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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절 새벽예배 | 강태훈 목사] 비웃음 마가복음 15장 29-32절 | 2024. 2. 23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43:1~4
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2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3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4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43:5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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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시편 기자는 자신을 불의한 자에게서 건져 주시고, 주님의 빛과 진리를 통해 주님이 계시는 곳으로 자신을 인도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는 큰 기쁨이신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수금으로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또한 낙심하고 불안해하는 자신의 영혼을 향해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선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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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43:1~4
하나님은 악한 세상에서 의인을 보호하십니다. 그분이 의로운 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를 향한 원수들의 비방은 살기등등하며 집요합니다(42:10). 그들은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입니다(1절). 시편 기자는 자신을 거짓되고 사악한 자들로부터 건져 달라고 간구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2절)이라는 고백은 그가 어떤 고난의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은 기도를 통해 얻은 확신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기도합니다. 불의한 원수들이 압제하는 것을 아시면서 왜 자신을 버려두시는지 묻습니다. 그는 주님의 빛과 진리를 보내셔서 자신을 인도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는 가장 큰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찬양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고난 속에서 보석 같은 믿음이 자라납니다.
● 더 깊은 묵상
시편 기자에게 힘이 된 대상은 누구였나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께 내가 겸손히 의지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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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43:5
42편과 43편은 본래 하나의 시편이었습니다. 동일한 후렴구를 기준으로 ‘영적 목마름에 대한 탄식’(42:1~5), ‘원수들의 조롱에 대한 애통’(42:6~11), ‘기도’(43:1~5)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도의 삶은 탄식과 애통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처음부터 큰 믿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믿음은 고난 속에서 부르짖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며 자라납니다. 기도는 우리 시선을 문제에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문제를 바라보면 한숨만 나오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시편 기자처럼, 우리도 낙망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시편 기자가 자신의 영혼을 책망하며 권면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탄식과 애통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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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대학 총장으로서 10여 년 섬기는 동안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재정적으로 힘들었는데, 얼마나 애가 탔는지 눈물을 꽤나 흘렸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부득이 학교 구성원들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했지만, 반응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어긋났던 것입니다.
급기야 교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못할 것 같은, 피 마르는 위기가 닥쳤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개인적으로라도 빚을 내서 구멍을 막아 보려 했는데, 문득 성령께서 마음에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돕는다.”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제 힘으로 해결하려던 조급함을 내려놓고 잠시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1억여 원의 후원금이 새로 들어오고, 석사와 박사 입학 정원이 채워졌을 뿐 아니라 인사 관리가 잘되어 지출이 줄었습니다. 또 회계 정리에서 누락되었던 돈을 찾으면서, 애초에 예상했던 3억 원의 적자를 채우고도 6천만 원의 흑자가 났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네 생명을 붙잡고 있으니 안심해라.”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 자기 힘으로 부모의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부모가 아이를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환난 가운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버팀목이 되어 주시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며 천국에까지 이르기를 소망합니다.
신앙에 기쁨이 있기를 / 조성헌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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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시편 43편 2~3절
하나님 은혜의 빛에는 그늘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시련이 크고 무거워 온몸에서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의 무기력함이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신앙적 반응을 막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진리에는 어떤 제한도 막힘도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우리를 어둠과 슬픔에서 건져 내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이끕니다. 사람은 무능할지라도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생명과 기쁨의 원천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것임을 확실히 믿는다면 염려할 것이 전혀 없다. 우리 모든 대적도 그분 손안에 있기 때문이다. - 엘사 후츠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세상 것은 그토록 갈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은 희미해진 제 모습을 회개합니다. 조롱당하고 낙심이 밀려오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게 하소서. 오늘도 살아 계셔서 저를 신실히 도우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모하고 찬양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83 나의 맘에 근심 구름)
본문의 정리: 시인은 자신을 괴롭히는 악하고 부정한 사람들에 맞서 자신을 변호해 주시고, 자신을 하나님께서 계신 성막으로 이끌어 예배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변호하여 주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우리의 인도자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담하지 말고,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 안에서 힘을 얻고,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격려 속에서 다시 힘을 내도록 하자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도움이 되시고, 그분만이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시니, 그분께 구하고, 그분의 때를 묵묵히 기다리면서 잘 준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그분께서 그분의 때에 나를 인도하시고, 당신께서 계획하신 목적지까지 잘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맡겨 주신 일들을 감당해 나가자
3/1일 체감온도 12도 혹한추위와 바람속에서 주님의 심부름꾼으로 충성
이 시편은 42편과 같은 시입니다. 42편이 예루살렘을 떠나 피신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받는 고통과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을 노래하였다면 본 시는 적극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 가고자 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온시라고 합니다.
