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서열 해소 방안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를 더 정교하게 만들기 위한 연속 간담회가 총3차에 걸쳐 열리고 있습니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의 내용은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대학 정원에 부합하는 성적 기준으로 학생을 공동 선발하면, 참여대학 간에 서열이 사라진다는 것이 핵심인데요.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대학에는 학교당 1천억 원 수준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학생들은 학점과 교육자원을 공유함으로써 교육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참여대학이 많아질수록 서열화가 완화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대학통합 네트워크는 대학을 살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토론자들의 의견은 현실적인 질문부터 급진적인 의견까지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첫 토론자로 나선 서울대학교 김경범 교수는 현재, 한국 대학과 대학원의 교육과 연구 기능이 붕괴되고 있다고 할 만큼 매우 안 좋은 상황임을 강조했어요.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를 실행하기 위한 예산 10조원이 사회적으로 동의가 될 만큼 시급한 것인지 질문했고, 죽어가는 지방대학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인지도 의문을 표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4년제 대학이 약 200개, 전문대학이 130개가 있는데, 네트워크 안에 들어오는 대학 100개를 살릴 수 있다면 네트워크에 들어오지 않는 대학과 들어오지 못하는 대학들 사이에 다시 또 서열이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김경범 교수님은 고등 교육, 특히 지방대학, 그 중에서도 대학원의 연구 기능 붕괴에 대한 엄중한 위기를 강조했습니다.
고등교육은 국민의 마땅한 권리
전직 교사이자, 대학혁신 시민응원단에서 활동하는 박은선 변호사는 김경범 교수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포문을 열었습니다. 대학 서열 폐지가 필요한 이유는 고등교육이 국민으로서의 마땅한 권리라는 점을 강조했어요. 서열과 상대평가가 존재하는 한,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도입되는 그 어떤 정책, 자유학년제, 중학교까지 시행되는 절대평가, 혁신학교, 입학사정관제, 고교학점제까지 우리의 공교육은 비교육성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대학입학시험을 고교 자격시험으로 바꾸어 누구나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되, 경쟁은 대학에 가서 시작하자는 제안입니다. 박은선 변호사는 발제자가 제안한 공동입학네트워크 초기에 네트워크 정원 안에서 상대평가로 선발한다는 구상조차 서열해소라는 목표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 비판합니다. 다만, 네트워크로 통합된 대학이 좋은 대학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국가가 주도하는 국립대 네트워크가 성공 가능성이 높은 현실안일 수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통합 네트워크 안에서 대학에 재정을 투자하면 좋은 대학이 되고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학생들에게는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몇 명이고, 1인당 투자되는 교육비가 얼마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졸업 후 자신의 진로가 얼마나 보장되는지에 따라 희망대학과 학과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재정 투입은 연구중심대학을 중시하는 교수들의 관점이라는 점입니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지만, 전통적으로 사회에서 일정한 수요를 담당해왔던 의대, 교대, 로스쿨을 제외하면, 취업이 보장되는 학문이 대학에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듭니다.
초중등교육을 대학 선발의 도구로 삼지 말라
대구 청구고등학교 교사이신 이동우 선생님은 현 정부가 공정을 강조하며, 수능을 확대하면서 ‘교육이 개천 사다리 역할을 담당해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했지만, 사회 불평등은 구조적인 문제 자체로 해결해야지, 교육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만 해도 대학서열이 존재하지만, 초중고등학교 내신도, 대입시험인 SAT도 절대평가라는 점을 지목했어요. 상대평가와 변별은 보다 적격한 지원자를 가려내야 하는 대학의 몫이고, 초중등학교는 대학의 학생 선발을 위한 도구가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초중등교육의 본질과 독자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평가 및 대입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동우 선생님 역시 유럽 선진국처럼 졸업자격을 획득하면 누구나 네트워크 대학에 입학하되, 이후 엄격한 학사관리를 통해 졸업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부동산 문제를 왜 교육과 연결 짓나
경기도 교육정책자문관이신 전경원 선생님 역시 절대평가 전환은 교육 당국의 결단이 관건이라고 말했습니다. 혹자는 절대평가를 강남의 집값 상승 문제와 연결시켜 말하는데, 부동산은 부동산 문제에서 별도로 해결해야지, 교육과 부동산을 연결하는 것은 본질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법률 개정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절대평가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를 제안했어요. 또, 대학 네트워크가 실행됐을 때, 학교를 추첨 배정하는 방식에 사회적 합의가 어려울 것이므로 권역별로 순회하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고등교육의 국고 지원을 OECD 평균 수준인 GDP 대비 1.1% 수준으로라도 끌어 올려야 한다는데 동의했습니다. 문제는 국가 예산을 총괄하는 기재부에서 학령인구가 감소하니 교육재정교부금도 줄여야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목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학령인구가 줄어드니 국방비 예산도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요.
마지막으로, 수능을 가장 공정한 시험이라고 믿는 우리 사회에서 추첨식 배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강남구는 수능 응시생이 고3보다 N수생이 더 많습니다. 2017~2019년 서울대 정시 입학생을 살펴보면 전체 인구 52만인 서울 강남구 출신이 1천만 명이 넘는 4대광역시 출신보다 더 많이 선발되고요. 수능이야말로 학생이 처한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기회와 과정에서 불평등한 시험이지만, 우리 사회는 한 날 한 시에, 같은 시험지를 받아 응시한다는 사실만으로 수능의 공정에만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논의는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다음 중에서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수능과 고교내신을 전과목 절대평가한다.
통합 네트워크 대학을 지원하면 추첨 배정한다.
고교졸업자격시험만 통과하면 원하는 대학에 입학 자격을 준다.
대학에 지원하는 국가 예산 10조 원을 추가 지원한다.(OECD 평균 수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습니다.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가치관에 따라 어느 것은 쉽고 어느 것은 쉽지 않다고 여기고, 사회적 저항을 생각하면 모두 다 어렵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뚜렷한 묘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렵다고 해서 가던 길로만 가면 변화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질문을 안고 2차 간담회를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