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 하실래요? (늘푸른언덕)
그칠 줄 모르는 코로나19가 더욱 극성을 부리는 요즘입니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가 되면, 한 해를 마감하며 가족이나 정들었던 지인들과 가족 모임이나 송년회 또는 친목회의 이름으로 밥 한 끼 같이 하던 아름다운 풍경을 올해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음 편하게 밥 한 끼 먹던 일상의 기억들을 새삼 그리워하며 밥 한 끼에 담긴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금세기 최고의 투자가로 알려진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Warren Buffett) 과의 점심 식사 한 끼’가 경매에 부쳐진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는 2000년부터 1년에 한 번씩 자신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할 기회를 경매에 부쳐 왔습니다. 2000년 첫해에는 2만 5천 달러(한화 약 2천8백만 원)로 시작된 것이 현재는 수백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경매로 모인 돈은 샌프란시스코의 자선단체 기관인 ‘글라이드’라는 재단에 기부되어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자선행사에 쓰이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암호화폐인 트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젊은 사업가 ‘저스틴 선’이 ‘워런 버핏과의 점심 한 끼’ 경매에 낙찰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점심 한 끼에 들인 돈은 무려 456만 7888달러(한화 약 54억 원)로 이전의 기록을 갱신하여 세상을 놀래게 했습니다. 30세의 젊은 사업가와 60살의 나이 차이를 보이는 90세의 금세기 최고의 투자가와의 점심 한 끼가 엄청난 화제가 된 것입니다.
저스틴이 점심 한 끼에 이런 엄청난 돈을 건 이유는 최고의 투자가인 워런 버핏이 암호화폐에 대해 쓰레기 취급한 것에 대해 점심 식사 자리를 통해 토론도 하고 평소 존경하는 큰손으로부터 투자에 대한 가르침을 얻고자 함이었다는 후문이 있는데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중요한 것은 밥 한 끼의 가치가 사람에 따라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라서 무척이나 놀랍고 신선했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밥 한 끼’를 소재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중파 TV나 종합 편성 채널은 물론이고 유튜브 등 OTT 채널들을 보면 다양한 먹방(먹는 방송)과 쿡방(요리하는 방송)들이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밥 한 끼를 소재로 아직도 식을 줄 모르는 인기를 얻고 있는 TV프로그램이 있습니다. 2014년 처음 선을 보인 나영석 피디 연출의 ‘삼시 세끼’입니다. 시골과 도시의 색다른 만남을 소재로 기획된 이 프로가 아직도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내용 구성을 보면 단순합니다.
도회지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예능인들이 산촌이나 어촌 등 시골로 내려가 하루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도회지에서 어렵지 않게 해결되는 하루 한 끼의 끼니 해결을 외딴 시골에서 식재료 구입 등 결코 쉽지 않은 준비 과정을 통해 과연 진정한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젊은 시절 인기를 누렸던 홀로 사는 중견 연예인들이 출연하여 자연스러운 친구가 되어가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인 ‘불타는 청춘’도 있습니다. 이 역시 전개의 중심 내용을 보면 출연진들이 함께 모여 밥 한 끼를 준비하여 함께 먹고 설거지하는 과정을 예능 식으로 재미있게 잘 풀어내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과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한 끼 줍쇼’, ‘오늘 뭐 먹지?’, ‘맛있는 녀석들’, ‘한국인의 밥상’, ‘편스토랑’, ‘냉장고를 부탁해’ 등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밥 한 끼’와 관련된 소재에 각기 다른 콘텐츠를 구성하여 시청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밥 한 끼 식사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관계 형성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어느 성공한 CEO의 한 주간의 주요 스케줄 중 하나는 주 중에 적어도 2회 이상 각기 다른 VIP들과 점심 약속을 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매일 다른 사람과의 점심 약속을 정하는 것은 결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며 그런 스케줄을 꾸준히 관리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성공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일 것입니다.
