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GkrViBLkMIw?si=jm4QX_hAA1QlaEEY/짜증과신경질
갈급한 사슴처럼 42:1~5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가 주님을 기억합니다 42:6~11
6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7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9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10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오늘의 말씀 요약]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듯,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얼굴 뵙기를 갈망합니다. 그는 지난날 하나님 집에서의 일을 기억하고 마음이 상합니다. 원수의 압제와 대적자들의 비방으로 영혼이 낙심되고 불안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여전히 찬송합니다.
----------
갈급한 사슴처럼 42:1~5
사람에게 물은 생존의 필수 요소입니다. 성도에게 하나님 임재는 물과도 같습니다. 물 한 모금을 얻기 위해 메마른 광야 깊은 계곡에서 헐떡이는 사슴처럼, 시편 기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뵙고 싶어 목이 탑니다. 자신이 당한 시련이 원수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기에, 시편 기자는 주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기쁘게 찬송하면서 무리와 함께 성전에 오르던 때를 회상하니, 그의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는 낙망하는 자신의 마음을 책망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나님을 바라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갈망하고 찾는 이를 만나 주십니다.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시편 기자의 영혼은 무엇을 갈망했나요?
내가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 임재를 사모하는 때는 언제인가요?
-------------
내가 주님을 기억합니다 42:6~11
고난은 우리를 간절한 기도의 자리로 이끕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낍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감정은 그의 영혼을 낙망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을 기억하려고 애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믿음’입니다. 징계로 인해 고난받는 시편 기자는 마치 깊은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것 같은 상황입니다. 하나님이 고난 중에도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고 찬송으로 채우시니, 그는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8절). 하나님은 생명을 보호하시는 ‘반석’이십니다. 이를 확신하는 사람은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마음 다해 기도할 때 회복이 시작됩니다.
● 더 깊은 묵상
낙심한 시편 기자에게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낮과 밤에 베푸셨나요?
내가 고난으로 낙심할 때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도우시나요?
===============
하나님의 시간
대학생 때 입대하면서 ‘나는 이미 2년을 휴학했고, 3년간 군 생활을 하면 다른 친구들보다 5년이나 뒤떨어지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초조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깨달은 것은 제가 5년 뒤떨어진 것이 아니고 그만큼 앞서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회 진출이 다른 사람보다 좀 늦었을지는 몰라도, 인생의 여정에서 반드시 터득해야 할 소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명예심, 욕심, 경쟁심의 노예가 되어 있을 때는 자신이 매우 빨리 달려가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렇게 빨리 달리는 인생은 그 과정에서 배워야 할 교훈을 다 놓치고 맙니다. 결국 인생을 겉핥기식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성공, 출세, 명예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욕심과 경쟁심대로 빨리 일을 처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내 생애에서 5년이라는 사회적 공백 기간은 바로 그 하나님 뜻에 길들여지는 중요한 과정의 일부였습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상실과 허무가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세상적인 성공이나 출세가 아니라 참된 삶의 지혜와 깨달음, 그리고 영원한 생명입니다.
나의 앞날이 주께 있나이다 / 임영수_ 두란노
=================
시편 42편 3, 10절
성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하나님을 뵐 수 없을 때입니다. 사람들은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라며 하나님 백성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그런 조롱에 저항하기는커녕 자신조차 '하나님이 내 삶에 계신가?'라는 의심이 들 때, 성도의 고통은 더 깊어집니다. 사람들이 조롱해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불변합니다(마 1:23). '임마누엘'은 절망에 빠진 하나님 백성을 일으키는 강력한 소망이요 위로입니다.
모든 연약한 마음과 불안함에서 놓여날 최고의 비법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다 - 카론 필립스 굿맨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세상 것은 그토록 갈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은 희미해진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조롱당하고 낙심이 밀려오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하소서. 오늘도 살아 계셔서 저를 신실히 도우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모하고 찬양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09 목마른 내 영혼)
의인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만, 하나님의 침묵으로 영적 침체가 더해 갑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영혼에게 명령하며 다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합니다.
