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에 대해서 / 홍속렬
아침밥을 먹고 국산믹스 커피를 곱빼기로 타들고 삼층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 책상에 앉는다
페북을 여니 생일 축하문자들이 많이 와 있다.
내 생일은 1944년 2월 28일 음력이어서 호적에 그렇게 기록된 대로
2월 28일이 생일로 페북에 뜨게 되어 있으니 공식적으로는 2월28일로 생일을 맞게 된다.
나 개인으로는 생일이 별개 있느냐 ? 는 식인데 주위에서는 그렇지 않아
늘 생일을 세 번 맞이 하게 된다
우리 배목사님은 태어난 해 달력에서 2월 28일을 찾아내어 교회에서는 3월 21일을 생일로 친다.
그리고 음력으로는 4월6일이 음력 2월28일이니 집에서는 또 4월6일을 생일로 친다.
그러니 얼마나 혼란스러운가?
난 어린 시절 왜? 태어나서 이 쌩 고생을 하나? 하고 태어남을 원망했는데 . . .
어떻든 팔순에 접어들며 고국에 있으면 친한 옛 동무들과 군대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식사라도 한번 할 생각이었지만 이리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것도 힘든 일
그러나 어릴 적 동무들은 거반 다 저세상으로 가 몇 남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난 너무 오래 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나의 젊은 시절 꿈은 “금의환향”하는 거였다.
결코 평범함을 용납 안 하며 큰 목적을 세워 이룬 다음 금의환향하겠다는 결심을 혀를 깨물며 했다
나의 호칭은 감독, 부장, 장로, 선교사
호칭에서 보듯 꿈을 이루어 낸 것 같으나 나는 끊임없이 노력하며 삶을 개척 해 나간다
많은 독서량으로 결코 평범한 것 아닌 특별한 목적? 그것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며 책과 글쓰기 사고하기 음악과 함께 한 삶
읽은 책 중에서 꼭 기억하고 실천할 일에 대해 직접실천 해 나가며 자신의 계발을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간다
물이 고이거나 생각이 정체되어 있으면 부패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끊임없는 노력과 역동적 활동으로 자신을 다구치며 몰아부친다.
비록 태어나고 자란 환경과 전쟁으로 인해 극심한 환경에서 자라왔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늦깍이로 고교와 대학을 나오고 축구지도자로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자격 있는 지도자로서 7,8십년대 한국 성인 축구의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다.
아직도 멀었다.
시집과 수필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그동안 살아오며 쓴 글들이 거의 7000편이 넘는다
나 살아오는 동안 계속 일기를 쓰고 다이얼리를 기록하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쓴 글들이 트럭 하나 분은 충분하다
나 살아있고 생각할 수 있고 쓸 수 있다면 계속해서 일기를 비롯 글을 써 나갈 것이다
첫댓글 여든해의 거든한 삶을 축하드립니다. 모든 꿈이 차근차근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