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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조선사 연구회
 
 
 
카페 게시글
역사토론방(출처있는글) 강릉(江陵)은 영서(嶺西) 지방에 존재하였다.
김재만 추천 0 조회 479 11.02.18 19:29 댓글 10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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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2.23 11:27

    혼자만 옳고 다른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군요. 그만해야겠군요.

  • 11.02.23 11:54

    저와 논쟁하시다가 불리하시면 결국 포기하시네요... 명명백백한 내용을 논란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앞으로 관련 자료를 계속 찾아보세요...

  • 11.02.23 11:43

    영동(嶺東)의 아홉 고을은 모두 바다와 연접되어 있는데 왜선(倭船)이 양양(襄陽)·울산(蔚山) 등지에 정박하지 않고
    반드시 강릉·삼척 이 두 곳에 정박하는 것은 아마도 수세(水勢)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습니다.
    [출처=<조선왕조실록>, 정조 2년(1778년) 12월 23일 2번째 기사]

  • 11.02.23 11:57

    강원도 관찰사 경세창(慶世昌)이 아뢰기를,
    영동(嶺東)의 삼척(三陟)·강릉(江陵)은, 처음에는 한발이 심하더니 얼마 후에는 큰 비가 내려 이 때문에 곡식이 부실하게 되었습니다.
    또 영서(嶺西)는 비록 수한(水旱)의 재변은 없으나, 양전(量田)을 하는데 대개 위관(委官)과 서원(書員)들이 모두들 외람(猥濫)해서,
    백성이 곤고를 견디지 못하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출처=<조선왕조실록>, 중종 11년(1516년) 8월 27일 2번째 기사]

  • 11.02.23 12:01

    기록이 많다고 사실이 아니고 기록이 적다고 허위가 아니란 말입니다.
    ----------------------------
    김수진 선생님, 뭐든지 그런 식으로 연구하십니까???
    기록이 더 많은 내용이 "거짓"이라는 것을 먼저 증명하세요...

  • 11.02.23 12:10

    "강릉(江陵)은 영서(嶺西) 지방에 존재하였다"는 주장은 "잘못된 해석"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해(誤解)라고요...
    김재만 선생님이 위 본문에 제시하신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이 거짓(허위)인 게 아니라, 그 해석이 잘못된 겁니다. 명심하세요.

  • 11.02.24 19:11

    명주[溟州: 江陵]는 2군, 4현을 거느린다.
    2군은 양양(襄陽)ㆍ삼척(三陟)이고, 4현은 간성(杆城)ㆍ고성(高城)ㆍ통천[通川: 歙谷을 합병함]ㆍ울진[蔚珍: 平海를 합병함]이다.
    명주 도호부 대사는 영동 안무사(嶺東 安撫使)를 겸한다.
    명주 지역이, 동쪽으로는 큰 바다가 있고, 서쪽으로는 태산이 둘러 있어, 좁고 막힌 것이 문득 이역과 같으므로 감사에게 반(半)은 영동에 있도록 함이 마땅하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영동 여러 고을의 일반 정무는 명주 대사에게 결재를 받도록 하고 오직 큰 사건만 감사(監司)에게 관유(關由)하여, 강계(江界)의 폐4군처럼 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다.
    [출처=<경세유표(經世遺表)>, 군현분예(郡縣分隸)]

  • 11.02.24 19:32

    "명주[溟州: 강릉(江陵)] 지역이, 동(東)쪽으로는 큰 바다가 있고, 서(西)쪽으로는 태산(太山)이 둘러 있어"라고 나옵니다.
    여러 기록을 살펴보면, 강릉(江陵)은 처음부터 줄곧 영동(嶺東)에 속한 지명(地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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