나를 건지소서(1,2)
다윗은 자신을 하나님이 판단해 주시길 요청했습니다. 아마 압살롬과 그 반역의 무리가 임시 나라를 구성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변호해 달라고 그들에게서 자신을 건져 달라고 호소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신의 상황이 너무 힘들었기에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힘이신데 왜 지금은 자신을 버리셨는지 물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왜 자신이 원수들에게 밀려서 슬프게 피난을 다녀야 되는지 물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판단하셔서 속히 건져 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시온에 이르게 하소서(3,4)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건지셔서 시온에 이르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옛적에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주님의 빛과 진리로 자신을 인도하셔서 시온 산과 주님의 장막으로 자신을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를 확신하며 주님의 제단에 나아가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수금으로 찬양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결국 자신을 시온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확신하며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격려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왜 불안해 하느냐 너는 나를 시온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바라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우리도 어려운 시기가 올 때에 우리를 건지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를 가장 존귀한 자리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안심이 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만이 우리를 좌절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모든 역경을 이기고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3/1일 장지다녀온후 동인천 지하상가 전도
오늘 본문은 환난을 당해 고통을 하소연하며 여호와께 구원을 간청하는 전형적인 탄식시로,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탄식과 간구, 구원의 요청, 구원의 확신, 찬양과 소망입니다.
시편 43편은 고라 자손의 시편 (42~49편) 들 중에 끼어 있는 시편으로 표제어가 없습니다. 따라서 42편과 하나로 묶어져 있거나 혹은 쌍둥이 시편으로 보고 있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지지를 받는 것은 42편에 나오는 후렴과 같은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의 시구가 43편에도 여지없이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또한 42~43편의 시가 하나님께 탄식하는 내용이 거의 흡사해 그렇습니다. 다만 간구의 내용이 달라, 저자는 같지만 서로 다른 시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 ‘나의 무죄를 선언하시고 나를 변호하시며 악하고 거짓된 자에게서 나를 구하소서.’라는 말입니다.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라는 말은 ‘내 고소를 듣고 판결해 달라’는 말입니다. 시인은 그런 법정용어를 사용하여 그의 심정을 표현합니다. 그것은 정의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소를 들으시고 의로운 판결로 공정한 재판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가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 곧 거짓되고 악한 사람들 속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본 시편은 후반부로 갈수록 소망과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 극적인 표현이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입니다. 여기서 큰 기쁨은 ‘기쁨 중의 기쁨’ 곧 ‘최절정의 기쁨’을 말합니다. 실은 그는 그런 기쁨을 고백할 형편이 못 됩니다. 이방 민족들과 여호와를 부정하는 대적자들의 나라에서 거주하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확신에 찼던지 그는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수금(하프)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없는 악기까지 동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선포한 것은 그 만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절대적인 소망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마치 분수처럼 시로 뿜어져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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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편 기자는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인도하셔서 주님이 계신 곳으로 이르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또한 그는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께 고소하고, 거짓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자기를 구해 달라고 탄원합니다.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 라고 하소연을 하는 것을 보면, 그는 필경 포로로 잡혀 있거나 다른 나라 다른 민족들의 한 가운데 유배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군대를 보내 달라고 해야 합니다. 다윗보다 더 위대한,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왕을 보내달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래야 자신도 해방되어 그렇게도 그리던 예루살렘, 고향 땅에 들어갈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런 것들을 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윗과 솔로몬이 살아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거룩한 산과 여호와께서 계신 곳으로 그를 이르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그런 것들을 구하여 나라가 망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을 구합니다. 그분의 손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으로부터 오는 빛과 진리 즉, 구원에 관한 것을 갈망합니다. 그것만이 그분의 나라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잘 구한 것 같습니다. 가장 현명하고 가장 지혜롭게 구했다고 봅니다. 인생에서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고 가장 핵심적인 것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는 것은 다 헛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기자가 구하는 것 우리도 구하면 좋겠습니다. 확신하건대 그는 구한대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무엇을 구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원하는 대로 될 수도 있고 추구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을 말해 주는 것이라 더욱더 그렇습니다. 즉, 추구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격을 대변해주고, 바라고 원하는 것이 그 사람의 존재이유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코앞의 것을 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재산상속을 원하는 자녀는 현명하다고 볼 수 없고, 오르지 진급과 출세를 원하는 사람은 존경할 수 없습니다. 