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메이저리그의 사무총장으로 선임된 롭 만프레드는 취임 후 더욱 공격적인 야구를 만들기 위해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프레드의 발언은 즉각적으로 많은 칼럼니스트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됐지만, 이 발언은 역설적으로 수비 시프트가 얼마나 많은 실점을 막아내는지를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이 같은 수비 시프트를 메이저리그에서 제일 잘 사용하는 팀 중 하나는 바로 강정호의 소속 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다. 클린트 허들 감독은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올 시즌 외야수들의 수비 위치를 내야 쪽으로 조금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대부분의 구단들이 장타 억제를 위해 외야수들을 깊게 두는 최근 추세에 역행하는 결정이다. 허들 감독은 왜 외야수들을 전진 수비 시키기로 결정한 것일까?
이유 1. 땅볼 투수 위주로 구성된 투수진
’투수 네크로맨서’ 시어리지 투수코치 [사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트위터
<하드볼 타임즈>의 필진이자 통계 전문가인 브라이언 카트라이트는 최근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땅볼을 잘 만들어내는 투수들은 평균보다 더 짧은 비거리의 타구, 즉 얕은 플라이도 더 많이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 결과가 클린트 허들 감독의 새로운 전략을 설명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 피츠버그 투수진의 가장 뚜렷한 장점은 땅볼 유도 능력이다. 피츠버그는 투심 패스트볼을 장려하는 레이 시어리지 투수 코치의 가르침을 앞세워 지난해 땅볼 비율 리그 1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실제로 지난해 피츠버그 투수들이 허용한 플라이볼의 비거리 또한 약 87.2m로 리그에서 세 번째로 짧았다.
작년 피츠버그 투수진은 제일 높은 땅볼%, 약한 타구%을 기록했다 [출처] 팬그래프
허들 감독은 지역지 피츠버그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리는 외야수 앞 쪽으로 떨어진 타구에 의해 손해를 많이 봤다. 새로운 외야 시프트가 빗맞은 안타를 줄여 투수들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땅볼 투수 위주로 구성된 피츠버그 투수진은 지난해 얕은 안타를 많이 맞았고 올해에는 외야 전진 수비를 통해 그 빗맞은 안타들을 아웃 카운트로 연결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유 2. 주자를 묶어놓는 외야수의 빠른 송구?
주자를 묶어놓고 있는 피츠버그 외야진 [사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트위터
흔히들 야구는 타격에서 한 베이스 더 가고, 수비에서 한 베이스 진루를 막아내는 것이 모여 승부를 내는 스포츠라고 한다. 美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는 외야수들이 주자의 진루를 얼마나 막아냈는지 나타내는 지표를 제공하고 있다. 피츠버그의 새로운 외야 전진 시프트는 지금까지 ‘한 베이스 진루’를 막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5월 12일 기준)
지난해보다 외야 모두에서 억제 비율이 훌쩍 늘었다. [출처] 베이스볼 레퍼런스
지난해 리그 평균을 살짝 웃돌았던 피츠버그 외야진의 주자 억제력은 올 시즌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전진 수비로 인해 더 이른 타이밍에, 더 앞선 위치에서 타구를 잡아 송구 할 수 있게 된 피츠버그 외야진 앞에서 주자들은 쉽사리 한 베이스 더 뛸 수 없게 된 것이다.
피츠버그와 비슷한 조건, LG 트윈스 외야진에게 전진 수비를 허하라?
KBO리그에도 피츠버그의 새로운 외야 시프트를 눈여겨봐야 할 팀이 있다. 바로 LG 트윈스다. LG는 지난해 압도적인 차이로 뜬공 대비 땅볼 비율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우규민, 류제국을 필두로 대부분의 투수들이 땅볼 유도에 능했던 LG의 투수진은 올 시즌에도 SK에 이어 뜬공 대비 땅볼 비율 2위에 올라 있다. 아쉽게도 KBO리그에는 타구의 세기나 플라이볼의 비거리를 제공하는 곳이 없지만, LG 투수들 역시 얕은 플라이와 짧은 비거리의 타구를 많이 허용할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하지만 올 시즌 LG의 투수들은 수비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5.83까지 치솟은 ERA(리그 9위)에 비해, 4.65의 FIP(수비 무관 평균 자책점)은 오히려 리그 평균보다 더 나은 수준이다(리그 4위). LG 투수진의 BABIP(인플레이 된 타구가 안타가 되는 비율) 역시 0.366으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야수가 없는 곳으로만 타구가 향했다고 과장해도 좋을 법한 불운이다. 올해 LG 팬들은 바가지 안타를 맞으며 실점하는 장면을 적지 않게 목격했을 것이다.
실제로 LG 외야수들의 타구 처리율은 36.4%로 리그 9위에 올라 있다. 외야수들의 수비 위치를 앞으로 당길 필요가 있어 보이는 이유다.
외야수들의 진루 억제 비율, LG는 9위에 자리했다 [출처] Statiz
LG 외야수들이 너무 많은 주자 진루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도 짚어봐야 한다. LG의 외야수들은 5월 12일까지 233번의 주자 진루 기회 중 138번의 진루만을 막아내며 59.2%의 진루 억제 비율을 보였다. 리그 9위 기록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빠른 야구’를 지향하며 ‘한 베이스 더 가는’ 야구를 주문했던 양상문 감독은 이제 ‘한 베이스 덜 내주는’ 야구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2016년, LG 트윈스는 리빌딩을 천명하며 이천웅, 채은성, 이형종, 안익훈과 같은 젊은 외야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 1군 수비 경험이 부족한 그들에게 잠실 구장의 외야는 너무나 넓게 느껴진다. 앞서 이야기 한 피츠버그의 외야진처럼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구가 많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그들을 위치시키는 것이 어떨까? 수비 시프트를 통해 이병규(7)의 넓지 않은 수비 범위와 박용택의 송구 능력도 조금은 살리는게 어떨까? LG 트윈스는 팀 투수진의 탁월한 땅볼 유도 능력을 믿고 LG 외야수들에게 전진 수비를 허해야 할 것이다.
출처 : Statiz, Fangraphs, Baseball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