본문의 명제: 어렵고 힘들 때 낙심되고 괴로울 때 너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응답하시면서, 사랑을 베푸시고, 갈급함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어렵고 힘들더라도 주님께 구하고, 주님께서 역사하여 주시고,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시기를 묵묵히 기다리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며, 우리를 준비시키는 그 손길을 신뢰하면서, 어렵고 힘든 이 시기를 극복해 나가고, 주님을 더욱 더 힘껏 의뢰하자
그분이 때가 되었을 때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찬양으로 채워 주실 것임을 굳게 믿고, 묵묵히 준비와 훈련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2/29 청라호수공원 전도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4절 시인의 영혼이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애타게 찾습니다. 성일을 지키려고 노래하며 성전으로 들어가던 때가 아득한 옛일이 되고, 지금은 원수들이 그를 둘러서서 ‘네 하나님은 어찌 되었느냐?’며 조롱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못해 영혼이 마르고, 마음이 상합니다. 언제쯤 다시 성전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언제 다시 즐거운 찬송을 부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날들이기에 시인은 목마른 사슴처럼 더 간절히 하나님을 찾습니다. 나에게도 동무들과 주님 앞에서 즐겁게 예배하던 추억이 있습니까? 다시 그때와 같이 주님의 집에서, 맘껏 찬송하고 기도하며 기뻐할 수 있기를 기도합시다.
5,11절 시인은 낙심하는 자기 영혼(마음)을 책망하고 권면합니다. 어두운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소망을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처절한 내면의 싸움입니다. 절망은 가장 먼저 마음에 어둠을 드리웁니다. 그리고 마음이 무너지면, 육신과 생각도 절로 절망의 포로가 되어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대적의 조롱도 암담한 현실도 마음이 밝으면 문제없습니다. 어떤 일로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합니까? 주님께 소망을 두고, 주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라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으십시오.
6-8절 시인은 성전이 있던 시온을 떠나, 북쪽 요단과 헤르몬, 미살 산에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깊은 바다가 노호하고, 파도와 물결이 그에게 밀려듭니다. 위급한 상황이지만, 시인은 이 모든 것을 주님의 폭포소리로 여깁니다. 주님의 파도, 주님의 물결, 곧 주님이 주신 고난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절망하며 낙심하는 대신,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우리 삶이 날마다 꽃길이면 좋겠지만, 늘 그렇듯이 가시밭길도 만납니다. 그러나 그 길에도 주님이 함께하실 테니, 불안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9-11절 고난은 그 자체도 힘들지만, 대적의 조롱과 벗들의 배신이 더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분노, 두려움, 낙심, 절망이 변주되며 영혼과 육신을 괴롭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두 발을 굳게 디디고, 그분이 펼쳐나가실 미래를 주목하면, 반드시 소생하여 더 굳센 믿음으로 전진할 것입니다. 다가올 환란의 바람을 견디기 위해, 오늘 말씀의 뿌리를 더 깊이 내립시다.
기도
공동체-낙심하여 흔들리는 마음을 말씀으로 붙들어주시고 확신과 소망을 갖게 하소서.
하나님을 향한 갈망(1-5)
고난 가운데 있는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했습니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그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그는 언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를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다윗에게 가장 힘든 것은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다윗에게 너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 다윗은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성전에서 무리와 함께 기쁨으로 예배하던 때를 추억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며 마음이 심히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절망을 극복한 자의 간구(6-11)
다윗은 낙심이 된 마음으로 피난다니던 요단 땅과 헬몬과 미살 산에서 주님을 기억했습니다. 전에는 성전에서 주님을 기억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지금은 주님이 들려 주시는 헤르몬 산의 폭포 소리가 자기를 덮쳐오는 대적들의 위협으로 들렸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낮에 베푸시는 주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고 밤길을 걷고 있는 지금 찬양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슬프게 다니게 하시나이까라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칼로 찌르듯이 공격하는 원수들의 소리 곧 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하는 말들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을 향하여 용기를 북돋우어 줍니다.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다윗은 밤같은 인생에서 빛이 되시는 하나님이 너무나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볼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향하여 낙심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격려 합니다.