이익을 따라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지혜롭다고 볼 수 없습니다. 설령 그런 것을 얻을지라도 부모를 잃게 되고, 평생 동료와 진실된 친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할 것을 구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재물을 얻은 사람들, 명예와 명성 그리고 인기를 얻은 사람들의 종착역이 어디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구할 것입니다. 우리의 시야가 있는 곳입니다. 진정 구할 것을 구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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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원수가 개인인 경우만 아니라 국가인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살면서 공권력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당할 때가 많고,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그 나라의 부패한 공무원 때문에 슬픈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우리는 오직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시43:2)
그런데 여기서 "어찌하여"를 원망이나, 의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찌하여"는 히브리어로 "מה"(마)인데, 문맥상 왜? 무엇? 이 아니라, 탄성입니다
즉, "מה"(마)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있어선 안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세상에 이런 일도 있네요 라는 하나님 앞에서의 탄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신데, 나를 버리셨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
내가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가 속할 나라가 아니라 이길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탄성과 함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의 억압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시43:1)
그리하면 우리를 빛과 진리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시43:3)
큰 기쁨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시43:4)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환난을 당할 때에도 나라들보다 크신 우리의 도움 되시는 주를 의지하기 원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3:5)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신데, 낙심하는 것이 말이 안되고, 불안해 하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오직 우리의 도움 되시는 주님만 굳게 붙들기 원합니다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시119:173)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절 공평한 재판관이며, 인자하신 변호인이십니다. 시인의 첫마디는 ‘나를 판단하소서’입니다. 경건치 못한 무리, 간사하고 불의한 사람들과의 송사에 공평한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호소하고, 그의 편에서 변호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생각과 행위를 낱낱이 살펴보시기에, 그분의 판단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억울한 이를 변호하시고, 공평한 판결로 무고한 이를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절 원수의 억압으로 슬픔의 날을 보내고 있던 시인이 하나님을 향해 탄식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시면, ‘어찌하여’ 이런 고난이 닥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어찌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인지 따져 묻습니다. 불온하고 불경건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에,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연약한 인생은 누구나 고난과 의심의 담금질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단단한 믿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힘겨운 고난의 시간이 주님을 붙들고 씨름하는 고뇌의 시간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더 완전한 신뢰의 관계로 나아갈 것입니다.
3,4절 ‘나를 판단하소서’(1절)라는 시인의 호소가 ‘나를 인도하소서’라는 간구로 이어집니다. 그는 무죄를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님의 제단에 나아가 예배하며 찬송하기를 소망합니다. 주의 산에 오르고, 주님 앞에 설 자(참조. 24:3)는, 말씀의 등불로 자기 길을 밝힌 사람들, 그 말씀의 빛 아래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나는 매 순간 주님의 말씀에 이끌려 선한 삶의 흔적을 남기며, 주님 계신 시온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5절 “어찌하여”(2절)라며 자신을 버려두신 하나님을 향해 따지던 시인이, 이제 “내 영혼아 어찌하여”라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신을 꾸짖습니다. 하나님은 늘 완전하신 뜻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다만 우리 인생의 믿음이 온전하지 못해 의심하고 넘어질 뿐입니다. 예기치 않은 고난에 우리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해 흔들리지만, 하나님은 그런 연약함까지도 완전한 사랑으로 품어주십니다. 주님을 붙든 손을 놓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흔들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말씀의 빛과 진리로 인도하시어, 주님을 예배하기 합당한 자로 빚으소서.
❝환난의 자리에서도 찬양하는 삶❞
❚ 인생에서 겪게 되는 환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1절).
시인은 거짓을 일삼는 악한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의 답답함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나를 판단하시고, 송사를 변호하소서..’라는 명령형을 사용해서 현실에서 겪는 두려움과 환난을 몰아 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무엇보다 불의한 대적자들 앞에서 시인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참된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의로운 판결을 내려 주심으로 지금의 환난에서 건져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내 자신이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환난에 처한 당신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건지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환난 속에서 절망과 포기가 아니라 환난에서 건지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찬양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환난의 순간에 절망은 그 환난을 더욱 깊게만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 순간에 차라리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지셔서 견고한 반석위에 내 인생을 새롭게 세워 가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찬양합니다.