식사 자리가 단순히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하는 자리이기에 결코 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회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CEO께서 부임 이후 매일매일 순차적으로 각 팀들과 점심 식사를 하며 소통을 활성화하겠다는 야심 찬 선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그 계획을 듣는 순간 매우 신선하고 바람직한 이벤트라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스케줄이 점점 흐지부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진정성 있는 대화가 사라지면서 점차 형식적인 식사 자리로 변모되어 결국 그 자리가 불편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밥 한 끼 하면서 꾸준히 대화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예부터 ‘밥’이 주는 의미는 남다른 것 같습니다.
‘밥이 보약’이란 말이 있듯이 ‘밥’은 곧 삶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요 목적이었습니다. 또한 인간관계에 있어 남을 위한 배려요 관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표현하냐에 따라 사랑의 표현이요 관심과 안부의 인사로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가령 청춘 남녀가 소개 미팅이나 맞선을 보는 경우 처음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상대가 마음에 들 경우 ‘식사 같이 하실래요?’라는 말을 건넸을 때 그 말의 의미는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또한 연인들끼리 데이트 마치고 집에 바래다주었을 때 상대방에게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라는 표현은 단순히 라면을 먹고 가라는 뜻이 아닌 ‘우리 집에 들어왔다 갈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한국인들이 ‘밥’을 소재로 표현하고 있는 흥미로운 대화들과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이 있어 인용해 보았습니다.
* 고마울 때: 야 진짜 고맙다. 나중에 밥 한번 먹자.
* 안부 물어볼 때: 밥은 먹고 지내나?
* 아플 때 물어보는 말: 밥은 꼭 챙겨 먹어~~~
* 밥 먹을 시간 인사말: 식사는 하셨습니까? 밥은 먹었어?
* 싫은 사람 보았을 때: 진짜 저 사람만 보면 밥맛없어?
* 일 못한다고 비꼬는 말: 저래 가지고 밥은 벌어먹겠어.
* 무언가 일 잘 하라고 말할 때: 이 사람아! 밥값은 해야지~~~
* 나쁜 사이일 때: 그 사람하곤 밥 먹기도 싫어~~~
* 나쁜 짓을 저질렀을 때: 너 그러다가 콩밥 먹는다.
* 둔하고 멍청해서 욕할 때: 어휴! 밥팅아~~~. 밥통 아냐?
* 심각한 상황일 때: 너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니?
* 엄마가 하는 일을 말릴 때: 그게 밥 먹여주냐?
* 싫은 사람에게 내뱉는 말: 밥맛 떨어져!
* 멀리서 안부 전할 때: 삼시 세끼 밥 잘 챙겨 드시고 건강하세요!
* 남을 비꼴 때: 밥만 잘 처먹더라~~~
* 좋은 사람: 밥 잘 사주는 사람.
* 못된 사람: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놈
* 얄미운 사람: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놈
* 친구 와이프 평가: 밥은 잘 차려 주냐?
* 똑 같이 비하하는 표현: 그 밥에 그 나물이지
* 성공 직전 실패할 때: 다 된 밥에 코 빠트리기
* 먼저 배가 불러야 한다는 말: 금강산도 식후경
* 먹고 살 만하다: 밥술이나 뜬다.
* 복이 많은 사람을 이르는 말: 밥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었다.
* 밥이 명약이라는 뜻: 밥이 보약이다.
* 매우 화가 났을 때: 밥알이 곤두선다.
* 놀고먹는 사람을 비유할 때: 밥벌레
* 맛있는 반찬을 비유할 때: 밥도둑
* 죽은 사람을 비유할 때: 밥숟갈 놓다.
* 실직할 때: 밥 줄 떨어진다.
첫댓글 밥이 보약이다.
밥 한끼 에 대한 이야기 많군요!
이번주 화요일 서봉지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마침 무료급식 행사를 하고 있더군요. 도시락한개를 받아와서 점심한끼를 때웠습니다.
요즈음은
도시락을 만들어 공원에 나온 노인네 들에게 매주 화요일에 제공하고 있는 자선사업 단체 가 새삼 떠오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