곧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도우실 것이라고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믿음을 선포하며 스스로 용기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어두운 밤에 하나님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습니까? 개인적으로도 한국교회적으로도 하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시기가 아닐까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늘 본문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여호와의 은혜를 기억하고 대적자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도와주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라 자손의 시로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 하나님을 소망함, 하나님께 간구함, 하나님을 찬양함 입니다.
‘찬송의 노래’란 뜻인 시편은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에 사용한 찬송가입니다. 즉, 솔로몬이 건축한 제 1성전(B.C. 10세기)과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스룹바벨에 의해 세워진 제 2성전(B.C. 515년)때 사용된 것입니다. 따라서 시편 전체에 수록된 150편의 시가 현행의 시집으로 되기까지에는 여러 개의 작은 시집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예가 제 1 다윗의 시집(1-41편), 제 2 다윗의 시집(42-72편), 그리고 아삽의 시집(73-89)과 작자미상의 시집(90-106) 등 입니다. 각기 그 나름대로의 특징과 음률을 갖고 있는 이 작은 시집들이 현재의 시편으로 대 집성된 시기는 대략 B.C. 2세기 중엽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편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신뢰에 대한 시’입니다. 둘째는 죄에 대한 ‘참회 시’, 시련에 대한 ‘탄식 시’입니다. 셋째는 메시아를 대망하며 지은 예언적 성격인 ‘메시아 시’입니다. 그 외 ‘순례자의 시’, ‘언약 갱신의 시’, ‘지혜와 토라의 시’ 등이 있습니다. 시편의 저자나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 그 시의 성격과 사용되는 용도를 적은 것이 표제어입니다. 그것에는 특수한 명칭들이 많이 붙어 있는데, 그 당시 음악적 혹은 시적 전문 용어로 기록되었기에 정확하게 번역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마스길’은 ‘교훈시’를 뜻하는 것으로 비교적 정확합니다.
시편의 저자는 다양합니다. 우선 150편 중 100편은 그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는데, 그가 다윗입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외 고라, 아삽, 솔로몬, 에단, 모세 등입니다. 하지만 작자 미상도 많습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는 표제어에서 밝힌 데로 고라 자손입니다. 고라는 레위 후손으로 제사장을 도와 성전의 업무를 하는 전담하는 사람들입니다. 본 시편의 저자는 아마도 포로가 되거나 유배되어 타향에 있던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6절에 그가 한탄한 지명(요르단 땅, 헤르몬산, 미살산)은 그가 있어야 할 예루살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헤르몬 산에는 폭포가 있습니다. 이 시는 고라 자손들의 시편들(42~49편) 중 첫 번째 시입니다.