➲ 절망에서 도움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2~3절).
시인은 자신의 힘이 되신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더욱 애통해 하며 하나님을 향해 항변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녀야 한단 말입니까?...’ 이러한 고백은 자신의 상황을 외면하지 마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한 믿음의 고백이 담긴 항변입니다. 그리고 절망적인 환경에서 하나님께서 빛과 진리를 보내 주셔서 ‘인도하시고...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절망의 상황에서 때로는 영적인 상실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간절한 믿음을 담은 기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현실은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원망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상황에 따라 내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감정을 좇아 불신앙적으로 행동해서도 안 됩니다. 아무리 내 인생이 어두움에 갇혀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은 능히 내 인생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빛과 진리로 다가오셔서 어둠을 뚫고 나아갈 길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의 힘이 되시고, 진정한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빛과 진리로 절망에서 도움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날마다 바라보며 찬양합니다.
➲ 소망중에 기쁨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4~5절).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 예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나타나 보이시는 임재 앞에서 예배하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악인들로 인한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이 절망의 상황으로 내려갈 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겠노라 결단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인생에 가장 큰 기쁨임을 고백합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진정한 예배자로 서 있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온전히 예배할 때, 낙심과 불안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향한 소망입니다. 소망이 식지 않을 때, 매일의 삶 가운데 큰 기쁨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날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전심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로 나아감으로 빛과 진리 가운데서 인생의 문제를 풀어갈 뿐만 아니라 환난 중에서 건지시고, 힘을 주시며, 선한 길로 인도해 가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찬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시 43:1~5절)...
기찻길 위에서 맹렬히 다가오는 기차를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발을 옮겨 몇 미터 되지 않는 그 길을 피하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습니다.
사망의 권세는 그 자체로 우리를 삼킬 것 같이 다가오고 우리는 마치 피할 수 없는 먹구름에 갇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진실로 우리를 한번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이지만 그 이후를 바라보는 이들은 그 어둠에서도 빛을 찾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시편 22편, 43편 등에서 고백 되어진 ‘왜 나를 버리십니까? 왜 나를 외면하십니까?’라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 다니(마 27:46)’를 외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외치심에 하나님께서는 무응답으로 응답하셨고 ‘다 이루었다’,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하시며 끝까지 순종하신 그 산 제물을 받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의 문을 여셨습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는 자신이 처한 절망스러운 상황 가운데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의 빛과 진리를 구하고, 거룩한 산과 주의 장막에 거하며, 찬양과 기쁨을 의지적으로 채우며 여호와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스스로 이룰 수 없는 구원을 오직 공급하시는 분으로부터 채움 받겠다는 강력한 기도요 자녀 됨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활의 능력을 받으실 것을 믿음으로 그 버림받음의 저주를 통과하셨습니다. 절망 가운데 넘어진 이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 무릎 꿇고, 내 안에 있는 사망의 권세를 내어 쫓는 찬양으로 채우며 기도할 때,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풍성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더욱 힘 있게 우리를 다스리시고 그 영원한 생명으로 채우실 것을 믿으며 나아가는 복된 하루의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1.나를 건져 주소서
시편43편에서는 저자가 자신에게 당한 고통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탄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버렸는지를 알지못하고 하나님께 질문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여기고 달려 왔지만 지금의 자신은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조급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에 대하여 하나님께 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하여 변호하여 주실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그들에게서 건져 내어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인도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종종 살아가다가 내가 원치 않는 일들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할때가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도 오늘 시편저자와 같이 끝까지 하나님께서 그 문제의 해결자로서 건져 주실것을 간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이해할 수 없은 어려움에 처하였을때에 그 문제의 해결자로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가?
2.왜 낙심하며 실망하는가?
자신이 처한 상황속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밀려오는 실망감과 그로 인한 낙심의 마음이 그 속에 넘칠때에 시편저자는 자신의 영혼을 향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왜 낙심하며 왜 불안하여 하는지에 대하여 자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답을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고 힘이들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분명 도우셔서 승리하게 하실 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은 찬양할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함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결코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도록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고 있는가?
