 하겠습니다.
경주의 여러 황궁터란 것들은...
선덕여왕이 계시던 그 신라황궁이 아닌...
대륙에서 밀린 역대 황조들의 공동묘역 관리 관청들이자...사당터라 하겠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께서는
반도의 경주에 계셨던게 아니고...
사로(사라센)의 동부 황궁인 인도나 티벳 사천성 일대에 계셨지 싶습니다.
신라의 시원지인 고구려에게 망명지로 제공받은 진나라 유민들의 왕궁터는 티벳고원의 라사가 유력해 보입니다.
백제와의 경계지역에 넣어 싸움이 잦았던 겁니다.
거기서 수당(이집트&아랍)군들을 끌어 들여...
장강 일대의 백제를 치고...신장지구와 황하일대의 고구려를 쳤다 보입니다.
카페 게시글
역사토론방(출처있는글)
경주 첨성대는...천문대가 아니요...용광로도 상징물도 아닌... 봉화대"일까 합니다.
홍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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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23
11.02.18 13:37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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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속을 들여다 보니 봉화불 올리는 봉수대 가 맞습니다
제 편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생님...ㅡ. .ㅡ
공감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훌륭한 안목인 것 같습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다올선생님...나름, 수준떨어지나마...최대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늦게 선생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저의 생각과 주장이 반드시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수학적 증명방식에 의해 다가가갔습니다. 시간을 두고 먜기를 나누어야 겠지만 우선 몇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우선 아이언 코드가 기원 후 역사의 중심코드라는 점입니다.
1. 서라벌은 공업도시였다는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1. 주변에 산재해 있는 철광광산등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1. 당시의 연료는 석탄 숯인 코크스로 추정됩니다. 인근에 유연탄 광산이 현존합니다.
1. 서라벌의 주택과 건물구조에서는 나무아궁이가 없습니다.
1. 황룔사의 역활론을 고민해 봅니다.(안병호드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