▶
오늘 본문은 시편 중에 탄식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탄식이란 ‘한탄하여 한숨을 쉼, 또는 그 한숨’이라고 보통 정의되는데, 동의어로 비탄, 개탄 그리고 하소연이 있습니다. 곧 내용으로 보아 고난의 시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시편 3편을 ‘아침 찬송시’라고 한다면, 시편 4편은 ‘저녁 한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는 희망을 갖고 힘찬 출발을 하지만, 저녁에는 세상의 많은 공격을 받아 지쳐 버리고 연약해 집니다. 그리곤 잠 자리에 들기 전 하나님께 하소연하게 되므로 한탄 시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삶의 자리가 유배지라면 그 강도가 세어짐은 당연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어도 찬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하고 싶어도 기도가 막혀 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광야에서 샘을 찾는 자와 같이, 시냇물을 찾는 사슴같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분을 애타게 갈망합니다. 그러나 만나지 못합니다. 임재하심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멀리 계신 것 같습니다. 꼭 우리를 버리신 것 같아 절망하고 맙니다. 그때 시편 기자는 과거의 하나님을 기억해 냅니다. 그때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그와 함께 했으며 그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과거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고, 내일도 살아 계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질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 입술에 여전히 찬양이 있습니다. 오히려 그 영혼을 달랩니다. 스스로 불안을 잠재우고, 낙심을 몰아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그에게 힘을 주셨고, 옛날 체험했던 은혜가 부활하여 그에게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동일한 내용을 마치 후렴처럼 이 짧은 시에서 두 번이나 반복하여 씁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가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환경가운데서도 이겨낼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 조금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정 직원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건강하지 않아도,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설령 사고가 나도 불안하지도 낙심하지도 않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여전히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분의 때와 뜻을 잘 몰라서 그렇지, 이른 비와 늦은 비처럼 반드시 임하시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을 기꺼이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을 때 받아야 하고, 체험할 때 충분히 체험해야 합니다. 받은 것만큼, 만난 것만큼, 그 하나님을 기억하고 어려울 때 다시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의 포인트는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입니다. 그는 유배지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습니다. 원수들의 비아냥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는 절망과 낙심 속에서 소망을 찾고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납니다. 믿음을 빛내게 하는 것은 시련이고 고난입니다.
신앙을 증명하는 것은 경건이 아니고 불신입니다. 깊은 시름 속에서, 죽음과 같은 좌절 속에서 탄생되는 것이 가장 순수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는 자는 마음에 감사와 입술에 찬양을 잃을 수 없습니다. 그런 귀한 믿음을 소유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겪는 많은 일들, 극복해야 할 삶의 숙제들이 끊임없지만 우리를 향해 맹렬히 다가오는 대적들의 공격이나 우리가 옳다고 믿는 신념에 대해 비난과 조롱 가운데 있는 것보다 더 큰 근심은 없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절망과 낙심을 경험하는 것은 실제로 먹고사는 문제보다 그들을 향해 맹렬히 다가오는 비난과 정죄의 손가락질을 견뎌낼 스스로의 ‘내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깊은 영혼의 우울한 밤을 통과해야 합니다. 성전을 지키는 레위 지파, 고라의 자손인 오늘 시편 42편의 기자는 그를 낙심케 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들(3절)과 원수들(10절)의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는 조롱과 비난에 대해 그저 슬픔의 눈물에만 머무르지 않고(9절) 여호와를 간절히 찾고(1절), 찬양(4절) 하며 기도(8절)를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라(5,11절)” 그 도우시는 얼굴을 보고 기억(6절) 하며, 내 얼굴을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인정(11절) 하는 진정한 예배자, 믿음의 사람이 되기로 다시 회복의 결단하고 있습니다. 고통과 불안 가운데에서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분은 깊은 바다를 부르고 힘 있는 파도와 물결로 나타나시고(7절) 그 신실하심을 통해 결국 그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실 것(8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세상의 칼날을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그 자녀됨의 특권을 누리고,
부르짖는 기도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경험하는 시간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이 믿음의 길, 십자가의 길 걷다보면, 믿음으로 사는데 왜 그 모양이냐, 네 하나님이 있긴 한거냐, 조롱을 당함으로 슬플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42:3)
그래서 왜 나를 멀리하시는지, 왜 나를 슬프게 다니게 하시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시42:9)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무리 슬픔을 당해 낙심해도, 주는 우리를 결코 버리시지 않으며, 주의 영을 결코 거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낙심이 되어도 우리의 마음이 주로부터 멀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안에 계신 주의 영의 감동으로 인해 우리의 심령이 더욱 주를 갈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시42:1~2)
그래서 낙심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소망으로 굳건해지는 것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5)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아무리 깊이 내려앉아 낙심될지라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낙심의 크기보다 더 큰 소망을 마음의 빈 구덩이에 부으셔서 충만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107:9)
그래서 우리를 조롱하던 원수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시는 역사를 알고 크게 낙담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느6:16)
그때에 우리를 위해 이루신 큰 역사로 인해 웃음이 가득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시126:2~3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는 삶❞
❚ 인생의 깊은 절망 가운데서도 믿음 안에서 희망을 보아야 합니다.