오늘의 말씀요약
시편 기자는 자신을 불의한 자에게서 건져 주시고, 주의 빛과 진리를 통해 주께서 계시는 곳으로
자신을 인도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는 큰 기쁨이신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수금으로 찬양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향해 왜 낙심하고 불안해하느냐고 책망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선포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건지심과 인도하심을 간구하라 (43:1~3)
성도는 불의한 일과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의 판결과 변호와 구원을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의 계산과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지연될 때,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상실감과 슬픔에 빠져 탄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시편 기자는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이라 고백하며,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의 줄을 여전히 붙들고 있습니다.
원수의 억압으로 어깨가 축 처져서 다니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빛과 진리입니다.
성도가 나아갈 올바른 길을 알려 주고 비전을 제시해 주는 주님의 빛과 말씀으로 인도받을 때,
어떤 환경에서든 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 경건하지 않은 나라와 불의한 자들에게 둘러싸인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하나요?
억울함과 억압 속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기도가 필요할까요?
고난 중에 만나는 기쁨의 하나님 (43:4~5)
고난의 현장을 예배 처소로 바꿀 때,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참된 복을 누립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에 함몰되지 않고, 하나님의 제단 앞에 나아갑니다. 이처럼 고난의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 자리로 나아가는 사람은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고난 자체를 묵상하면 찬양 대신 한숨만 나옵니다. 그러나 나를 지으셨기에 나를 아시고 나를 도우실
‘나의 하나님’을 바라보면, 고난 때문에 더는 낙심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슬픔보다 예배의 기쁨이 크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알고 의지하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신비입니다.
-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제단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하나님께 이르러
찬양하 는 시편 기자의 모습을 볼 때, 어떤 도전을 받나요?
오늘의 기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나 핍박받고 영적으로 눌릴 때,
주님이 저를 고난 가운데 버려두시는 것 같아 절망하게 됩니다.
주님의 빛과 진리의 말씀으로 저를 일으켜 세우시고,
주님의 임재 안으로 이끄셔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대신 기쁨의 찬송으로 주님을 높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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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3:1~5 하나님께 시선을 두다.
어제 말씀부터 계속해서 반복되는 말씀이 있다.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5)
가끔씩은 이런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향하여 객관화하여서
자기 영혼에게 자기가 명령하는 것이다.
종호야 너는 할 수있어
너 잘 할수 있쟎아하고
자신을 향하여 축복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동기유발도 하고 가끔은 필요한 것 같다.
자주자주 나 자신을 향하여 축복하고 격려하자.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자.
현재 다윗이 처해 있는 상황은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1)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2)
하는 것으로 보아 매우 곤경에 처해있거나 큰 고통 중에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고백은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2)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3)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4)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4)라고 고백한다.
나의 삶의 고백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찬양합니다 라는
고백이길 소원한다.
어떻게 하면 깊은 고난 가운데서도 주를 찬양 할 수 있는가?
1.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야 한다.(4)
쉬운 말로 하면 주님 앞에 예배하는 것이다.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 이듯이
생명의 근원이 나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듯이
기쁨의 근원 또한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 있다.
그러므로 근원되시고 중심되신 그 분께 예배하며 나아가야 한다.
2.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른다.(4)
어떻하면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는가?
역시 예배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예배란? 희생과 헌신이며 자신의 내려놓음이요 포기이다.
이런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로부터 밀려오는
정말 세상이 줄 수없는 내면에 넘치는 기쁨이 있다.
환경이나 감정과 상관 없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 오는 기쁨
입 가에 자연스럽게 번져 나오는 미소
나도 모르게 흘려 나오는 콧 노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는 삶의 연습을 순간순간 마다 하고 싶다.
3.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4)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5)
온 우주의 모든 만물들이 주를 찬양하듯이
나의 호흡이 있는 동안 주님을 찬양하리라.
단풍나무의 색깔 변함이, 은행나무의 노오란 잎 사귀가
가로수의 아름다움이 먼산에 형형색색의 단풍이 자태를 뽑내듯
나도 내 얼굴을 도우시는 주님을 찬양하리라. .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기도할 수 없을 만큼 낙심되고 아버지 앞에 나아갈 힘을 잃을 때,
찬양을 부르고 말씀을 채움으로
모든 어두움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빛과 진리를 채우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고 그 도움으로 나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오늘의 삶 가운데서도 역사하시는
그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으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한 땅에도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하게 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고,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선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