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 한창석
소금쟁이를 맛보다 / 한창석
하늘과 수면 사이
왈츠처럼 경쾌하게 미끄러지는 사내는
愁心이 깊어 차라리 소금이 되면
감옥의 水深을 가늠해 볼 수 있을까 마음을 절였다
蓮塘의 가장 깊은 곳까지 가라앉고 싶지만
후들거리던 다리 그 어디에
그처럼 완강한 삶의 근육이 붙어 있었는지
그래도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도무지 가라앉을 수가 없다
차라리 발을 굴러 하늘로 날아오르려 해도
날개가 없어 새의 그림자를 따라 못의 언저리까지 질주해 볼 뿐
潛泳도 昇天도 하지 못한 채 세상 바람이 죄다 그의 몫이다
젖을 수 없는 못은 도리어 沙漠
내려다봐야 보이는 하늘은 도리어 苦海
잔비를 맞으며 세상을 미끄러진 하루
잔비에도 등허리가 시큰했을 사내 생각에 코허리가 시큰하다
圓과 圓이 부딪쳐 깨어지는 수면
바람과 바람이 부딪쳐 흐느끼는 세상
하루 종일 위태롭게 뒤뚱거렸을 사내
盡人事의 땀이 마르고 응답하지 않는 神을 향한
巫女의 눈물마저 다 마르고 境界에 갇힌 자
마른 영혼을 찔러 혀에 가만히 대 보니
몸서리쳐지도록 짜다
타들어간 鹽田의 까만 소금
刑期를 가늠할 길 없는 사내 어느 새
철없이 겁없이 세상을 지치는 어린 새끼들을 수습하여
水草 사이로 부끄럽게 여윈 몸을 감춘다
[당선소감]
어떤 음성도 수신되지 않는 묵음과 잡음뿐인 라디오를 붙잡고 상심해도 그는 당신의 때가 이르기 전에는 응답하시지 않는다.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고 맘을 놓아야 당신의 꿈을 나를 도구삼아 이루심을 믿는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지 않으면 호리병에 다시 나를 가두고 네 번째 천년을 기다리려고 했다. 가나안에 다다를 수만 있다면 광야의 시간은 셈하지 않겠다고 기도했다. 그 때 당선 소식을 들었다. 필마단기로 시와 씨름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눈이 젖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 그 분들이 당신의 살을 남김없이 발라내어 나를 먹이신 것을 잘 안다. 당연한 일인 양 받아먹어 온 부끄러움에 목이 메인다. 송하춘 선생님! 내게는 너무도 푸르고 넓은 바다인 그 분의 품에서 나는 영혼의 뼈마디까지 틀어 퍼덕이고 싶었다. 나의 헤엄으로 선생님께 작은 미소라도 드릴 수 있기를 바란 것은 이미 너무 오래된 소원이었다. 정진규 선생님, 최동호 선생님과 김인환 선생님, 이남호 선생님께서도 나의 서툰 헤엄을 지켜보아 주실 것이다. 떠나온 모천의 이상우 선생님, 박범신 선생님, 김석환 선생님, 이재명 선생님, 고운기 선생님을 뵙고 떠나온 나날들만큼 이마를 땅에 대고 아가미를 벌름거려야 할 일이다. 연두부 같은 오빠를 응원해준 동생 정화와 승덕이에게도 언제나 고맙다. 깜깜한 지난 외로움이 달콤했다고 위증하지만 사실 무수한 멀미들은 맵고 썼다. 고비마다 산호섬이 되어 준 소중한 동무들, 대학원 식구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옹알이에 귀 기울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시시한 시, 시들시들한 시, 급기야 허연 배를 위로하고 떠오르는 시체가 되지 않고 늘 등 푸른 시를 쓰겠다고, 아니 등 푸른 삶을 살겠다고 약속드린다. 끝으로, 귀한 지면을 통해 시인의 삶을 다짐하게 해 주신 경인일보사에 감사드린다.
[심사평]
시를 쓰는 우리도 늘 경계에 서 있다.
그 경계에 서서 "하루 종일 위태롭게 뒤뚱거리며" 산다. 연못가에서 소금쟁이를 바라보다가 시의 화자가 느꼈던 그 경계의 아슬함과 위태로움은 시에도, 시를 쓰는 삶에도 역시 매일 찾아온다. "잠영도 승천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가라앉을 수도 날아오를 수도 없는 진퇴유곡의 경계에 갇혀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 고해(苦海)를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응시하면서 건너가는 일, 그게 우리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소금쟁이를 맛보다'는 밀도 높게 형상화 하고 있다.
미세한 현상을 놓치지 않는 감각적인 눈이 있고 그것을 깊이 있는 삶의 철학으로 끌고 갈 줄 아는 힘이 있다. 시적 긴장이 살아 있고 시의 내면이 꽉 차 있다.
심사위원들이 당선작으로 합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울러 언어에 의존하고 싶은 유혹에 끌려가기보다는 '호랑이가 없다'와 같은 시에서처럼 삶에서 우러난 시가 좋은 시라는 믿음을 견지하면 좋겠다.
'바닷가에 서서','곰국'과 같은 시들도 충분히 당선작이 될 만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야영'도 삶과 언어가 육화되어 있는 탄탄한 작품이었다. 다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이런 작품과 같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포클레인','바다는','종착역에 대한 세 개의 레토릭'등도 모두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번에 선정되지 않은 것이 더 좋은 시를 쓰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 심사위원 : 김정환, 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