✔ 절망을 이기는 길은 무엇입니까?
➲ 은혜에 대한 갈급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1~2절).
시편 42편은 성전을 섬기는 고라 자손들의 교훈시입니다.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시인은 현재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한다고 고백합니다. 사슴의 갈망은 곧 생과 사가 달린 갈망입니다. 시인 역시도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울 수 있을까?’(새번역)...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 예배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물이 사슴의 생명을 살리는 것처럼 하나님만이 내 영혼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를 갈망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주님의 은혜에 대한 목마름을 갖는 것입니다. 작금의 처한 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해 주님의 임재를 갈급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아무리 세상의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할지라도 공허할 뿐입니다. 지금의 삶 보다 더한 인생의 벼랑 끝에 거할지라도 절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간절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갈급 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의 공허함과 절망의 터널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도록 날마다 은혜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구원의 주를 소망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3~5절).
시인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즉 ‘너를 도와 줄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더 이상 너와 함께하지 않는다’라고 조롱합니다. 이런 조롱으로 인하여 시인으로 하여금 하루 종일 탄식의 눈물이 그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기쁜 감사의 노래 소리와 축제의 함성과 함께 내가 무리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면서 그 장막으로 들어가곤 했던....’(4절,새번역)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현실에 대한 탄식을 쏟아 냅니다.
이러한 탄식 속에서 시인은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는 자신을 향해 책망하면서 스스로에게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주실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결단합니다.
시인은 현재 하나님의 성산에서 찬양하며, 예배하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하나님을 비웃으며 시인을 조롱하는 사람들로 가득함에 대해 탄식하고 있습니다. 지금 겪는 절망적인 환경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자신이 겪는 인생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도록 구원의 주님을 날마다 소망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생명의 주께 기도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6~10절).
고통과 절망의 벽에 직면해 있는 시인은 이전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곳들을 기억합니다.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6절). 또한 시인은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와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 소리를 들으며 자신에게 닥친 재난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럼에도 자신에게 끊임없이 인자를 베푸시는 생명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전히 대적들은 자신을 비방하고 공격(9~10절)하지만 시인은 하나님만이 자신의 힘과 피난처(9절a)이심을 고백하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겠노라 결단합니다.
내 인생의 모든 삶 마다 동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여전히 나와 동행하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의 삶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내 삶에 깊숙이 개입하고 계심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빠져 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벼랑을 만난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내 인생이 겪는 모든 삶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소망하며, 영원한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함으로 기도하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세상 사람들의 비난도, 현재 내 자신이 겪는 인생의 문제도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기도를 결코 막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도록 생명의 주님께 날마다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절망의 바닥에 있을지라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내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지금의 상황에서 건져 내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시 42:1~11절)...
--
1.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1-4절)
시편 저자는 자신이 얼마나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있는지를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과의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심정이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함과 같은 절박한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네가 믿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고 비방하는 소리들을 들으며 밤마다 눈물을 양식으로 삼고 지내며 하나님과의 회복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 생활 가운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고 어려울 때에도 시편저자와 같이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찾기에 갈급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갈급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2.하나님께 소망을 주라(5-11절)
시편 기자는 실망하는 자신에 대하여 질책하면서 참된 하나님의 사람이 절망속에서 어떠한 영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절망속에서 회복케 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방하며 말한다고 하여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을 이유가 충분함을 고백합니다. 그분의 도우심에 대하여 확신을 잃지 않게 될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어려움에 빠져도 하나님께 희망을 두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도움심으로 모든 것을 이겨 낼 수 있음을 확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며 믿고 그분께 희망을 두고 사는가?
