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의사
금년 5월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동네 상가에 있는 이비인후과 개인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종합 검진 결과 청력이 많이 떨어졌으니 전문의 진찰을 받으라는 통보가 왔다.
환자가 많아 오전에 접수를 하고 오후에 병원에 들렀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서니 왜 왔느냐고 의사가 묻는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고 대답 했다.
의사는 자기 책상 의자에 버티고 앉은 채로 서 있는 내게 말한다.
“노인들 귀가 어두운 건 보청기를 쓰면 되고, 다른 진찰이 필요 없다”고 한다.
순간 나는 당황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초진자가 진료실에 들어서면 의사는 환자와 마주 앉아 증상을 묻는다.
환자가 호소하는 신체 부위를 살펴보고 체크를 한다.
필요하면 사진을 찍거나 다른 검사도 하였다.
의사는 환자에게 소견을 설명하고 처방전을 건네주었다.
그동안 내가 병원을 다니며 체험한 기억이다.
이 의사의 행동이 불친절 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 있다가 쫓겨나다 싶히 진료실을 나와야만 했다.
무례하고 불친절한 의사에게 모욕감을 느끼고 집으로 왔다.
의학의 아버지라는 ‘히포크라테스’ 정신까지는 아니라도, 친절과 겸손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적도 아프리카 땅에 병원을 세우고 의료 봉사를 한 슈바처 박사는,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과 형제애를 실천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상금을 모두 아프리카 나환자촌을 만드는 데 썼다.
의술을 통해 헌신과 봉사, 인류애를 실천한 ‘참 의사’ 이었다.
대한민국의 한 의사는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톰즈로 파견을
자청 하였다.
그 이름 이태석 신부!
한국의 슈바이쳐 라는 이태석 신부는 12개짜리 병실을 짓고, 하루에 200-300명의 주민들을 진료하였다.
한센 병을 비롯한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주민들을 보살폈으며, 학교 기숙사를 세워 가난한 어린이들이 자립하도록 도왔다.
음악으로 아이들 마음속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온갖 노력을 하였다.
2008년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대장암 판정을 받고 1년간 투병 끝에 47세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 했다.
남수단 초등학교에는 이태석 신부의 삶과 업적을 담은 교과서가 나와 있다.
그는 남수단 국민에게 영웅으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사람 ‘참 의사’ 이태석 신부다.
최근 국내에서는 의사 정원 문제로 정부와 의업계가 갑론을박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사와 변호사는 최고 소득의 전문 직종이다.
의과대학을 보내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 공부를 시킨다는 현실이다.
대도시 선진 의료와 산골의 무의촌이 뒤섞인 나라가 한국이다.
KTX 개통 후 전국의 중환자들이 서울의 5대병원으로 쏠린다고 한다.
지방의 웬만한 병원은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다.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의료계가 탐욕 집단처럼 보인다.
의사 모두가 슈바이쳐는 될 수 없지만 적어도 수재 집단(秀才集團) 이라면
사회적 책무에도 눈을 떠야 한다.
의료개혁 필요성이 대두될 때마다 의료 단체들은 파업 으름장을 놓는다.
거대 공장을 장악하고 광화문 광장을 점거하는 노동 집단과 무엇이 다른가?
의사나 환자나 똑같은 인간이다.
인간 삶의 의미가 거창한 담론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의사가 마주 하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는 미소와 친절, 고통의
교감, 그리고 생명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놓지 않는 진심 어린 자세가
참 의사의 인술(仁術)이다.
첫댓글 의사가 마주 하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는 미소와 친절, 고통의
교감, 그리고 생명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놓지 않는 진심 어린 자세가
참 의사의 인술(仁術)이다.
의사나 환자나 똑같은 인간이다.
인간 삶의 의미가 거창한 담론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의사가 마주 하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는 미소와 친절, 고통의
교감, 그리고 생명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놓지 않는 진심 어린 자세가
참 의사의 인술(仁術)이다.