시편 42:1~11 내 영혼을 위한 격려
새로운 달에 다시 시편 제2권으로 왔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메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 하는
목마른 사슴이라는 찬양으로 잘 알려진 본문으로 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1)
시편 기자는 왜 이렇게 갈급하다고 표현 했을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어제 좋았던 하나님이 오늘은 떠나셨을 리가 없다.
지난 달에 참으로 좋았던 하나님이 새로운 달에는 안 좋으실리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영혼이 갈급하게 되는가?
왜 이렇게 생존하신 하나님을 갈망하는가?(2)
왜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2)라고 고백하게 되었는가?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시편 기자도 분명히 한 때는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했다(4)
그러던 자가 왜 마음이 상하며(4)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다고 탄식하는가?(3)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불안하여 하는고(5, 11)라고
본문에서만 두번이나 반복하여 탄식하고 있다.
아마도 주변 환경이 바뀌었을 것이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3, 10)라고 비방하는 자
조롱하는 자가 생긴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환경이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비록 환경이 바뀌더라고 내 마음에 샬롬이 깨어지지 않기를 기도해 본다.
왜냐하면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고
기쁨과 감사와 찬송이 있으신 분이 하나님이 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일생동안 배워야 할 것은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5, 11)는 말씀이다.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11)
그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11)
그렇습니다. 하나님 왜엔 그 어떤 것도 만족을 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하시고
환경에 지배 되지 않게 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삶의 관심과 집중을 하게 하옵소서.
오늘의 말씀요약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얼굴 뵙기를 갈망합니다.
그는 이전에 하나님 집에서의 일을 기억하고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합니다.
원수의 압제와 대적자들의 비방으로 영혼이 낙심되고 불안하지만,
그를 도우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의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하나님을 향한 갈망 (42:1~5)
사슴이 메마른 광야에서 생존을 위해 갈급해하며 물을 찾듯,
성도는 거친 세상에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던 때를 떠올리며 다시금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지는 현실의 삶은 영적으로 충만했던 과거와 대비되며
그의 마음을 더욱 상하게 합니다. 성도는 이럴 때 절망하며 주저앉지 말고,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키워야 합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찬송의 입을 열면, 살아 계신 하나님이 도우시고 기쁨과 감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 하나님을 찾는 시편 기자의 심정은 어떠했나요?
나는 언제 하나님을 갈망했 는지, 요즘 영적 갈급함을 잃어버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돌아보세요.
낙심과 불안을 이기는 소망 (42:6~11)
고난을 이기는 성도의 능력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신뢰하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시편 기자를 조롱하고 핍박합니다.
그를 더욱 낙심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고난을 외면하시는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입니다.
결국 성도를 무너뜨리는 것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해
생기는 낙심입니다. 이것이 성도를 흔드는 무엇보다 위협적인 문제입니다.
원수의 공격을 받고 영적으로 침체될 때일수록 의지적으로 자기 영혼을 향해 선포하며
신앙의 다짐을 해야 합니다. “어찌하여 낙심하며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찬양의 진정성은 고난 속에서 드러납니다.
빛나는 인생의 낮에도, 어두운 인생의 밤에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믿음의 사람은 여전히 찬양할 수 있습니다.
- 외적 압박과 내적 침체를 겪을 때 시편 기자는 어떻게 했나요?
오늘 하나님을 향해 어떤 고백을 하고, 내 영혼을 향해 어떤 선포를 할지 생각해 보세요.
오늘의 기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인 양 주눅 든 채 낙심했음을 용서하소서.
이제 는 믿음의 눈을 들어 ‘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불안해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소망이 없음을 고백하며 갈급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소서.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육신의 눈을 뜨면 불안과 우울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눈을 감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평안으로 나아가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찬양과 기도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믿음이 자라게 하시고 그분을 기억하고
인정하는 복된 삶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그 가정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부어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한 땅에도 아버지의 크신 사랑이 더 널리 드러나게 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모든 악독과 분열을 버리고
세계 속에서 주님을 증거하는 담대한 증인들로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